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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언
(楊士彦)과 그의 어머니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이 詩는 우리가 알기로는 양사언이 모든 일에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교훈 조 詩로만 알고 있었는데 깊은 내력을 살펴보니 처절하게 살다간 어머니를 그리는 詩라는 해석이 KBS 역사 이야기에서 밝혀졌다.
우리 선조들로부터 현세에 이르기 까지 위대한 인물들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까지도 대부분 그들 어머니의 은공이 뒤에 숨어 있고, 이러한 모성애의 은공으로 훌륭한 인물은 더욱 훌륭한 인물로 재탄생 되어질 수 있었다.
우리들도 익히 알고 있는 율곡과 신사임당, 만호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 모르는 분들이 없을 것이다. 아들을 훌륭하게 키운 대표적 한민족의 어머니이리라.
그러나 "양사언과 그의 어머니"에 대하여 아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다.
양사언의 아버지 '양 민'이 전라도 영광의 사또로 부임해 내려가는 꽃 피는 삼월의 어느 날 어느 촌 고을을 지날 즈음, 농번기라 사람들이 집에 없었다.
이 집 저 집 둘러보는 중에 어느 한 집에서 한 소녀가 공손하게 나와 식사 대접을 하겠노라고 아뢴다.
그리고는 신관 사또가 거리에서 식사를 할 수 있겠냐고 하며 안으로 모시고 부지런히 진지를 지어 올린다.
하는 태도나 말솜씨가 어찌나 어른스러우며 예의 바른지 사또는 너무나 기특하게 여긴다.
조반을 잘 얻어먹은 젊은 신관 사또 '양 민'은 고마움에 보답을 하게 되는데...
신관 사또 '양 민'은 소매에서 부채 靑扇(청선)과 紅扇(홍선) 두 자루를 꺼내 소녀에게 준다.
그냥 전달하기는 멋쩍어 농담을 섞어 "이는 고마움으로 내가 너에게 채단 대신 주는 것이니 어서 받으라."
‘채단'이라 함은 결혼 전에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보내는 청색홍색의 옷감들이 아닌가.
깜짝 놀란 소녀는 안방으로 뛰어가 장롱을 뒤져 급히 홍보를 가져와서 바닥에 깔고 靑扇(청선), 紅扇(홍선)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어리둥절한 사또는 왜 그러냐고 묻는다.
"폐백에 바치는 채단을 어찌 맨손으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한다.
홍보 위에 놓여졌고 소녀는 잘 싸서 안방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세월이 흘렀다.
사또 '양 민'이 이런 저런 업무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한 노인이 사또를 뵙자고 찾아 왔다.
"몇 년 전 부임할 때 시골집에 들려 아침 식사를 하고 어느 소녀에게 靑扇(청선), 紅扇(홍선) 두 자루를 주고 간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사또는 조금 생각하다가 "그런 일이 있었다. 그리고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말하며 아직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노인은 이제서야 의문이 풀렸다는 듯 고개를 끄떡이며 다시 말한다.
"그러셨군요.
그 여식이 과년한 제 딸년인데 그 이후로 시집을 보내려 해도 어느 곳으로도 시집을 안 가겠다고 해서 영문을 몰라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또의 머리속엔 어떤 느낌이 스쳐 지났는지 모두 느끼리라.
"그 정성이 지극하거늘 내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소. 날짜를 잡아 아내로 맞겠소"
식사 한 끼 얻어먹고 대가로 부채 두 자루 선물했으면 밥값으로 충분할 텐데, 졸지에 아내로까지 맞이하게 되었으니 운명의 장난인가, 신의 축복인가!~
어디 삼류 드라마 같은 이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이다. 이 소녀가 바로 후에 양사언(楊士彦)의 어머니가 된다.
중요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사또는 정실부인이 있었고 이 부인과의 사이에 '양사준'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리고 후처, 즉 소실인 이 소녀와의 사이에 士彦(사언)과 사기, 두 아들이 탄생한다.
사준, 사언, 사기, 이 삼형제는 자라며 매우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 났으며 풍채도 좋아 주변으로부터 칭송이 끊이질 않았다고 하며, 형제애가 깊어 중국의 '소순, 소식, 소철' 삼형제와 비교되기도 했다고 한다.
정실부인이 죽고 모든 살림살이를 후처인 사언의 어머니가 도맡아 하게 되고 아들들을 훌륭하게 키웠다.
그러나 아들들이 아무리 훌륭하면 뭐하냐 서자들인데...
이 소실부인의 서러움과 한탄은 적자가 아닌 서자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실부인의 꿈은 자기 아들들의 머리에서 서자의 딱지를 떼 내는 일이었다.
'양 민'이 죽고 장례 날에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눈물 흘리며 말한다.
"양씨 가문에 들어와 아들을 낳았으며, 아들들이 재주 있고 총명하며 풍채도 있거늘 첩이 낳았다 하여 나라 풍습은 그들에게서 서자의 너울을 벗겨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장손인 적자 양사준에게 울면서 부탁한다.
"첩이 또한 이 다음에 서모의 누를 가지고 죽은 후라도 우리 큰 아드님께서는 석 달 복밖에 입지 않으실 터이니, 이리 되면 그때 가서 내가 낳은 두 아들은 서자 소리를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지금 영감님 성복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복제가 혼돈하여 사람이 모르게 될 것입니다.
내 이미 마음을 다진 몸, 무엇을 주저 하오리까 만은 내가 죽은 뒤 사언, 사기 두 형제한테 서자란 말로 부르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죽어서도 기꺼이 영감님 곁에 누울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양사언의 어머니는 가슴에 품고 있던 단검을 꺼내 자결을 하고 만다.
