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想錄, 17 南原, 廣寒樓
광한루는 전북 남원시에 있다.
노령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의 분지이면서 고원 같다.
남원시 인구는 7만 5천여 명이다.
남원시는 통일 신라시대 남원경(南原京)에 유래 했다.
조선 태조 때 황희 정승이 남원에 유배시 지은 광통루(廣通樓) 였다.
세종 16년( 1434년) 정인지가 고쳤다.
옥황상제가 산다는 월궁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 같다하여 광한루로 바꾸었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여 인조(1638년) 남원부사 신감이 세웠다.
광한루는 고전 소설 춘향전의 춘향과 이몽룡(성몽룡) 얘기로 유명하다.
필자가 공수부대(특전사) 천리행군시 노중(路中)에 하루 숙영 하면서 광한루를 찿았다.
남원성은 통일 신라시대 축성되여 현재는 600m 정도 남아 있었다.
전면은 돌(石), 후사면은 흙으로 45도의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성채는 미루형 성이라 가퀴 (총안구)도 없고 성문 누각 등 소실되여 제주의 대정읍성 즘 되여 보였다.
광한루 안에는 오작교, 완월정, 영주각, 춘향관, 춘향사당, 월매집이 있다.
연못(호수)에 잉어는 노란 잉어, 비단 잉어 등 네 팔뚝 만큼 보다 통통했다.
잉어는 동의보감(東醫寶鑑)에 풍부한 영양소가 함유해 산모의 몸 보신에 좋다.
필자가 찾았을 때는 늦가을이라 광한루와 오색 단풍이 연못에 얼비치 모습은 거울 속을 보는 것 같았다.
오작교를 거닐다 돌(石)로 된 자라석(鼋,石)를 안내 받으며 물속을 유영하는 기분이 었다.
오작교는 이상향의 겨누와 직녀가 만난다는 가교는 조선시대 가사문학(歌詞文學)의 시발점이다.
여기서 정철이 성산별곡을 만들었다.(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 ) 등
성산별곡: 엇던 디날 손이 성산(聖山)의 머믈, 서하당(棲霞當) 식영정(息影亭) 며서 주인 아 내 말 듯소.(생략)
해설: 어떤 지나가는 손님이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 주인아 내 말을 들어 보소.
무지개 오작교 다리는 약 58m, 반원 형의 4개의 아치 형 (반달 형) 구멍이 있다.
이는 하늘과 땅이 만난다는 뜻 이기도 하다.
그리고 연못은 남원시 중앙으로 흐르는 요천의 물을 끌여들여 물의 흐르도록 했다.
남원 부사 송강 정철이 만들었다.
어떻든 춘향전에서 배경으로 광한루는 자연을 닮고 자 하는 정원이다.
신선의 사는 지상의 이상향을 대표하는 춘향전 얘기는 건아한 판소리 가락이다.
조선의 한량이 춘향이 최후의 이별 대목" 잦은 모리" 장단,
-. 저 방자 미워라~ ,
제 가는 대로 달 만큼 보이다가 나비 만큼 불티 만큼 막중 고개 넘어 가시니
아주 깜빡 그림자도 못 보겠구나,
춤과 장단 그리고 노랫소리는 서민에 심금을 울린다.
글: 虎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