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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uty People
"고객을 한분 한분을 최고로 모시겠습니다"
올유헤어 이나 대표
-반갑습니다.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진로를 결정지어야 할 나이 16세가 되었던 어느 날,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부모님과 상담을 해야 하니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담임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선생님과 면담 중 저는 ‘인문계 진학을 포기하고 실업계로 가서 공부에 전념하기 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미용을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고 싶습니다. 수능을 보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인문계로 진학하여 다른 친구에겐 절실할지도 모를 그 자리를 제가 뺏고 싶진 않아요.’라고 저의 뜻을 밝혔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로 진학하던 그 시점에는 인문계 내신점수 기준보다 제가 가고 싶었던 실업고등학교의 내신점수 기준이 더 높았습니다. 제 성적은 어디든 선택하여 갈 수 있을 만큼 남들 보다 뒤처지진 않은 상태였기에 부모님과 선생님의 반대는 너무나도 심했죠. 그렇지만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고 보람 있게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에 어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 뜻대로 진로를 결정지었습니다.
제가 미용을 배우겠다던 그때 그 시절만 해도 이 직업은 지금처럼 전문가, 또는 기술직 대우를 받던 직업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 수업이 끝나면 미용실로 출근하여 실습을 가장한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하며 지금의 제가 있게 되었는데요. 경기도 용인에 있는 타마시헤어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점점 꿈을 키워갔고 여주대학교 뷰티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준오헤어 서현1호점 입사, 살롱드마샬 동탄점 등 브랜드 매장에서 일을 하다가, 미용에 대한 회의감과 슬럼프가 찾아오면서 처음으로 ‘미용을 그만 두고 싶다’라는 생각까지 들던 시기가 있었어요.
이럴 때일수록 ‘나 스스로를 더욱 발전시키고 기술을 더 업그레이드 하며 내 가치를 높여야 이런 나약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라는 생각에 영국으로 떠났고 비달사순에서 공부하며 동, 서양의 장단점을 느껴 제 커트에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장점은 더욱 극대화 시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한국에 돌아와 박승철헤어스투디오에 입사하며 디자이너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승승장구 하며 보람찬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건강상의 이유로 출퇴근이 멀고 힘든 곳에서는 일을 하기 힘들어지면서 브랜드매장에서 독립하였고, 지금의 “올유헤어살롱” 원장이 되었습니다.
-미용실 자랑을 하신다면.
일단 미용실 이름부터 설명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올유헤어’의 뜻은 ALL:U=ALL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인 모든, 모든 것, 다, 모두, 오직 한 가지, 전부 라는 뜻을 담아 당신의 모든 것, 당신에게 모두, 오직 당신을 위해, 라는 의미로 ‘오직 당신을 위해, 당신에게 나의 모든 정성을 전부 쏟아낸다’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직원도 함부로 들이지 않고 오롯이 저의 ‘올유헤어’가 담고 있는 뜻을 마음속으로 품고, 본질에 어긋나지 않도록 고객님을 모실 직원들을 까다로운 면접을 통해 채용하며 고객 한분한분께 직원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하는 이곳은 우리의 꿈을 키워나가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곳이기에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를 믿고 이곳을 방문해주시는 모든 분들이 소중하고 귀한 발걸음이므로 저희의 모든 정성을 전부 쏟아부으며 고객 한분한분의 니즈에 맞게 이미지를 메이킹 해드리고 있습니다.
저희 매장은 고객님들의 겉모습만 가꾸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교육기관에서 직원 모두가 교육이수를 받고 두피케어가 가능한 스파룸에서 탈모크리닉을 운영 중이며, 모발뿐만이 아닌 건강한 모발건강을 위해서는 두피부터 건강해야 하므로 근본적인 원인부터 해결해 드리고 있는 프리미엄 뷰티케어 살롱입니다.
웬만한 커피숍보다도 맛 좋은 커피와 음료, 간식을 제공해 드리고 있습니다.
남성분들은 길면 2~3시간, 여성분들은 길면 3~4시간 또는 그 이상, 하루의 반나절을 저희와 함께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시술상황에 따라서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되면 끼니를 거르게 되시는 분들도 많고 머리하는 시간동안 잠시나마 쉬시면서 드시는 커피 또는 음료와 간식을 맛이 있건 없건 대충 드리기만 하는 서비스가 아닌, 신선한 원두로 직접 내린 커피와, 커피숍 부럽지 않은 커피 메뉴들, 논커피 메뉴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으며 간식도 고객님 시술 상황에 따라 쿠키나 베이커리 등으로 소요시간에 알맞게 제공해 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욕심 조금 줄이고 조금 덜 벌어 가더라도 고객님 두피나 피부, 모발에 해로운 제품은 절대 쓰지 않습니다. 저와 거래하는 사장님들께서 항상 제가 너무 까다롭다고, 저와 거래만 성사시키면 이젠 여한이 없겠다고들 하십니다.
