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강진 해남 답사를 학교 조교선생님, 동기 둘, 후배 한명과 함께 했었습니다.
그때 올랐던 백련사 다산초당 길은 남도의 색으로 머리속에 각인되었지요.
그로부터 몇 해 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책이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7권 제주도편까지 이어서 일본편 4권까지 나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첫 권 첫 편은 남도답사일번지란 제목으로 강진, 해남 이야기입니다.
오늘 그 코스를 갑니다.
백련사 - 다산초당 길은 남도답사에서 저도 추천하는 일번길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병영성지를 더불어.
아이들이 많네요...
우리 선생님한테서 역사공부하는 친구들이 단체로 참가했습니다.
웬 풍차?
하멜기념관입니다.
하멜은 네덜란드사람.
풍랑에 제주도 표류하여 우리나라에서 13년간 머물다가
도망쳐 서구에 조선을 최초로 알린 인물입니다.
그가 바로 여기 병영성에 7년 동안 머물렀다고 합니다.
요즘
꺼리만 되었다 싶으면 그냥 관광자원화하는거...
제주도 용머리해안 입구에 하멜기념관이라고 커다란 배안에 이런저런 해설판을 붙여놓았습니다.
여수에도 바닷가에 하멜등대라는 이름으로 빨간 조형물을 세우고 역시 기념관을 만들어놓았으며
바로 여기 병영에도 하멜기념관이..
그 기념관을 상징하는 풍차.
하멜 기념관을 해설하시는 강진 해설사 선생님입니다.
네덜란드표 나막신.
병영성으로 향합니다.
평지성입니다.
남문 들어가는 곳 옹성입니다.
병영 - 육군사단본부 정도로 생각하면 될레나.
전라남북도와 제주도를 아우르는 육군향토사단.
이순신장군이 여수 좌수사로 해군 사단장급이라면 여기계신분은 육군 사단장급.
공사중입니다.
여기에 병영초등학교가 있었다고 합니다.
1895년 폐영되었다고 하면 백이십년전인데 그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병영 건물들.
저 소나무가 인상적입니다.
병영 설성식당. 1인분 8천원 밥상입니다. 제가 여기 5천원할때 첨 왔었습니다.
처음 왔을때 감동했습니다.
...
여기가 잘되니 건너편에 수인관이 생기고, 용바우식당이라고 엄청 큰 식당이 또 생겨났습니다.
가기전 예약하면서 아이들과 부모님 일행인데 초등생이 많으니 개네들 입맛에 맞는 찬좀 부탁했지요.
"네에 네에~~ 잘해드릴께요~~~"
밥상에 홍어가 오르고, 젖갈이 오르고, 오색 나물이 오르고... 좋구나 좋다.
아이들 데리고 다신 안온다. 여기.
백련사 입구 동백나무.
상록활엽수 동백에 대해 말했었는데 듣는 사람 전혀 없었구나...
졸티입은 삼십대 남성의 모습인 백련사 대웅보전.
그림 이야기는 그래도 좀 들어주네...
강진 앞바다가 보입니다.
백련사와 다산초당길.
이백년전 여기를 다산선생도 수없이 걸었을 것입니다.
해월루. 다산 선생 작품중에 '해월ㅇㅇ'에서 힌트를 얻어 최근에 지어놓은 루각입니다.
그 모습을 알 수 없어.
겸재 정선의 세검정이라는 그림 속에 나온 모습의 정자를 지었다고 .
신년엔 해돋이 행사도 한다는데 한번 와보고 싶습니다.
여기에 서서 바다쪽을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고 흑산도에 계신 형님을 생각했을 겁니다.
연지석가산이라고 명명된 못입니다.
다산초당.
유물전시관 가는 길 두충나무숲길.
영화나 드라마 장소로도 한번 쯤 쓰일법한 풍경입니다.
유물전시관을 어렵게 찾아갔는데 옮겼네요..
다산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목민심서와 더불어 수많은 책을 쓰신 다산 선생님.
그 원천은 독서인듯 합니다.
목민심서는 지방 수령된이들에 대한 지침서입니다.
오늘
인솔하면서 길을 잘못들어 일행들이 500미터 정도 헛걸음하게 되었습니다.
쭉 내려가다보니 이 길이 아니었던 겁니다.
아니다 싶어 다시 뒤돌아서서 왔던길로 되돌아 갔지요.
우리 일행 서른명을 인솔했던 제가 잘못하면 저 뿐 아니라 전체 일행이 고생합니다.
한 지방을 책임지는 장이
혹은 한 국가를 대표하는 수장이 만약 길을 잘못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그 잘못된 길을 지적을 해도 끝끝내 자기 아집으로 고집만 부린다면 ...
다산 선생은 그것을 경계했습니다.
<목민심서>의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다른 벼슬은 구해도 좋으나 목민의 벼슬은 구하지 말라.”
“비록 덕이 있더라도 위엄이 없으면 잘할 수 없고, 뜻이 있더라도 밝지 않으면 잘할 수 없다.”
지금의 공직자에게 던지는 메세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