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원제: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작가 야마오카 소하치는 태평양전쟁 당시 종군작가로 활약하고 있었다. 전세가 기울어지면서 일부 젊은이들이 가미가제 특공대에 지원해 영예롭게 죽음을 택하는 것을 보고 가미가제에 지원하지만 신체검사에서 탈락하고 만다. 조국을 위해 죽을 기회를 갖지 못한 야마오카 소하치는 절망 속에서 괴로워 하다가 한가지 결단을 하게 된다. "2차 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을 위해, 패배감에 시달리는 일본인을 위해, 민족적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글을 쓰자. 그 일에 내 목숨을 건다." 1950년에 시작된 신문 연재 소설 대망은 그 후 17년 동안 신화를 부활시키고 영웅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 열등감과 패배감에 시달리던 일본인들을 일으켜 세우는데 일조한다.
잘 된 역사 소설은 야구에 비유한다면 3루 쪽으로 라인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뻗어나가는 공에 비유할 수 있겠다. 라인 안쪽으로 떨어지면 안타가 되는 것이고 밖으로 떨어지면 파울이 되는 것이다. 라인 위에서 공의 낙하 위치를 가늠하며 스릴을 느끼는 것은 역사 소설을 읽으며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상상력 사이를 오가면서 진실인지 허구인지 가늠하는 재미와 비슷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대망>은 밖으로 떨어진 파울볼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게임에는 별 관심이 없고 응원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자리에서 일으켜 세울까 해서 뭔가 그럴듯한 배팅을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 정도로 역사적 상상력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건 물론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다.)
내가 읽은 역사 소설 중에서 진실과 허구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스릴을 느끼게 해줬던 책으로는 <태백산맥>이 있다. 8,9권으로 가면서 종종 작가의 고뇌가 엿보였고 행간에 씌여진 많은 역사적 사실과 밝혀지지 않은 부분에 대한 궁금증으로 나로 하여금 남로당이나 박헌영에 대한 책과 논문까지 다 뒤져보게 하였으니 일단은 안타로 봐주고 싶다. 그렇다면 최인호의 <상도>는 ?
내가 최인호를 처음 읽은 것은 70년대 말쯤 샘터에 연재되었던 <가족>을 통해서였다. 새로 이사간 집에서 지네가 출몰하는 바람에 자다가 식구들이 한바탕 소동을 벌인 내용으로 인상이 깊어서인지 내용은 물론이고 삽화까지 다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게 최인호의 글인줄 모르고 있었다. 으레 최인호 하면 대중연애 소설 작가 정도로 알고 있었고 <별들의 고향>으로 잘 나가는 인기 작가였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내 맘 한구석에 경시하는 맘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최인호를 다시 보게 된 것은 80년대 - 언젠가, 모 일간지 주관으로 한일 작가 신년 대담을 현해탄 선상 위에서 한 적이 있었는데 신문에 실린 최인호의 글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물론이고 어느 신문사였는지 몇 년도였는지 아무 생각도 안난다. 그때 받은 내 느낌만 어렴풋이 생각나는데 그것은 작가로서, 한국인으로서 '심지가 있는 사람' 이었다. (기사를 찾으려고 노력은 해봤으나 실패했다. 한 가지 방법은 있는데, 프레스 센타에 가서 우리나라 5대 일간지 80년도 판 마이크로 필름을 다 확인하는 것이다. 시간이 있으면 해 볼만도 한데, 혹시 누구 아는 사람 ? 어느 신문인지 만이라도-.)
간간이 주워들은 얘기로 천주교 신자인 그가 스님이 되고 싶어한다더라-. 샘터에 <가족>연재가 300회가 넘었다더라-.그때 신문기사 읽은 뒤로는 그의 책을 꼭 보지 않아도 관심이 갔다.
