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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회화의 전통
조정육(미술평론가)
<三國時代>
(1)古墳미술과 建築
1)高句麗(BC37-AD668)
<고분>
삼국중에서 가장 진보된 미술
고분미술은 강력한 정치세력을 배경으로 삼국이 각각 특색있는 형식을 이룸
초기-석총(장군총),원시적
후기- 4C 이후 석실(판석)을 하고 흙을 덮는 봉토분. 묘실안에 벽화가 그려짐. 외 형은 장방형과 원형
*내부석실에 벽화를 그리고 천정이 抹角藻井. 연꽃-불교영향. 漢의 벽화고분과 요 녕지방의 영향. 프레스코화법
*무덤구조
입구가 있어서 도굴이 용이. 출토된 유물이 적음.
연대가 밝혀지지 않아 연대추정이 어려움.
고분벽화는 3기로 나눌 수 있다.
①제1기:4C 중엽- 5C 초
묘실墓室-측실側室, 감실龕室, 양실분兩室墳
내용-묘주인초상화墓主人肖像畵, 신상화神像化된 표현表現.
중국적인 경직된 풍속과 불교적 내용 강조- 불교가 소수림왕2년(372) 이 전에 들어왔음을 알 수 있음.
고분-안악3호분(冬壽墓:357)), 덕흥리고분德興里古墳(408), 감신총龕神塚,
②제2기:5C 중엽-6C전반
묘실- 兩室墳, 單室墓.
내용-묘주인초상과 다양한 묘주인의 공적,사적 생활도(풍속화), 고구려적인 활 달한 표현, 인불풍속과 사신도 혼재, 불교적 색채.
고분-무용총, 각저총, 쌍영총, 수산리고분, 약수리고분, 천왕지신총
③제3기:6세기 후반-7세기 전반
묘실-단실묘
내용-네 벽에 四神圖가 주제. 인물화. 발달된 山水畵. 道敎的 표현. 蓮花紋. 雲 紋. 忍冬唐草紋
고분-眞坡里1,4號墳. 通溝四神塚. 江西大,中墓.
※고구려는 벽화고분이 쇠퇴기가 없이 멸망.
절정기에 사신도가 형성되고 이후 사라짐.
2)百濟(AD18-660)
고구려와 달리 초기에는 積石塚, 토광묘.
중기- 塼築墳, 公州.( 5C 말 6C )중국의 남조 영향. 양나라 계통의 양식
무녕왕릉- 금속공예의 발달.
송산리 고분군에 벽화(사신). 단실묘(현실, 연도).
묘실구조:궁륭식 천정-남조적.한의 낙랑.
묘실봉토:고구려적
전축분 문양:백제적 부드러움
후기-石室墳. 板石使用. (6C말 7C전반).부여 능산리
평천정에 각을 줌(고구려 후기 고분인 강서중묘와 연결)
석실구조에 판석을 쌓아 벽화를 그림- 고구려 말기적인 사신도,日月象. 연 화. 운문.고구려의 힘찬 선에 비해 부드럽고 온화함.
3)新羅(BC57-AD650)
고구려,백제와 달리 묘실이 따로 없는 積石木槨墳으로 도굴이 어려워 많은 부 장품이 보존되어 있다. 고분의 위치는 경주시내의 평야지대(고구려, 백제-외곽 지대). 표주박형:합장불능
천마총,서봉총 출토 유물
신라, 伽倻 土器.
(2)불교미술
우리나라 문화재의 60%가 불교미술품.
1)불교예배상의 종류
* 佛:梵語로 Buddha(佛陀)의 약칭. 如來. 覺者. 진리를 깨달은 사람. 진리에 도달한 사람.
그러나 보편적 의미로는 샤가무니(Sakyamuni)를 지칭.
