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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의 동이 틀 때, 많은 이들이 동해 바다와 산정상을 찾아 일출의 장관을 바라보며 새해를 맞이한다. 수평선 위로, 혹은 지평선 위로 이글이글 떠오르는 ‘새 해’는 평소 머리 위에 떠있던 해보다 유난히 크다. 달도 마찬가지다. 초저녁에 빌딩 숲을 헤치고 떠오르는 한가위의 보름달은 그야말로 쟁반처럼 커다래서 새삼스럽게 깜짝 놀라곤 한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태양도 달도 수평선에 걸려있든 중천에 높이 떴든 같은 크기라는 것이다. 우리 눈에는 엄청나게 컸던 태양 혹은 달이 하늘로 올라갈수록 틀림없이 작아지는데 말이다. ‘달 착시(Moon illusion)’라고 부르는 이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론이 있지만, 아직까지 확실하게 규명된 것은 없다. 다만, 가까이에 있는 사물이 멀리 있는 사물보다 크게 보인다는 ‘상식’이 우리의 눈을 흐린 나머지, 실제로 동일한 해와 달의 크기를 임의로 조절하여 인식한다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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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번 듣는 것 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눈은 그리 믿음직한 기관이 못 된다. ‘달 착시’와 같은 착시 현상들을 알고 나면, 눈이 얼마나 쉽게 간단한 장치에도 속아넘어가는 지 실망스러울 지경이다. 그러나 미술이란 기본적으로 이처럼 쉽게 속는 눈이 없다면 감상할 수 없게 된다.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앞에 두고, 여인의 은근한 미소가 아니라, ‘나무판 위에 칠한 물감’이라는 초라한 현실을 본다면 삶이 얼마나 재미없겠는가 말이다.
왜 모네의 일출은 생동감있게 보일까? 착시 현상?
 하버드대 의과대학의 마가렛 리빙스톤(Margaret Livingstone) 교수는 미술작품의 신비한 시각적 효과와 놀라운 감동이 인간의 눈이 가진 생리적 구조에 의존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클로드 모네의 [인상 : 해돋이]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인상 : 해돋이]는 글자 그대로 새벽녘의 희뿌연 안개 구름을 헤치고 밝게 떠오르는 해돋이의 ‘인상’을 포착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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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앞에서 그림을 보면 화가가 붓질을 몇 번 했는지 셀 수 있을 정도로 물감이 덕지덕지 칠해졌을 뿐인데, 이 거친 물감 자국들은 그림으로부터 한 발자국씩 뒷걸음질 칠수록 출렁이는 물결, 구름 사이로 피어 오르는 굴뚝의 연기, 그리고 불이 붙은 듯 새빨갛게 솟아오르는 태양이 되어간다. 이처럼 생동감 있는 빛의 떨림과 물결의 움직임은 우리 눈의 한계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하다는 것이 리빙스톤의 분석이다.
미술작품의 조형적 요소는 색채와 형태다. 이를 더 근본적으로 구분하면 색조(color)와 휘도(luminance)로 나뉜다. 대부분 색조는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밝은 정도를 말하는 휘도는 구분이 어렵다. 예를 들어, 회색 원이 두 개 있다면 어느 것이 더 밝은 지 알 수 있지만, 빨간 색과 파란 색 원이 있을 때 어느 쪽이 더 밝은 지는 잘 모를 것이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는 틀림없이 휘도의 차이가 있고, 우리 눈은 비록 우리가 자각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차이를 알아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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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 해돋이]의 그레이 스케일 변환 | |
[인상 : 해돋이]를 그레이 스케일(gray scale)로 변환하여 휘도 대비 영상으로 만들면, 태양은 주변의 구름과 물결에 완전히 파묻혀 보이지 않게 된다. 태양의 튀는 오렌지 빛과 그 주변 회색은 색조는 다르되, 휘도가 정확히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시각 체계에서 색조는 두뇌의 측두엽에서, 휘도는 그로부터 몇 센티미터 떨어져있는 두정엽에서 각각 따로 처리한다. 즉 이 둘은 마치 눈과 귀가 다른 감각 기관인 것처럼 해부학적으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두뇌는 휘도 대비를 통해 대상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 즉 바탕과 형상을 구분하고, 공간 속에서 대상이 차지하는 위치와 서로간의 깊이, 움직임 등을 파악하여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을 전반적으로 인지한다. 이러한 시각 시스템의 하위 체계를 ‘어디 시스템(Where system)’이라고 한다. 휘도 차이를 접수하여 시각적인 정보를 처리하는 ‘어디 시스템’은 진화 단계에서 대단히 일찍 발달된 능력으로 모든 포유동물이 갖고 있다. ‘어디 시스템’은 휘도의 미세한 차이를 매우 빠르게 구분하지만, 처리한 영상의 선명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색 구분을 할 줄 모르는 색맹이다. 색조를 처리하는 기관은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에게만 발달했다. 이는 얼굴을 비롯하여, 대상의 색조와 형상 안의 미세한 세부를 파악한다. 진화 상 뒤늦게 발달된 이 새로운 시스템을 ‘무엇 시스템(What system)’이라고 부른다. 영장류 이외, 말하자면 하위 포유류에서 ‘무엇 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은 이유 역시 진화로 설명할 수 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먹잇감이나 포식자처럼 움직이는 대상을 예민하고 재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지 대상의 색채나 정확한 형상까지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적은 휘도차로 인해 생동감 있게 흔들리는 이미지
