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 • 심영희
원초적 사물을 탐색하는 순례자
글 • 김영기
수필가 심영희는 『아직은 마흔아홉』, 『정겨운 내 이름 대관령』, 『감자꽃 추억』 등 세 권의 수필집을 펴냈다. 등단 이후 10여 년간에 세 권의 수필집을 상재했다는 것은 그만큼 수필에 사랑을 쏟고 있다는 증거다. 수필 창작에 열정적이고 부지런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수필에 대한 독특한 생각을 당당히 밝힐 수 있는 것은 행복이다. 그는 생활체험 속에 절로 아름다움이 그려지는 그런 글을 써야한다고 강조한다.
수필이란 장르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나는 거기에 별로 구애받지 않는다. 매일 밥을 짓는 어머니들도 맛있는 밥, 죽밥, 꼬들밥, 3층밥이 만들어진다. 어머니들이 밥하는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순간의 실수와 쌀의 종류, 불의 온도, 시간에 따라 여러 가지 상태의 밥이 만들어진다. 맛있는 밥이 제일 좋고 잘 됐다는 것을 모르는 어머니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기에 실수를 하는 것이다.
실수의 연속은 문학도 마찬가지다. 시를 외우며 시를 쓰겠다던 내가 시를 택하지 않고 수필을 택한 것은 좀 더 재미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다. 논리적인가 하면 내 주변의 시시콜콜한 일까지 양념을 쳐서 만들어 놓으면 그럴싸한 수필 한 편이 탄생한다. 그 글을 읽고 웃어줄 독자를 위하여 고심한다.
ㅡ『나의 문학세계 ㅡ 아름다움과 사랑은 문학의 기본이다.』
아름다움과 사랑을 추구하는 생활수필의 영역은 개인의 역사, 가족의 역사, 이웃과 마을의 역사, 그리고 시대상을 그리는데 집중된다. 자서전적 이야기를 담았으면서도 당대의 사회풍경의 형상화를 통해 시대상을 보여준다. 제2 수필집의 표제인 「정겨운 내 이름 대관령」에서 그 정수를 만날 수 있다.
대관령 마을에서 자란 소녀(작가)가 강릉여중에 입학하고, 주말이면 집과 학교를 오가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대관령 길을 오갈 때 겪게 되는 체험들을 풍경화처럼 그려 놓는다.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를 완행버스가 힘겹게 넘는다. 강릉서 출발하는 평창행, 봉평행 버스에서 체험하게 되는 사건들을 소녀의 시선으로 형상화한다. 대관령을 넘어 고향집에 갔을 때 가족상봉의 정겨움을 선명하게 그려놓는다. 소녀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 대관령 풍경이 추억으로 재현되면서 어른이 된 지금의 상황과 행복하게 조우한다. 대관령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에서 대관령 옛길을 동경하고 있는 자신을 투영시키고 있다. 변하고 사라져버린 사물에도 아름답고 사랑이 깃들게 하겠다는 수필적 자세가 돋보인다. 이철호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이 「심영희의 작품세계」에서 지적한 것처럼 아름다운 추억의 풍경화, 현재와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그는 수필 한 편, 한 편을 통해 자신의 지나온 삶과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마치 지금보고 있는 눈앞의 풍경을 그려내듯이 아주 세밀히 묘사하고 있는데, 그것은 단지 작가 자신만의 삶과 추억만이 아니다. 그와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면 누구나 보고 느꼈을 풍경들이며, 뇌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잊을 수 없는 풍경들이다.
ㅡ 이철호 「심영희의 작품세계」
「고향 가는 길 ㅡ 댕기머리 소년」 「고향 가는 길 ㅡ 한국자생식물원을 찾아서」 「아버지 ㅡ 영원한 자문위원」 「공지천에 팔각정이 있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통일호」 등 그의 작품들은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의 반추를 통해서 세상사의 허망함을 일깨우는 문학적 카타르시도 행한다. 개인의 역사를 서술하는데서 오는 평면적 단조로움을 다층적 구조로 변용시키는 기법을 원용한다.
포토에세이라는 표제를 붙인 수필집 『감자꽃 추억』은 옛 사람들이 그림과 문장을 결합시켜 문집을 만들었다면, 여기서는 사진과 수필을 결합시켜 수필집을 꾸몄다고 할 수 있다. 수필을 창작하면서 한국화 개인전, 한지공예 개인전을 여러 차례 열었던 경력을 포토에세이집에서 십분 발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년시절 눈만 뜨면 볼 수 있었던 것이 일년 중 반은 감자꽃이고 그 절반은 흰 눈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그 고향의 사진과 수필을 조화 있게 묶는 것이다.“ 고향의 정체성을 형상화하고 재생시킨다. 고향의식을 문학의식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다른 수필가가 쓰지 않는 주제를 택하겠다.”는 선언은 고향의식의 형상화를 통해 성취하고 있는 셈이다.
작가의 고향인 평창군에서는 해마다 향토문화축전 노성제를 개최한다. 평창군지역 민속경연대회는 축전의 중요한 종목이다. 「대기산 신령굿」 「방림 삼굿놀이」 「대화 합놀이」 「대화 대방놀이」 「진부 심마니산신제」 「황병산 사냥놀이」 등의 민속놀이는 이때 발굴, 재현된 종목이다.
수필집 『감자꽃 추억』의 첫 장을 펼치던 필자는 낯익은 얼굴의 사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민속경연대회 심사를 맡았던 필자가 「황병산 사냥놀이」를 뽑았을 때의 그 주인공이 거기 있었다. 23년 전인 1983년 「황병산 사냥놀이」는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다음해에 강원도 민속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 「황병산 사냥놀이」를 발굴하고 재현한 인물이 심상락씨이다. 사진 속의 인물이 바로 수필가 심영희의 부친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포토에세이집 『감자꽃 추억』은 이 글을 쓰는 필자에게도 23년 전 민속놀이 풍경 속으로,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실로 감격스러운 해후이기도 하지만 수필의 꽃밭에 담겨 있는 고향의식의 재생이기도 하다. 고향의식은 심영희 수필의 정체성이며 독자성임을 말해주는 사례가 되겠다.
고향 그 원초적인 것에 대한 사색과 관조, 추억과 동경, 그리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심영희 수필의 영역은 이제 한 단계 높게 넓게 전개되리라.
“그 아버지에 그 딸처럼” 인류 문명의 원형작인 것을 형상화하여 수필의 「황병산 사냥놀이」를 탄생시키기를 기대한다.
김영기
ㅇ 평론가/전 한국문인협회/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
ㅇ 강원일보논설주간 역임/현대문학상 수상
ㅇ 저서 : 『한국문학과 전통』 『김유정문학과 생애』 『민족문학의 공간』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