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의 야구실력도 늘었지만 무엇보다 선수생명 연장을 위한 '관리기술' 또한 급성장했다. 80년대 중반부터 도입된 투수들의 '아이싱'은 대표적인 처방 중 하나. 얼음찜질을 뜻하는 'ice up'이 국내에 들어와 '아이싱'으로 굳어졌다.
프로야구 초기에는 공을 던진 뒤 '사우나'에서 몸을 푸는 '독약' 처방도 스스럼없이 행해졌지만 이제는 얼음찜질이 상식처럼 됐다.어깨의 빠른 회복을 위해서는 '온찜질'보다는 '냉찜질'이 분명 효과적이다.
그런데 최근 '아이싱' 절대론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팔꿈치 수술을 한 한화 송진우는 올시즌 '아이싱'을 포기했다. 수술 부위의 강화를 위해 '달궈진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것. 국내 최고 마무리투수 중 하나인 LG 진필중도 '아이싱'을 하지 않는 대표적인 투수다.
▲아이싱, 치료가 아니라 예방이다.
부상 환자를 응급조치할 경우 맨 먼저 하는 일이 부상 부위의 냉찜질. 그러나 트레이너들은 "아이싱은 치료가 아니라 예방"이라고 전한다.
투수가 공을 던지는 것은 어깨와 팔꿈치 근육의 엄청난 운동을 동반한다. 공을 던지느라 무리해서 늘어진 근육을 차갑게 해줌으로써 회복이 빨라지도록 도와주는 것일 뿐 손상된 근육을 정상으로 치료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트레이너들은 "시즌 최종전에 나선 선발투수들은 공을 던진 뒤 아이싱을 할 필요가 없다. 5일 로테이션만 아니라면 천천히 자연스럽게 회복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조언한다.
공을 던진 뒤 통증을 느끼는 투수라면 아이싱을 통해 진통효과를 볼 수도 있지만 이때는 좀더 적극적인 '치료'가 반드시 추가돼야 한다.
▲아이싱 언제, 어떻게
아이싱의 필요시간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대개 100개 이상 공을 던진 투수는 15분에서 25분. 30∼50개 던질 경우 10분 정도 얼음을 두르는 것이 대부분.
SK의 숀 레닝거와 강성인 컨디셔닝 코치는 "피부 속에 있는 근육에까지 냉기가 전달되려면 25분 이상의 아이싱이 필요하다"고 전한다. 반면 성기홍 LG스포츠 과학정보센터 소장은 "실험결과에 따르면 체온보다 너무 많이 온도가 떨어질 경우 회복시간이 오히려 더 걸릴 수 있다"며 "15분을 넘기면 안된다"고 말했다.
▲아이싱, 반드시 필요한가
삼성 스포츠과학지원실 안병철 상무는 "체질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전했다.
'마라톤 여제'라 불리는 영국의 폴라 래드클리프는 마라톤 완주 뒤 독특하게도 얼음을 잔뜩 채워넣은 욕조에서 극도의 고통을 참으며 40분 동안 냉찜질을 함으로써 근육의 피로를 푸는 것으로 유명하다.
래드클리프와는 반대로 한의학에서 얘기하는 '사상체질'까지는 아니더라도 체질에 따라 아이싱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마이너리그 트레이너를 거친 SK 레닝거코치는 "최근 메이저리그에서도 아이싱을 하지 않는 추세"라면서 "한국투수들은 100% 아이싱을 하는데 이는 다분히 심리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커트 실링, 랜디 존슨 등 나이 많은 투수들은 아이싱을 하지만 브랜던 웹이나 조시 베켓처럼 젊은 투수들은 아이싱을 하지 않는다"고 전하는 레닝거 코치는 "피칭 뒤 25분 동안 얼음을 두르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스트레칭 등을 통해 근육을 강화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이싱이 필요없는 경우도 있다. 성기홍 소장은 "성장판이 남아있는 유년기 투수들은 아이싱을 할 경우 근육 성장에 도움이 안될 수도 있다. 물론 무리한 투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 추원호 트레이너는 "어린 선수의 경우 아이싱을 하지 않음으로써 근육의 탄력성을 강화해 구속을 2∼3㎞ 늘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아이싱, 그래도 필요하다
선수들과 트레이너들은 대부분 "공을 100개 이상 던질 경우 아이싱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심리적인 안정감'이 크기 때문.
10년 이상 공을 던진 투수가 아이싱을 하루아침에 끊기도 어렵다. 만약 아이싱을 거르고 어깨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후회와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미리 예방을 하는 것이 나쁠 리 없다.
그러나 일부 투수코치는 "요즘 젊은 투수들은 자신의 한계를 너무 일찍 그어놓는 것 같다"며 아쉬워하고 있다. 좀더 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일찌감치 '관리'함으로써 성장 가능성을 줄이고 있다는 것.
스포츠와 과학이 만나 야구는 점점 발전하고 있다. 더욱 확실한 이론이 나올 때까지 '아이싱' 논쟁은 쉽게 결론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