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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왕모가 주목왕에게 말한다. “곤륜산은 함양에서 36만 리나 떨어져 있고, 산의 높이는 3만6천리나 됩니다. 곤륜산 위에는 삼각산이 있는데, 넓이가 만 리이며 모양은 언분(偃盆: 엎어놓은 그릇) 같아 아래는 좁고 위는 널찍합니다. 그래서 곤륜산 삼각이라고 합니다.
.해내지국의 곤륜대산은 서북방에 있으며 상제께서 지상에 거주하시는 도읍지이다. 곤륜대산은 방원이 대략 8백 리이고 높이는 8천 장이다.……그곳에는 백신(百神)이 살고 있으며, 팔방에는 높은 암벽과 적수 기슭이 있다. 태양을 쏜 예가 아니라면 이 산을 기어 올라가 암벽 위로 올라갈 생각을 말아야 한다.
.서해의 남쪽, 유사의 언저리, 적수의 뒤편, 흑수의 앞쪽에 큰 산이 있는데 이름을 곤륜구라고 한다. 신―사람의 얼굴에 호랑이의 몸인데 꼬리에 무늬가 있으며 모두 희다―이 있어 여기에 산다. 산 아래에는 약수연이 둘러싸고 있으며, 그 바깥에는 염화산이 있어 물건을 던지면 곧 타버린다. 어떤 사람이 머리꾸미개를 꽂고 호랑이 이빨에 표범의 꼬리를 하고 동굴에 사는데 이름을 서왕모라고 한다. 이 산에는 온갖 것이 다 있다.
- 산해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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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경>(정재서 역, 민음사, 1985)을 읽기 전, 예전에 올렸던?도정일의 <신화 읽기,무엇 하자는 것인가>의 서문을 먼저 읽어 봅니다.
신화가 역사를 박탈하는 탈정치적 언술이라는 견해를 현대 비평의 맥락에서 새삼 제시한 것은 롤랑 바르트이다. 바르트에 따르면 신화는 “그것이 말하고 있는 대상으로부터 모든 역사를 박탈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바르트가 『신화들』에서 시도한 것은 과거의 신화들에 대한 읽기가 아니라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부르주아 신화’ 읽어내기, 더 정확히는 현대적 신화 텍스트들의 기호학적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이며, 그가 분석 대상으로 선택한 텍스트들도 문자 텍스트 아닌 사진·광고 등의 이미지 텍스트이거나 스포츠·복장·유행 같은 비문자 기호들이다. 텍스트와 기호의 범위를 이처럼 확장하고 비문자 텍스트들의 기호적 구성과 의미생산 기제에 주목할 수 있게 한 것은 현대 비평의 공로이다. 바르트의 경우 특별한 기여가 있다면 그것은 그가 이 확장된 기호 개념으로 ‘현대의 신화들’을 지목하고 이 신화 텍스트들을 기호학적 방법으로 읽어내되 그 읽기의 결과를 반드시 ‘이데올로기 노출’에 연결시킨다는 비평적 관심의 발휘이다. 그가 신화의 기능을 ‘역사 비우기’로 규정한 것은 바르트의 접근법이 갖고 있는 이 특별한 관심의 결과이다. 그런 규정은 적어도 전통적 신화학·민속학·문화인류학의 진술 방법이 아니며 기호학 자체의 방법이 모든 경우에 도달하는, 또는 도달해야 하는, 궁극적 발견도 아니다. 이 점에서 바르트는 기호학의 방법으로 기호학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고 이것이 현대적 신화 읽기에 기여한 바르트의 공헌이다. 이 공헌의 성격은 ‘기호학적 신화 읽기의 정치화’이다. 말하자면 바르트는 기호학적 독법에 정치성을 찾아줌으로써 형식분석의 비평적 효용을 예증하고 방법의 비판적 정당성을 확보한다. 이것은 바르트가 기호학자 아닌 ‘비평가’로 작동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산해경>은 상산해경표, 주산해경서, 상해경전소서, 삼경에는 남산경, 서산경, 북산경동산경, 중산경으로, 해경은 해외남경, 서경, 북경, 동경, 해해남경, 서경, 북경, 도영 그리고 대황동경, 남경, 서경, 북경, 해내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나라의 주석가인 학의행에 의하면 본래 <산해경> 고본은 32권이었는데, 전한시대의 유흠이 18권으로 정리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진대의 곽박이 주석을 처음으로 달았다. 현존하는 18권은 본문만 30,825자로 크게 <산경> 21,265자와 <해경> 9,560자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산경>은 곧 <오장산경>인데 동서남북 중의 5권 26편으로, <해경>은 <해외경>의 동서남북 4권, <해내경>의 동서남북 4권, <대황경> 동서남북 4권과 독편 <해내경> 1권 등 13권으로 편성되어 있다. (13권이라고 하지만 388쪽이므로 하루면 다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맛있고, 재밌게.)
