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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송의호.이해석]
“인문계를 다니는 친구들이 저를 부러워해요. 대학 시험도 아직 남아 있고 4년 뒤 대학을 졸업한들 저 같은 직장 얻기가 그리 쉽겠느냐는 거죠.”
대구제일여자정보고(옛 제일여상) 3학년 이종선(19)양은 이번에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지 않았다. 지난 6월 일찌감치 대구은행 행원으로 합격해 3주간의 연수를 마쳤다. 약속받은 초임 연봉은 2700만원. 이양의 꿈은 선배들처럼 은행 지점장이 되는 것이다. 중3 때 학급에서 5등 안에 드는 성적이었다. 취업률이 높다는 입시설명회를 듣고 제일여자정보고 진학을 결심했다. “고교 졸업 후 스스로 돈을 벌어 장래를 개척해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특별히 가정이 어렵지도 않았다. 부모는 대구에서 농기계부품 공장을 운영한다.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어려운 시대지만 명문 여상은 취업 준비 학교로 여전히 살아 있다. 한때 움츠러든 지방 명문 여상들이 제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남자 상고가 일반계고로 전환하는 움직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여상 명성은 평준화 이후에도 이어져 중학교에서 성적 상위권 학생들이 입학한다.
여상들은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교육 과정을 취업에 맞추고 있다. 수능을 치는 일반계고와 달리 3학년 때는 영어·수학·국어 등 입시 과목이 교과 과정에 빠져 있다. 대신 사무경리직에 필요한 무역영어와 실무가 중심을 이룬다.
요즘 제일여자정보고 건물 벽에는 취업 확정자와 기업체 이름을 적은 '취업을 축하합니다'란 플래카드가 빼곡히 걸려 있다. 이 학교 장세현 3학년 부장은 “올해는 지난해보다 기업체의 취업의뢰서가 더 많이 들어온다”며 “졸업 때까지 취업률 60%를 달성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 학교에선 2년 전 1등을 차지하던 학생이 서울대 경영학과 수시에 합격하고도 삼성에스원을 선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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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여자정보고는 최근 들어 취업의 품질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연봉 1000만원 미만의 생산직 일자리는 추천을 거부한다. 이 학교 석종륜 교장은 “앞으로 중학교 상위 30% 우수 신입생을 받아 연봉 3000만원짜리 자리에 취업시키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부산의 부산진여상, 광주광역시의 광주여상, 대전의 대전여상도 옛 명성을 이어 가고 있다. 부산진여상은 3학년 294명 중 10월 말 현재 78명이 취업을 확정 지었다. 이들의 평균 연봉은 21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은 주로 부산의 중견 무역회사와 농협·신용금고 등이다.
부산진여상 하현선(44) 전문교육부장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취업을 선택하고 내신 성적에 자신 없는 학생들이 대학을 가는 경향”이라며 “최근 몇 년간 취업 추천 의뢰가 희망 학생 숫자의 두 배를 넘어 취업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광주여상은 현재 3학년 361명 중 121명이 직장을 잡아 놓은 상태다. 광주여상 진로정보센터 이용처(48) 부장교사는 “기업체에서 학생 추천 요구가 많지만 보낼 자원이 부족한 형편”이라며 “실리를 좇아 LG이노텍 파주공장 등 생산직으로 가는 학생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광주여상은 올해 취업률을 35%로 잡고 있다. 대전여상의 경우 3학년 320명 중 60여 명이 취업을 마쳤고, 42% 정도(135명)가 직장을 잡고 사회에 나갈 것으로 예상한다.
글=송의호·이해석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