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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화엄경 공부를 하고는 있는데 이 화엄경 공부하는데 대한 그런 기본적인 정신자세를 조금 말씀을 드리면은 그 동안 몇 번 이제 했습니다마는 보았듯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상생활에 교훈이 될 만한 가르침이라고 할까, 그런 금과옥조와 같은 것들을 우리가 경전 속에서 기대하기가 쉬운데, 그런 반짝 이렇게 빛나는 그런 생활 교훈이라든지 이런 것은 화엄경에서는 경이 방대한 것 치고는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금강경이나 법화경 같은거 또는 관음경 같은 것 이런데서 오히려 경은 양은 적으면서도 그런 빛나는 말씀들이 많이 있지요.
그래서 이 화엄경을 우리가 대하는 태도는 그 스님들도 공부하기 어려운 이 화엄경을 우리가 일단 이렇게 인연을 맺었다라고 하는 사실. 그런 수승한 경전과 인연을 맺은데 대한 인연의 소중함. 그 인연의 소중함을 가슴속에 일단 간직을 하고. 그래서 믿음 신심에 대한 그런 자세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을 때 새삼 뭐 생활의 교훈이 있든 없든 관계없이 하나하나가 그대로 진리의 말씀이고, 또 진리 그 자체고 부처님 자체다라고하는 그런 어떤 신심이 마음에 준비돼 있으면 뜻을 알든 모르든 어떤 그 교훈적인 말씀이 있든 없든 관계없이, 하나하나 한글자 한글자 한구절한구절을 소중한 인연으로 받아들이면은 그것이 아주 기쁨이고 또 하나의 불교를 공부하는 행복이고 이렇게 이제 우리 마음에 와 닿지요.
그래서 열반경에 보면 그 설산동자 이야기가 있는데 그 설산동자는 부처님의 정신이다 이렇게이제 이야기들 하지요. 설산동자는 수행을 열심히 하다가. 어느날 산길을 가다가 부처님의 말씀을 아주 그 진리의 말씀을 한 구절을 얻어듣게 되지요 그 말씀이 제행무상 시생멸법(諸行無常 是生滅法)이라고 하는 그런 구절이었습니다. 모든 그 세상사 인생사는 모두가 무상한 것이다. 사실 뭐 무상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 제행무상(諸行無常) 또는 뭐 人生無常 이런 말을 이제 쓰는데. 그런 현상, 눈앞에 나타난 모든 현상들은 다 무상(無常)한 것이야. 그런 말 우리가 뭐 평소에 늘 듣고 불자라면 잘 합니다. 하는데 또 그것이 내 가슴에 쾅 울리게 때리는 그런 기억력도 살다보면 어느 결에 없어요.
늘 듣는다고 그게 가슴에 와 닿는건 아니고 살다보면은 그런 말들이 그저 가볍게 들어본 말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삶의 그 구비 속에서 그런 말씀이 정말 참 가슴을 울리는 그런 느낌으로 와 닿을 때가 있듯이 그 설산동자도 그런 말을 듣죠.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그래 시생멸법(是生滅法)이다. 이것은 생기고 소멸하고 하는 그런 변화무쌍한 그런 법칙이다. 이런 말씀을 듣는데 듣는 그 순간 뭐 그런 말을 처음 들었겠습니까마는 듣는 그 순간 정말 가슴을 크게 울리는 그런 감동으로 이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아무리 살펴봐도 소리는 들렸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은 눈에 보이지가 않았는데 갑자기 나찰귀신이라고 아주 험상궂은 인상을 한 귀신이 떡 이제 나타나서 사람에게 덤빌려고 해요. 그래서 당신이 앞서 한 그런 게송 그 멋진 진리의 말씀을 당신이 앞서 한 그런 게송 멋진 그런 게송을 당신이 했느냐고 하니까 그렇다라고 나찰이 대답을 합니다.
그래서 이제 아마도 그 말은 반쪽의 말 같은데 그 다음 말이 있을거 아니냐? 그 다음 말을 마저 해주면 좋겠다라고 설산동자가 나찰귀신에게 부탁을 하니까 이 나찰귀신이 사실 그 다음 말이 있다. 그런데 어느 진리의 말씀이고 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마저 할려면은 상당히 힘이 드는데 내가 사실은 오랫동안 굶어서 식사를 못했다. 그래서 이제 음식을 먹은 뒤에 말할 수 있겠다. 이렇게 이제 말을 합니다. 그래서 그럼 음식을 어떻게 준비해야 당신 마음에 맞는 음식을 드릴 수가 있느냐 라고 하니까. 이 귀신이다 보니까 나는 살아있는 사람의 살아있는 뜨거운 피와 살을 먹는 존재인데 그것이 지금 필요하다. 다른 음식은 아무 소용도 없다. 그래서 당신의 몸을 허락하면은 그 몸을 이제 내가 먹고 그 피를 뜨거운 피를 먹고 그래서 이제 마저 법문을 일러주겠다. 이렇게 이제 흥정을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설산동자가 법문은 듣고 싶지만은 이 몸을 주어버리면 그 법문을 들을 귀도 없어져버리는데 어떡하겠나 싶어서 그래 사정을 이제 합니다. 내가 이 몸을 당신에게 보시할테니 어렵지만은 마저 그 뒷구절을 일러주면 좋겠다. 이렇게 이제 하니까 그러면 약속을 하면은 내가 힘들지만은 일러주겠다. 그렇게 이제 약속을 하게 돼죠. 그래서 이제 설산동자는 나무 위로 이제 올라 바위도량으로 올라가서 당신 말을 듣자마자 내가 이 바위에서 뛰어내릴테니 뛰어내리거든 내가 그냥 가만있는데 먹는거야 차마 당신도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바위에서 떨어지거든 당신이 그것을 식기 전에 주워먹으면 될 거 아니냐. 이렇게 이제 이야기가 돼요. 그래서 이제 달려 올라가죠. 올라가가지고 기다리는데 나찰이 정말 용기를 내서 제행무상 시생멸법 생멸멸이 적멸위락 (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 이라고 하는 그런 구절을 일러줍니다.
생멸멸이(生滅滅已) 생기고 멸하고 생기고 없어지고 생기고 없어지고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무쌍하지 않습니까? 우리 생각도 생겼다 없어지고 생겼다 없어지고 아무리 미운 마음도 생길 때는 정말 뭐 온 세상을 불사를 것 같지만은 그것도 시간이 가면 그것도 풀어지고 사라지고, 좋아하는 마음도 마찬가지고. 온갖 생각들이 변화무쌍하고 또 세상을 보는 모든 현상 물질적인 세계도 그렇죠. 춘하추동 사계절이 있고 생로병사가 있고 생주이멸이 있고 온갖 그런 변화무쌍한... 눈앞에 있는 현상치고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런 그 생멸하는 모든 일이 다 끝난 그 뒤 그 이면에 그 이면에는 정말 적멸위락(寂滅爲樂) 고요한 본체의 자리,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본질의 자리가 있는데 그 자리야 말로 그 텅 비고 고요한 그 자리야 말로 참으로 사람이 살만한 그런 편안하고 즐거운 그런 경지다. 라고 하는 그런 내용이죠. 그 이제 열반경 사구게라고도 해서 열반경의 핵심인데 그래서 49재를 지낼 때도 경전의 사구게를 소개하는 가운데 이런 말도 들어있어요. 그 49재 지낼 때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면 아마 이 구절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 말을 듣고는 그것을 이제 또 설산동자가 말하길 이 소개된 것을 내 몸과 바꾸면서 들은 이 법문을 내가 그냥 내 혼자만 듣고 말 수가 없다 미안하지만 잠깐만 기다려 달라 해 가지고서 그것을 이제 온 바위에다 써요. 곳곳에다 설산동자가 다른 사람 내가 죽은 뒤에라도 딴 사람이 이 바위 밑을 지나다가 이 좋은 구절을 보고서 감동을 받고 어떤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마음에서 바위에다 막 씁니다.
그래 써놓고는 나무위에 올라가서 떨어지죠. 떨어지는데 나찰귀신이 그 순간 본래의 몸을 회복해가지고 이제 그 설산동자를 떨어지는 설산동자를 사뿐히 이제 받아서 땅에 내리는데 그 순간 변한모습이 뭔고하니 제석천왕이다라고 이제 그렇게 돼 있죠.
제석천왕은 수행하는 사람을 가끔 도움도 주지만은 시험도 하고 경책도 하고 하는 그런 역할을 한다. 그렇게 경전상으로는 되어있습니다. 그게 제석천왕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그 사람이 곧 제석천왕이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이기도 합니다. 꼭 그 사람을 제석천왕이라고 보는게 아니라 수행하는 사람 공부하는 사람에게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은 곧 제석천왕이다 라고 불교서 그렇게 돼 있어요. 한번을 하면 한번 제석천왕인 것이고 두 번 그런 역할을 하면 이제 두 번 제석천왕인 것이고 그런 거죠.
그렇듯이 우리가 공부하는 이 화엄경은 설산동자가 아닌 선재동자의 수행담을 이야기하는 그런 대목인데 그런 그 내용이 꼭 뭐 선재동자는 모든 선지식을 친견하지만은 친견할 때 마다 늘 이렇게 몸살나게 감동하고 말이지 그렇게 뭐 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하나하나 또 한걸음한걸음 찾아가는 그 사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그래서 그 선지식이 소중하고 그 선지식의 말씀이 소중하다 이렇게 이제 늘 돼 갑니다. 그건 이제 뒷날 우리가 곧 선재동자가 나타나는데 곧 만나게 될 이야기들인데 그렇게 해서 이제 화엄경을 대하는 그런 자세가 그렇습니다.
요것은 귀가 번쩍 뜨이고 눈이 뜨이는 그런 그 아주 날카롭거나 빛나는 금과옥조(金科玉條)같은 교훈의 말씀은 그렇게 흔치는 않습니다. 흔치는 않지만은 양이 전체 경전의 양치곤 상당히 적은 편이죠. 그러나 한 글자 토 하나까지도 과목 하나까지도 이것은 참 정말 우리가 만나기 몇 생을 통해서도 만나기 어려운 그런 경전의 말씀이다. 소중한 그런 진리의 말씀이다 라고 하는 그런 생각. 마치 설산동자가 육신을 보시하고 얻고 싶어했던 그런 깨달음의 말씀 진리의 말씀과 다를 바 없다라고 하는 그런 자세가 경전을 우리가 대하는 가장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그리고 특히 이제 화엄경은 그런 우리 마음의 자세가 준비돼 있어야 인물을 가지고 또 크게 어렵지 않게 이걸로 우리가 공부를 할 수가 있지. 아 난 뭐 들어봐도 무슨 장황하기만 하고, 내 비슷비슷한 소리고, 재미는 하나도 없고, 뭐 별로 교훈되는 말씀도 보이지 않고... 뭐 이런 차원으로만 보면 조금 지루하고 좀 힘들어요. 그래서 마음이 넉넉한 사람들을 상대로 한 가르침이다. 그걸 이제 한문으로는 대심범부를 위한 또 대심범부에게 해당이 되는 가르침이다. 이렇게 이제 말을 하지요. 큰대자 마음심자. 대심범부들에게 해당되는 가르침이다 그럽니다. 그래서 그게 대심범부에게 해당된다고 하는 말 자체가 뭐 소소하고 짧고 간단하고 그런 말에 눈이 번쩍 뜨이는 그런 가르침이 아니라고 하는 정말 인내를 가지고 느긋하게 전체를 굽어보는 그런 자세를 가진 사람이라야 된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도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11쪽에 3. 서방의 대중 (西方의 大衆)이라고 하는 과목부터 공부할 차례인데요.
큰 과목이 四, 十方의 大衆雲集 시방의 대중운집이라 그래 돼 있습니다.
그 10쪽에 보면은 시방의 대중운집. 시방은 이제 동서남북하고 네 간방하고 상방 하방 이렇게 하면 시방이 되지요. 시방에서 모이는 대중들. 그 대중들이 모인 것을 설명하는 거지요.
운집(雲集), 불교에서는 대중들이 어떤 집회에 모이는 것은 운집한다 그래요. 운집. 또 대중들을 모아라고 할 때, 사찰에서 대중들을 모아라고 할 때, 모으는 신호를 목탁을 치는데 그 목탁을 운집목탁 이래요. 여기 저 운집, 구름운자 모일집자. 구름이 여름날 구름이 막 이렇게 뭉개뭉개 일어나서 그것이 이제 한 뭉터기가 될 때 비가 내리잖습니까? 그렇듯이 그 대중들이 모이는 신호의 목탁을 운집목탁 이렇게 말하고, 일하자고 하는 목탁은 울력목탁 이렇게 하지요. 공양할 때 목탁은 무슨 목탁이죠? 당연히 공양목탁이죠. 먹자고하는 것은 공양목탁 이렇게 이제 됩니다. 그런 것들도 이제 전부 통해요 공부하다 보면은.
열방향의 대중들이 모이는데 처음에는 동방에서 온 대중, 두 번째는 남방에서 온 대중, 그 다음에 이제 서방에서 온 대중입니다.
