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거대한 빨래터
서양인의 눈에 비친 100년전 조선의 모습은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것이었다. 그들의 기록 곳곳에는 그들이 조선에서 느낀 악취, 더러움, 혐오스러움이 매우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그들은 조선인이 입고 다니는 순백의 옷이 더더욱 신기했던 것이다.
서울의 성벽 안쪽을 묘사하는 일은 어쩐지 피하고 싶다. 나는 베이징을 보기 전까지는 서울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가 아닐까 생각했고, 사오싱의 냄새를 맡기 전까지는 서울이 세상에서 가장 냄새나는 도시가 아닐까 생각했다. 거대 도시이자 수도로서 서울의 위엄을 생각할 때 그 불결함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1894년)
서울은 확실히 내가 이제까지 본 도시들 중에서 가장 특이한 곳이다. 시내 중심 거리라 해도 항상 물이 줄줄 흐르면서 온갖 오물이 그대로 직통 수구로 흘러들어가는 도랑 자체이고, 한 나라의 수도이면서도 현재의 산업 문명을 대표하는 공장도, 굴뚝도, 유리 창문도, 계단도 없다. 유흥시설인 연극 공연장, 카페나 찻집도, 사람이 쉴 수 있는 공원이나 푸른 잔디밭도, 이발소도 없는 이 나라 수도 서울. 가구도 침상도 없는 집안 내부, 그리고 변소라는 곳은 일반적으로 거리 쪽에 붙어 있다. 온 시내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흰 옷을 입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고, 거리에는 더러운 쓰레기와 오물만이 잔뜩 쌓여 있는 이런 도시가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헤세 바르텍 1895년)
조선인은 청결하지도 않으면서도 흰 옷을 고집한다.... (영국 외교관 조지 커즌의 [극동의 문제들] 중 )
비위생적이고 불결한 환경, 그런데도 유난히 흰 색의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 이와 같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개의 상황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신산한 운명을 감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여인들, 빨래하는 여인들.. 여인들이 강가나 개울가에 모여서 빨래하는 모습은 서양인들의 기록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목이다. 여인들의 빨래는 낮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밤에는 다듬이질로 이어지는데, 밤에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 역시 그들에게는 매우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3월초 처음 서울을 방문하여 남산에서 종로를 내려다 보았을 때 나는 종로를 그 전해 내린 눈더미가 아직 치워지지 않은 채 쌓여 있는 좁은 골목들의 미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종로는 길 가운데 두 줄로 늘어선 시전 상점들에 의해 교란되었을 뿐 원래는 거대한 하나의 도로였다. 또 눈더미처럼 보이던 그것은 빨래라는 한국 여인들의 그 지칠 줄 모르는 노동이 이루어 놓은 하얀 한국 두루마기의 물결이었다......남편들이 계속 흰 옷을 고집하는 한 빨래는 한국 여인들의 신산한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런 냄새나는 하천에서, 궁궐 후원의 우물에서, 전국 방방 곡곡의 모든 물웅덩이에서, 아니 주택 밖 실오라기만한 개울이라도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한국의 여인들은 빨래를 하고 있다..... 반짝이는 조약돌이 깔려 있는 냇가에서는 언제나 부인네와 처녀들이 무명옷을 눈처럼 희게 빨고 있다. 아상주의자와 순교자의 민족이 아니라면 이처럼 눈부시도록 깨끗한 청결을 위하여 그토록 힘든 노동을 감내하지는 않으리라. (이사벨라 버드 비숍, 1894)
서울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 그 중에서도 특히 걸음을 멈추게 하며 주의를 요하는 것이 있다. 쓰레기 더미 사이사이를 꾸불꾸불 흐르면서 온갖 불순물을 실어내어, 그렇게 향긋하다고는 할 수 없는 냄새를 풍기는 하수도나 도랑가에는, 아낙네들이 줄을 짓고 앉아서 열심히 빨래를 한다. 이들은 더러운 물에 빨랫감들을 억척스럽게 주무르고 문질러, 결국은 두 눈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해 놓는다. (아손 그렙스트 『코레아 코레아』1904)
서울은 다듬이질이 끊이지 않는 거대한 세탁소다. 한국의 여인은 남편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바친다. 그리고 이것을 행복으로 여긴다. (듀크로크 1904)
빨래가 다 마르고 난 뒤에는 다시 다듬잇돌에 올려놓고 둥근 나무 방망이로 두꺼운 공단처럼 광택이 날 때까지 한없이 두드린다. 한국의 여인들은 빨래의 노예다. 서울의 깊은 밤, 그 괴괴한 정적을 깨뜨리는 유일한 소리가 있다면 한밤내 잠 못 자고 다닥 빨래감을 두드리고 있는 다듬이 방망이의 그 쓸쓸한 소리이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1894)
옷은 특히 모시 옷일 경우에는 다림질하는 대신에 비단과 같은 광택이 나도록 하기 위해 다듬이질을 한다. 네개의 방망이가 내는 율동적인 소리는 매우 기이하여 한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알렌, 『조선견문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