<산경>과 <해경>은 서술체계나 내용에 있어서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산경>에서는 중국 및 주변의 지역을 다섯방향으로 나누고 447개소의 산에 대해 거의 한결같은 방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를테면 먼저 산천의 형세를 말한 다음, 산출되는 광물 및 동식물, 그곳에 사는 특이한 괴물이나 신령에 대해 서술하고 각편의 말미에서 반드시 제례에 관한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산경>은 내용면에서 비교적 단조롭고 <지리서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해경>의 경우 편명만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해내경>은 사해안의 지역, 곧 중국권 내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고, <해외경> 및 <대황경>은 중국권 밖, 머나먼 세계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나 실제내용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해경>의 기술방식은 <산경>과 다르긴 하나 그 나름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내용은 이국의 풍속과 사물, 영웅의 행적, 신들의 계보, 괴물에 대한 묘사 등 다양하여, <산경>의 지리서적인 성격에 비해 <신화서적>인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다.
<산해경>은 중국문명의 다지역 발생론이라는 축면에서도, 동북공정과 관련해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읽어야 되고, 지리서와 신화를 결부하여 먼나라 이웃나라의 입장에서 읽어도 무방하다. 아니, 우리나라 주변국의 신화적 상상력을 읽는 것은 그들의 세계관의 기저를 이해하는 필요 이상의 일일 것이다.
<산해경>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곤륜산>과 <서왕모>에 관한 부분 등을 중심으로 내용을 살펴보자. 곤륜산은 중국 고대전설에 나오는 성산으로 곤륜이라는 명칭은 혼돈과 관계가 깊으며, 원초의 카오스(혼돈)을 의미한다. 곤륜산의 위치는 중국인의 지리지식이 발달함에 따라 점차 서쪽으로 옮겨졌는데,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감숙성 주천 남방에 있는 산을 곤륜산이라 믿었다 한다. <산해경>과 <목천자전>에 그 기록이 보인다. 서호와 백옥산이 대하의 동쪽에 있고 창오가 백옥산의 서남쪽에 있는데 모두 유사의 서쪽, 곤륜허의 동남쪽에 있다. 곤륜산은 서호의 서쪽에 있는데 모두 서북쪽에 있다.
<산해경>에 나타난 곤륜산에 관한 기록은 위에 인용한 글이 전부다. 그러나 전설에 의하면 초기에는 천상계에 사는 천제의 지상궁전이 세워진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후에 신선사상의 영향으로 고대 중국인의 이상세계로 탈바꿈하게 된다. 곤륜산은 우주의 중심에 위치하여 산 정상이 북극성을 향해 있으며,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3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산 정상에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나무를 비롯한 온갖 약초가 돋아나, 예로부터 불사의 명약을 구하기 위한 인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산 주위를 흐르는 강물의 방해로 아무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한다. 후한시대 이후에는 여신 서왕모가 선녀들의 호위를 받으며 생활하는 지상낙원으로 알려졌다. 황제가 곤륜산을 등산한 일과 주 나라의 목왕이 이 산 위에서 서왕모를 만난 전설은 유명하다.