아무쪼록 저는 염색약도 암모니아 함유량이 낮은 것, 또는 없는 것, 펌제도 비싸고 좋은 것, 샴푸와 트리트먼트도 임산부까지 사용 가능한 것 등등 제 가족과 제 아이들에게도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만 고집하고 있습니다. 판매용 제품 또한 이익만을 위해 무작정 들여놓고 팔지 말고 내가 정말 돈 주고도 쓸만큼 아깝지 않은 제품들만, 팔아놓고 효과 없다 별로다 욕먹지 않고 구매하신 고객님들께서 ‘그 제품 정말 좋더라! 나 그거 지인한테 선물하고 싶어!’ 할 제품들만 들여놓고 판매합니다.
-미용을 하시면서 즐거웠던 일이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을 텐데요.
세 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먼저 첫 번째는 지금 제가 사용하고 있는 가명에 관련된 에피소드인데요. 예전에 제가 매장에서 쓸 가명을 어떤 이름으로 할지 고민고민을 하던 중에 한 고객님께서 “아유~~머리할 때가 돼서 지저분해가지고 거울도 보기 싫었는데, 자기한테 머리를 하면 내 얼굴에서 빛이나! 머리는 아주 기름칠한 것처럼 윤이 나고, 자기 이름 이나로 해라. 나는 자기한테 머리하고 가면 기분도 막 신이 나고 그렇거든. 이나한테 머리하면 빛이 나고 윤이 나고 신이 나고 어때? 나는 너무 좋은 거 같아 뜻도 있고!”라고 말씀하셨고 그 순간에는 ‘아 좀 유치한데....’ 했었던 게 그날 일을 하는 내내 그 고객님께서 해주신 말들이 너무 감사했고 의미 있고 자려고 누운 순간에도 계속 떠오르면서 마음이 설레고 두근거렸습니다. 그래서 제 이름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나’거든요. 제겐 굉장히 뜻 깊고 소중한 기억입니다.
두 번째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애청하시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보셨을 만한 성함인데요, 표창원 프로파일러 교수님 머리를 해드리던 때가 있었는데, 표창원님 처음 방문 당시 흰머리가 하나 둘 생기는 게 고민이시고 어둡게 새치염색으로 염색하고 싶진 않으셔서 색의 밝기는 자연갈색으로 자연스레 커버하면서 좀 독특해도 좋으니 인상깊 은 머리를 해달라고 하셨었어요. 제가 그 당시 올리브 색감에 빠져있을 때였는데 고객님 피부 빛깔 등을 고려해 볼 때도 너무 과하지 않게 은은하게 퍼지는 올리브색이라면 괜찮겠다 싶어서 탈색 없이 염색만으로 카키빛을 영롱하게 연출해 드렸거든요.
그 덕분에 “살면서 이런 멋있는 색은 처음해 본다. 너무 마음에 든다. 앞으로 내 머리를 이나 선생님이 항상 도맡아서 해줬으면 좋겠다. 내 머리가 너무 자랑스럽다.”라는 최고의 찬사를 듣게 되었고, 제가 건강상에 문제가 생기기 전까진 고객님 스타일링을 책임져 드렸었는데, 제가 건강상의 문제로 잠시 휴직을 하는 동안 고객님께서 “내가 지금까지 머리를 해본 중에 이나 선생님만큼 내 머리를 잘 만져준 선생님은 없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하하하하 이런 건 충분히 기억에 남을 만 하죠?
세 번째로는 제가 영국에서 공부할 때인데요. 그때만 해도 서양인들은 동양인을 보면 대부분 한국인을 떠올리기보다 중국인 아니면 일본인 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길에서나 상점에서나 어떠한 계기로 저와 대화를 하게 될 때면 일본인이냐고 묻거나 중국인이냐고 묻는 거에요. 그때마다 그냥 웃으며 한국인이라고 소개하곤 했는데요.
그런 일들이 쌓여가던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사진 좀 찍어줄 수 있냐고 물어보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나라 사람들인지 아님 여행 온 사람들인지 저도 물론 외국인 보면 국적을 알아내기 힘들지만 쉽게 유추하는 발언은 실례가 될 수 있으니 말을 못하겠던데 아무쪼록 그분들도 어느 나라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한테 Japanese? or chinese? 하며 상냥하게 물어왔는데 저는 괜히 혼자 피해의식에서였는지 자격지심이었는지 뭐였는지 모를 감정에 그만 버럭 “I’m from Korea !”라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길 한복판에서 냅다 소리를 질러버린 거예요. 지금 다시 생각해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고, 너무 창피하고, 그 분들은 저를 혹 돌+아이 또는 어디 아픈가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저는 나름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고 내가 다른 나라 사람으로 생각되는 게 싫고 동양인 중에는 한국사람도 있다라는 걸 알리고 싶었던 건데 갑자기 그렇게 뜬금없이 소리치는 바람에 괜히 내가 의도와 다르게 대한민국 얼굴에 먹칠을 한 것은 아닌가 하며 생각날 때마다 후회하곤 했답니다.
