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겠지만 내 경우도 호감 섞인 관심을 갖고 있는
유명 인사 몇 분이 있다.
물론 사적인 친소(親疎)관계와는 무관하다.
직업상 가까이 하는 사람이냐, 아니냐와도 상관없다.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대중적 이미지를 그 나름대로
즐기는 쪽일 것이다.
그런 인사에는 대중 연예인들이 포함되기 십상인데,
밝히지만 내 경우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그중 한 명이다.
하긴 그는 연예인 못지않은 대중적 인지도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만의 스타일인 흰색 의상이 그렇고,
꽤 짙은 화장도 트레이드 마크다.
또 있다.
그는 자기가 만들어 낸 유행어로도 유명하다.
독특한 억양과 함께 발음되는
“팬터스틱하고 휴매니티가 있는 이메이지가 좋아요”하는 식의 표현 말이다.
자, 뜬금없는 앙드레 김 이야기는 그가 며느리를 봤다는 뉴스 때문이다.
그의 외아들 중도씨가 지난달 결혼식을 올렸다는 기사를 읽은 것이다.
결혼식에는 현승종 전 총리의 주례로 극소수의 지인들만이 초청됐다고 한다.
그렇지만 미국 대사 부부 등이 참석했다니 작은 잔치는 아니었던 셈이다.
그의 스타일로 볼 때 조용하면서도 각별한 분위기가 연출됐을 것이 분명하고,
기회에 팬의 자격으로 그에게 축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내 경우 공인(公人) 앙드레 김의 아들 이름을 기억하니까.
또 그 외아들에 대한 알뜰한 부정(父情)도 익히 안다.
2년 전 나온 책 ‘앙드레 김 My Fantasy’(아침나라)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 책의 한 장(章) 전체가 ‘나의 아들’이다.
생후 1년 6개월 때 아들을 입양했다는 것,
그러나 말귀를 알아들을 무렵
“나는 너를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낳은 것과 다름없다”고 일러 줬다는 것 등의
따듯한 내용이 내비친다.
특히 아들을 억압하지 않고 충분히 배려하려는 자세에서 나는 감동을 받았다.
그 책의 공저자인 동아일보 이승재 기자도
“아들에 대한 사랑의 끝은 어디일까?”하고
감탄(80쪽)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고백할 게 또 하나 있다.
실은 내게 그는 연구 대상이기도 하다.
왜?
꽤나 독한 남성중심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그가 살아가는 방식에
호기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 아시듯이 남성중심주의 한국 사회는 타인의 취향이나 기호를 쉬
용인하지 않는다.
이런 한국 사회의 분위기에서 그 섬세한 앙드레 김이 어떻게 버텨 내는지
여간 궁금한 게 아니다.
그는 직업적 성공을 거두고 있고 또 굳세게 자기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지 않던가!
통념보다 ‘간단치 않은’ 인물인 그는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흔치 않은
‘교양맨’이다.
“의상에는 꿈과 환상이 담겨야 합니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품위와 교양미에 있습니다.
퇴폐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중략) 술 냄새가 싫습니다.
비교양적인 몸짓과 상스러운 눈빛도 싫습니다.
아아, 순결하고, 낭만적이고, 상식으로 가득 차고,
시적인 것들이 저를 흥분시킵니다.”(‘앙드레 김 My Fantasy’ 서문)
따라서 나는 개인적으로 그를 한국 사회가 억압해 온 여성스러움의 가치를 상징한다고 본다.
남자이면서도 여성적 가치를 대변한다는 것이 흥미로운 역설이다.
그게 나만의 판단은 아닌 모양이다.
앙드레 김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가수 조영남도 한 신문 기고에서
“앙드레 김이야말로 너무도 문화적인 인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생각해 보니 앙드레 김과 나는 약간의 인연이 있었다.
고약하게도 악연 쪽이었다.
4년 전일까.
그의 공주 패션풍 의상에 대한 비평을 기사로 쓴 바 있었다.
문제는 그게 혹평 쪽이었다.
그 기사가 나간 뒤 앙드레 김이 전화를 했다.
좀 흥분한 목소리의 그가 조목조목 따져 왔고,
나 역시 “패션도 문화비평의 대상”이라고 씩씩대며 방어해야 했다.
아쉽게도 그 뒤 이렇다 할 해명 기회가 서로 간에 없었다.
지금도 내 비평 소신은 똑같지만 그게 뭐 대수일까.
작품은 작품이고 사람에 대한 존중과 애정은 별도의 문제다.
나는 지금도 앙드레 김이라는 존재는 한국 사회에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 사회의 문화 다양성과 ‘유쾌 상쾌 통쾌함’을 위해서라도
그의 성공이 오래 가기를 바란다.
‘사회 코드로서의 앙드레 김 읽기’의 이 글을 쓰는 김에
그가 며느리 본 것을 다시 한 번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