3. 西方의 大衆
西方으로 過不可說佛刹微塵數世界海外하야 有世界하니 名摩尼寶燈須彌山幢이요 佛號는 法界智燈이어든
서방으로 과불가설불찰미진수세계해외하야 유세계하니 명마니보등수미산당이요 불호는 법계지등이어든
또 西方으로 過, 지나서 지나가서. 이런 말입니다. 얼마나 많은 세계를 지나간다. 불가설 불찰 미진수 세계 밖을 지나가서. 거기에 또 세계가 있다. 그러니까 뭐 이 지구같은 세계를 몇 수 천만 개를 지나간 뒤에 거기에 또 세계가 있어요. 지금 뭐 이 천문학이 상당히 발달돼서 보통 대중들이 읽을 수 있는 별들의 세계, 옛날 뭐 많이 읽혔던 코스모스란게 천체에 관한 책이었죠. 아마. 그런 거라든지 요즘 별자리 이야기라든지. 나는 별을 잘 보는데 그 보면 별자리 이야기라든지 하는 그런 책들이 그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글들이 들어 있어요.
보면 정말 부처님의 가르침이 언제 이런 거를 생각할 수 있었는지. 물론 뭐 깨달은 분의 안목이니까 그렇기는 하겠지마는. 정말 거기에 보면 무한하거든요. 아무리 예를 들어서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수억만 광년을 지나가가지고 거기가 우주의 끝이다라고 우리가 예를 들어서 생각을 하면 끝이면은 거기에 무슨 절벽이 있든지 아니면 무슨 뭐 칸막이가 있던지 있다손 칩시다. 무슨 경계선이 있던지 철조망이 있던지 수 억 만 광년을 지나간 그 쪽에 있다손 치면 그 밖에 또 뭔가 있어야 된다구요. 뭔가 있을 거라구 틀림없이 있어야 돼. 그러니까 부처님이 말한 무한이라고 하는 것, 이루 말할 수 없다. 불가설이라고 하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그런 많은 세계. 이런 것을 일찍이 부처님이 깨달아서 아셨기 때문에 참 그런 것은 너무나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참 어찌 그런 때에 이렇게까지 우주 천문학에 대해서도 철저히 아셨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 정말 참 감탄을 아니 할 수가 없어요.
여기는 불가설 불찰 미진수세계 어마어마하게 많은 세계입니다. 아마 몇 천만 광년은 될 거에요. 그런 그 몇 억 만 광년, 천만광년을 지나가서 거기에 세계가 있다. 이름이 마니보등수미산당이다. 세계이름이 그렇죠. 거기에 부처님이 계셔. 깨달은 사람이 어디 한 곳에만 있으란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 세계도 깨달은 사람이 있을 거다 이거죠. 그 부처님 깨달으신 분이 있으니 부처님 호는 법계지등이다.
彼佛衆中에 有菩薩하니 名普勝無上威德王이라
피불중중에 유보살하니 명보승무상위덕왕이라
피불중중에 그 부처님의 대중가운데 보살이 있다. 이름이 보승무상위덕왕이다. 뭐 그쪽 이름이 다 다르겠죠. 그러나 이쪽말로 번역을 하면은 그렇게 번역이 된다는 거죠. 보승무상위덕, 넓고 아주 뛰어나고, 수승. 가장 높고, 무상, 가장 높고, 가장 높은 그 위덕을 위엄과 덕을 갖추신 분.
與世界海微塵數菩薩로 俱하야 來向佛所하사
여세계해미진수보살로 구하야 내향불소하사
여세계해미진수보살로 더불어, 여(與)字, 더불어, 요거 이제 늘 같은 형식이죠. 시방에 있는 대중들 소개가 늘 같습니다. 세계의 미진수보살로 더불어 구(俱), 함께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여기에 대중이 150명이라면 150명의 신도님과 불자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이런 뜻입니다. 여자와 구는요. 그 보살들하고 내향불소라 지금 여기 비로자나불이 화엄경을 설하고 있는 이 부처님 처소, 불소에 내향 향해오고 있다. 이거죠.
그리고
悉以神力으로
실이신력으로
모두들 신통력으로. 신력, 신통력으로써 일으켰다. 흥 일으켰다. 막 사정없이 일으켰는데 뭘 일으켰냐? 구름을 일으키면서 그 구름을 타고 온다. 이런 뜻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주 드넓은 평원에 군대가 수만명 군대가 막 말을 타고 걸어오고 그렇게 온다 할것 같으면 거기서 먼지가 일어나는데 마치 그 구름이 일어나듯이 그렇게 아마 일어날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런 광경을 상상을 하면은 이 많은 보살들이 부처님을 떡 앞세워가지고서 구름을 일으키면서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데 그 구름이 그냥 다 그냥 무턱대고 구름이 아니라 아주 아름답고 신기한 이름을 다 가지고 있다 이거에요. 그 일으킨 구름들이 열 가지 종류인데 그 보나마나 안세어도 열 가지에요. 여기. 그 원만한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화엄경은 숫자의 의미가 상당해요. 원만, 우리 자체, 삶 자체가 원만하다 이겁니다.
뭐 아이구 뭐 난 팔자도 기박하고 뭐도 부족하고 뭐도 제대로 뜻대로 안되고... 전부 불만투성이지만은 그건 아니에요. 불만이 있으면 불만이 있는 그대로 완전한 것입니다. 이 삶이라고 하는 건 그것뿐이에요. 그거에요. 불만 있는 대로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불만 없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이 세상에. 그럼 불만 있는 그대로 삶이다라고 하는 생각을 할 줄 알아야 돼. 그건 뭐 모르면은 불교공부 헛하는 거에요. 불만있는 그대로 우리 인생살이다. 그러면 그대로 완전한 거에요. 그대로 완전한 거. 불만 있는게 완전한 거라니까. 그게 완전한 삶이라. 불만없는 인생은 완전한 삶이 아니에요.
꽃이 제대로 있을라면은 꽃송이도 있고 꽃잎도 있어야 돼. 줄기도 있어야 된다고. 그래야 완전한 꽃이라. 꽃송이만 잔뜩 있으면 그게 무슨 보기 좋겠어요? 그거 별로 볼거 없어요. 또. 꽃이 갖춰야 할 조건들 다 갖추고 있어야 그게 완전한 꽃이라. 그렇듯이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불평불만이 있어야 돼. 불평불만이 있는 그대로가 제대로 된 인생이야. 그게 완전한 인생이라고요. 그런데 우린 자꾸 착각을 해. 나부터라도 아 요거 해결됐으면 요 문제 좀 충족되어졌으면, 요 문제 좀 해결됐으면 하면서 자꾸 그런 그 어떤 그 불만을 해소하려고 하는 그런 마음을 갖습니다. 불만이라고 생각하면 해소해야 되겠지요마는 그러나 그걸 해소했다고 불만이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없어지면 인생이 아니니까. 어느 한 곳에 또 다른 불만이 있어. 왜냐 인생이니까 인생이라고 하는 속성은 불만 그것을 가지고 있게 돼 있어요. 불만이 없으면 인생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불만이 있는 그대로 완전한 거라니까. 제대로 된 거에요. 꽃을 우리가 필요로 하지만 꽃에는 잎도 나뭇잎도 있고, 줄기도 있고, 뿌리도 있고. 그게 모든 것이 있는 상태가 제대로 된 꽃이거든요. 그걸 아셔야 됩니다. 그 화엄경의 교훈을 우리가 건지자면 꼭 그겁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 그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원만한 인생이다. 완전무결한 존재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래서 숫자로 십수, 원만한 꽉찬 만수라고 그래요. 그래서 열 가지를 굳이 만들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열 가지 구름을 일으키는데. 이 뭐 다 같은 형식이니까요.
興不可說佛刹微塵數種種塗香燒香須彌山雲과
흥불가설불찰미진수종종도향소향수미산운과
興 그 다음 한 번 쭉 읽겠습니다. 낱낱이 가만히 따라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불가설불찰미진수종종 도향(塗香), 이건 바르는 향이에요. 소향(燒香), 사르는 향, 불태우는 향 그런 그 수미산운(須彌山雲)과.
不可說佛刹微塵數種種色香水須彌山雲과
불가설불찰미진수종종색향수수미산운과
또 불가설불찰미진수의 종종색향수(種種色香水). 향수도 뭐 그 보통 노르스름한 향수 뿌리죠. 여러분들 아마. 파르스름하거나. 그런데 여긴 아니야. 이 화엄경에는 종종색이야. 온갖 빨간향수 노란향수 파란향수 무슨 회색향수 흰 색깔 향수. 그런 향수 그것이 인제 아주 어마어마하게 많은 모습의 수미산운(須彌山雲)과.
不可說佛刹微塵數一切大地微塵等光明摩尼寶王須彌山雲과 不可說佛刹微塵數種種光焰輪莊嚴幢須彌山雲과 不可說佛刹微塵數種種色金剛藏摩尼王莊嚴須彌山雲과 不可說佛刹微塵數普照一切世界閻浮檀摩尼寶幢須彌山雲과 不可說佛刹微塵數現一切法界摩尼寶須彌山雲과 不可說佛刹微塵數現一切諸佛相好摩尼寶王須彌山雲과
또 불가설불찰미진수일체대지미진등광명마니보왕수미산운과 불가설불찰미진수종종광염륜장엄당수미산운과 불가설불찰미진수종종색금강장마니왕장엄수미산운과 또 불가설불찰미진수보조일체세계염부단마니보당수미산운과 불가설불찰미진수현일체법계마니보수미산운과 불가설불찰미진수현일체제불상호마니보왕수미산운과
不可說佛刹微塵數現一切如來本事因緣하며
불가설불찰미진수현일체여래본사인연하며
요건 이제 조금 설명해야 되요. 일체여래(一切如來)의 본사인연(本事因緣)을 현(現) 나타낸다. 일체여래의 본사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부처님의 옛일입니다. 본사하면 옛일 본래의 일이니까 옛일. 여러분들의 과거 뭐 작년일 또는 뭐 어저께 일 어저께 있었던 일들, 또는 뭐 어릴 때 일, 어릴 때 있었던 일들,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과거사 전생에 있었던 일들. 요런 것들을 잘 나타내는 그런거.
그리고 또
說諸菩薩所行之行摩尼寶王須彌山雲과
설제보살소행지행마니보왕수미산운과
그러니까 여기는 보살들이 행한 것을 설명하는. 행한 바의 행을 설명하는 마니보왕수미산운(摩尼寶王須彌山雲)과
또
不可說佛刹微塵數現一切佛坐菩提場摩尼寶王須彌山雲하사
불가설불찰미진수현일체불좌보리장마니보왕수미산운하사
불가설불찰미진수현일체불좌보리장 보리도량(菩提道場)에 앉았던 마니보왕수미산운을 흥(興) 일으키사 저 앞에 지난 앞에 장에 있었던 일으킬 흥자(興). 그런 구름들을 막 그냥 일으키면서
充滿法界하야
충만법계하야
법계에 충만해서
至佛所已에 頂禮佛足하고
지불소이에 정례불족하고
지불소이(至佛所已)에 불소(佛所)라는 것은 부처님 처소 부처님 계신 곳. 부처님 처소에 이르고 나서 그리고는 이제 부처님 발에 이마로 예배올리고
卽於西方에 化作一切香王樓閣하사 眞珠寶網으로 彌覆其上하며 及化作帝釋影幢寶蓮華藏師子之座하사
즉어서방에 화작일체향왕루각하사 진주보망으로 미부기상하며 급화작제석영당보련화장사자지좌하사
즉어서방(卽於西方)에 자기들 서쪽에서 왔으니까 그 법회장소에서 서쪽으로 서방에 화작일체향왕루각 화작(化作)은 만들었다 이말 이죠. 누각도 만들고 어떤데는 보면은 사자좌도 만들어요. 여기도 이제 사자좌(師子座)가 나오는데. 누각을 만들어서 진주보배 그물로써 그 누각 위에다 덮었어요. 덮고 또 화작(化作) 또 만들었다 뭘 만들었는고 하니 제석영당보련화장사자좌 사자좌는 부처님이 앉는 법상(法床)을 사자좌라고 그래요. 그 자리 그 법상을 만들어서.
以妙色摩尼網으로 羅覆其身하며
이묘색마니망으로 나부기신하며
묘색마니망(妙色摩尼網)으로 아주 아름다운 색깔 마니의 그물로써 나부기신(羅覆其身)하매 이 사람들이 전부 그 몸을 말하자면 아주 아름다운 색깔 마니의 그물로써 몸을 두르고.
心王寶冠으로 以嚴其首하고
심왕보관으로 이엄기수하고
심왕보관(心王寶冠)으로 또 아주 그 보배의 관(冠)을 그 머리에 장엄하고. 이엄기수(以嚴其首)하고 머리에 장엄을 하고.
與其眷屬으로 結跏趺坐하나니라.
여기권속으로 결가부좌하나니라.
여기권속(與其眷屬)으로 결가부좌(結跏趺坐)하니라. 그 권속들과 더불어 가부좌를 가부를 맺고 앉았더라. 결가부좌 우리가 결가부좌한다 결가부좌한다 그러는데 여기 이제 가부(跏趺)라고 하는 것이 말하자면 연꽃좌라고 이렇게 하는데 틀고 가부를 틀고 앉더라. 이렇게 이제 해석을 해야 돼요. 가부를 맺고 앉더라. 해석을 하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기 익숙한 말로 뭐 결가부좌했다 결가부좌했다 그러죠.