서왕모는 중국의 고대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선녀 로, 그 기원은 은대까지 거슬러올라가며 갑골문자에 나오는 서모는 서왕모인 것으로 보인다. 문헌상으로는 <산해경>에 서왕모에 관한 기록이 세 번 보인다. 먼저 <서산경>에 나타난 기록을 보자. 다시 서쪽으로 350리를 가면 옥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서왕모가 살고 있는 곳이다. 서왕모는 그 형상이 사람 같지만 표범의 꼬리에 호랑이 이빨을 하고 휘파람을 잘 불며 더부룩한 머리에 머리꾸미개를 꽂고 있다. 그녀는 하늘의 재앙과 오형을 주관하고 있다. 서왕모가 책상에 기대어 있는데 머리꾸미개를 꽂고 있다. 그 남쪽에 세 마리의 파랑새가 있어 서왕모를 위해 음식을 나른다. 곤륜허의 북쪽에 있다.
<대황서경>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해의 남쪽, 유사의 언저리에 적수의 뒤편, 혹수의 앞쪽에 큰 산이 있는데 이름을 곤륜구라고 한다. 신(사람의 얼굴에 호랑이의 몸인데 꼬리에 무늬가 있으며 모두 희다)이 있어 여기에 산다. 산아래에는 약수연이 둘러싸고 있으며 그 바깥에는 염화산이 있어 물건을 던지면 곧 타버린다. 어떤 사람이 머리꾸미개를 꽂고 호랑이 이빨에 표범의 꼬리를 하고 사는데 이름을 서왕모라고 한다. 이 산에는 온갖 것이 다 있다. 위에서 보는 것처럼 기록상으로 서왕모는 사람의 모습에 표범의 꼬리, 호랑이의 이빨을 갖고 풀어헤친 머리에 비녀를 꽂고 자주 으르렁거리는 괴이한 존재이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서왕모는 신선사상의 영향을 받아 이목구비가 수려한 미녀로 변신하고 그녀의 거처도 곤륜산으로 정해졌다.
1. 작가 및 성립시기
마르크스는 신화란 <<인민의 환상을 통하여 무의식적인 예술적 방식으로 가공한 자연 및 사회형태 그 자체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신화는 고대인들이 자연계와 사회생활을 인식하는 일종의 표현이다. 이런 점에서 신화는 고대인들의 염원과 이상의 체현이기도 했다. 따라서 많은 신화들이 널리 전파되어 끊임없이 개작되었고, 그 풍부한 상상과 예술성으로 말미암아 고대인들에게는 예술작품 그 자체가 된다.
중국의 고대신화는 그리스 신화처럼 체계적이지도, 풍부하지도 않다. 다만 <산해경>을 비롯한 <회남자> <초사> <장자> 등에 단편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산해경>이란 이름은 사마천이 지은 <사기>의 <대완전>에 처음으로 보이는데, 그 성립시기와 저자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전통적인 견해는 하나라의 우임금과 그의 신하인 백익이 국토를 정리하고 각지의 산물을 파악한 결과로서 편찬했다는 것이다. 편찬시기는 빠르게는 서주 초기인 기원전 12세기로부터, 가장 늦게는 위진시대인 서기 3--4세기까지 편차가 크다.
다만 작자 및 성립지역을 초나라와 초인으로 보는 견해와, <산해경> 중의 <오장산경>의 경우 그 성립시기를 전국시대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그러나 <산해경>이 어느 특정기간에 특정인에 의해 제작된 것은 아니고,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첨삭이 가해져왔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2. <산해경>은 신화서인가, 지리서인가
이 책의 성격에 대해서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사마천이 <<감히 말할 수 없다>>라고 하며 인용을 꺼려할 정도의 기서인 <산해경>의 내용에 대해 오늘날 현저히 대립되는 두 가지 해석 경향이 있다. 즉 <신화학적 입장>과 <지리학적 입장>이 그것이다. 그것은 두이미와 위정생, 두 학자의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주장들로부터 엿볼 수 있다.