<상도> 얘기하기 전에 서론이 길었는데(상도 역시 임상옥 얘기하기 전에 서론이 길다.) <상도>는 의주 상인 임상옥이 살았던 순조 시대의 인물 홍경래와 추사 김정희를 끌어들여 역사적 입체감이랄까 좀 더 확실하게 시대적 배경을 구성한다. 또 <상도>의 세 화두, 죽을 사(死) 솥정(鼎), 계영배(戒盈杯)를 통해 이 시대의 상인들 뿐 아니라 무엇이든 사고 파는 일에 익숙한 우리 모두에게 아주 커다란 질문을 던진다.
<현자는 모든 것에서 배우는 사람이며, 강자는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며, 부자는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욕망의 유한함을 깨닫고, 그 욕망의 자제를 통해 스스로 만족하는 자족이야말로 하늘 아래 최고의 거부로 나아가는 商道. >
200년 전에 실재하였던 임상옥 이라는 인물을 통해 상업의 도(商業之道)를 부각시키고자 한 작가의 노력은 빈익빈 부익부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굉장히 유용하게 다가온다. 기업을 하는 사람들, 시장 통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자족할 줄 모르는 우리들에게조차 인생을 살아나가는 도를 보여준다.
열하일기, 사마천의 사기, 논어, 금강경, 장자 등등 고전의 주옥같은 가르침이 주인공 임상옥의 삶을 중심으로 편집되는데 30년이 넘게 작가의 길을 걸어 온 노련함으로 구성의 치밀함 속에, 박자를 정확하게 조절하면서, 재미 속에 그 어려운 선문답과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역시 최인호다.
<상도>를 읽으면서 최인호가 이제 늙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두 가지인데 긍정적 의미로는 인생을 총괄하는 능력이 유난히 빛나는 점. 즉 인간의 삶을 한 눈에, 한 마디로 표현할 줄 안다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상도 5권에 이르러 강해지는 종교적 색채, 좀 심하게 표현하면 불교와 천주교가 혼합된 간증과도 같은 묘사 때문에 그가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여기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생각이 좀 복잡하고...약간 아쉬운 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몇 가지... 왜 꼭 상도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은 '절세 미인'이어야 할까? 젊고 이쁘지 않으면 주인공이 될 수 없나?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생각해서 그런건가?
또 앞에 서술했던 내용이 요약,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그건 왜 그럴까 추측을 해봤는데 아마도 신문 연재 소설의 특징이 아닐까 싶었다. 앞 부분을 못 읽은 독자를 위한 배려 정도로 생각했는데 맞는지....
소설을 읽으면서 따로 메모를 하는 일은 극히 드문데 석숭 스님이 임상옥에게 준 세 화두와(死, 鼎, 戒盈杯) 이 글은 노트에 적어 두었다.
<본시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며, 나지도 죽지도 않으며, 오는 것도 아니며 가는 것도 아닌 것을 네가 괴로워하는 것은 진흙 덩어리에 불과한 네가 소유하려 하기 때문인 것이다.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욕망이 진흙 덩어리에 불과한 너의 실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너의 욕망 때문이며 너의 애욕 때문인 것이다. 보아라. 너야말로 저와 같이 진흙에 불과하지 않느냐. 진흙 덩어리에 불과한 네가 도대체 무엇을 그토록 고통스러워하고 있음이냐.그 고통은 바로 너의 욕망 때문이 아닐 것이냐.> -도공 우삼돌이 자신이 만든 토우를 보며 깨달음을 얻는 장면이다.
역사 소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을 바탕으로 작가가 가진 역사적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재미와 교훈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실을 확인하고자 하는 욕구를 부채질한다. 상도를 보면서 추사의 <세한도>에 얽힌 이야기와 추사가 임상옥에게 주었다는 <상업지도>를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상상인지 사실인지도궁금하고...
다시 야구 경기로 돌아가 보자. 야구에서 보면 어떤 공에 비유될 수 있을까? 글을 쓰는 내내 생각해 봐도 마땅한 답을 내기가 쉽지 않다. 타자가 멋있게 쳐냈으나 공중에 뜬 공의 모양으로 봐서 무엇이 될지 예측하기 힘든 상태라고나 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임상옥의 삶을 통해 '상업이란 이(利)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의(義)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공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승리의 타구가 될 것이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