그 다음에 이제 북방의 대중입니다. 요것도 이제 같은 형식이니까요. 그냥 이렇게 따라서 같이 보면 되겠습니다.
4. 北方의 大衆
北方으로 過不可說佛刹微塵數世界海外하야 有世界하니 名寶衣光明幢이요 佛號는 照虛空法界大光明이어든
북방으로 과불가설불찰미진수세계해외하야 유세계하니 명보의광명당이요 불호는 조허공법계대광명이어든
북방으로 불가설불찰미진수세계 밖을 지나서. 과字(過) 한문 해석하는 거 화엄경은 아주 쉬워요. 다른 경 보다가 화엄경은 죽죽 이렇게 내려가서 동사가 그냥 이렇게 앞에 이렇게 놓여지고 그렇게 돼 있어서 해석하기 아주 쉽지. 조금만 말에 유의하면은 여러분들 아마 한문 문리도 금방 터져요. 불가설불찰미진수세계(不可說佛刹微塵數世界) 밖을 지나서 유세계(有世界) 세계가 있다. 이거에요. 있을 유자니까. 명은 이름이 뭐야? 보의광명당(寶衣光明幢)이라고 하는 세계이름.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이라 하듯이 보의광명당이요. 부처님 호는 조허공법계대광명(照虛空法界大光明). 저 허공법계(虛空法界)를 나란히 비추는 큰 광명이다.
彼佛衆中에 有菩薩하니 名無碍勝藏王이라
피불중중에 유보살하니 명무애승장왕이라
피불대중가운데 보살이 있으니 이름이 무애승장왕(無碍勝藏王)이더라.
與世界海微塵數菩薩로 俱하야 來向佛所하사
여세계해미진수보살로 구하야 내향불소하사
세계의 미진수보살(微塵數菩薩)로 더불어 함께 하사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 내향 향해오더라.
悉以神力으로 興一切寶衣雲하니
실이신력으로 흥일체보의운하니
모두들 신력(神力)으로써 일체보의운(一切寶衣雲)을 일으키니 흥자(興) 여기는 먼저 일으키니 이렇게 돼 있어요. 온갖 구름을 이쪽에 북방에 있는 사람들도 다 그냥 구름을 일으키면서 수많은 사람 대중들이 몰려오니까요.
所謂黃色寶光明衣雲과 種種香所熏衣雲과 日幢摩尼王衣雲과 金色熾然摩尼衣雲과 一切寶光焰衣雲과 一切星辰像上妙摩尼衣雲과 白玉光摩尼衣雲과 光明遍照殊勝赫奕摩尼衣雲과
소위황색보광명의운과 종종향소훈의운과 일당마니왕의운과 금색치연마니의운과 일체보광염의운과 일체성진상상묘마니의운과 백옥광마니의운과 광명변조수승혁혁마니의운과
소위(所謂) 어떤 구름들이냐? 황색보광명의운과 종종향소훈의운과 일당마니왕의운과 금색치연마니의운과 일체보광염의운과 일체성진상상묘마니의운과 백옥광마니의운과 광명변조수승혁혁마니의운과 요건 혁혁(赫奕)하다 뭐 그 공이 혁혁하다 할 때 이렇게 써요. 빛날 혁자(赫) 혁혁마니의운(赫奕摩尼衣雲)과. (奕 클 혁)
光明遍照威勢熾盛摩尼衣雲과
莊嚴海摩尼衣雲이 充遍虛空하야
광명변조위세치성마니의운과
장엄해마니의운이 충변허공하야
허공에 충변(充遍)해서 가득차고 두루해서.
至佛所已에 頂禮佛足하고
지불소이에 정례불족하고
부처님 처소에 이르고나매 부처님 발에 머리로 예배올리고 정례불족(頂禮佛足)하고 부처님 발에 정례(頂禮)하고.
卽於北方에 化作摩尼寶海莊嚴樓閣과
及毘瑠璃寶蓮華藏師子之座하사
즉어북방에 화작마니보해장엄누각과
급비유리보연화장사자지좌하사
곧 북방에 마니보해장엄누각(摩尼寶海莊嚴樓閣)과 그리고 비유리보연화장사자(毘瑠璃寶蓮華藏師子)의 좌(座)를 만들어서. 화작(化作)은 만들다 이 말이여. 만들어서.
以師子威德摩尼王網으로 羅覆其身하며
이사자위덕마니왕망으로 나부기신하며
사자위덕마니왕의 그물로 그 몸에다 두르고
淸淨寶王으로 爲髻明珠하고
청정보왕으로 위계명주하고
청정한 보왕으로 위계명주하고 계명주(髻明珠)라고 하는 것은 상투계자(髻)에요. 상투위에 아주 빛나는 구슬이 이제 놓여있습니다. 지장보살도 보면은 그런 모습을 하고 있고요. 탱화에 보면 가끔 그런 모습을 한 불상이 있습니다. 그 계명주를 삼아서 아주 멋진 그 보배로써 상투위에다 상투를 이렇게 틀어가지고 아마 상투가 틀어지지 않게 하려면 옛날에 그 뭐 호박이나 진주같은 걸로 이렇게 비녀처럼 사용하듯이 그렇게 했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이제 아니면 실로 이렇게 묶고 그 실에다가 아마 보기좋게 한다고 계명주라고 하는 그 구슬을 그 실에다 올려놓거나, 요즘도 뭐 머리 묶는데 보면은 뭐 동그란 그 무슨 플라스틱 같은거 있죠. 플라스틱인가 뭐 구슬인가 몰라도 하여튼 그런게 있듯이. 바로 그 역할을 하는게 계명주입니다. 그런데 이건 상당히 좋은 구슬로 아주 그 수억이 되는 그런 가치의 구슬로써 그런 것을 삼았다 이 말이죠. 이 사람들은 이제 그렇게 치장을 했다.
與其眷屬으로 結跏趺坐하나니라.
여기권속으로 결가부좌하나니라.
그 권속으로 더불어 가부(跏趺)를 맺고 앉았더라.
그런데 여기에 보면은 한결같이 보살들이 뭐 아주 뭐 누더기를 입고 뭐 떨어진 짚신을 신고 이런 식으로 표현이 안 되어있고 이 세상의 하여튼 값진 것이라고 하는 것은 다 이 분들이 다 지녔고 금방 말씀드렸듯이 머리에 묶은 이 머리에 계명주. 지금시대 사람들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똥그란거 끼는데 그때 사람들이 계명주(髻明珠)라고 하는 아주 값진 구슬로써 그렇게 했다. 이건 이제 무슨 의미인고 하니 우리 저기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보면은 그냥 알 수 있습니다. 관세음보살 이렇게 치장했어요. 경전에서 설명한 이 모습으로 치장을 했는데. 내가 지금도 우리 불자들이 소견(所見)이 달라야 된다라고 하는 말씀을 가끔 말씀드리는데. 이 육신이 무상하고 처음에도 뭐 설산동자의 말씀을 이야기를 해서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이 무상하다 그까짓거 뭐 몸뚱이도 무상하고, 얼굴도 무상하고, 보물이고, 보석이고 다 무상한데 그거 뭐하는 거냐고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그 생각이 한 편은 옳아요. 한편은 옳지만은 그러나 또 그렇게만 생각하는 것은 또 잘못된 소견이다. 불교에는 중도적인 생각을 해야 해요. 그러니까 그런 것을 말하자면 소유할 줄 알되 또 거기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되고.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소유할 줄 알아야 돼요.
그러니까 관세음보살이 이 세상이 무상하다고 하는 거 인생이 무상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누구보다도 값비싼 보석과 옷으로써 치장하고 있는 사람이 관세음보살이라. 그러면 그런 분이 뭐 인생무상을 몰라서 그런 것을 치장하겠어요? 그 치장하는 것이 무상하다는 것 몰라서 거 치장할 사람이 아니거든.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치장하는 거에요. 치장했다고 거기에 집착하지는 또 않는다는 것입니다. 집착하지 않으면서 치장할 줄 알고 치장했어도 집착하지 않는 것, 그게 이제 불자의 바른 소견이다. 그걸 이제 중도적인 바른 소견이다라고 이제 불교용어로는 그렇게 합니다.
그래야 돼요. 뭐 불교 믿는다고 그저 다 떨어진 옷 입고 추레하게 해 가지고 그 우중충하게 늘 그냥 누더기만 입고다니면 무슨 대덕보살처럼 보이느냐? 그건 정말 오산이에요. 아니에요. 누구보다도 하여튼 최고급 옷, 제일 좋은 옷, 제일 아름답게 화장하고 그렇게 다녀야 돼요. 그렇게 다니면서도 거기에 치우치지 않는 것. 치우치지 않을 줄 알아야 돼요. 그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그런 자세를 갖출 줄 아는 것.
그 관세음보살이 우리의 표본 아닙니까? 우리가 우리의 이상이 관세음보살이에요. 그냥. 그렇게 아시면 됩니다. 관세음보살이 그 몸에 걸었던 영락 있잖습니까? 가치가 천만금이 나가는 영락을 선뜻 벗어서 내어줬지요? 부처님 앞에서 그 저 석가모니부처님께 바치는 그런 대목이 법화경에도 나오고 그 보문품에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아끼지 않는다구요. 가졌다고 해서 아끼지 않고 아끼지 않으면서 그러면서 또 필요한데 치장할 줄 아는 것. 이게 이제 바른 소견이다. 여기도 보면 전부 보살들이 온갖 그런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하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돼 있어요. 불교가 그냥 아무렇게나 생각하면은 이 사람들 전부 누더기 입고 무슨 뭐 그렇게 할 거에요. 그렇게 돼 있는게 아니에요 불교는.
그 다음 동북방 여기 저 사방이 끝났고요. 간방 네 간방을 표현하고 있는데
5. 東北方의 大衆
東北方으로 過不可說佛刹微塵數世界海外하야 有世界하니 名一切歡喜淸淨光明網이요 佛號는 無碍眼이어든
동북방으로 과불가설불찰미진수세계해외하야 유세계하니 명일체환희청정광명망이요 불호는 무애안이어든
동북방으로 불가설불찰미진수세계 밖을 지나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이 일체환희청정광명망(一切歡喜淸淨光明網)이다. 세계 이름이 있고 부처님 호가 있죠. 무애안(無碍眼). 아주 이름이 좋아요. 걸림없는 눈, 안목. 이 걸림없는 안목이 바로 그거에요. 내가 말씀드린 바로 무상이라고 하는데만 치우쳐있는게 아니고그렇다고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것만 좋다고 하는데 치우쳐있는 것도 아니고,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것이든 아주 그 검소한 것이든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그런 안목 그게 묘안입니다.
그래 부처님께서 왜 자꾸 중도中道 말씀하셨는고 하니 정말 태자시절에는 누구보다도 사치스러운 그런 생활을 했죠. 향락의 생활을 했죠. 그리고 6년간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그런 고행을 했습니다. 그 고행상 보세요. 삐쩍 말라가지고 그 간다라미술을 대표라고 하는데 정말 피골이 상접하고 배가 저 등에 붙을 정도로 그렇게 이제 고행을 했죠. 그러니까 양극단을 여기는 다 걸어본 사람이야. 양극단을. 아주 사치스러럽고 호화로운 생활도 해 봤고, 아주 고생고생 정말 이 세상에 따를 수 없는 그런 고생도 해 봤고. 그런 양극단을 다 걸어보니까 아니더라. 어디에도 치우치지 말라.
그러면서 이제 우유죽이라고 하는 그 아가씨가 끓여주는 그런 그 아주 맛있는... 그 맛이 뭐 기막히다고 했어요. 몇 번 이렇게 걸러가지고 한 죽이라는 표현도 있고 그런데. 그 죽을.. 최고급 음식이에요. 그걸 먹고 정신을 차리고, 아주 정상적인 일주일간의 삼매(三昧) 속에서 말하자면 비로소 이제 삼매를 거친 뒤에 깨닫게 되는.. 그러한 부처님의 성도(成道)를 우리가 생각해보더라도 그 불교의 안목이라고 하는 것, 불교의 소견이라고 하는 것 中道였다하는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데 있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불호(佛號)는 무애안(無碍眼) 이 무애안이라고 하는 말이 아마 그런 뜻을 나타내고 있을 거에요.
彼佛衆中에 有菩薩하니 名化現法界願月王이라
피불중중에 유보살하니 명화현법계원월왕이라
저 부처님 대중가운데 보살이 있으니 이름은 화현법계원월왕(化現法界願月王) 화현법계원월왕. 이제 보살님들도 이름 좀 이렇게 길게 지으십시오 앞으로. 화현법계원월왕. 무슨 여섯 자나 일곱자 무슨 꼭 석자만 좋은게 아니에요.
與世界海微塵數菩薩로 俱하야 來向佛所하사
여세계해미진수보살로 구하야 내향불소하사
여세계해미진수보살(與世界海微塵數菩薩)로 더불어 함께해서 부처님 처소에 향해 오사.