․應身佛-샤가무니(약 2천 5백년 전 인도 북부 네팔 국에 있던 가비라 성의 별장 인 룸비니園에서 출생. 29세에 출가.부다가야의 보리수 밑에서 成道)
․법신불法身佛-대일여래大日如來(비로자나불毘盧遮那如來).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무량광여래無量光如來,무량수여래無量壽如 來)
약사여래藥師如來(대의왕불大醫王佛)
*보살菩薩: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사람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관음보살觀音菩薩, 세지보살勢至菩薩-아미타여래의 보처보살補處菩薩
일광보살日光菩薩, 월광보살月光菩薩-약사여래
미륵보살彌勒菩薩 -석가여래釋迦如來
*천天:호법신護法神
범천梵天. 제석천帝釋天. 사천왕四天王. 팔부중八部衆. 인왕仁王. 가릉빈가
*형식
32吉相. 80種好. 服裝(通肩,右肩偏袒). 光背(頭光,身光, 擧身光). 臺座. 印相(禪定印, 降魔觸地印,轉法輪印,施無畏印,與願印, 智拳印, 彌陀定印
<統一新羅> (668-935)
고신라의 연속과 삼국문화의 통합. 신라가 뒤늦게 불교를 수용하였지만 급격한 발달로 인하여 불교문화가 융성하였으며 특히 불교이념을 강하게 부각시켜 彫刻 발달. 唐의 國際的, 寫實的 性格의 영향과 三國美術의 사실주의가 합해져 한국미술의 정점을 이룸.
(1)古墳
화장이 유행하고 부장문화가 사라짐.
板石(十二支神像. 彫刻). 石人, 石獸 配列
(2)繪畵
현존유물 稀少. 그러나 석굴암의 조각처럼 뛰어난 회화가 있었으리라 추정. 唐의 영향으로 人物畵와 청록산수 발전 가능
*畵跡-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변상도變相圖. 역사상力士像. 보상화문寶相華紋
*畵家-솔거率去:설화적이나 사실주의 경향 반영
<高麗時代>(918-1392)
한국미술사상 미술의 꽃을 피운 시기. 청자․회화․조각 등 불교문화는 護國불교에서 護身으로. 개인화, 귀족화.
고려문화는 前期의 문인중심에서 12C이후 무신정권의 도입. 13C 몽고침입이후의 원의 지배하에서 조선문화의 문을 여는 양상을 보여줌
(1)회화
․실용적인 그림 외에 餘技와 감상용. 현존작품 드물다.
*이녕李寧 <예성강도禮成江圖>
*이제현李齊賢
*공민왕恭愍王
․佛敎繪畵: 섬세하고 화려함.
*목판화 <어제비장전御製秘藏詮>
*부석사 조사당 벽화
*<관경서품변상觀經序品變相>:1312년(일본 大恩寺)
*<아미타여래도阿彌陀如來圖>:1286년(일본 銀行藏)
*< ″ >:1306년(일본 根津美術館)
*<아미타구존도阿彌陀九尊圖>:1320년(일본 松尾寺)
*서구방徐九方 <수월관음水月觀音>:1323년(일본 개인장)
*혜허慧虛 <양류관음楊柳觀音>:(일본 개인장)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일본 靜嘉堂)
*노영魯英 <태조배례도太祖禮拜圖>:(국립박물관)
*<오백나한五百羅漢>
<朝鮮時代>(1392-1910)
․고려시대 불교숭상에서 유교로.
․중국은 元에서 明으로 교체됨.
․반고려적인 정치사상으로 출발, 유교적인 바탕위에서 문화성립-백자와 회화가 주류.
․조선시대는 미술사에서 대체로 4기로 구분(초기, 중기, 후기,말기)
혹은 전쟁을 전후로해서 전기, 후기로 구분.
(1)초기(1392-1550):世宗, 世祖, 成宗, 中宗
․고려말기의 문화가 그대로 계승. 이 시기의 정치적 배경이 되었던 성리학도 고려말기 의 安珦, 李齊賢이 들여와 조선에 이어짐.
․회화:安堅, 安平大君(조맹부체)등에 의해 15C에 꽃피움.- 北宋의 郭熙畵風.