-훌륭하십니다. 미용인으로서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시는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말한 것처럼 10년 전쯤만 해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큰 관심이 없던 외국인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발전하고 변화되는 만큼 어떤 면에서는 서서히, 어떤 면에서는 아주 빠르게 많은 것들이 발전하고 변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문화를 빠르게 따라하고 배워가기 바빴던 우리나라가 K-pop, K-makeup 등 한류 열풍을 일으키며 어느덧 우리의 미용문화를 따라오는 사람들, 또는 국가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hair 부분에 있어서는 뚜렷하게 윤곽이 나타나지 않고 있어 매우 속상합니다. 헤어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K-hairstyle을 너도 나도 추구하는 시대도 그리 먼 미래는 아니라 생각하며 그날이 하루 빨리 실현될 수 있도록 디자이너로서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습니다.
-자기 계발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하시는 걸로 아는데.
“배움은 끝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뛰지 않아도 괜찮아. 천천히 걸어가도 돼. 다만 멈추지는 말자”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들인데요. 저는 지금까지의 제 미용인생에 자부심은 있지만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하신 선배님들, 후배여도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면 주저없이 조언을 구하고 강의가 열린다면 찾아가며 강의도 듣고 교육에 참여하곤 합니다.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건 알지만 뭐 누구든 완벽할 순 없으니까 라고 생각하고 멈춘다면 제 인생은 제가 죽는 그날까지 어느 한부분도 완성된 것이 없이 미완성일 거란 생각에 안주하고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제가 17세라는 어린나이부터 미용을 시작한 만큼 디자이너로 승급한 시점도 다른 분들보다는 좀 빠른 나이였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인지는 몰라도, 항상 조급해하지 않고 조바심 내지 않으며 열정은 있되 열등감에 치우쳐지지 않으려 저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여 주는 말, 마지막 구절입니다.
천천히 가되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빨리 가려고 욕심을 내거나 반칙을 쓰거나 하지 않고 주어진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는 내가 이루고자 한 그 꿈들이 하나하나 이루어져 있지 않을까. 천천히 걸어서 가더라도 지치지 않고 즐기면서 멈추지만 않는다면 목표에 도달해 있겠지. 라고 믿으면서 힘들고 뜻대로 되지 않아 지칠 때일수록 그것을 기회삼아 더 도약하려 애쓰고 새로운 것, 몰랐던 것, 알았지만 잊었던 것 들을 수시로 배움을 통해 제 것으로 만들곤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현대인들은 많은 스트레스와 환경적인 요인, 쉽게 접할 수 있는 인스턴트 음식들로 인해 신체의 많은 것들이 변화되고 있습니다. 그중 두피의 건강도 빼놓을 순 없는데요, 두피와 모발 건강, 그리고 내적으로 건강한 두피와 모발을 시작으로 만들어지는 외적인 미까지. 단순히 겉으로 보여지는 이미지만 가꾸어주는 미용인이 아니라 본질부터 케어하여 고객님 한분한분이 가지고 계신 최상의 컨디션을 이끌어주는 헤어디자이너라는 명함만 가진 미용인이 아닌 단어의 사전적 의미에 걸맞는 진짜 디자이너가 되겠습니다.
그렇게 제가 그리고 있는 그림 속에서 저와 같은 꿈을 꾸며 현재 저의 곁에서 힘이 되어 주고 서로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고 있는 저희 부원장님, 그리고 파트너 친구들과 함께 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뜻이 변질 되지 않는 선에서 딱 4개의 매장을 더 늘리고 싶습니다. ‘과유불급’ 너무 많고 너무 과해도 탈이 나는 것을 알기에, 추구하는 방향에서 이탈 하지 않는 선은 딱 그 정도 인 것 같아서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살아가며 저희 식구들과 이 그림을 완성시키는 것이 제 목표이자 계획입니다.
‘잘난 거는 타고나야 되지만, 잘 사는 거는 사람 나름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딱히 내놓을 게 있을 만큼 잘 타고 난 건 없지만, 열심히 잘 살아보려 노력하여 여기까지 왔습니다. 앞으로도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께, 또 나를 엄마라고 부르며 따르고 배워갈 저의 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며 미용인의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뷰티라이프> 2022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