悉以神力으로 興寶樓閣雲과 香樓閣雲과 燒香樓閣雲과 華樓閣雲과 栴檀樓閣雲과 金剛樓閣雲과 摩尼樓閣雲과 金樓閣雲과 衣樓閣雲과 蓮華樓閣雲하사 彌覆十方一切世界하야 至佛所已에 頂禮佛足하고
실이신력으로 흥보루각운과 향루각운과 소향누각운과 화누각운과 전단루각운과 금강루각운과 마니루각운과 금루각운과 의루각운과 연화루각운하사 미부시방일체세계하야 지불소이에 정례불족하고
다 신력(神力)으로써 흥(興) 일으켰다. 보누각구름과 향누각구름과 소향누각구름과 화누각운과 전단누각운과 금강누각운과 마니누각운과 금누각운과 의누각운과 연화누각운과 운을 일으키사. 이런 열 가지의 구름을 막 일으키면서 시방일체세계에 미부(彌覆), 가득히 채워가지고서 구름을 가려. 그렇게 일으켜 가지고서 부처님처소에 와서 이르더라. 그러고는 부처님 발에 정례(頂禮)하고.
卽於東北方에 化作一切法界門大摩尼樓閣과 及無等香王蓮華藏師子之座하사
즉어동북방에 화작일체법계문대마니루각과 급무등향왕련화장사자지좌하사
곧 동북방 쪽에 일체법계문대마니루각(一切法界門大摩尼樓閣)과 그리고 무등향왕련화장사자(無等香王蓮華藏師子)의 자리를 화작(化作), 만들어가지고서.
摩尼華網으로 羅覆其身하며
마니화망으로 나부기신하며
마니화망(摩尼華網)으로, 마니화의 그물로써 그 몸에 두르고. 나부(羅覆), 두르고
着妙寶藏摩尼王冠하고 與其眷屬으로 結跏趺坐하나니라.
착묘보장마니왕관하고 여기권속으로 결가부좌하나니라.
또 묘보장마니왕관(妙寶藏摩尼王冠). 그 관(冠)이죠. 머리에 쓰는. 관(冠)을 쓰고. 착자(着)는 이때는 쓴다 그래요. 옷을 말할 때는 입다라고 해석하고, 모자나 관을 말할 때는 쓰다 이렇게 해석하고 그럽니다. 쓰고 그 권속(眷屬)들로 하여 더불어 결가부좌를 맺고 앉더라
그 다음 동남방 대중입니다. 여섯 번째는.
6. 東南方의 大衆
東南方으로 過不可說佛刹微塵數世界海外하야 有世界하니 名香雲莊嚴幢이요 佛號는 龍自在王이어든
동북방으로 과불가설불찰미진수세계해외하야 유세계하니 명향운장엄당이요 불호는 용자재왕이어든
동남방으로 불가설불찰미진수세계를 지나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이 향운장엄당(香雲莊嚴幢)이요 부처님 호는 용자재왕(龍自在王)이다.
彼佛衆中에 有菩薩하니 名法慧光焰王이라.
피불중중에 유보살하니 명법혜광염왕이라.
피불대중 가운데 보살이 있으니 이름이 법혜광염왕(法慧光焰王)이라.
與世界海微塵數菩薩로 俱하야 來向佛所하사
여세계해미진수보살로 구하야 내향불소하사
세계해미진수보살로 더불어 함께해서 부처님 처소에 향해 오사.
悉以神力으로 興金色圓滿光明雲과 無量寶色圓滿光明雲과 如來毫相圓滿光明雲과 種種寶色圓滿光明雲과 蓮華藏圓滿光明雲과 衆寶樹枝圓滿光明雲과 如來頂鬘圓滿光明雲과 閻浮檀金色圓滿光明雲과 日色圓滿光明雲과 星月色圓滿光明雲하사
실이신력으로 흥금색원만광명운과 무량보색원만광명운과 여래호상원만광명운과 종종보색원만광명운과 연화장원만광명운과 중보수지원만광명운과 여래정계만원만광명운과 염부단금색원만광명운과 일색원만광명운과 성월색원만광명운하사
모두들 신력(神力)으로써 흥금색원만광명운과 무량보색원만광명운과 여래호상원만광명운과 종종보색원만광명운과 연화장원만광명운과 중보수지원만광명운과 여래정계만원만광명운과 염부단금색원만광명운과 일색원만광명운과 성월색원만광명운을 흥(興) 일으키사
悉遍虛空하야 到佛所已에 頂禮佛足하고 卽於東南方에 化作毘盧遮那最上寶光明樓閣과 金剛摩尼蓮華藏師子之座하사
실변허공하야 도불소이에 정례불족하고 즉어동남방에 화작비로자나최상보광명루각과 금강마니련화장사자지좌하사
이름 하나하나 눈으로도 놓치지 않고 한자한자 따라서 읽는 그 인연. 그 인연을 맺는게 소중해요. 허공에 다 가득히 해서 부처님 처소에 이르고 나서 불족(佛足)에 부처님 발에 정례(頂禮)하고 곧 동남방에 비로자나최상보광명루각(毘盧遮那最上寶光明樓閣)과 금강마니련화장사자(金剛摩尼蓮華藏師子)의 자리를 화작(化作) 만들어서.
衆寶光焰摩尼王網으로 羅覆其身하고
중보광염마니왕망으로 나부기신하고
중보광염마니왕(衆寶光焰摩尼王網) 그물로써 그 몸에 두르고
與其眷屬으로 結跏趺坐하나니라.
여기권속으로 결가부좌하나니라.
그 권속으로 더불어 가부(跏趺)를 맺고 앉더라.
늘 같은 형식이죠.
그 다음에 서남방의 대중이라.
7. 西南方의 大衆
西南方으로 過不可說佛刹微塵數世界海外하야 有世界하니 名日光摩尼藏이요 佛號는 普照諸法智月王이어든
서남방으로 과부가설불찰미진수세계해외하야 유세계하니 명일광마니장이요 불호는 보조제법지월왕이어든
서남방으로 불가설불찰미진수세계를 지나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이 광마니장 일광마니장(日光摩尼藏)이요, 부처님 명호는 보조제법지월왕(普照諸法智月王)이다.
彼佛衆中에 有菩薩하니 名摧破一切魔軍智幢王이라
피불중중에 유보살하니 명최파일체마군지당왕이라
저 부처님 대중 가운데 보살이 있으니 이름이 최파일체마군지당왕(摧破一切魔軍智幢王). 일체마군(一切魔軍)을 최파(摧破), 깨뜨려버리는 그런 지혜의 깃발 그런 왕이더라. 보살이. 대표보살이에요.
與世界海微塵數菩薩로 俱하야 來向佛所하사
여세계해미진수보살로 구하야 내향불소하사
세계해미진수보살로 더불어 함께해서 부처님 처소에 향해 오사.
於一切毛孔中에 出等虛空界華焰雲과 香焰雲과 寶焰雲과 金剛焰雲과 燒香焰雲과 電光焰雲과 毘盧遮那摩尼寶焰雲과 一切金光焰雲과 勝藏摩尼王光焰雲과 等三世如來海光焰雲호대 一一皆從毛孔中出하야 遍虛空界라
어일체모공중에 출등허공계화염운과 향염운과 보염운과 금강염운과 소향염운과 전광염운과 비로차나마니보염운과 일체금광염운과 승장마니왕광염운과 등삼세여래해광염운호대 일일개종모공중출하야 변허공계라
일체모공(一切毛孔) 중에 여긴 출(出) 모공(毛孔) 중에서 구름을 내는 거에요. 또 그 보살들은 모공에서 구름을 일으키는 거지요. 허공계 화염운과 향염운과 보염운과 금강염운과 소향염운과 전광염운과 비로자나마니보염운과 일체금광염운과 승장마니왕광염운과 등삼세여래해광염운을 출(出) 저 앞에 있었던 출(出), 내되. 모공에서 그걸 구름을 막 내는 거에요. 낱낱이 개종모공중출(皆從毛孔中出)하여 낱낱이 또 모공 중에서 쫓아 나와서 공계 허공계에 변(遍) 두루하더라.
到佛所已에 頂禮佛足하고 卽於西南方에 化作普現十方法界光明網大摩尼寶樓閣과 及香燈焰寶蓮華藏師子之座하사
도불소이에 정례불족하고 즉어서남방에 화작보현시방법계광명망대마니보루각과 급향등염보련화장사자지좌하사
부처님 처소에 이른 뒤에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곧 서남방에 보현시방법계광명망대마니보누각(普現十方法界光明網大摩尼寶樓閣)과. 누각을 이제 만들죠. 그리고 자리도 만들고 의자도 만들고요. 의자는 이제 향등염보련화장사자(香燈焰寶蓮華藏師子)의 자리를 화작(化作)해서 만들어서
以離垢藏摩尼網으로 羅覆其身하며
이이구장마니망으로 나부기신하며
이구장마니망(離垢藏摩尼網)으로 그물로써 그 몸에 휘두르고
着出一切衆生發趣音摩尼王嚴飾冠하고
착출일체중생발취음마니왕엄식관하고
출일체중생발취음(出一切衆生發趣音) 일체중생이 나아가는 앞으로앞으로 전진해 가는 그런 소리를 내는 마니왕엄식관(摩尼王嚴飾冠)을 착(着), 쓰고
與其眷屬으로 結跏趺坐하나니라.
여기권속으로 결가부좌하나니라.
그 권속으로 더불어 가부를 맺고 앉더라. 결가부좌하니라.
그 다음에 또 서북방의 대중이라.
8. 西北方의 大衆
西北方으로 過不可說佛刹微塵數世界海外하야 有世界하니 名毘盧遮那願摩尼王藏이요
서북방으로 과불가설불찰미진수세계해외하야 유세계하니 명비로자나원마니왕장이요
서북방으로 불가설불찰미진수세계 밖을 지나서 또 세계가 있으니 이름이 비로자나원마니왕장(毘盧遮那願摩尼王藏)이요
佛號는 普光明最勝須彌王이어든
불호는 보광명최승수미왕이어든
부처님 호는 보광명최승수미왕이어든
彼佛衆中에 有菩薩하니 名願智光明幢이라
피불중중에 유보살하니 명원지광명당이라
그 부처님 대중가운데 보살이 있으니 이름이 원지광명당(願智光明幢)이라.
與世界海微塵數菩薩로 俱하야 來向佛所하사
여세계해미진수보살로 구하야 내향불소하사
세계해미진수보살로 더불어 함께해서 부처님 처소에 향해 오사.
於念念中에 一切相好와 一切毛孔과 一切身分에
어념념중에 일체상호와 일체모공과 일체신분에
염념(念念)가운데 생각생각 순간순간에 일체상호와 일체모공과 일체신분에, 몸에 이런 말이죠 신분(身分)에.
皆出三世一切如來形像雲과 一切菩薩形像雲과 一切如來衆會形像雲과 一切如來變化身形像雲과 一切如來本生身形像雲과 一切聲聞辟支佛形像雲과 一切如來菩提場形像雲과 一切如來神變形像雲과 一切世間主形像雲과 一切淸淨國土形像雲하사
개출삼세일체여래형상운과 일체보살형상운과 일체여래중회형상운과 일체여래변화신형상운과 일체여래본생신형상운과 일체성문벽지불형상운과 일체여래보제장형상운과 일체여래신변형상운과 일체세간주형상운과 일체청정국토형상운하사
개출(皆出) 다 내더라. 뭘 내는고 하니 구름을 또 내는 거죠. 삼세일체여래형상구름 일체보살형상구름 일체여래중회형상구름, 일체여래가 있는데 거기에 배경으로 쭉 둘러있는 그런 모양 구름과. 일체여래변화신형상구름과 일체여래본생신형상구름과, 본생신(本生身)하면 아까 이야기했듯이 과거생에 그 부처님이 어떤 모습을 했다라고 하는 그런 형상(形像)의 몸을 나타내는 그런 구름과 일체성문벽지불형상구름과 일체여래보리장형상운과 일체여래신변형상운과 일체세간주형상운과 일체청정국토형상운을 출하사, 내사. 많이 오면서 그런 것을 그런 구름을 내서
充滿虛空하야 至佛所已에 頂禮佛足하고 卽於西北方에
충만허공하야 지불소이에 정예불족하고 즉어서북방에
충만허공(充滿虛空)하야 부처님 처소에 이르고 나서 불족(佛足)에 부처님 발에 정례(頂禮)하고 곧 서북방에 즉어서북방(卽於西北方)에
化作普照十方摩尼寶莊嚴樓閣과
及普照世間寶蓮華藏師子之座하사
화작보조시방마니보장엄루각과
급보조세간보련화장사자지좌하사
화작보조시방마니보장엄루각하고 또 보조세간보련화장사자좌를 만들어서
以無能勝光明眞珠網으로 羅覆其身하며
이무능승광명진주망으로 나부기신하며
무능승광명진주의 그물로 그 몸에 두르고
着普光明摩尼寶冠하고
착보광명마니보관하고
보광명마니보관을 쓰고 착자(着)는 쓰고 하는 그런 말입니다.
與其眷屬으로 結跏趺坐하니라.
여기권속으로 결가부좌하니라.
그 권속으로 더불어 결가부좌하니라. 그 토를 하니라라고 해 놨어요. 결가부좌하니라.
그 다음에 하방(下方). 시방(十方)이니까 열 개의 방향이니까 밑에서 하방의 대중이라.
