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소외(疏外) 현상
오늘날 고도로 발달한 정보통신과 생명공학 기슬 등은 인류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인간은 과학기술의 성과를 바탕으로 기계문명을 발달시킴으로써 산업화를 이루었고, 자동화된 공장에서 상품이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단조롭고 반복적인 노동에서 해방되어 더 많은 여가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산업화를 통해 인간사회는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의 삶은 더욱 다채로워졌습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이처럼 긍정적인 현상만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현대 사회에 미치는 가장 큰 부정적인 영향 중 하나가 바로 인간소외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현대인 모두가 공통적으로 직면한 가장 큰 문제가 인간 소외입니다. 소외란 인간이 마주하고 있는 대상 세계의 모든 것이-우리 주변의 사물이나 물건들, 사회 제도나 문화 현상들, 자연계, 그리고 종교 등-마땅히 '인간에 의한' '인간의', 인간을 위한'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의미를 상실하고 나와 무관하고 무의미한 물체 덩어리처럼 느껴지는 사물화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 주체와 끊임없이 교섭하고 교감하면서 살아 움직여야 할대상들이 경직된 죽은 물체처럼 되어 인간으로 하여금 소외감과 무력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 자신도 대상계에 관여하면서 창조적인 삶을 살아야 마땅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외부세계와 담을 쌓고 개인의 내면에만 머물게 되어 정상적 인간으로서의 본성과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 하지 못하는 자기 소외를 겪게 됩니다. 대상계가 의미를 상실한 채 아무 말 없이 거대한 물체로 변해서 우리를 가만히 지켜봅니다. 의미가 없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우리도 그냥 무관심하게 쳐다 볼 뿐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며 살아가야 할 우리 주위의 사람들도 타자처럼 느껴집니다. 인간은 이제 각자 자기 자신에 갇혀 고립된 삶을 사는 외로운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현대인의 삶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더 이상 불교에서 말하는 인생무상이나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죄악이 아니라 바로 삶과 존재의 무의미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인간 소외의 가장 대표적인 삶의 영역은 의외로 종교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종교에 심취한 사람, 종교가 사회생활의 전부가 되다시피 한 사람을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 신앙심이 깊다는 것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종교가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종교의 노예가 되어 종교를 위해 살다시피 하는 데 있습니다. 종교가 한 사람의 이성적 사고나 비판적 의식을 철저히 마비시켜서 그로 하여금 정상적인 사회생활이나 문화생활을 못하게 하고 자유롭고 창의적인 삶을 사는 데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에 의해 철저히 지배받고 조정받는 타율적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술과 도박으로 인생을 망친 사람도 많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종교에 의해 소외되고 비인간화된 사람도 허다합니다. 종교의 사명은 인간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종교도 세상의 여느 사회 제도니 문화 현상처럼 우리 인간이 자신을 위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경전은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세상 여타 사물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역사적 조건과 문화적 상황에서 쓰인 것입니다. 종교에 의한 인간의 비인간화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경전을 신처럼 절대화하거나 숭배하는 문자주의 신앙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습니다. 불교에서 깨달음을 실현하기 위해 수행을 한다는 명분으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 자체를 죄악시 하거나 억압하는 지나친 금욕주의로 인간을 억압하고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종교적 우상숭배는 세속적 우상숭배 보다 더 위험합니다. 세상의 여타 제도나 문물은 오히려 시간이 경과하면 자연스럽게 변해가지만, 종교의 이름으로 생겨난 것들은 성스러운 것으로 간주 되면서 쉽게 변하지 않고 경직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절대화되고 사물화되기 쉽고 인간 소외를 야가 하기 쉽습니다. 종교의 가시적인 요소를 예를들면 제도나. 경전, 교리, 성직, 건물, 각종 의례나 상징물 등을 초월적이고 신비스러운 것으로 간주하는 종교적 우상숭배'가 문제입니다.
성스러운 권위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그만 쉽게 간파하기 어렵고 비판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인간이 산출한 객체들임에도 일단 종교의 탈을 쓰면 고정불변하고 영원한 것으로 절대화되고 사물화됨에 따라 인간을 지배하고 억압하고 비인간화하는 기제로 둔갑하기 쉬운 것입니다.
대상제에서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것은 종교만이 아닙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돈의 마력과 유혹, 자본의 횡포, 온종일 단조로운 일을 기계처럼 반복해야 하는 임금노동, 상상조차 못할 인격적 모독을 허용하는 갑과 을의 관계 등, 이런 것들이 모두 인간을 비인간화하고 있습니다.
가장 본질적인 것은 우리가 과연 어떤 세계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인간으로서 의식하고 반성하는 일입니다. 소외가 소외인 줄을 알아야 점점 더 비인간화되고 있는 현대 문명에 돌파구는 아니더라도 작은 구멍 하나 틈새 하나라도 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냥 남들 하는 대로 적당히 따라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 고민한다고 뭐가달라지나 하고 체념해 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는 영원한 국외자로, 방관자로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이며, 아니면 고작해야 혼자 잘났다고 착각하면서 자기 모습은 생각지도 않고 무슨 일에든 반대와 비판만 하는 냉소주의 자라 하겠습니다. 근본에서 흔들리고 무너지면 정말 우리 사회, 우리 문화는 희망이 없습니다. 아니 무너진 지 이미 오래라고, 그래서 이제는 '구제불능'이라고 항변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간 소외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인간 소외는 풍요로운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라 하겠습니다. 21세기 과학문명 시대 우리에게 남겨진 시급한 과제는 인간 소외를 해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