 그렇다면 [인상: 해돋이]에서 태양과 주변 구름이 서로 완전히 다른 색조로 그려졌지만, 휘도의 차이가 없는 것은 어떤 시각적 효과를 가져올까? 우리의 ‘무엇 시스템’은 틀림없이 어슴푸레한 새벽 하늘에 떠오른 빨간 태양을 파악한다. 그러나 ‘어디 시스템’은 휘도 대비가 없는 이 두 대상의 위치와 깊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어느 것이 바탕이고 그 위의 형상인지도 구분하지 못한다. 따라서 태양과 물결, 구름은 한 곳에 고정되지 못하고 한없이 흔들리듯 보인다. 그야말로 이글이글 움직이는 듯한 태양빛의 효과가 완성된 것이다. 모네가 정확하게 일출의 장면을 재현하려고 했다면, 태양은 하늘보다 훨씬 더 밝아야 한다. 그러나 만일 태양의 휘도를 높여 지금보다 밝게 처리했다면 (물론 실제 태양빛의 휘도를 묘사할 수 있는 물감은 존재하지 않지만), 결과는 지금과 같이 눈부시게 빛을 반사하는 태양이 아니라 구름 위에 오려 붙인 색종이처럼 동동 떠있게 된다는 것이 리빙스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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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장퇴유 외곽의 양귀비 꽃밭]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의 ‘무엇 시스템’은 푸른 잔디와 붉은 꽃, 여인의 회색 스커트를 쉽게 구별하여 알아본다. 그러나 우리의 ‘어디 시스템’이 각각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기에는 이들 사이에 휘도 대비가 부족하다. 따라서 ‘어디 시스템’은 대상들의 상대적인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안정된 공간감을 확보하지는 못한다. 그럴수록 푸른 잔디 위에 만발한 붉은 꽃들은 살랑거리는 실바람에 한들거리는 것이다. | |
사물이 우리 눈에 실제로 ‘어떻게’ 보이는가?

모네의 [1878년 6월 30일의 페스티발, 파리의 몽토게이 거리]는 수 백개의 창문에 내걸려 펄럭이는 프랑스의 삼색기를 보여준다. 우리는 그림을 흘깃 보고도 청, 백, 홍으로 나뉜 삼색기가 나부끼는 것을 알아본다. 그러나 가까이서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면 곧 각각의 색채는 결코 실제 깃발처럼 가지런히 칠해지지 않았고, 다만 흰 색과 푸른 색, 붉은 색이 무작위로 여기저기 칠해졌을 뿐이란 걸 알게 된다. 산만한 붓자국들은 사실 삼색기와 전혀 닮지 않았다.
리빙스톤은 우리 눈의 중심 시야와 주변 시야의 차이로 이를 설명한다. 우리의 눈은 시야의 중앙에 있는 대상과 그 주변에 있는 대상을 다르게 본다. 당연히 주변에 있는 대상은 선명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위치 또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주변 시야에 위치한 사물이 불완전하게 보일 지라도, 이미 그 사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부정확한 이미지의 편린들을 이어 붙여 완전한 이미지로 파악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때로는 실제 보이는 대상과 있을 것이라고 믿는 대상 사이에 임의로 만들어낸 연결이 잘못되는 경우도 있다. 대개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장면의 경우 그런데 이를 ‘환영적 조합’이라고 부른다.
모네의 그림을 처음 흘깃 보았을 때는 완전한 깃발들로 보였다가 제대로 찬찬히 살펴볼 때 비로소 그들이 깃발이 아니라 세 가지 색깔이 엉성하게 여기저기 흩어져있음을 알게 된다. 실제로 우리가 바쁜 걸음으로 바람에 나부끼는 수 백 개의 깃발 사이를 스쳐 지나간다면 이러한 ‘환영적 조합’을 경험할 것이다. 모네의 그림이 생동감을 얻은 이유는 이처럼 순간적인 움직임, 그 속에서 일어나는 시각적인 현상 마저 그림 속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네는 그 시절에 이미 휘도 대비가 유발하는 ‘어디 시스템’의 혼란을 알고 있었을까? 중심시와 주변시의 차이를 연구했던 것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모네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은 시각과 광학, 색채학 등 과학적으로 가시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에 진지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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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눈 앞에 있는 사물이 ‘무엇’인가 보다는 그것이 우리 눈에 실제로 ‘어떻게’ 보이는가를 그리고자 했다는 점에서 과거의 미술가들과 확연히 달랐다. 그러나 그들의 성취는 여전히 과학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심미적인 직관의 소산이다. 모네의 붉은 해가 결국 우리의 측두엽과 두정엽 사이의 불완전한 의사소통 속에서 실수로 탄생한 착시효과라고 한들 그 감동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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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우정아 /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미술사 석사,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주립대학 (UCLA)에서 현대미술사를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발행일 2011.01.10
이미지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