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박유하교수에 대해 26일 대법원이 무죄 취지 파기 환송 판결을 내렸다. 지난 2015년 기소 후 8년 만이다. (이상 2023년 10월 27일자 조선일보 기사 전재)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이다.
일본군 위안부문제는 인간의 "성"에 관련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성적으로만 다루기에는 매우 어렵고 복잡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천학비재한 나로서는 감히 언급을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 복잡다단한 문제의 전부를 다룰 염두는 애당초 없으며 단지 일면만 여러분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제국주의적 정부가 식민지와 점령지 백성에 대해 행한 가혹한 탄압, 인권유린의 대표적 사례로 주장되고 있다. 조선과 동남아의 여성들이 종군위안부가 되도록 강요된 것은 그들이 식민지와 피점령지의 백성이었기 때문이라는 논리이다. 이 주장은 상당 부분 맞다고 하겠으나 전부 맞는 것은 아닌데, 그 까닭은 일본군이 위안부 사역을 일본 여인들에게도 강요했다는 증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안부 문제가 생겨난 더 중요한 근원적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보아야 한다. 전쟁의 속성(무자비함과 수치심의 마비)가 일본 국민의 전체주의적 사고 및 낮은 민도와 결합하여 만들어낸 비극적 사태라고 봄이 더 적확하지 않을까?
나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일본 작가 오오카 쇼헤이의 "포로기" 일 부분을 아래에 전재한다. (출전은 문학동네간 허호옮김 "포로기") 이 포로기는 작가인 오오카 쇼헤이가 1944년 7월 필리핀 민도로섬에 파병되어 1945년 1월 25일 미군에게 포로로 잡혀서 겪은 자신의 체험을 생생히 담은 소설이다.
<그는 세부의 산 속에서 처음으로 여자를 알았다. 부대와 행동을 같이 하던 종군 간호사들이 병사들을 위안했다. 한 장교가 독점하던 간호부장이 자진해서 건의했다는 것이다. 그녀들은 종군위안부처럼 가혹한 조건은 아니었지만 하루에 한 사람씩 병사를 상대하도록 강요당했다. 산속의 사기 유지가 구실이었다. 응하지 않으면 식량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어땠어?"
나는 웃으면서 물었다. 그는 약간 얼굴을 붉히며 우물거리더니,
"끝나자, 여자가 '실례했습니다.'라고 말하더군요."라고 대답했다.
곁에서 듣고 있던 취사원은 소리내어 웃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래서 자네는 '수고하셨습니다.'라며 경례를 했지?"
도미나가는 눈이 둥그레졌다.
"어떻게 아십니까? 바로 그대로입니다.">
이 증언에 대해 포로기가 소설이므로 이것도 허구일 것이라고 의심하는 독자들에게 나는 이렇게 반박하겠다. "일본 땅에서 사는 그 어떤 일본인도 그렇게 조국의 명예를 치명적으로 손상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다음 여기에서 종군간호사들이 필리핀 여자들에 틀림없다고 주장하는 독자가 있다면 나는 이 점을 참고하라고 권하겠다. 그런 상황에서 "실례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여성은 지구 상에서 오직 일본 여인들 뿐이라는 점을.
전쟁은 숙녀가 정조를 초개처럼 내버리게 만드는 괴물이다. 그래서 전쟁이 무섭다는 것이리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