9. 下方의 大衆
下方으로 過不可說佛刹微塵數世界海外하야 有世界하니 名一切如來圓滿光普照요 佛號는 虛空無碍相智幢王이어든
하방으로 과불가설불찰미진수세계해외하야 유세계하니 명일체여래원만광보조요 호는 불호는 허공무애상지당왕이어든
하방(下方)으로 불가설불찰미진수세계 밖을 지나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이 일체여래원만광보조(一切如來圓滿光普照)라. 또 부처님 호는 허공무애상지당왕(虛空無碍相智幢王)이어든
시방(十方)이니까 열 개의 방향이니까 밑에서 하방의 대중이라.
彼佛衆中에 有菩薩하니 名破一切障勇猛智王이라 與世界海微塵數菩薩로 俱하야 來向佛所하사
피불중중에 유보살하니 명파일체장용맹지왕이라 여세계해미진수보살로 구하야 내향불소하사
(피불중중에 그 부처님의 대중가운데 보살이 있다. 이름이 파일체장용맹지왕이다.) 세계해미진수보살(世界海微塵數菩薩)로 더불어 함께해서 부처님 처소에 향해 오사. 한문이 전부 이러면 아주 뭐 거저먹기죠. 아주 쉽죠? 이런 한문 같으면 누구라도 뭐 해석 못할 사람이 없네.
於一切毛孔中에 出說一切衆生語言海音聲雲하며
어일체모공중에 출설일체중생어언해음성운하며
일체모공 중에서 출(出) 낸다. 역시 구름을 내는데 무슨 구름인고하니 이건 조금 묘한 구름이에요. 설일체중생언어해(說一切衆生語言海). 그러니까 설일체중생언어해음을 설하는 일체중생의 말을 설하는 그런 구름을 낸다. 음성구름을 낸다. 그런 식입니다.
出說一切三世菩薩修行方便海音聲雲하며
출설일체삼세보살수행방편해음성운하며
또 출설일체삼세보살수행방편해음성 일체삼세보살들의 수행방편을 설하는 그런 음성구름을 내고.
出說一切菩薩所起願方便海音聲雲하며 出說一切菩薩成滿淸淨波羅蜜方便海音聲雲하며
출설일체보살소기원방편해음성운하며 출설일체보살성만청정바라밀방편해음성운하며
또 설일체보살소기원방편해음성운(說一切菩薩所起願方便海音聲雲)을 내고 또 설일체보살성만청정바라밀방편해음성운(說一切菩薩成滿淸淨波羅蜜方便海音聲雲)을 내고. 그러니까 설한다라고 하는 말은 방편해(方便海)를 설하는 그런 음성의 구름을 낸다. 出과 說 字 새기는 장소를 알겠죠? 어디까지는 설자(說)가 해석이 떨어지고 어디까지는 출자(出)가 떨어진다. 出을 마지막에다 새기는 거죠. 구름을 낸다 그래요.
出說一切菩薩圓滿行遍一切刹音聲雲하며
출설일체보살원만행변일체찰음성운하며
또 일체보살원만행변일체찰 원만행(圓滿行)이 일체찰(一切刹)에 변하는 두루 하는 것을 설하는 그런 음성구름을 내며.
出說一切菩薩成就自在用音聲雲하며
출설일체보살성취자재용음성운하며
일체보살성취자재용음성운(一切菩薩成就自在用音聲雲)을 내며.
出說一切如來의 往詣道場하야 破魔軍衆하고 成等正覺한 自在用音聲雲하며
출설일체여래의 왕예도량하야 파마군중하고 성등정각한 자재용음성운하며
설일체여래(說一切如來)의 왕예도량(往詣道場)하야. 도량(道場)에 보리수 밑이죠. 그 도량에 나아가서 마군중(魔軍衆)을 깨뜨리고 등정각(等正覺)을 이루는 그런 자재한 용(用)의 음성 구름을 또 내고. 자재(自在)를 설하는 음성구름을 내고. 설자(說)를 새길라면 그래 해야 돼요.
出說一切如來轉法輪契經門名號海音聲雲하며
출설일체여래전법륜계경문명호해음성운하며
또 일체여래가 전법륜계경문명호해(轉法輪契經門名號海)를 설하는 그런 음성을 내며.
出說一切隨應敎化調伏衆生法方便海音聲雲하며 出說一切隨時隨善根隨願力하며
출설일체수응교화조복중생법방편해음성운하며 출설일체수시수선근수원력하며
또 일체수응교화조복중생(一切隨應敎化調伏衆生) 중생을 조복(調伏)하고 조복하는 법의 방편해(方便海)를 설하는 그런 음성구름을 내며. 또 일체수시수선근수원력(一切隨時隨善根隨願力) 그러니까 때[時]를 따라야 되고요. 선근(善根)을 따라야 되고, 방편(方便)을 원(願)과 힘[力]을 따르는 그런 것을 설하며.
普令衆生證得智慧方便海音聲雲하사
보령중생증득지혜방편해음성운하사
또 보령중생(普令衆生)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지혜(智慧)를 증득(證得)하는 방편해(方便海)를 설하는 그런 음성구름을 내며. 내사.
到佛所已에 頂禮佛足하고 卽於下方에 化作現一切如來宮殿形像衆寶莊嚴樓閣과 及一切寶蓮華藏師子之座하며 着普現道場影摩尼寶冠하고 與其眷屬으로 結跏趺坐하나니라.
도불소이에 정례불족하고 즉어하방에 화작현일체여래궁전형상중보장엄루각과 급일체보련화장사자지좌하며 착보현도장영마니보관하고 여기권속으로 결가부좌하나니라.
부처님 처소에 이르고 나서 부처님 발에 정례(頂禮)하고 곧 하방(下方)에 일체여래궁전형상중보장엄누각(一切如來宮殿形像衆寶莊嚴樓閣)과 그리고 일체보련화사자(一切寶蓮華藏師子)의 자리를 화작(化作)해서 화작하며. 또 보현도량영마니보관(普現道場影摩尼寶冠)을 쓰고 그 권속(眷屬)으로 더불어 결가부좌(結跏趺坐)하니라.
그 다음에 이제 시방회(十方會)의 끝으로 열 번째 상방대중들입니다.
10. 上方의 大衆
上方으로 過不可說佛刹微塵數世界海外하야 有世界하니 名說佛種性無有盡이요
상방으로 과불가설불찰미진수세계해외하야 유세계하니 명설불종성무유진이요
상방으로 불가설불찰미진수세계 밖을 지나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이 설불종성무유진이요. 부처님 성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이 끝이 없는 그런 뜻이다. 그게 이제 세계이름이에요.
佛號는 普智輪光明音이어든
불호는 보지륜광명음이어든
불호는 보지륜광명음이다. 그 지혜의 광명이 널리 퍼지는 그런 소리다.
彼佛衆中에 有菩薩하니 名法界差別願이라 與世界海微塵數菩薩로 俱하사 發彼道場하야 來向此娑婆世界釋迦牟尼佛所하사
피불중중에 유보살하니 명법계차별원이라 여세계해미진수보살로 구하사 발피도량하야 래향차사파세계석가모니불소하사
피불대중 가운데 보살이 있으니 이름이 법계차별원(法界差別願)이라. 세계해미진수보살(世界海微塵數菩薩)로 더불어 함께해서[俱] 저 도량에 나아가서, 발자(發) 나아가다 이런 뜻이에요. 그리고 출발해서 저 도량(道場)에서 출발해 가지고 내향(來向)한다 어디로? 이미 사바세계 석가모니부처님 처소로 온다 이거에요. 내향(來向)한다. 향해온다 이 뜻입니다. 하사.
於一切相好와 一切毛孔과 一切身分과 一切肢節과 一切莊嚴具와 一切衣服中에
어일체상호와 일체모공과 일체신분과 일체지절과 일체장엄구와 일체의복중에
일체상호(一切相好)와 일체모공(一切毛孔)과 일체신분(一切身分)과 일체지절(一切肢節), 이건 이제 사지(四肢). 사지를 지절(肢節)이라고 해요. 일체지절과 일체장엄구(一切莊嚴具)와 일체의복(一切衣服) 중에서
現毘盧遮那等過去一切諸佛과 未來一切諸佛의 已得授記未授記者와
현비로자나등과거일체제불과 미래일체제불의 이득수기미수기자와
비로자나등과거일체제불과 미래일체제불의 이득수기미수기자(已得授記未授記者)와, 이미 수기를 얻은 사람 또 아직 수기를 못 얻은 사람과
現在十方一切國土에 一切諸佛과 幷其衆會하며
현재시방일체국토에 일체제불과 병기중회하며
또 현재시방일체국토의 일체제불과 그리고 모든 부처님의 회중(會衆), 대중들이란 뜻입니다. 중회(衆會) 대중들을 현(現) 고 위에 대중들을 그래 나타내며. 그걸 어디서 나타내는고 하니 일체상호, 일체모공, 일체신분, 일체지절, 뭐 손마디 팔 다리에서 전부 일체장엄구 일체 옷 속에서까지 그런 모습들을 다 나타내며
亦現過去에 行檀那波羅蜜과
역현과거에 행단나바라밀과
또 나타낸다 又現. 과거에 단바라밀(檀波羅蜜)을 행한 것. 요건 이제 보시바라밀을 인도말로 하면 단나바라밀 단나바라밀 그래요.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及其一切受布施者의 諸本事海하며
급기일체수보시자의 제본사해하며
급일체수보시자(及其一切受布施者) 내가 보시를 하잖아요? 그러면 그 보시를 받아들이는 사람, 보시를 받는 사람의 제본사해(諸本事海), 요거는 이제 보시를 하는 내 과거, 내 전생. 그리고 보시를 받는 사람의 전생, 옛이야기, 옛일들. 그게 본사(本事)가 옛일이라고 했죠. 옛일을 나타내며. 현자(現).
亦現過去에 行尸羅波羅蜜諸本事海하며
역현과거에 행시라바라밀제본사해하며
또 나타낸다[亦現] 무엇을? 과거에 행시라바라밀(行尸羅波羅蜜). 요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은 지계에요. 持戒. 육바라밀 중에서 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의 제(諸), 모든 옛일. 그러니까 계(戒)를 지키든 옛일들을 나타내며.
亦現過去行羼提波羅蜜에 割截肢體호대
心無動亂諸本事海하며
역현과거행찬제바라밀에 할절지체호대
심무동란제본사해하며
또 우현(又現) 또 역현(亦現) 또 나타낸다. 뭔고하니 과거에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을 요건 이제 보시 지계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입니다.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을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이라고 그래요. 그 주검 시(尸) 밑에 양 양자(羊) 세 개 한게 이제 찬자(羼)입니다. 音이 찬이에요. 그러나 이건 인도 발음을 그냥 갖다놓은 거에요.
찬제바라밀을 행하매. 인욕(忍辱)이니까 할절지체(割截肢體), 지체(肢體)를 갖다가 우리의 몸을 그냥 사정없이 베고 자르는 거에요. 이거 어디에 있죠? 금강경에 이런 말 있죠. 금강경에 가리왕한테 할절신체(割截身體)했죠. 할절신체(割截身體)나 할절지체(割截肢體)나 같습니다. 거기에서 이제 인욕(忍辱)을 행할 때 그런 일이 있었죠. 그런데 심무동란(心無動亂)이야. 마음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아 팔을 자르고 말이지 다리를 자르는데도 아무런 마음에 아무런 동요가 없어. 하여간 그런 옛일들, 제본사해(諸本事海). 이런 것들을 또 나타내며.
亦現過去行精進波羅蜜에 勇猛不退諸本事海하며
역현과거행정진바라밀에 용맹부퇴제본사해하며
역현(亦現) 또 나타낸다. 과거에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을 행하던 행하매 용맹불퇴제본사해(勇猛不退諸本事海). 정진할 때 아주 뭐 열심히 아주 학교한다고 아주 용맹스럽게 정진하죠. 한 백일은 끈질기게 기도 잘하지. 그러다가 마 학교가고나면 그만 시들해지지. 그런데 여기는 용맹불퇴야. 여기 있는 보살은 물러나지 않아. 학교에 갔든 안 갔든 그거는 나하고 관계없고, 나는 그냥 정진(精進)하는 일이다. 나는 열심히 그저 정진하는 일이 내 일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용맹불퇴(勇猛不退). 참 좋지요. 용맹해서 물러나지 않는 그런 옛일들. 아무튼 그런 옛일들을 나타내고.
亦現過去에 求一切如來禪波羅蜜海하야
而得成就諸本事海하며
역현과거에 구일체여래선바라밀해하야
이득성취제본사해하며
또 나타낸다. 역현(亦現), 과거에 일체여래선바라밀(一切如來禪波羅蜜)을 일체여래가 선바라밀(禪波羅蜜)을 구하던 그런 것을 구해서. 구하매. 선바라밀을 구해서. 득성취제본사해(得成就諸本事海) 성취를 얻던. 참선을 다 잘 해가지고 참선이 성취되던 그런 옛일들을 나타내며.
亦現過去에 求一切佛의 所轉法輪과 所成就法에 發勇猛心하야 一切皆捨諸本事海하며
역현과거에 구일체불의 소전법륜과 소성취법에 발용맹심하야 일체개사제본사해하며
역현(亦現), 또 나타냅니다. 역현. 과거에 일체의 부처님이 굴린다[轉] 법륜(法輪)과 성취(成就)한다 法에. 法을 구하매. 발용맹심勇猛心하야 용맹심을 내어가지고서. 일체개사(一切皆捨), 모든 것을 다 버려. 그러니까 부처님이 가르치시는 그 법 때문에 그리고 그 법을 성취하고자하는 그런 마음에서 용맹심을 내어가지고 일체개사(一切皆捨)야. 모든 것을 다 버려버렸던 그런 것을 그런 옛일들을 나타내며.