馬夏風, 未法山水
․抑佛崇儒했으나 世宗, 世祖년간에 佛事.
․明나라와 관계 긴밀해짐-靑華白瓷들어옴.
※곽희파화풍(郭熙派畵風):북송대(北宋代)의 이성(李成)과 곽희(郭熙)에 의해 이룩된 화풍 으로 이들의 이름을 따서 이곽파 화풍(李郭派畵風)이라고도 함. 화북지역의 스산한 겨울풍경에 어울리도록 해조묘(蟹爪描)법을 써서 대체적으로 산수의 모양은 거대하고 사람의 모습은 아주 작게 그려서 거의 드러나지 않게 표 현하는 것이 특징.
※마하파화풍(馬夏派畵風): 남송(南宋)의 화원화가인 마원(馬遠)과 하규(夏珪)에 의해 이 룩된 화풍임. 곽희파화풍이 화면내에 화북지역의 거대한 산수를 배치하는 것 과는 달리 남송의 온화한 기후와 나즈막한 산, 안개에 휩싸인 강남지역의 자 연환경을 주로 그림. 따라서 변각구도에 시적인 분위기묘사에 주력. 주로 부 벽준(斧劈皴)을 즐겨 사용. 남송원체화풍(南宋院體畵風)의 시조를 이룸.
※미법산수(米法山水): 북송대의 미불(米芾)과 미우인(米友仁) 부자에 의해 이룩된 화풍 으로 미가산수법(米家山水法)이라고도 함. 미점(米點)을 사용하여 비가 온 뒤 의 습윤한 분위기나 안개 낀 자연묘사에 효과적으로 사용.
<작가와 작품>
*안견安堅 <夢遊桃源圖>,<四時八景圖>
*강희안姜希顔 <高士觀水圖>
*이상좌李上佐 <松下步月圖>
*이장손李長孫, 최숙창崔叔昌, 서문보徐文寶
*이암李巖 <花鳥狗子圖>
*신사임당申師任堂 <草虫圖>
(2)중기(1550-1700)
․혼란기. 중국에서도 1616년에 淸 건국. 그러나 明은 1670년까지 지속. 조선은 청을 배 척.
․明의 절파화풍浙派畵風 들어옴
․특징: 안견파화풍의 지속
절파화풍의 유행
남종문인화의 유입
※절파화풍(浙派畵風):명초(明初)의 절강성(浙江省) 출신인 대진(戴進)과 그 추종자들에 의해 이룩된 화풍. 남송원체화풍과 곽희파 화풍이 뒤섞인 양식으로 15세기 후반 이후 명대 화원(明代畵院)들이 즐겨 사용함. 남송원체화풍보다 복잡한 구성과 거 친 필치를 주로 사용하였음.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 명대(明代)의 동기창(董其昌)과 막시룡(莫是龍)이 중국 회화 를 남종화와 북종화로 구분한 데서 비롯됨. 북종화는 화원화가나 직업화가들에 의해 그린 그림으로 짙은 채색과 사실적인 외형묘사에 주력하는 그림인 반면 남 종화는 인격이 높고 학문이 깊은 선비화가들이 여기(餘技)로 그린 그림으로 수 묵(水墨)과 담채만으로 내면세계를 표현한다는 주장. 원말(元末)이후에는 남종화 가 형식화되었으며 문인화가들 뿐만 아니라 직업화가들도 즐겨 그리게 되었다. 명대 이후 현대 화단까지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 구분법은 그러나 기법에 의한 구분이라기보다는 화가의 신분에 의해 구분된 모순을 낳고 있다.
<작가와 작품>
*김시金禔 <寒林霽雪圖><童子牽驢圖>
*이정근李正根 <雪景山水圖><米法山水圖>
*이정李禎 <山水圖>
*이징李澄 <산수도>
*김명국金明國 <雪中歸驢圖><達磨圖>
*이명욱李明郁 <漁樵問答圖>
*김식金埴 <물소그림>
*조속趙涑, 조지운趙之耘 <花鳥畵>
*이정李霆 <대나무그림>, 어몽룡魚夢龍 <梅畵>, 황집중黃執中 <포도>
(3)후기(1700-1850)
․1700년경부터 숙종년간에 기운형성. 英․正朝년간에 꽃피움.