먼저 두이미 교수는 <산해경>을 신화로서만 규정하고 그 내용을 일정한 상징체계로서 이해한다. 그에 의하면 <산해경>은 태음숭배의 산물이다. 변화무쌍하고 불사불멸하는 음과 양의 양성구조적 존재인 달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불사관념을 기조로 한 월신월산월수 등의 존재가 상상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리하여 그는 <산해경>에서 출현하는 황제를 비롯한 모든 신화적 영웅들을 월신의 다양한 현시로, <곤륜산>을 비롯한 모든 산들과 괴상한 형태의 동식물을 달의 의화된 존재로 파악한다. 결국 그에게 있어서 <산해경>은 달의 상징체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반면에 위정생씨는 <산해경>을 완벽한 지리서로 간주한다. 그에 의하면 <산해경>은 전국 연의 소왕때의 외래학자 추연이 왕명을 받들어 조직한 탐험대의 세계지리에 관한 현지답사 기록이다. 위씨는 지리학자와 합작하여 <산해경>의 각 지역을 현재의 지명에 일일이 비정한 <산경지도>까지 작성했다. <산해경>이 이와 같이 실제지역에 대한 기록일 때 그곳의 동식물 및 광물 역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인 양 해석되게 마련이다.
두위 양씨의 견해는 모두 <산해경>의 한쪽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이다. 결국 <산해경>은 일정한 방위개념에 입각한 각 지역에 대한 조사기록으로 볼 때 기본적으로는 지리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수록된 내용은 해당 지역의 민속종교구전신화 등 원시적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신화서적인 성격 역시 당연히 띠고 있다. 따라서 <산해경>에 대한 해석은 지리서로서의 기본적 성격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신화연구 방법들을 적용해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중국의 원가, 대만의 이풍무 교수, 구미와 일본의 다수학자들은 비교적 상술한 두 가지 입장을 고려하면서 문학인류학 혹은 민속학적 관점 등에서 조명을 시도하고 있다.
3, 중국인들의 상상력은 무엇인가?
<산해경>을 읽을 때 우선 괴이함과 아울러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느낌을 갖게 된다. 책을 펴자마자 거북이 몸체에 새의 머리와 살모사 꼬리를 하고 있는 <선구>라는 짐승, 호랑이 몸에 소의 꼬리와 개짖는 소리를 내는 <체>라는 동물, 올빼미 모양에 사람의 손을 가진 <주>라는 동물 등이 등장한다.
이에 대해 <산해경>에 처음으로 주석을 단 곽박은 <<사람이 아는 것은 그가 알지 못하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라는 장자의 말을 인용 하면서, 이상함은 결국 나에게 있는 것이지 사물 자체가 이상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 <산해경>에는 이상한 것을 이상하게 보는 것은 결국 인간의 판단에 의한 것이므로, 그것은 이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정신을 기저에 담고 있다. 사실 책을 계속 넘기다 보면 처음의 기이한 느낌은 곧 친숙함으로 바뀌면서 자신도 모르게 <산해경>의 별세계로 몰입하게 된다. 먼저 책의 구성을 살펴보자.
전한 말기에 이르러 그녀에 대한 신앙이 크게 유행하면서 민간신앙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위진남북조 시대 초기의 도교교단은 서왕모를 신선의 하나로 숭배하여, 도교수행자에게 서왕모가 강림하여 가르침을 준다는 전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후 서왕모는 정통 도교보다는 민간신앙 쪽에서 불로불사의 여신으로 크게 숭배되었다. 또 다른 기록에는 주나라의 목왕이 곤륜산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서왕모를 만나 시가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한편 신화는 비록 인간의 환상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이러한 환상은 사회적인 현실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신화에서의 황당하기 그지없는 여러가지 해석과 묘사는 결코 단순한 의식이나 심리 활동이 아니라, 현실 및 투쟁의 반영이다. 원시시대에 있어 가뭄과 홍수는 큰 재난이었다. 더욱이 농업경제가 발전하는 시기에 큰 물을 방지하고 관개를 잘하는 것은 큰 문제로 제기되었을 것이다.