亦現過去에 樂見一切佛과 樂行一切菩薩道와 樂化一切衆生界諸本事海하며
역현과거에 락견일체불과 낙행일체보살도와 낙화일체중생계제본사해하며
역현(亦現) 또 나타낸다. 무엇을? 과거에 일체부처님을 낙견해. 부처님보기를 좋아해. 깨달은 사람, 성인보기를 아주 즐거워하는 그런 행이 낙견일체불(樂見一切佛)입니다. 또 낙행일체보살도(樂行一切菩薩道)라. 일체보살도 행하는 것을 아주 좋아해. 또 낙화일체중생계(樂化一切衆生界)야. 모든 중생 교화(敎化)하기를 또 아주 좋아해. 그런 여러 가지 옛일들을 나타낸다.
亦現過去所發一切菩薩大願의 淸淨莊嚴諸本事海하며
역현과거소발일체보살대원의 청정장엄제본사해하며
또 역현(亦現), 또 나타낸다. 과거에 발한 바[過去所發] 일체보살의 대원(大願), 보살행을 어떻게 하겠다 하는 큰 서원. 큰 서원(誓願)들을 이제 발했던 그런 것들. 청정장엄제본사해(淸淨莊嚴諸本事海) 그런 그 청정한 장엄의 그 일 자체가 보살의 대원이 청정장엄(淸淨莊嚴)이거든요. 그런 그 옛일들을 나타내며.
亦現過去菩薩所成力波羅蜜의 勇猛淸淨諸本事海하며
역현과거보살소성역바라밀의 용맹청정제본사해하며
역현과거보살소성역바라밀(亦現過去菩薩所成力波羅蜜) 이건 이제 정진력(精進力)이죠. 정진의 힘, 역바라밀(力波羅蜜)을 역바라밀의 용맹청정본사해(勇猛淸淨諸本事海) 제본사해(諸本事海)를 나타내며.
亦現過去一切菩薩所修圓滿智波羅蜜의 諸本事海하사
역현과거일체보살소수원만지바라밀의 제본사해하사
또 과거일체보살 닦은바 원만한 지바라밀(智波羅蜜) 지혜(智慧)바라밀의 제본사해(諸本事海)를 나타내사.
亦現過去一切菩薩所修圓滿智波羅蜜의 諸本事海하사
역현과거일체보살소수원만지바라밀의 제본사해하사
이와같이 일체본사해(一切本事海)가 일체 옛일들, 옛일들 우리 과거에 했던 옛일들입니다. 다 우리가 보살님들이 화엄경을 이렇게 공부하게 된 인연도요. 과거생에 다 모두 인연을 짓고 아니면은 옛날에는 남자들이 절에 많이 갔잖아요. 그럴 때 아 집에서 절에 가고 싶고 가서 법문 듣고 싶고 하는 그런 간절한 마음이 오늘날 이렇게 결실을 맺어가지고 또 와서 남자들은 욕보고 보살님들만 와 가지고.. 아 그 뭐 가족들 먹여살릴려고 일터에서 얼마나 욕봅니까? 그런데 이제 보살님들은 그 간절한 소망 때문에 이제 오늘날 이렇게 화엄경을 떡 마주하고 앉아가지고 이런 시간을 보내는 거에요. 그게 뭐 저 여기 다 나타나 있어요.
이와같은 일체제본사해(一切諸本事海) 옛일들이란 말예요. 우리 과거생의 한 생각 하나 행동 그게 전부 헛것이 아니에요. 끝이 아니에요. 그런 것들이 전부 세월이 가고 그게 이제 뿌리가 내리고 싹이 트고 열매를 맺고 하면서 또 그렇게 또 돌아가는 거에요. 또 우리가 또 금생에 이렇게 지으면 그것이 또 인연이 돼 가지고 또 프러스가 돼 가지고 또 보다 더 공부를 많이 할 수가 있고 그런 그 끊임없는 그야말로 생사유유무정지(生死悠悠無定止)라. 삶과 죽음은 유유히 계속 이렇게 반복하면서 좀 더 나아졌다가 또 간혹 또 못했다가 이런저런 그 인연의 갈래를 엮어가면서 그렇게 이제 살아가는 거에요. 그래서 이렇게 본사본사본사란 이야기가 자꾸나오는거에요. 깨달은 부처님 입장에서 과거생을 가만히 두고 볼 때 얼마나 많은 과거가 있었겠습니까?
如是一切本事海가 悉皆遍滿廣大法界하야
여시일체본사해가 실개변만광대법계하야
그래서 일체 모든 옛일들을 실개변만광대법계(悉皆遍滿廣大法界)하야 광대법계(廣大法界), 넓고 넓은 이 세계에 두루해서.
至佛所已에 頂禮佛足하고
지불소이에 정례불족하고
지불소이(至佛所已)에 부처님 처소에 이르고 나매. 불족(佛足)에 부처님 발에 정례(頂禮)하고.
卽於上方에 化作一切金剛藏莊嚴樓閣과 及帝靑金剛王蓮華藏師子之座하사
즉어상방에 화작일체금강장장엄루각과 급제청금강왕련화장사자지좌하사
곧 상방(上方)에 일체금강장장엄누각(一切金剛藏莊嚴樓閣)하고 제청금강왕연화장사자(帝靑金剛王蓮華藏師子)의 자리를 지어서 만들어서
以一切寶光明摩尼王網으로 羅覆其身하며
이일체보광명마니왕망으로 나부기신하며
일체보광명마니보망으로 그물로써 그 몸에 두르고
以演說三世如來名摩尼寶王으로 爲髻明珠하고 與其眷屬으로 結跏趺坐하시니라.
이연설삼세여래명마니보왕으로 위계명주하고 여기권속으로 결가부좌하시니라.
삼세여래명마니보왕을 삼세여래명(三世如來名)을 연설하는 마니보왕(摩尼寶王)으로 계명주(髻明珠)를 삼고 머리에 턱 그 이제 올려놓는데 그 계명주가 그냥 계명주가 아니라 살아있는 계명주에요. 상투위에 올려놓은 그 구슬이 삼세여래(三世如來)의 이름을 설하는 부처님 명호(名號)만 계속 설하고 있는 그런 구슬이다 이겁니다. 그 권속(眷屬)으로 더불어 결가부좌(結跏趺坐)하시니라.
이렇게해서 시방(十方)의 대중들이 다 모였어요. 이제 앞으로 선재동자의 법문이 제대로 행해질라면은 배경이 이렇게 충분히 갖춰줘야 돼요. 그럼 뭐 한 가지 말하자면 집을 한 채 지을라면 기초공사가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립니까? 땅을 사야죠 땅을 다져야죠 땅을 파야죠. 뭘 그 저기 기초를 놓아야죠. 기초공사가 보통일이 아니라고요. 마찬가지로 여기까지 아직 기초공사하는 겁니다. 주변환경을 쭉 설명하게 되는 거죠.
대중들이 그만치 이제 많이 모이고 이런 격높은 대중들이 시방에서 몰려왔다라고 하는 것은 앞으로 행해질 선재동자가 구법행각을 하는데 거기에 행해질 그 법문의 격이 또 거기에 맞겠죠. 결국은. 법문의 격들이 또 이 수준에 맞는 격으로 설해진다고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뭐 초등학생들만 잔뜩 모였다하면 그 이야기가 뻔할거 아니에요? 중학생들이 잔뜩 모였다 그러면 거기서 되어질 이야기가 또 뻔한거야 그와 마찬가지로 여기에 시방에서 이렇게 많은 보살대중들이 모여왔다 하는 것은 그 법문의 격을 우리가 미루어서 짐작할 수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다음에 한 대목 하겠는데요. 요건 이제 여기에 많은 대중들이 모였는데 이 대중들이 도대체 어떤 대중들이냐? 도대체 학교는 어디 나왔고 뭐 경제력은 어떻고 수준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냐? 이걸 이제 이야기하는 대목이 대중의 덕을 찬탄하다 이렇게 돼 있어요. 이 많은 대중들이 시방에서 모였는데 이 대중들의 속성 그 품격 그 분들의 실력 신분 이걸 좀 이제 알아야되겠다 이거에요. 뭐 보살들이라고 했으니 뭐 대단하겠지마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사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 화엄경은요 보살을 청중으로 하는 그런 내용이에요. 그 다음은 이제 이야기 되겠지만은 요렇게 보살대중은 딱 모였다 해놓고 다른 대중들은 여기에 뭐 뭐 사리불 목건련 마하가섭 뭐 수보리 이런 사람들은 그 자리에 있어도 하나도 그 광경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 하는 고런 이야기가 그 다음에 이루어져요. 그런 이야기도 또 역시 화엄경의 격을 나타내는 하나의 표현입니다. 그럼 이제 보살들의 덕을 우리가 한번 살펴보는데요...
11. 大衆의 德을 讚嘆
如是十方一切菩薩과 幷其眷屬이 皆從普賢菩薩行願中生이라.
여시시방일체보살과 병기권속이 개종보현보살행원중생이라.
여시시방일체보살(如是十方一切菩薩)과 그 권속들 그 권속들은 이와 같은 시방에서 온 일체보살들하고 그 보살들의 권속이 늘 이야기가 됐죠. 그 권속들은 다 어떤 사람들인고 하니 개종보현보살행원중생(皆從普賢菩薩行願中生)이라 그랬어요. 보현보살의 행원. 보현보살의 실천(實踐)과 원력(願力)에서부터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뭐 우리가 뭐 육신이 태어나듯이 그렇게 태어났다는 뜻이 아니고 완전히 이 사람들의 정신이 보현보살의 행원력(行願力)으로 무장된 사람들이다 이런 말입니다. 보현보살의 행원력. 그러면 뭐 알만하지요.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 유명하지요. 보현행원품에 나오는데 이 책 제일 끄트머리에 보면 보현보살의 그 열 가지 행원,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이 딸려있어요. 우선 한번 볼까요. 보현행원품. 그 열 가지 행원만 잠깐 소개를 하면은 그게 어디에 있는고하니 565쪽에 한번 넘겨보십시오. 저 뒤에,... 565쪽에 대방광불화엄경 제 81권이죠. 그 다음에 보현행원품 제40. 품으론 40품인데 거기에
이시(爾時)에 보현보살(普賢菩薩)이 칭탄여래승공덕이(稱歎如來勝功德已)하시고 고제보살(告諸菩薩)과 급선재언(及善財言)하사대 善男子야 여래공덕(如來功德)은 가사시방일체제불(假使十方一切諸佛)이 경불가설불가설(經不可說不可說) 불찰미진수국토(佛刹微塵數國土)로 상속연설(相續演說)하여도 불가궁진(不可窮盡)이니라. 약욕성취 차 공덕문(若欲成就 此 功德門) 인대ㄴ. 이 공덕문(功德門)을 성취하고자 할진댄 십종(十種)의 광대행원(廣大行願)을 널리 닦아야 한다. 고 밑에 이제 하등(何等)에 위십(爲十)고. 뭐가 열 가지냐? 요게 이제 보현보살의 아까 이야기 했죠. 보현보살의 행원이 行願이 요 열 가지에요.
大方廣佛華嚴經 入不思議 解脫境界 普賢行願品
대방광불화엄경 입부사의 해탈경계 보현행원품
爾時 普賢菩薩摩詞薩 稱歎如來勝功德已 告諸菩薩 及善財言 善男子 如來功德 假使十方一切諸佛 經不可說不可說 佛刹極微塵數劫 相續演說 不可窮盡 若欲成就 此 功德門 應修十種廣大行願 何等 爲十 一者 禮敬諸佛 二者 稱讚如來 三者 廣修供養 四者 懺悔業障 五者 隨喜功德 六者 請轉法輪 七者 請佛住世 八者 常隨佛學 九者 恒順衆生 十者 普皆廻向
⑴ 예경제불(禮敬諸佛)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
⑵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칭찬여래(稱讚如來)라.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칭찬하는 거에요. 아까 내가 그랬죠. 우리 삶의 불평불만이 있고 온갖 모순이 있다하더라도 모순이 있는 그대로가 완전무결한 삶이다. 완전한 인생이다. 그 참 이상한 소리 오늘 하나 들었어요. 여러분들은 너무 불평불만도 많고 부족함 투성인데 부족한 그대로가 완전한 인생이다. 그거 한번 맘속에 잘 새기셔야 돼요. 그거 소화해야 됩니다. 결국에는요. 칭찬여래(稱讚如來)라.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칭찬하는 것.
⑶ 그 다음에 광수공양(廣修供養), 공양을 널리 닦아야 돼.
⑷ 그 다음에 참회업장(懺悔業障), 업장을 참회하고.
⑸ 그 다음에 수희공덕(隨喜功德),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따라서 기뻐할 줄 알아. 다른 사람의 공덕 좀 따라서 기뻐할 줄 알아야 돼. 배 아파하지 말고 따라서 기뻐하라. 이건 이걸 고쳐야 돼 우리가.
