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30 토 오전미사
♣ 최상훈 티모테오 주임신부님 강론 말씀 ♣
가장 아름다운 계절 5월도 이제 끝물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5월이 지나가야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라도 놀러 갔다 와야 되는데 하는 생각도 드는 오늘인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을 좀 잘 알아듣기 위해서는 오늘 복음의 바로 전 내용을 먼저 알으셔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 바로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여러분 아십니까?
우리가 어제 미사에 오셨으면 아셔야 되는 건데 그런데 안타깝게도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순교자들 미사를 드렸어요. 그래서 어제 전 단계가 뭔지 우리는 지금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성전 정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셨다 라는 내용입니다.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이렇게까지 분노하시고 이렇게까지 욕지거리를 하시는 장면들을 처음 본 장면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 불경한 말씀인지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이렇게 깽판을 치신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율법에 의해서 성전에 관해 일체의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던 시절입니다.
그러니까 성전에 관한한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성전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동에 대해서 권한을 가지고 독점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무엇을 간파하셨느냐 하면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런 겁니다.
내가 죄를 지었어 그러면 그에 상응하는 속죄 제물을 바쳐야 돼.
그 당시에는 무엇을 바쳤습니까? 동물로 대신해서 속죄 재물을 바쳐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더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해서 율법 조문을 더 세세하게 만들어서 법 조문을 많이 만들었던 거예요.
그래서 온갖 것에 다 속죄되어 있고 오죽하면 정결 예물까지도 만들었어요.
예를 든다면 여자의 모 그거 뭐라고 그러죠? 생리까지 건드리면서 그런 것들이 있을 때 그 속죄, 깨끗하게 되기 위해서 속죄 제물을 만들어서 성전에 동물을 갖다가 바쳐야 되는 이런 경결 예물까지 만들었던 거예요.
여러분 이 얘기를 듣고 무슨 생각 안하십니까? 그러면 어떤 일이 발생하느냐?
그 배고프고 그 식민지의 삶을 사는 민중들은 더 어려워지는 거겠죠.
왜냐하면 내가 그런 법이 있으니까 그것을 기워 갚기 위해서 더 많은 동물을 사다가 바쳐야 되는 거예요.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혹독한 세월을 보냈겠습니까?
두 번째, 이게 더 문제예요.
그 동물을 사야하는데 동물을 살 때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로마 화폐가 아니에요.
어떻게 만들었냐면 성전 안에서만 통용되는 성전 화폐를 만들었어요.
그러면 민중들은 백성들은 죽을 똥을 싸게 노동하고 일해서 돈을 벌어갖고 들어와서 동물을 사려면 성전 화폐로 환전을 해야 됐어요. 그런데 그 환전 비용이 어마어마해요.
우리 여러분들도 해외 여행 가실 때 환전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환전 값이 예를 들어서 1500원이다. 그렇게 됩니까? 바꾸는 값은 더 비싼 거예요.
그리고 내가 외환을 팔 때는 더 싸게 팔아야 돼요. 그렇지 않습니까? 따라서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은 더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진 거예요. 그래서 온갖 비리와 온갖 폭리가 성행했다는 것이죠.
예수님은 이 사실을 본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서 그 환전상들을 둘러 엎고 깽판을 치신 거예요. 다 둘러 엎은 다음에 이 말씀을 남기십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너희는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라고 극단적인 분노를 표출하시는 오늘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 생겼겠습니까? 그 집권 세력들이 가장 확고하게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 환전을 통해서 얻는 이득인데 예수님께서 그것을 비판하신 거예요.
그러니 권력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예수라는 저 사람을 죽여버리자 라는 생각이 떠올랐겠죠.
여러분 우리 인간사와 마찬가지예요. 내 이득을 누가 뺏어가면 우리는 앙심을 품게 되죠.
그 거대한 이익의 그 원천을 예수님께서 오늘 탓하신 거예요.
그랬더니 그들은 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연구하게 됩니다.
저자를 제거 해야지만 자기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에요.
상황은 이런 겁니다. 이런 상황이 제가 오래 전 일인데 어느 본당에 있을 때 주변에 이렇게 교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우리 신자가 와서 얘기를 해줬어요.
신부님, 우리 신자는 3500명인데 헌금이 120만 원 나오는데, 요 옆의 제일교회는 신자가 220명인데 헌금이 450만 원이에요.
그 소리를 하더라고요. 아니 도대체 저 교회는 어떻게 하길래 이렇게 헌금이 아니 우리의 2배 3배가 될까. 장난 삼아 아무도 모르게 그 교회 현관에 갔어요.
그 교회 현관에 갔는데 그 현관에 봉투가 쫙 놓여져 있는데 봉투가 24개에요. 종류가.
