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혼자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을
여러 회원들의 열성적이고 자발적인 협조에 의해 가능했었고,
성황리에 마무리 되어 그간의 노고에 거듭 감사드립니다.....(중략)
우리들의 작은 노력이 자그만 날갯짓에 불과하지만,
브라질의 나비 날갯짓도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키듯
우리의 날갯짓도 전국으로 물결치기를 소망합니다.
- 김영기 제주시조시인협회 회장, ‘여는 글’ <나비효과를 기대하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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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억리 가마터/ 강애심
아직도 구워내지 못한 내 안의 그릇인가
할머니 굽은 등 같은 노랑굴 저 불씨는
한여름 서쪽 하늘을 붉게도 물들였다
속울음 빚은 옹기 친정으로 보내놓고
한 번도 세상 밖 눈 돌리지 못하던
구억리 오래된 가마터 옹기 되어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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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권영오
제 각각의 색깔로 가을 물이 들고 있다
꽃 빛은 꽃 빛대로 잎은 또 잎 빛대로
들판엔 나락이 만석 별도 만석 쏟아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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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추도사- 비전향 장기수 故 고성화 선생 추모제에서/ 김영란
혁명가의 무덤은
땅속이 아니다
우리들 심장에
깊숙이 묻는 거다
아이들 떠드는 소리,
저게 곧
추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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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김현실
이승과 저승 사이
꽃이 되어 피어나리
인연을 내려놓은
고승의 다비식처럼
불태워 사라져야만
다시 사는
꽃
이
되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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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생각/ 송두영
밀려왔다 밀려가며 몽근 돌이 되었구나
알몸으로 맞서며 올망졸망 만든 세상
구엄리 알작지바당 혈육 한 점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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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 열매를 솎으며/ 오영호
따야 할 것들이 상처 난 것뿐이랴
너무 작은 놈이나
쳐 먹어 너무 큰 놈을
수확 철
한두 달 앞두고
목을 치는 청과들.
미리 짐작하고 솎기를 하는 것은
오로지 규격품을 만드는 일이지만
참으로 안타까워라
누가 알까 내 마음.
알맞은 키와 몸매에 겉만 번지르르한
그런 놈만 좋아하는 당신이 야속하지만
언젠가 맛으로 승부하는
그런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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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선물/ 임태진
로드 킬
들고양이
풍장 치르는 산간도로
까마귀 떼 몰려와 주린 배를 채우네
이승의 마지막 선물
거룩한 저
몸 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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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중/ 조한일
땅 위에 내리꽂힌 내뱉어진 그 독화살
혀 끝에 맴돌다가 휘리릭 사라졌어도
기어이 비바람 삼켜
억센 풀로 자랐지
그렇게 뿜어진 말 해독제도 없다던데
입 다물고 귀 막아도 자꾸만 옮아가던
과녁을 빗겨갔어도
가슴팍에
박힌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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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는 <제24회 제주시조지상백일장 입상작들>
한란, 꽃 피다/ 임애덕(일반부 당선작)
꽃대 밀어 올리더니 꽃망울 벌어진다
예정일 한참 앞두고 서둘러 나오려 한다
부르르 마지막 진통
다섯 개의 꽃망울
송송 땀 배인 얼굴
구석구석 어여쁘다
손꼽아 기다리는 내 맘 이미 알았다고
입 꼬리 살짝 올리며 만나서 반갑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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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사리/ 이예림(고등부 당선작, 한림고등학교 1학년)
메마른 미소 하나 덩그러니 남겨두고
창 밖 가지 끝 쓸쓸해진 낙엽처럼
어디로 걸어가는지
눈물 맺힌 웃음들.
이젠 당신은 가고 앙상한 가지마다
당신을 추억하면서 기다려야 할 시간
미련도 후회도 없이
하얀 문을 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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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울음- 시리아 난민 아이를 위하여/ 신민주(고등부 가작, 한림고등학교 1학년)
고요한 바다에서 들리는 울음소리
누군가 들어주길 간절히 기도한다
잔혹한 전쟁 속에서 자유를 다시 찾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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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귤/ 고이진(중학생부 당선작, 제주동여자중학교 1학년)
귤나무에
별처럼 달린 노란 귤들
예쁜 귤은 상품으로
못난이 귤 파치로
다 같은
맛있는 귤들
왜 분류를 할까요?
이 세상에
태어난 똑같은 사람들
그런데 넌 장애인
넌 외국인 넌 다문화
이 세상
똑같은 사람
왜 차별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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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 고제희(중학생부 가작, 제주동여자중학교 1학년)
하늘 나는 기러기들
높이 날아오를수록
파아란 하늘이
점 점 점 높아져요.
새들이
날아가다가
부딪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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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과 지우개/ 박형국(초등부 당선작, 물메초등학교 5학년)
연필은 글을 쓰고 지우개는 지워주고
서로는 경쟁해도 뗄 수 없는 멋진 친구
참으로 사이좋은 벗 마치 나와 범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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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박시인(초등부 가작, 신산초등학교 4학년)
무더운 여름인데
무궁화 피었어요
안 더워? 하면서
가까이 다가가니
이렇게 활짝 피어야
힘이 난다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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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편지/ 김태양(초등부 가작, 재릉초등학교 1학년)
민들레야, 미안해
너의 씨앗을 불어서
연필깎기야, 미안해
너의 배를 가득 채워서
던져서 정말 미안해
내 친구 책가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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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이슬이(초등부 가작, 곽금초등학교 6학년)
잔소리 듣기 싫어
집을 나왔는데
어디로 가야 할까
혼자 길을 걸었다
꼬르륵 눈치도 없이
뱃속은 천둥치고
용돈도 놓고 나와
편의점도 못 가고
아무 일 없단 듯이
집으로 돌아갈까?
꼬르륵 눈치도 없이
뱃속은 또 요동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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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마을/ 김예슬(초등부 가작, 재릉초등학교 3학년)
물고기 사는 마을엔
친구들이 많아요
미역도 불가사리도
모두모두 친구에요
사람들 사는 것처럼
사이좋게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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