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예능 프로에서 유명 배우가 촬영장에 커피 트럭을 끌고 가 커피를 대접하는 장면을 봅니다. 얼마 전에는 영국, 독일, 덴마크 등지로 박지성, 에브라(전 맨유 축구선수) 등이 커피 트럭을 끌고 가 후배 축구 선수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대접하는 프로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커피 트럭 하면 뭔가 유명한 사람들이 자신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일반적 수준에서 보면 유명한 또 다른 후배 또는 동료들에게 커피를 쏘며 격려하는 중간 매개체와 같은 이미지가 연상됩니다,
그런데 필자가 이런 이미지를 갖는 커피 트럭을 실제로 본 것은 뜻밖에도 시화공단에서입니다. 필자가 본 것은, 금속노조 일반분회가 본조인 금속노조의 지원을 받아 시화공단에 커피 트럭을 끌고 와서 공단 노동자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당시 시화공단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위해, 상품권을 매개로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던 시화노동정책연구소의 필자와 연구자들은 다소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인터뷰하면 5만 원권 상품권을 드린다는 홍보물을 받아 가는 노동자들은 적었지만, 커피 트럭에는 많은 노동자가 들렀기 때문입니다.
공단 노동자들에게는 예능 프로에서나 볼 수 있는 커피 트럭을 공단으로 끌고 와 자신들에게 ‘아아’를 비롯한 맛난 커피를 주는 사람들이 신기했을 것입니다. 이전에는 가끔 와서 거의 무표정하게 홍보물을 전달했는데 이제는 커피 트럭을 몰고 와 따스함을 주니 얼마나 신기했겠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커피와 함께 전달되는 홍보물을 잘 받아갔습니다.
커피 트럭이 주는 이미지가 매우 좋고, 홍보 효과도 크다는 것을 안 금속노조 일반분회는 아예 커피 트럭을 구입하자고 결정하고, 돈 마련을 위해 2024년 1월에 후원주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돈이 모이자, 중고 커피 트럭을 구입했습니다. 구입 후 약간 손을 본 그 커피 트럭이 6월 초부터 시화공단에 투입됩니다. 그 결과 6월 초부터는 금속노조의 지원 없이 시화공단에 커피 트럭을 끌고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더 자주 올 수 있게 되었고, 노동자들은 맛나고 따뜻한 커피를 자주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럼 일반분회라는 노조가 점심시간에 커피 트럭 끌고 시화공단에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화공단에는 1만여 개의 공장이 있고, 그곳에서 12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공장 수와 공장노동자 수에서 알 수 있듯이 이 10,000여 개 공장들의 99%는 50명 이하의 작은 공장들입니다. 평균 고용 규모는 11명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10,000여 개의 공장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시화공단에는 규모 있고, 맛집 수준의 식당이 없습니다. 몇 개의 공장이 함께 이용하는 공동식당(소위 깡통,박스집)만 있을 뿐입니다. 당연히 커피숍이 없으므로 이곳 노동자들은 점심 후 공장에 들어가서 봉지 커피를 타서 마십니다. 요새는 군데군데 이마트24 같은 작은 마트들이 생겨서 그곳에서 커피를 사서 마시기도 합니다만, 이곳의 커피도 인스탄트 제품이라서 맛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커피 트럭은 ‘점심 후 커피다운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맛난 커피를 제공하자, 그러면 노조를 경험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노조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즉, 노조하면 빨간 띠 두르고 투쟁이나 외치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는데, 커피를 나눠준다면 노조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노조를 친구로 여기며 마음을 주지 않을까, 그러면 50인 이하 작은 공장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찾게 될 것이고, 작은 공장 노동자들도 노조의 보호를 받으며 노동자로서의 자신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소박한 기대 하에 나온 것입니다.
시화공단 노동자 사업을 오래 해 온 필자는 50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들, 작은 공장에 다니는 죄(?)로 지금껏 노조 구경도 못해 본 노동자들이 일반분회에 마음을 줄 거라고 믿습니다.]
*위 글은 시흥신문에 나온 칼럼으로 시흥신문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sh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9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