⑹육자(六者)는 청전법륜(請轉法輪)이라. 제발 좀 법문을 여법하게 청해 청하는..그러니까 이 듣는 사람이 눈이 반짝반짝하고 뭔가 듣고자하는 열기가 있으면요. 그 저 법문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저절로 준비도 많이 하게 되고 열의도 있고 그렇게 되게 돼 있어요. 그래서 청정법륜이라. 법륜(法輪)은 법의 바퀴를 굴려주기를 청한다 이거에요. 법문해달라고 청하는 거에요.
⑺ 그 다음에 청불주세(請佛住世)라. 깨달은 사람이 오래오래 이 세상에 살도록 모든 조건을 갖춰주고 뭐 약도 사드리고 오래 좀 사시라고 이렇게 조건을 좀 갖춰주고 건강하게 해 주는 거. 이게 청불주세(請佛住世)에요. 말만 뭐 오래사십시오 오래 사십시오 하면 되나. 오래 살게 만들어 줘야지. (하하하하하) 영 말씀을 잘못 알아듣는 모양이네. (하하하하하)
⑻ 그 다음 팔자(八者)는 상수불학(常隨佛學)이라. 항상 깨달은 사람을 따라 배우는 거. 이거 중요한 거 에요. 뭘 알아야 면장을 하지. 자꾸 다니면서 배워야 돼요. 상수불학 참 이거 좋은 거 에요. 다른 거 다 제쳐놓고 상수불학(常隨佛學) 이거하다보면요. 다른 건 저절로 또 알게 된다고요. 그 자꾸 배우기를 좋아해야 돼. 나보다 좀 더 그 배울 점이 있다싶으면 그냥 그 사람이 부처님이야 그냥. 아 나에게는 그 사람이 부처님이야. 나에게는 아내가 부처님이요 나에게는 남편이 부처님이요 자식이 부처님이요 이웃이 부처님이요 친구가 부처님이요. 전부 눈을 뜨고 보면 다 부처님이라. 상수불학(常隨佛學), 항상 배울려고 하는 자세. 이게 중요합니다. 항상 배울려고 하는 자세.
⑼ 아홉째는 항순중생(恒順衆生)이라. 이건 이제 정말 여러분들은 보살이고 중생은 뭔가 자기발전을 꾀하지 않는 사람이 중생입니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내가 왜 보살이라고 하는고 하니 자기발전을 꾀하는 사람이 보살이에요. 자기향상 자기 발전을 위해서 자꾸자꾸 발전하고 노력하고 나아가려고 하는 그런 사람. 그건 이제 불교말로는 뭐죠? 상구보리(上求菩提) 그러죠. 상구보리. 그게 뭔가 발전을 꾀하는 사람이라야 그게 사람다운 사람이라. 그게 없으면 중생이거든요. 그냥 중생이라 보통. 그래 중생이... 우리도 한 편은 중생이지만은 또 한편은 그래도 보살이거든요. 그 중생들 그 못난 중생도 항상 수순할 줄 아는 그 이해해줄 줄 알고 자기가 좀 뭐 낫다고 저 못난 중생... 그럴게 아니라 그런 못난 중생도 이해할 줄 아는 것. 그게 항순중생(恒順衆生)이고.
⑽ 열 번째는 보개회향(普皆廻向)이야. 내가 쌓은 모든 공덕을 전부 다른 사람에게 돌려줘. 돌려주면 그냥 말하자면은 곱으로 곱으로 몇 곱절 불어버려요. 이 회항하는 게 자기쌓은 공덕을 남에게 돌려주면은 내께 다 없어지는것 같지요. 절대 그런게 아니라 몇곱절 불어버려. 참 기가 맥힌 원리입니다. 집안에서도 자기가 잘 그 어떤 일을 해 놓고 집안을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식구를 위해서 아주 그 헌신적으로 노력을 했다 그러면 누가 칭찬을 한다 이거에요. 뭐 어른들이 칭찬을 하든지 남편이 칭찬하든지 뭐 아내가 칭찬하든지 칭찬하면은 아이고 아니라고 내가 당연히 할 걸 했고 뭘 그걸 가지고 그러냐고... 정말 이런 자세가 되면요. 정말 우러러보지 존경하고. 몇 곱절 불어버려요. 그런데 좀 해놓고는 말이지 안 알아준다 해쌌고 막 그냥 자랑해쌌고 그러면은 어떡해요? 싹 없어져. 다 까먹어버려. 그 참 묘한 원리야. 그 불교에서는 그 참 잘 가르치잖아요. 입만 뗐다하면 그 이야기 아닙니까? 뻔한 원리인데 그게 잘 안되요. 뻔한 원리인데... 그 조금만 입만 참아도 입만 조금만 참아도 그 공덕이 그대로 살아서 움직일 텐데. 이런 것입니다. 뭐 보현보살의 행원가운데서 태어났다라고 하는 이 말이 크게 뭐 거창한 게 아니라 바로 이런 일이에요. 바로 이러한 점을 우리가 잘 실천하는 것. 그러면은 그냥 그대로 보현보살이에요. 행원가운데서 태어났다. 여기 시방에서 모인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이거에요.
以淨智眼으로 見三世佛하며 普聞一切諸佛如來所轉法輪修多羅海하며
이정지안으로 견삼세불하며 보문일체제불여래소전법륜수다라해하며
그리고 잘 보세요. 정지안으로 청정한 지혜의 눈으로써 눈으로써 본다 누구를 봐? 삼세의 부처님을 본다 이거에요. 과거에 깨달은 사람, 현재에 스승 될 만한 사람, 또 앞으로 또 나에게 스승 될 만한 사람을 전부 청정한 지혜의 눈으로 본다 이거에요. 그건 무슨 말인고하니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나보다 위대한 사람 나에게는 뭔가 가르쳐줄 그런 교훈이 있는 그런 사람으로 본다 이거에요. 나무도 돌도 저 푸른 하늘도 높은 산도 낮은 개울도 전부 그 나름의 뭔가 깨우침을 가지고 있고 가르침을 가지고 있는거에요. 청청한 푸른 소나무는 그 꿋꿋한 눈이 와도 말이죠. 푸르른 그런 지조와 절개를 잘 나타내지 않습니까? 그 굳은돌은 그 아주 견고함을 잘 나타내고. 온갖 것이 뭐 배울게 다 있죠. 청정한 지혜의 눈. 지혜의 눈만 뜨고 있으면 사실 어린아이들에게 배울게 더 많아요. 가만히 보면... 삼세제불(三世諸佛)을 보며 또 보문(普聞) 널리 듣는다. 뭘 듣느냐? 일체 모든 부처님과 여래의 소전법륜(所轉法輪) 굴린바 법문, 설하신 법문, 수다라해(修多羅海), 수다라(修多羅)는 경을 수다라라고 그럽니다. 인도말이에요. 부처님이 법문하신 경전을 다 듣는다. 이 여기에 지금 시방대중(十方大衆)들. 이 시방대중들이 그렇다 하는 말입니다. 들으며..
已得至於一切菩薩自在彼岸하며
이득지어일체보살자재피안하며
이득지(已得至) 이르렀다 어디에 이르렀는고 하니 득지(得至) 이르름을 얻었다 그러는데 이미 이르름을 얻었다. 이미 이르렀다 이 뜻인데 일체보살자재피안(一切菩薩自在彼岸) 모든 보살이 자유자재한 그런 저 언덕에 이르렀다. 참 이게 좋은 거지요. 자유자재한 그런 그 언덕 그렇다고 뭐 지멋대로 돌아다닌다는 뜻이 아니라 갇혀있으면서도 마음의 자유자재 아무 마음의 구속감을 느끼지 않는 그런 편안함을 느끼는 그런 경지. 그런 마음의 경지에 다 이른 사람들이다.
於念念中에 現大神變하야 親近一切諸佛如來하며
어염념중에 현대신변하야 친근일체제불여래하며
또 어념념중(於念念中)에 현대신변(現大神變)이라. 생각생각 가운데서 큰 신통과 변화를 나타낸다. 나타내서 친근한다 누구를? 일체제불여래(一切諸佛如來)를 친근(親近)한다. 친히 가까이한다. 우리가 친견(親見) 그렇게 하지요? 친견 그럴 땐 이제 볼 견자(見) 써요. 뭐 큰스님을 친견했다. 볼 견자를 써서 친견(親見)이란 말도 스는데 경전상으론 친근한다라는 말이 많아요.
친견이란 말은 잘 안써요 또. 우리는 친견이란 말을 쓰는데 경에는 친근이라고 나와 있어. 친히 가까이한다 이거야. 친히 가까이하고 보는거야 말할 것도 없죠. 보기만하면 뭐해요. 그거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해. 우리 신도님들은 큰스님 가서 보기만 하지 뭐 아무것도 한 게 없어. 뭐 법문을 알아듣나. 뭘 한 가지 질문을 제대로 하나. 해결을 해 오나. 그냥 보고만 나와. 그래 친견(親見)인가봐 그래서. 그래 여긴 친근(親近)이야. 가까이한다 이거야. 가까이 한다는 말은 삶이 비슷하다는 뜻입니다. 사고(思考)와 생활태도가 비슷하다고하는 그런 의미까지 있어요. 가까이한다고 하는 말은. 그 뭔가 멀찌감치 있어도 보기는 쉽지만은 그 생활과 어떤 그 사고 생각이 서로 가깝기는 쉬운게 아니죠. 근데 여기에 친근(親近) 일체부처님 여래를 친히 가까이하며.
一身이 充滿一切世界一切如來衆會道場하며 於一塵中에 普現一切世間境界하야 敎化成就一切衆生호대
일신이 충만일체세계일체여래중회도량하며 어일진중에 보현일체세간경계하야 교화성취일체중생호대
일신(一身)이 충만일체세계(充滿一切世界) 일체여래중회도량(一切如來衆會道場) 이 그대로 이 보살들은 그 한 몸이 모든 부처님세계 또 모든 부처님 도량의 중에 가득해. 곳곳에 다 말하자면 분신을 해서 거기에 자기 몸을 나툴 수가 있다. 또 일미진중(一微塵中)에, 일진중(一塵中)에, 한 먼지 속에. 보현, 널리 나타낸다. 무엇을? 일체세간경계를 널리 나타내서. 한 먼지 속에다가 그걸 나타낸다. 뭐 저 法性偈에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그런 말이 있지요? 바로 그런 도리입니다. 해서 교화성취일체중생(敎化成就一切衆生)하되, 중생, 일체중생들을 교화(敎化)하고 성취(成就)시키되. 요 성취라고 하는 말은 중생들을 어떻게 하겠다고 하는 그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성취죠. 교화해서 성취시키되.
未曾失時하며
미증실시하며
미증실시(未曾失時)하매, 일찍이 때[時]를 잃지 아니하매. 하~ 이거 좋은 말이에요. 때가 있어요. 그 때 놓치면 안 돼. 아이고 다음에 가지. 법회가자고 하니까 아이고 다음에 가지 다음에 가지. 그러면 그만 때 놓쳐버려요. 일찍이 때를 잃지 않는다. 뭐든지 때가 있습니다. 다.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때를 잃지 말고 그 이때다 싶을 때 재깍 실천에 옮기는 그런 자세. 한번 지나가면 그 때가 안와요. 절대 오지를 않습니다.
一毛孔中에 出一切如來說法音聲하며 知一切衆生이 悉皆如幻하며
일모공중에 출일체여래설법음성하며 지일체중생이 실개여환하며
또 일체모공에 일모공중(一毛孔中)에 한 모공 중에서 일체여래설법음성(一切如來說法音聲) 일체여래께서 설법하신 그런 음성을 出 낸다. 그리고 그 다음에 중요한 말이 나와요. 일체중생이 실개여환(悉皆如幻)함을 안다. 모든 중생이 환상(幻相)과 같다. 환술(幻術)과 같음을 안다 이거야. 그렇게 알아야 제대로 아는 거에요. 중생이 중생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중생의 형상, 밖으로 나타난 모습은 헛거야. 헛건줄 안다 이겁니다. 그 내면에는 아주 완전한 부처가 있는 거지요. 완전한 부처가 있는데 중생이라고 하는 그 껍질은 헛거에요. 여환(如幻), 환(幻)과 같다라고 하는 이 환(幻)은 꼭두각시 환 자, 환상 환 자, 환술 환 자, 허깨비 환 자 그래요 이 환 자가. 그 다 실재하지 않는 것을 환(幻)이라고 그래요. 일체중생이라고 하는 중생의 모습은 그런 실재하지 않는 환술과 같은 줄을 안다. 그렇게 아는 것이 이제 꿰뚫어 아는 거죠. 꿰뚫어서 아는 것.
知一切佛이 悉皆如影하며
지일체불이 실개여영하며
그 다음에 지일체불이 실개여영이라. 부처님 부처님 하는 것도 그 부처님의 본심에서 보면은 그런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머릿속에 있는 그런 부처님은 아니야 사실은. 여기는 실개여영(悉皆如影)이라고 그랬어요. 모두가 그림자 같은 줄을 안다. 모든 부처님이 우리 머릿속에 있는 부처님은 전부 그림자에요. 부처님의 형상이 아니라구요. 형상을 자꾸 떠올리고 어떤 역사적인 부처님을 떠올리는 건 그건 그림자와 같애. 헛거다 이 말입니다. 영 자(影)도 헛 거란 말이고. 아까 환 자(幻)도 헛거란 뜻 이구요.
