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인 <<삼국지. 화타전>>에는 화타에 대하여 "서토(徐土)에 유학(遊學)하였고, 수와 경전에 밝았다"고 하였으며, "양성의 술법을 알아서, 사람들은 백세가 되었는데도 그의 모습이 장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약방에 정통해서 질병을 치료하는데, 탕을 쓰는 경우에는 몇 그릇이면 되고, 뜸을 쓰는 경우에는 한두군데면 되며 한 곳에 7,8회를 하면 병이 뿌리뽑혔다, 침을 쓰는 경우에도 한두군데를 쓰면 나았다"는 내용이 있다.
1. 마쓰모토교수의 페르시아인이라는 주장
1980년에 일본 홍전대학의 의학부 마취과 연구실의 송본명지(松本明知)는 일본에서 출판된 <<마취>> 제9기에서 "마취과학사 최근의 견해 - 한의 명의 화타는 실제 페르시아인이었다"는 글을 발표한다.
마쓰모토는 화타는 페르시아문자 XWadag의 한자표기라는 것인데, 그 의미는 주(主) 또는 신(神)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타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주군, 각하, 선생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화타는 "의술이 고명한 선생"이라는 의미를 지녔다고 본다. 동시에 그는 페르시아(당시의 안식국, 현재의 이란)사람이 비단길을 넘어 동쪽으로 왔고, 화타는 바로 이 비단길을 따라 서토(徐土, 지금의 서주)로 온 페르시아사람이라는 것이다. 페르시아 사람이 비단길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온 것은 역사적으로 인정되는 사실이다. 이백의 시중에서 "호희모여화(胡姬貌如花, 오랑캐 여자가 얼굴이 꽃과 같이 예쁘다)"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의 호희는 바로 페르시아사람을 얘기한다는 것이다. 마쓰모토는 이를 근거로, 화타는 중국인으로 알려져왔지만, 실제는 페르시아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이러한 마쓰모토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페르시아어인 XWadag를 표준영어문자로 쓰게 되면 KHODA가 된다는 것이다. 북경대학에서 편찬한 권위있는 페르시아어한어사전에 의하면 KHODA는 (1) 진주(眞主), 상제(上帝), 신(神), 호달(胡達, 음역) (2) 통치자(統治者), 주인(主人)으로 되어 있다. 이란에서 출판된 각종 페르시아어 사전에서도 "조물주"로 의미를 적고 있다. 이란인들의 발음은 "호다"와 비슷하게 된다. 이란인들도 KHODA는 신이라는 의미이고 통치자, 주인도 나라의 통치자, 주인 즉 국왕을 의미하는 것이지, 지주나 선생 또는 명인을 의미하는 말은 아니라고 한다. KHODA는 현대는 마찬가지고 과거에도 선생이라는 의미로 쓰인 적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페르시아에서는 의사를 절대 KHODA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란인들의 신에 대한 관념은 중국인이나 동양인들과는 달라서, 이란에서는 신을 의미할 때는 반드시 호다라는 말을 쓰는 것이고 신성한 말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에게 이것을 쓸 수는 없다고 한다.
2. 진인각(陳寅恪)의 인도인설
허창에 있는 화타묘
화타라는 고대의 명의에 대한 이야기는 중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역사상 진짜 그러한 인물이 존재했는가에 대하여는 의견이 다르다. 진인각이라는 대학자는 화타 자체는 신화이고, 그 이야기의 원형은 인도불교전설에서 온 것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조조의 아들인 소년신동 조충이 코끼리의 무게를 재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도에서 건너온 이야기라는 것이다.
진인각은 <<삼국지 조충 화타전과 불교이야기>>라는 글에서 조충이 코끼리의 무게를 잰 이야기나, 화타가 병을 치료한 이야기이나, 심지어 죽림칠현의 이야기도 인도신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인도어(인도 범어)에서 agada는 약(藥)이라는 의미이다. 예전에는 아가타(阿伽陀) 또는 아갈타(阿蝎陀)라고 번역하였다. 화타라는 두 글자의 옛날 발음은 gada와 일치한다. 아가타에서 "아"를 빼버린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아라한(阿羅漢)"에서 "아(阿)"를 빼고 "나한"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화타의 원래 이름은 부(敷)인데, 당시 민간에서 화타를 인도신화이야기에 빗대어 그를 화타라고 불렀고, 이것은 "약신"이라는 의미이다. 진인각의 입장은 분명하다. 화타라는 글자와 음을 살펴보면, 인도신화에서 온 것이고, 당시에 중국에서는 인도의 신화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진수가 삼국지를 편찬할 때, 무의식중에 중국역사의 일부분으로 기재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진인각의 글이 발표된 후, 학술계에서는 많은 지지를 받았다. 임매촌은 <<마불산과 한대 방술의 외래요소>>라는 글에서 진인각의 주장을 지지한다. 그는 agada는 범어에서 실제로는 해독제라는 의미이며, 많은 경우 환약을 가르킨다고 한다. 마비산(麻沸散)은 실제로 천축의 약이라는 것이다. "화타는 그 이름이 오천범어에서 왔고, 그 의술에도 인도적인 요소가 있다. 화타가 의료를 행하던 당시의 사회환경을 잘 살펴보면, 진인각의 말이 억측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진인각의 연구에 따르면, 진수의 삼국지에 기재된 바에 의하면 회타가 병을 치료할 때 수술을 통하여 배를 갈랐고 병자에게는 마비산을 먹였으며, 디시 배에서 아픈 부분을 잘라내었다. 병이 만일 창자에 있으면 창자를 잘라서 깨끗히 씻은 후에 다시 배를 봉합하였고, 상처지역에는 약을 발랐는데, 4,5일이 지나면 다 나았고 더 이상 아프지도 않으며, 환자는 감각이 없었다. 1달이 지나면 상처는 완전히 아문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 부분은 실제 기역(耆域)이라는 인도의 명의가 구섬미장자의 아들의 병을 치료한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고, 화타가 광릉태수 진등의 병을 치료하는데, 그가 진등에게 2되의 탕약을 먹게 하고 대략 3되의 벌레를 토해내게 하였는데, 붉은 색의 머리가 아직도 움직이고 있었고, 반쯤 잘라진 몸은 생선회와 같았다고 적고 있다. 이 이야기도 역시 기역의 이야기와 유사하다. 또한 화타가 조조를 치료하다가 죽은 이야기도 기역의 이야기와 유사하다. 이러한 유사점들을 비교해보면 이것은 절대 우연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진인각은 화타(자는 元化, 이름은 부)라는 사람의 원형에 대하여, 아마도 중국에 있던 사람이고, 패국 초현일대에 살고 있던 사람일 것이며, 아마도 약간의 양생술을 알고 있던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사람이 나중에 화타로 변모한 것은 순전히 인도의 기역의 이야기를 갖다 붙인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중국인은 행운아였고, 나중에 모든 사람들이 존경해마지 않는 위인이 되었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진인각의 고증에 대하여 반대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화타의 의술중에 인도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화타가 범어 agada에서 유래되었다는데는 이의를 제기한다. 범어의 agada는 gada로 줄여쓸 수도 없고, 옛날 사람들의 이름과 자는 서로 연결되는 의미를 가졌는데, 화타의 이름과 그의 자인 원화를 비교하면 특별히 문제되는 점이 없다는 것이다. 화타의 타는 베푼다는 시(施)와 발음이 같았는데, 이것은 덕화(德化)를 의미하므로 그의 자에 있는 원화와 어울린다는 것이다.
화타에 얽힌 진실은 아마도 좀 더 시간이 필요한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