곤우치수 <산해경>의 <해내경>편에는 <곤과 우가 물을 다스리다>란 기록이 있다.
큰 물이 저 하늘을 삼킬 듯했다. 곤은 상제의 명을 기다릴 새 없이 식양토를 훔쳐내어 물을 막았다. 그래서 상제는 축융씨에게 명하여 우산 밑에서 곤을 죽여버렸다. 그랬더니 곤의 뱃속에서 우가 나왔다. 상제는 우에게 명하여 끝내 흙을 폄으로써 구주를 안정시켰다. 곤은 자신의 머리에 떨어질 재난을 무릅쓰고 상제의 식양(끝없이 불어나는 흙)을 훔쳐다가 홍수를 다스린 탓에 살해된 영웅이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의 불을 훔쳐다 인간에 전해준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노여움을 타서 바위에 결박되어 독수리에 간을 쪼이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곤의 뱃속에서 나온 우는 상제의 명령을 받아 홍수를 막는 방법을 포기하고 흙을 펴는 방법, 즉 소통의 방법을 취했다. 곤과 우는 원시인들이 홍수를 이겨내기 위해 상상해낸 영웅이다. 이 두 형상을 통하여 홍수를 이긴 원시인들의 영웅적인 투쟁면모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우는 물을 다스리는 기간에 세 번이나 집을 지나치면서도 집에 들르지 않았다고 하는데, 추호도 사리를 도모하지 않고 홍수방지에 전념하는 우의 모습은 곤의 희생정신과 마찬가지로 치수의 성공과 사회적 진보의 근원을 일깨워준다.
4. 중국문학에서의 위치
신화의 예술적 가치는 자못 크다. 그리스 신화가 그리스 예술의 토양이듯이, 중국 고대신화 역시 후세 문학의 원천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산해경>은 상상력과 환상의 보고로서, 고대인의 꿈과 무의식에 뿌리를 둔 원형적 심상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단의 정신은 갈홍의 <포박자>로 계승, 발전되고, 결국 도교라는 거대한 상징체계를 구축하여 유교와 대립되는 중국의 유력한 이면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상상력의 원천 <산해경>은 중국문학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첫째는 상상력의 원천 으로서의 <산해경>이 문학예술의 세계에 미친 영향은 무엇보다도 지대하다. 동진의 시인으로 일찍이 주석을 단 곽박은 그의 <유선시>에서 <산해경>의 시적 변용을 시도하고 있고, 도연명 역시 <독산해경시> 13수를 지은 이래 수많은 유명문인들이 <산해경>을 제재로 하여 시가와 소설을 창작했다.
둘째는 지이류 문체의 효시로 간주된다. 지이류의 작품들은 기이한 이야기를 위주로 하고 사람과 풍물의 묘사가 생동감이 있다. 이 묘사법은 중국소설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소설 <서유기>와 <봉신연의> 등 대표적인 신마소설에 등장하는 온갖 괴물들의 군상 및 신통력의 극치라든가, 중국의 <걸리버 여행기>라 할 이여진의 <경화연>에서 전개되는 기묘한 세계여행 등은 그 중요한 이미지와 상징구조를 대부분 <산해경>으로부터 차용하고 있다.
근래에 이르러 노신은 유년시절부터 일찍이 <산해경>을 탐독하여 상상력을 함양했음을 토로한 바 있고, 실제로 그의 <고사신편>은 <산해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국에 미친 영향 한국의 경우 이미 백제 때에 일본에 <산해경>을 전했다는 역사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적어도 삼국시대부터는 <산해경>이 읽혀져왔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신수와 괴수의 형상은 직접 혹은 간접으로 <산해경>에서 유래된 것이 많다.