知一切諸趣受生이 悉皆如夢하며
지일체제취수생이 실개여몽하며
그리고 또 이 보살들을 뭘 아는고 하니 일체제취수생이, 일체제취라고 하는 말은요. 뭔고하니 모든 갈래, 예를 들어서 뭐 동물적인 우리의 삶, 또는 뭐 천상의 어떤 삶, 아귀와 같은 삶, 뭐 아수라와 같은 삶. 하루 중에도 뭐 아귀도 됐다 아수라도 됐다 뭐 축생(畜生)도 됐다가 뭐 천상도 갔다가 그러죠. 하루 중에도. 그게 일체제취(一切諸趣)입니다. 일체제취에서 생을 받는 것, 삶을 영위해 가는 그것이. 그건 이제 차별상이죠. 실개여몽(悉皆如夢)이라. 다 꿈과 같음을 안다. 꿈과 같음을 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 수십 년 동안 살아온 과거 지금 없잖아요. 어떻게 살았든 지금 없는 거에요. 고생했던 일도 없고, 즐거웠던 일도 없고, 아무것도 지금은 없어. 꿈이지 뭐. 하룻밤 꿈이나 여러분들 이 시간까지 살아온 어제까지 살아온 삶이나 그냥 꿈이에요. 하나도 없습니다. 살아온 거. 어제까지 살아온 건 없어요. 그리고 삶이란 것도 앞으로 산다는 것도 한 순간 한 순간 삶을 메꿔가는 거지 다른 거 없어요. 다른 거 없다구요.
난 가끔 뭐 이렇게 이 그 책이 방에 이렇게 복잡하게 있어가지고서 버릴라니 또 아깝고 또 방은 복잡하고. 그런데 이 책이 언제 왜 필요했던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은 그 순간 내가 필요했어. 그 순간에 내 삶을 메꿨던거 뿐이야. 다른거 아니더라구요. 그 다음부터는 또 보면 아깝긴한데 사실 필요치가 안해. 약간 아까운 생각이 있어서 못 버리지만은 이미 그때 내 삶을 채워줬던 그것일 뿐이야 사실은. 그것일 뿐이라구요. 다른 건 없어요.
여기 보면은 우리가 일체 그 삶을 살아가는 그것이 여러 가지 우리가 살아오면서 뭐 정말 지옥 같은 삶도 살았죠. 누구 역시 지옥 같은 삶 안 산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 지옥 같은 삶을 살았다손 치더라도 그건 이미 지나간 하룻밤의 꿈이었더라 이거에요. 실개여몽이라. 실개, 다 다. 실개, 모두가 다라 이 말이에요. 다 실, 다 개 자 거든요. 어느 것 하나 없이 다 실, 다 개, 모두가 다 꿈과 같은 줄을 안다.
이 우리가 좀 불교공부를 자꾸하면서 한 생각 착 가라앉혀가지고 생각해보면 사실 인생사라고 하는 것은 꿈이지 뭐 다른 거 아니에요. 또 꿈이라고 생각할 만치 그래도 마음에 어떤 그 여유를 주는 가르침이 역시 불교입니다. 부처님의 이런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그러한 삶을 되돌려 볼 수가 있는 거지요. 그렇게 우리가 생각할 때 그런 것을 알 때, 다음의 생이 내일의 내 삶이 훨씬 상쾌하고 가벼워져요. 상쾌하고 가볍다구요.
知一切業報가 如鏡中像하며
지일체업보가 여경중상하며
또 뭘 아는고하니 지일체업보(知一切業報)가 여경중상(如鏡中像)이라. 우리가 뭐 업보, 업 해쌌는데 그 역시 거울 가운데 나타난 영상. 거울 가운데 나타난 영상과 같은 줄을 안다. 그러니까 내가 아까 처음에 말씀드렸던 우리의 삶이 그 나름대로 불편하고 불만하고 부족함 투성인 그런대로 말하자면 완전한 인생이다 완전한 삶이다라고 그 말을 드렸는데 그게 우리가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불만하고 무엇이 좀 있었으면 하는 그게 뭐겠어요? 업보에요.
모두가 내 인연과 내 업에 의해서 나는 내 만치 내 삶을 사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걸릴게 없는 것이. 그거 다 알고보면은 거울에 나타난 영상 그건 그림자죠. 내 본인생의 저 깊은 진리로써의 내 삶의 한 그림자에 불과해. 그 평등한 것은 부처님이나 나나 똑 같은데 그냥 그림자로 외형이야. 밖으로 나타날 뿐이야. 그러한 사실들을 여기 보살들 여기 시방에서 모인 보살들은 가만히 꿰뚫어 알아. 눈앞에 벌어지는 현상가지고 그렇게 연연해하지 않는 다구요. 그렇게 연연해하지 말아야 해. 그거만 안 한다면은 어떤 상황이라도 마음 풍요롭고 여유로울 수 있습니다.
요는 우리가 마음속에 획득해야할 꼭 우리가 가져야 할게 그 경지지요.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마음 크게 흔들리지 않고 유유자적한 그런 여유로운 마음. 그리고 내가 현재 어떤 다른 사람과 비교해 봤을 때 사회적으로 내가 이러한 모습이다라고 하는 것, 이것은 정말 헛것이고 환상이고 그림자와 같다고 하는 사실. 정말 그림자지요. 뭐. 그런 사실을 이 사람들은 환히 잘 알고 있다.
知一切諸有生起가 如熱時焰하며
지일체제유생기가 여열시염하며
그 다음에 또 또 아는데 일체제유생기(一切諸有生起)가 제유(諸有)라고 하는 것도 아까 취생(趣生)하고 비슷해요. 제유라고 하는 것은 모든 존재 우리의 각양각색의 팔자나 각양각색의 삶의 차별상 그런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거에요. 여기 지옥 아귀 축생이니 뭐 또 성문 연각 보살이니 하는 여러 가지 존재의 어떤 그 현상을 제유라 이렇게 하는데. 그럼 그 다른 차별상의 모습들 일어나는 모습들이 여열시 뜨거울 때 열시염 열시염이라고 하는 것은 아지랑이입니다. 아지랑이를 열시염(熱時焰). 뜨거울 때 불꽃, 뜨거울 때 일어나는 불꽃같은 것. 막 이렇게 봄날 따뜻한 햇볕 내리쬘 때는 그 수증기가 증발되느라고 막 그냥 불꽃이 올라가는 것 같지요. 그걸 열시염 그래요. 아지랑이. 아지랑이. 실재하지 않는다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열시염(熱時焰) 아지랑이도 실재하지 않는 것인 줄 안다.
知一切世界가 皆如變化하야
지일체세계가 개여변화하야
그리고 지일체세계知一切世界가 개여변화皆如變化한다. 일체세계가 다 변화와 같은 줄 안다. 어느 것 하나 변화 아닌 것이 없는 것. 일체세계 현상계는요. 제행무상 시생멸법(諸行無常 是生滅法) 그랬죠. 모든 것이 무상하고 변화하고 끊임없이 변하고 달라지고 한다고 하는 사실을 잘 아는 사람이다. 일체 현상계(現象界)는요. 정말 변하지 않는 거 없고 달라지지 않는 거 없습니다. 순간순간 변해가고 있습니다. 순간순간.
그래서 어떤 철학자의 그런 말이 있죠. 같은 사람이 같은 물에서 다시는 두 번 다시 목욕할 수가 없다. 물도 흘러가고 또 목욕하는 사람의 그 모습도 사실은 몰라서 그렇지 꾸준히 변모해 가고 그렇듯이 그래서 사실은 그걸 우리가 꿰뚫어 아는 것이 참 제일 소중해요. 그걸 잘 알면은 변화라고 하는 사실, 일체세계가 모두가 변한다고 하는 사실을 잘 알면은 마음에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체세계가 다 변화라고 하는 사실. 변화와 같다고 하는 사실을 잘 아는 그런 사람들이다. 앞에 이제 十方菩薩들의 德, 시방보살들의 마음의 수준, 정신적인 수준이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것 이걸 잘 아는.. 그 여기서 쭉 소개하고 있어요.
오늘 그 화엄경공부는 여기 이제 중간이지만은 요 밑에도 또 중요한 내용들이기 때문에 여기까지 일단 하겠습니다.
첫댓글 글의 양이 많은데 겁먹지 마시구요 그냥 이야기 읽듯이 죽 읽어 보세요 무비스님의 구수한 이야기같은 강의 재밌습니다 또한 이렇게라도 화엄경과 인연을 맺어두심도 스님이야기를 들어보시면 보통공덕이 아님을 알겠습니다 오늘도 부처님과 함께 좋은 하루 행복한 하루 약속드리시구요 행복하세요~~~!!!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대행보현보살마하살 _()()()_
나무마하반야바라밀다 !!!!!!!!!!!!! 구수한 누룽지을 먹는 마음 입니다. 큰 법문 공양 고맙고 고맙습니다. 덕분에 찰라 찰라 행복감 충전하고 갑니다..............._()_
공양이 공양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ㅎ 나무마하반야바라밀 _()()()_
'불만 있는게한 거라니까. 그게 한 삶이라'는 스님 말씀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카페의 보현행원품 강의에도 이 내용이 올라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게 바로 '깨침'입니다.
'개보현보살행원중생(皆從普賢菩薩行願中生)'이란 말씀도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니 꼭 마음에 새겨 두세요 일체 세계가 보현의 원과 행에서 나왔다는 말씀은, 이 세상을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걸 놓치시면 아니 됩니다요...
*추가 보완설명-1.부처님이 근본법회를 여실 때 수많은 세계에서 수많은 불보살, 대중들이 오시고 함께 법회에 드신다는 것은 실제로 그렇게 법회에 오셨다기보다는 이 세상이 '하나'요 울림이라는 걸 시사합니다. 지구 상 어느 귀퉁이에서 한 생명이 한 마음 밝은 생각 일으킬 때 천지우주가 함께 감응하는 이치를 설명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이해하셔야 합니다.
2.화엄경은 보살을 대상으로 하는 법문이다, 라는 스님의 말씀은 자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보살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저희 어린 중생을 부처님으로 보시고 설법하신 것이라는 게 더 타당한 해석이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은 결코 우리를 중생으로 보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 못난 마음을 내어 비굴해져 스스로 중생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 내가 무슨 부처님이야 나는 못난 놈인데...이렇게 생각하고 스스로 벽을 쌓고 울타리를 치고 문을 닫는 겁니다. 그런 울타리, 벽이 얼마나 굳센지, 부처님께서도 할 수 없이 말씀을 거두시고 그래, 너희들이 부처가 아니라 중생이라 해 줄께, 그러니 문을 열고 내 말을 들어 하시며 들려주신 것이 아함, 방등, 반야 법문입니다.
그렇게 아함, 방등, 반야를 설하시니 그제서야 중생들이 문을 열고 열심히 듣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부처님이 속으로 얼마나 우습고 기차 차시겠습니까 너희들 모두 부처야 나와 똑같단 말이야 그러니 그 자리서 내 말을 좀 들어봐... 이렇게 말씀하실 때는 모두지 들을 생각을 안 하다가, 그래, 너희들 말대로 너희들은 업보 중생이라 간주하자, 그렇게 알고 그런 수준으로 설명할테니 한번 들어봐...이러니 그제사 좋다며 얼씨구나 하며 듣는단 말입니다...부처라 그럴 때는 죽어라고 귀를 막다 중생이라 불러주니 아이구 좋아라 하니...
그렇게 중생을 고집하는 저희들 뜻을 거스리지 않으려 일부러 중생 법문을 40년간 하시다가 열반이 가까와지자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으시어 노골적으로 너희는 사실 모두 부처야 하고 일러주신 법문이 법화, 열반경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너희들이 내가 화엄을 말할 때 자꾸 우겨서 할수없이 너희들 뜻을 존중해 그렇게 해 준 거야 그렇지만 나도 죽을 날이 며칠 안 남았으니 사실을 말해 주지 않을 수 없어 사실 말이야, 지금까지 해 준 이야기는 모두 너희들 듣기 좋으라고 한 거고, 사실은 너희들 모두는 부처란다 나와 조금도 다름없는 부처님이니 내 마지막 말을 꼭 새겨둬 이렇게 하신 것이지요...
따라서 화엄은 '부처의 자리'에서 들어야 합니다. 중생의 자리, 중생의 마음으로 들으면 화엄을 못 알아 듣습니다. 저도 처음 화엄경을 읽을 때 이 사실을 몰라 무척 헤메었습니다. 카페 불자님들 부처님 말씀이 이해가 되든 안 되든 마음 자리를 '부처'에 갖다 놓으십시오 그리고 화엄을 들어 보세요 나는 중생이야...가 아니라 '알아듣든 못 알아 듣든 나는 부처다' 하고 외치고 그런 마음으로 화엄을 한번 다시 들어 보세요 울림이 전혀 다를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화엄의 경지로 모든 것을 볼려고 합니다. 오로지 행 할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_(0_
나무마하반야바라밀다 !!!!!!!!!!!!!!! 댓글 가르침 고맙고 고맙습니다. 내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_()_
이 공양 올리는 수고로움에 찬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타이밍을 놓쳐(안 읽고 댓글 달기가 어색해) 감사의 말씀을 드리지 못했는데... 파랑새님의 보살행에 찬탄을 드립니다. 이 공덕으로 모든 중생들이 화엄을 듣고 부처임을 깨닫기를 발원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