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밴쿠버문학 신춘문예 공모전 총심사평
우리 함께 고독한 자기 도전의 승자가 되자
심사위원장 안봉자 (시인, 수필가)
사)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지부 회원
문학계의 봄은 단연코 “신춘문예”로 온다.
“등단”이 예비 작가들이 자신의 문학적 소질과 역량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기성 작가 반열에 오르는 첫 디딤돌이라 한다면, 신춘문예는 신년 초에 신문사나 잡지사에서 문예 작품 공모전을 통해 신인 작가를 발굴하여 기성작가의 반열에 올려주는 연례행사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한국문협 밴쿠버 지부의 봄은 신춘문예 공모전을 걸쳐 소설, 시, 수필, 3개 부문에서 배출한 7인 신예들의 빛나는 날갯짓으로 왔다.
영예의 늘샘 반병섭 문학상 대상은 고현진 님의 소설 <오래된 마음>이 선정됐다.
<오래된 마음>은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고통당하는 어머니와 함께 불행한 소녀기를 보낸 주인공 ‘나’가 현실과 과거의 아픈 기억 사이를 넘나들며 겪는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도 놓아버리고 결국 스스로 죽음의 길로 걸어들어가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잔잔하게 전개되는, 사유 깊은 작품이다. 심사를 맡은 김해영 소설가는 “다소 익숙한 주제지만 색다른 배경과 소재로 페퍼민트의 향을 입힌 듯 참신함을 준다. 특히 그물망처럼 잘 짜인 구성과 무리 없는 전개, 수선스럽지 않고, 부족함이 없는 알찬 문장력이 돋보였다.”고 평했다. 고현진 님의 늘샘 반병섭 문학상 대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시 부문에는 응모자 6명, 31편의 작품이 접수되었다. 그중 2명은 응모 규정과 심사 기준 불충분으로 탈락되고 1명은 기권하여, 총 15편이 심사대에 올랐다.
반현향 님의 시들은 전반적으로 수준이 고르고, 시적 정서와 이미지의 형상화가 돋보였다. 어휘의 함축성과 부드러운 운율 형성에 좀 더 신경을 쓴다면 앞으로 반드시 더 좋은 시들을 탄생시킬 것이라 믿으며, <늙어가는 마음>을 뽑아 차하로 올린다. 입선을 축하드린다.
김보배아이 님의 시들은 상징적 비유의 형상화가 좋고 사유도 깊은데 시적 정서와 시어의 함축성에 취약했으며, 줄리아 헤븐 김 님의 시들은 시적 정서와 사유는 괜찮은데 장황한 상징과 비유들로 하여 시적 형상화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 그래도 시구(詩句) 여기저기에 반짝이는 시어들과 시작(詩作)의 야심 찬 열정이 앞으로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완성도 있는 시를 쓸 역량이 보이므로, 김보배아이 님의 <해부 아(我)>와 줄리아 헤븐 김 님의 <밤의 캔버스 아래>를 장려상에 올린다. 두 분의 다음 시적 행보에 큰 기대를 건다.
수필부문 당선작들은 아직 더 다듬고 연마해야 할 부분이 많이 눈에 띄었지만, 글 속에 녹아있는 진솔한 인성과 문학으로 향한 열정을 높이 사기로 했다. 당선작의 완성도를 보는 문학상들과 달라서, 신춘문예는 수상 작품 한두 편이 아니라 계속 작품을 쓸 수 있는 역량과 성장의 가능성을 보는 심사이기 때문이다.
세 당선작을 함께 들여다본다:
양한석 님의 <고귀한 분실>은 주제 의식이 분명하고 소박한 표현력도 있어 앞으로 더욱 좋은 수필을 쓸 역량과 가능성이 보인다. 그러나 글의 소재들이 진부하고 가끔 되풀이되는 비슷한 맥락의 문장과 단어들이 지루한 감을 주는 게 흠이다. 간결한 문장과 적절한 어휘 선택을 염두에 두고 더욱 정진할 것을 당부하며, 차상으로 뽑아 올린다.
예종희 님의 <말의 무게를 넘어서>는 사유가 논리적이고 한 주제를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 있다. 글을 많이 쓰는 분이고 필력도 있으나, 글의 소재들이 일반적인 데다 관념적 단어가 많아서 쉽게 마음에 와닿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차하로 뽑아 올린다.
이형만 님의 <홍안에서 노안으로>는 주제 의식이 있고 그 나름의 사유도 보인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험의 나열인데다 정제되지 못한 문장과 적절하지 못한 단어들이 자주 눈에 띈다. 다양한 소재와 대상을 찾아 열심히 습작하길 바라며, 장려상으로 올린다.
이번에 응모작품들을 심사하며 발견한 두 가지 공통 취약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철자법과 띄어쓰기에 몹시 허약함이고, 둘째,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문장에도 문격이 있음을 잊은 듯한, 정제되지 못한 어휘들이다. 문인이라면 누구나 올바른 철자법과 순화된 언어 사용이 기본임을 명심해야겠다.
문학은 고독한 자기 도전의 언어 예술이다. 특히, 상용하는 국어가 전혀 다른 이민지에서의 언어 예술은 더욱 그러하다. 오직 자신이 타고난 문학적 역량과 소질을 활짝 피워내기 위해, 끊임없는 연마와 혼불 태우는 자기 도전이 있을 뿐이다.
이 봄에 새로 탄생한 다섯 신예와 두 기존 회원의 재등단을 온 마음 다해 축하드린다. 우리 함께 그동안 안으로 키워온 문학적 소질을 꾸준히 발굴하고 연마하여 고독한 자기 도전의 승자들이 되자. 아울러, 올해 입상하지 못한 분들도 더욱 정진하여 다음 기회에 꼭 다시 도전하시라고 격려와 당부의 말씀을 드린다.
늘샘 반병섭 문학상 부문별 심사위원과 최종 순위는 다음과 같다.
[심사위원]
소설: 김해영
시: 김석봉, 임현숙, 송무석
수필: 심현섭, 민정희, 박혜정
[최종 순위]
대상: 소설- 오래된 마음/고현진
차상: 수필- 고귀한 분실/양한석
차하: 시- 늙어가는 마음/반현향
차하 수필- 말의 무게를 넘어서/예종희
장려: 시- 해부 아(我)/김보배아이
장려 시- 밤의 캔버스 아래/줄리아 헤븐 김
장려 수필- 홍안에서 노안으로/이형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