봉투 종류가 24개 예요.
임직 감사 헌금 봉투, 합격 봉투, 승진 봉투, 감사 봉투, 생일 감사 봉투, 애기 돌 감사 봉투, 입학 감사 봉투...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감사 봉투가 쭉 있었어요.
아니 그래서 축복을 받을 수 있다면은 나도 한번 그렇게 해볼까 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 한 번, 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니 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이 네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저지른 거냐 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오히려 되묻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라는 허를 찌르는 질문으로 그들의 입을 닫아버립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 온 것이라면 왜 요한을 따르지 않았느냐, 사람에게서 온 것이라면 군중들은 요한을 예언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반란을 생각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뭐라고 해요?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이게 중요해요.
오늘 복음의 아주 핵심적인 내용이에요.
뭐라고 대답합니까? 모르겠소.
모르겠소 라고 대답을 합니다. 모르겠소. 이 한마디가 오늘 가슴을 때리는 말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권한, 권위 권위를 말할 때 그 권은 한자어로 저울을 뜻한 답니다.
권한, 권위를 말할 때 그 권 자가 저울을 뜻 합니다.
지금 선거철 아니겠습니까? 선거철에 그 많은 후보자들은 뭐를 얻으려고 합니까?
권한을 권위를 얻으려고 이 피터지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저울을 얻으려고 저울, 저울을 가진 사람이 권한과 권위를 받는 거예요.
저 저울을 가진 사람이 권한과 권위를 받는 거예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눈금은 모든 것을 판가름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저울은 하늘에 속한 것이다 라고 말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늘의 저울은 사람의 저울과는 다릅니다. 제가 예를 들어볼게요.
피자 한 판을 시켰어요. 그러면 각도기, 90도 각도를 딱 재서 사람이 4명이야 그러면 똑같이 여기서 4등분으로 나눴어. 그래서 나눠 먹어요.
이게 올바른 일입니까?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게 올바른 분배입니까? 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의 저울은 이렇지가 않다는 거예요. 하늘의 저울은 오늘 어제 저녁을 굶은 사람, 뭘 할 수가 없어서 어제 저녁을 굶은 사람, 어제 친구들과 함께 소주를 먹으면서 고기를 실컷 먹은 사람 등등 네 사람이 있다면 그 피자를 똑같이 4등분으로 나누는 것은 올바른 저울의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게 하느님의 법이에요. 그런데 세상은 이렇게 디자인이 돼 있어요.
이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수석 사제들은 계속 저울질 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저울을 바라보라고 얘기하고 있는 형국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를 하면 그들은 “모르겠소” 라는 말을 남깁니다.
이 말이 왜 가슴이 아프냐면은 나의 평상시 말이기 때문이에요.
줄곧, 평소, 늘 우리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비겁하고 때로는 솔직하지 못하고 때로는 위선적이고 때로는 눈치 보고 때로는 계산적인 나의 말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불안할 때, 뭔가 잘 안 될 때 모르겠음을 난발하고 있는 사람들이죠.
나는 나의 저울로 예수님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이 저울로 내가 가진 저울로 타인을 저울질 합니다.
정리하면서 저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인생사 51:49예요. 100% 있을 수가 없죠.
그러나 우리는 51쪽으로 선택하고 극적인 무게를 달아주는 거죠.
이게 세상을 사는 담론, 하느님의 법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100%가 될 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51에, 이번 선거도 저는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듭니다.
아우 나, 관심 없어 다 드러워 라고 말하는 사람이 제일 나쁜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51 쪽에 우리의 판돈을 거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이 0.1%라도 조금 나아진 세상, 민주화된 세상, 정의로운 세상, 한 발짝이라도 더 사랑이 싹트는 세상을 우리가 선택하는 거예요.
51:49예요. 여러분 이 사람에 대해서 100이 아니라고 욕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나도 100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세상이 디자인돼 있고 그렇게 만드는 거예요.
정의로운 세상에 내 한 표를 던지는 거겠죠.
우리는 매 순간 이렇게 세상 한가운데서 싸우며 살다가 문득 생각나는 한마디,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뜻은 어디에 있을까 라고 찾아가는 일이겠죠.
오늘 성전 정화 사건을 겪으면서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행한 일들, 그리고 예수님의 답변에 대해서 한번 묵상해 보시고 우리는 세상은 51대 49의 그 선택으로 좋아지고 나빠지고 하고 있다.
우리가 물러나서 49%를 선택한다면은 우리는 나쁜 나라가 되는 거겠죠.
물러서지 말고 정의롭고 아름답고 사랑하는 우리의 조국을 위해서 한 표를 꼭 선택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 주임신부님의 강론 말씀 내용과 조금 다르게 표기 되었을 수 있습니다. 양지하시고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