․전통회화의 계승과 새로운 경향으로 자아의식과 함께 眞景山水가 등장.
風俗畵, 南宗畵風, 西洋畵風,
①남종화의 유행
:조선 중기에 수용된 남종화가 정착. 元末四大家(黃公望,吳鎭,倪瓚,王蒙)와 明 ,淸
代의 화풍이 영향.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 : <평사낙안도平沙落雁圖>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 : <육상묘도毓祥廟圖>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1707-1769) : <방심주산수도倣沈周山水圖>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 : <벽오청서도碧梧淸署圖>
*능호관凌壺關 이인상李麟祥(1710-1760) : <설송도雪松圖>
*지우재之又齋 정수영鄭遂榮 (1743-1831) : <방황공망산수도倣黃公望山水圖>
*학산鶴山 윤제홍尹濟弘(1764-1840) : <송하소향도松下燒香圖>
*소당小塘 이재관李在寬(1783-1837) : <귀어도歸漁圖>
*서암西岩 김유성金有聲(1725-?) : <산수도>
②진경산수화의 풍미
:우리나라에 실제로 존재하는 名山勝景을 소재로 하고 남종화법에 토대를 둔 한국적 화풍으로 그려낸 ‘東國眞景’
*한시각韓時覺:<북새선은도北塞宣恩圖>
*겸재謙齋 정선鄭敾 : <금강산도金剛全圖>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담졸淡拙 강희언姜熙彦(1710-1764) : <인왕산도仁王山圖>
*진재眞宰 김윤겸金允謙(1711-1775) : <영남명승첩嶺南名勝帖>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1721-1769) : <표훈사도表訓寺圖>
*복헌復軒 김응환金應煥(1742-1789) : <금강산첩金剛山帖>
*초원蕉園 김석신金碩臣(1758-?) : <도봉도道峰圖>
*지우재之又齋 정수영鄭遂榮 : <청룡담도靑龍潭圖>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16이후) : <총석정도叢石亭圖>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이인문李寅文(1745-1821) : <단발령망금강도斷髮嶺望金 剛圖>
*서암西岩 김유성金有聲 : <낙산사도落山寺圖>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 <백석담도白石潭圖>
③풍속화의 발달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 <채애도採艾圖>
*청고靑皐 윤용尹熔 : <협롱채춘도挾籠採春圖>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1686-1761) : <사제첩麝臍帖>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 <단원풍속화첩檀園風俗畵帖>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1754-1822) : <파적도破寂圖>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 <혜원풍속화첩蕙園風俗畵帖>
④인물화의 발달
*공재 윤두서 : <자화상自畵像>
*김홍도, 李命基 : <서직수초상徐直修肖像>
*혜원 신윤복 : <미인도美人圖>
⑤동물화․화조화․화훼화. 서양화법의 수용.
*남리南里 김두량金斗樑 (1696-1763) : <흑구도黑狗圖>
*화재和齋 변상벽卞相璧(?-?) : <묘작도猫雀圖>
*정조대왕正祖大王(1752-1800) : <파초도芭蕉圖>
(4)말기(1850-1910)
①남종화풍의 유행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세한도歲寒圖>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梅花書屋圖>
*소치小癡 허유許維:<산수도>
*고람古藍 전기田琦:<계산포무도>
②이색화풍
*북산北山 김수철金秀哲:<송계한담도松溪閑談圖>
*석창石窓 홍세섭洪世燮:<유압도遊鴨圖>
*임전琳田 조정규趙廷奎:<산수도>
<근대 및 현대화단으로의 이행>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호취도豪鷲圖>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과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晉에 의해 근대화단이 형성
*노수현盧壽鉉, 이상범李象範, 변관식卞寬植, 김은호金殷鎬 등을 통해 근대화단이 현대 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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