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에서 받은 첫 밥상
(오동찬님 국립소록도병원 의료부장)
내가 있는 이곳은 전라남도 고흥반도에 위치한 국립소록도 병원
지금은 다 치유 되었으나 과거에 한셈병을 앓았던 할아버지. 할머니
600여 분이 사신다.
17년전. 까까머리 공중보건 치과의사로 소록도에 온 나는
털털거리는 스쿠터를 타고 소록도 구석구석을 누비며
회진을 돌던 열혈 치과 의사이자.
없는 살림에 누가 될까봐 물 한 모금 청하는 것조차
조심스럽던 순수 청년이었다.
이곳에 온 의사는 적은 월급과 한센병에 대한 편견으로
1년을 넘깆 못하고 가방을 싸곤 했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의사에게 되도록 마음을 주지 않으셨다.
가끔..수고가 많다..라는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시는 정도였다.
그 말 속에 깊은 믿음이나 친밀감은 담지 않으셨다.
그날도 여는 때처럼 마을 회진을 하던 중이었다.
한 할아버지가 도움을 청하셨다.
어이..총각..우리 집 냉장고 좀 옮겨 줄 수 있는가?
힘쓸 곳도 없던 때라 냉장고뿐 아니라 여러 짐도 가벼이 해결해 드렸다.
뒤늦게 내가 의사인 줄 안 그 댁 할머니는 귀한 분을
고생시켰다며 부랴부랴 저녁 밥상을 내오셨다.
기쁘게 먹을 만한 환경은 아니었다.
근처에 돼지우리가 있어 집 안 곳곳에 파리가 들러붙고.
할머니의 구부러진 손은 붕대로 감겨 있었다.
당연히 먹기 좋은 밥상도 아니었다.
밥은 파리들이 먼저 시식하고
반찬이라고는 하얀 김치와 고추. 된장이 전부였다.
그러나 감사한 마음으로 소록도에서 받은 첫 밥상을
쌀 한 통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포만감이 밀려와 방바닥에 누워 늘어지게
잠까지 청하고 그 댁을 나왔다.
의사 선생이 가정집에 와서 파리를 쫒으며 밥을 먹고 갔다는 소문이 퍼지자.
할머니들이 내가 좋아하는 팥죽이나 김치찌개를 끓여놓고
앞다퉈 초대하는 날이 많아졌다.
이 재미에 푹 빠져 소록도를 떠나지 못한 지 17년째다.
지금은 사정이 나아져 가끔 삼겹살을 구워 주거나.
자장면을 배달시켜 주시기도 한다.
더군다나 내 두 딸마저 방학 때면 소록도로 건너와 마을을
한 바퀴씩 돌며 귀여움을 받으니 얼마나 뿌듯한가?
한센병의 아픔으로 마음을 닫았던 분들이 나를 친아들처럼.
내 아이들을 친손녀처럼 가슴으로 맞아 주시는 것이다.
그날 한센인 노부부에게 받은 밥상은 생애 가장 아름다운 밥상으로
소록도에서의 삶을 지탱해 주는 큰 힘이 된다.
첫댓글 우와~!! 멋있다~ 꼭 한편의 tv동화 행복한 세상을 시청한 기분이에요~ㅋㅋ
이런 일들이 사슴섬에 참 많답니다..이번에 한번 가슴에 듬뿍 채워 보시길 ^^
듬뿍 채웠습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