그러나 <산해경>이 우리에게 주는 영감과 자극은 먼 옛날에 한하지 않는다. 시인 황지우는 <산경>에서 당대 현실에 대한 가열찬 풍자의식을 담아냈는데, 이는 <산해경>에서 모티브를 빌려왔다. 그리고 박인홍도 그의 작품에서 <산해경>의 충격적이고도 그로테스크한 괴물 이미지를 통해 일상의 관념을 해체하여 이 시대의 포스트모던한 삶의 양태를 묘사했다. 또한 <산해경>에는 조선개국숙신국맥국 등 고대한국과 관련되는 나라 이름이 등장하고, 많은 학자들에 의해 이른바 동이계 문화로 간주되는 내용들이 적지않게 포함되어 있어 우리의 눈길을 끈다.
5. 최근의 연구경향
<산해경>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문학 신화학 민속학 종교학 생물학 광물학 지리학 등의 각 방면으로부터 진행되어 <산해경학>이라 불릴 정도로 하나의 종합과학을 지향해나가고 있다. 이미 영국프랑스일본이탈리아한국 등 수개 국어로 번역된 것은 물론 많은 연구서 및 논문이 산출되어왔다. 국내의 경우도 3편의 석사학위 논문을 비롯, <산해경> 및 중국신화와 관련된 다수의 논문 및 번역서들이 계속 발표되어 <산해경>에 대한 우리의 잠재적 관심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산해경>은 결코 한 측면에서 규정될 수 없는 다방면의, 다학문성의, 다중적 언어체계를 지닌, 그렇기 때문에 <기서>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성격의 책이다. 이러한 사실이 <산해경>을 고의로 신비화하여 그것의 탈학문성을 부추키지만 않는다면, <산해경>은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인류에게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안겨주는 근원적 상징 그 자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마치 달의 뒷면처럼 잊혀져 있던 우리의 감춰진 세계의 총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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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다음블로그 http://blog.daum.net/m-deresa/1238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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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하셨어요^^
제대로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산해경>-전발평, 예태일 저 , 출판사 안티쿠스- 을 보니 '사람의 모습에 표범의 꼬리, 호랑이의 이빨을 갖고 풀어헤친 머리에 비녀를 꽂고 자주 으르렁거리는 괴이한 존재' 이런 서왕모의 모습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어서 놀랐습니다. 저 또한 후대에 그려진 아름다운 서왕모만을 알았거든요. 좋은 자료 잘 읽었습니다.^^*
한편 신화는 비록 인간의 환상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이러한 환상은 사회적인 현실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신화에서의 황당하기 그지없는 여러가지 해석과 묘사는 결코 단순한 의식이나 심리 활동이 아니라, 현실 및 투쟁의 반영이다. 원시시대에 있어 가뭄과 홍수는 큰 재난이었다. 더욱이 농업경제가 발전하는 시기에 큰 물을 방지하고 관개를 잘하는 것은 큰 문제로 제기되었을 것이다. 네~ 그러게요. 고현정이 나왔던 그 드라마에서 이름이 뭐더라? 선덕여왕에서도 기우제를 지내, 비를 내리게하고 풍년이 되면, 백성들이 믿고 따라야 권력도 따른다는 내용이였죠.^^
너무 많아서 힘들군요^^;;
중요한 것은, 산해경이라는 것이 신화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방면으로 연구 할 수 있는 문화텍스트라는 점이겠네요 ㅎ
산해경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사실 산해경이라는 책은 이번 수업시간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저처럼 산해경에 전혀 무뇌한인 사람에게 아주 좋은 정보네요^^
<산해경>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문학 신화학 민속학 종교학 생물학 광물학 지리학 등의 각 방면으로부터 진행되어 <산해경학>이라 불릴 정도로 하나의 종합과학을 지향해나가고 있다. 이미 영국프랑스일본이탈리아한국 등 수개 국어로 번역된 것은 물론 많은 연구서 및 논문이 산출되어왔다 >>> 결론적으로 이 기사문을 통해 느낀 것은 산해경이 정말 상상 그 이상으로 방대하고도 중요한 고전서적이라는 것이네요. 이렇게 중요한 고전을 지금이라도 알게되서 정말 다행입니다~^^
좋은 자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