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준비하는 마음’(마태 26:14-27:66)
이세희 요셉 부제 / 봉명동교회
‘인생아 기억하라. 그대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재의 수요일 예식으로 시작된 사순절기가 어느덧 성지·고난주일을 지나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공동체는 성지가지를 축복하고 수난복음을 낭독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합니다. 제대와 독서대의 휘장, 사제의 제의는 자색에서 홍색으로 바뀌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색보로 가려진 성당 안 십자가입니다. 오늘부터 성 금요일까지 성당안에 있는 십자가는 가려집니다. 이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십자가가 아닌 내 안에 있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의 고난에 참여합니다. 이렇게 고난주일은 우리에게 여러 상징을 통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할 것을 요청합니다.
여러분은 언제 가장 마음이 상하고 답답하십니까? 이러한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배우자, 자녀, 친구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 때라고 대답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 진심이 왜곡되거나 오해받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죠. 반대로 누군가 나의 마음을 공감해주고, 알아주는 순간은 모든 아픔을 잊게 만들어줍니다.
오늘 수난복음에는 가리옷 사람 유다, 베드로와 제자들, 대사제와 율법학자, 총독 빌라도,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 등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예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이들은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을 오해하고,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오해는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내 기준으로 바라볼 때 나타납니다.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해주지 않을 때 오해가 시작됩니다.
가리옷 사람 유다는 예수님을 은전 서른 닢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봅니다. 오랜시간 예수님을 따르며 제자의 삶을 살아왔지만 그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주님을 배반하고 은전 서른 닢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죄책감과 죽음이었습니다. 유다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 역시 예수님께서 대사제들과 원로들이 보낸 무리에게 잡혀가는 모습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달아납니다.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큰소리를 쳤던 베드로마저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하고 잡아떼는 모습을 수난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오랜시간 지켜왔던 자신들의 권위가 위협받자 예수님을 오해합니다. 예수님을 빌라도 총독에게 끌고가 거짓증언을 하면서까지 죽이려고 합니다. 그들의 눈에 예수님은 한 때 인기를 끌었던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인기가 자신들의 안정을 위협하자 예수님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군중들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성지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 하고 환호를 보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환호는 오래가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박으시오’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했을까요? 그들이 원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로마의 억압으로부터 구원해줄 예수님, 항상 배부르게 먹여주시는 예수님, 아프지 않고 평생 건강하게 살게 해주시는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환호속에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순간까지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구원자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 죽음을 향해 가시는 힘 없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들의 믿음도 사라져갑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 대사제와 원로들 그리고 십자가에 함께 달린 강도들은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우리를 살려보아라’고 예수님을 모욕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광야에서 악마에게 받은 시험을 시작으로 십자가에 달리는 순간까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라는 유혹과 맞서는 삶이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하느님의 아들은 고난 없이 영광만을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배부르고, 걱정없이 내 뜻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수난복음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봅니다. ‘나는 주님을 오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 뜻을 이뤄주시는 분, 나를 배부르게 해주시는 분, 고난을 비켜가게 하시고, 영광을 주시는 분’으로 오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대전교구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으로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누구도 하느님의 뜻을 알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아셨기에 두려움과 유혹 앞에서도 기도하시고,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2 독서의 사도 바울로는 필립보 교인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성 주간을 살아가며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우리가 주님을 왜곡하고 오해하게 만드는 욕심과 교만함을 내려놓고 주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