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1년 (선조 34년) 경상 감영이 현재 경상감영공언으로 옮겨 행정,산업,군무를 통활하는 관찰사가 상주하게 되면서 대구는 영남의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역사의 숨결이 남아 있는 대구 도심의 근대역사의 현장을 찾아 보았다.

미도다방 벽면에 쓰인 글

대구 도심 골목 투어 안내도

대구.경북에서 처음 세워진 개신교 교회인 남문안(대구읍)
교회가 창립된 곳이다.또한 이곳은 1898년 미국인 의사 존슨이
대구 최초의 서양식병원인 제중원(동산의료원 전신)을 세운 곳이다.


이상화 고택-이상화는 일제감정기에 비탄에 빠진 으리 정서를 언어로
끌어올림으로서 한국현대시의 이정표를 세운 민족시인이다. 이 고택은
말년인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살았던 역사적 장소이다. 그의 대표적인
시로는'빼았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나의 침실로'가 있다.


서상돈 고택
이 건물은 1907년 국민재정이 어려운 시기에 국민 한사람이 돈을 모아 일본에게 진
빞을 갑자며 국채보상운동을주장한 민족운동가 서상돈이 살았던 고택을 복원한 곳이다

1919년 3월 8일 대구신명여고생들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서문시장으로 달려나간
3.1운동길이다.

1898년 당시의 대구의 모습





의료선교박물관-1910년경 미국선교사들이 지은 주택으로 외관상 같은 시기
미국의 방갈로풍의 주택형태에 가까운 건물이며 지금도 당시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현재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내에 소재해 있으며 선교사 스윗츠주택은 선교박물관.
챔니스주택은의료박물관. 불레어주택은교육.역사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1898년 당시의 대구 신명학교의 모습

1919년 3월8일 독립만세를 외치며 달리던 3.1운동길- 이
계단을 통해 서문시장으로 향했다.

3.1운동길 안내표시판

대구 진골목-공목길이 길다는 뜻으로 진골목으로 부른다
대구의 터주대감 달성 서씨들이 주로 거주하였다.


대구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2층 양옥집 정소아과 의원-지금은
2층이 홍성실업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 붐비던 미도다방 지금도 시니어들이 옛
추억을 생각하며 많이모인다.아주머니의 옛 이야기가
그 시절이 생각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