아들들이 그녀를 부둥켜안았을 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아들을 서자의 멍에를 풀어주고 떳떳하게 세상을 살아가게 하고 싶었던 여인, 죽음으로써 부조리한 인간 차별화를 타파하고 싶었었던 선구자적인 신여성 이 어머니의 죽음은 양사언이 더욱 훌륭한 문인이 되는데 자양분이 되었으리라.
양사언(楊士彦)은 후에 장원 급제하여 높은 관직에 오르게 되고 만호 한석봉과 추사 김정희와 더불어 조선 3대 서예가로 이름을 떨쳤다.
<글 보내주신분 : 박종현/Amkor Technology Korea(株) 常務理事 역임, 亞親會 顧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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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행복한 사람이란걸 알고 있나요?
어느 미국 교회에서
선교사를 파견하려고
헌금(獻金)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이 교회에서는
헌금 접시를 돌리기 때문에
얼마를 헌금하는지 옆의 사람들도
다 볼 수가 있었습니다.
헌금 접시가 어느 시각장애인 앞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많은 헌금을 할 수 없는
어려운 형편의 사람인 것을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270불을 접시에 세어서
놓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옆 사람이 물었습니다.
"아니, 당신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헌금합니까?"
시각장애인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눈이 안 보입니다.
그런데 제 친구에게 물어보니,
밤에 방 하나에 불을 켜는 비용이
일 년이면 270불이 든다고 하더군요.
나는 방에 불을 켜야 할 필요가
없으니까 일년이면 이 만큼의 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 복을 받았구나
생각하고, 그걸 모은 거죠.
그래서 그 은혜를.....
모르고 어두움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참 빛, 복음의 빛이
비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 묵상(黙想) ♡
지금 내 집에 전기가 들어온다면,
전기 없이 사는 20억의 사람들보다
나는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 집에 마실 식수가 들어온다면,
마실 물이 없어 고생하는
10억 명의 사람보다
나는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루에 10,000원 이상의 돈으로
살고 있다면,
10,000원이 없어 가난의 굴레에서
힘겹게 사는 12억의 사람보다
나는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루에 한 끼라도
따끈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그 한 끼의 음식이 없어
영양실조에 걸린 8억의 사람보다
나는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아침에
건강한 몸으로 일어났다면,
이번 주를 넘기지 못하고
죽어야 할 불치병에 걸린
100만 명의 사람보다
나는 더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먹을 음식이 있고 입을 옷이 있고
잠을 잘 보금자리가 있다면,
인류의 3/4의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 은행에 여분의 돈이 있고
집안의 어느 곳에 동전을 모으는
동전 통이 있다면,
이 지구상의 8%에 드는
행복한 부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사람입니까?
행복한 사람입니까?
불행한 사람입니까?
앞이 안 보여 밤에 불을 안 켜도
되는 것을 복(福)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아낀 돈 270불을
헌금(獻金) 접시에 담은
앞 못 보는 장애인을 보면서
사는 법을 배워야하겠습니다.
읽고 또읽고 다시 생각하여도 스스로 자족할줄 알고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항상 열심히 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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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가슴에 감동을 준
어느 추운 눈 내리는 겨울밤,
막 잠을 청하려고 침대에 누었는데
누가 사제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귀찮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제로 살아가는 내가 찾아온 사람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었습니다.
불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습니다
문 앞에는 험상궂은 나병환자가
추워서 벌벌 떨며 서있었습니다.
나병 환자의 흉측한 얼굴을 보고 섬칫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죄송하지만
몹시 추워 온 몸이 꽁꽁 얼어 죽게 생겼네요.
몸 좀 녹이고 가게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문둥병 환자는 애처롭게 간청을 했습니다.
마음으로는 솔직히 안된다고 거절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사제의 양심에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못해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주고
안으로 안내 했습니다.
자리에 앉자 살이 썩는 고름으로 심한 악취가
코를 찔렀습니다
“어떻게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니요
벌써 며칠째 굶어 배가 등가죽에 붙었습니다.”
나는 식당에서 아침식사로 준비해 둔
빵과 우유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문둥병 환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빵과 우유를 게걸스럽게 다 먹었습니다.
식사 후 몸이 좀 녹았으니
나병환자가 나가주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문둥병 환자는 가기는 커녕
기침을 콜록 이며 오히려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성도님! 지금 밖에 눈이 많이 내리고 날이 추워
도저히 가기 어려울것 같네요.
하룻밤만 좀 재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할 수 없지요. 누추하기는 하지만,
그럼 여기 침대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시지요.”
마지못해 승낙을 했습니다.
염치가 없는 문둥병 환자에게 울화가
치밀어오는 것을 꾹 참았습니다.
혼자 살고 있어서 침대도 일인용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침대를 문둥병 환자에게 양보를 하고
할수없이 맨바닥에 자려고 하였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문둥병 환자는 또다시 엉뚱한 제의를 해 왔습니다.
“성도님, 제가 몸이 얼어 너무 추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네요.
미안하지만 성도님의 체온으로
제 몸을 좀 녹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처구니없는 문둥병환자의 요구에 당장 자리에 일어나 밖으로 내 쫓아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신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며 꾹 참고
그의 요구대로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문둥병환자를 꼭 안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차마 상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일인용 침대라 잠자리도 불편하고 고약한 냄새까지 나는 문둥병 환자와 몸을 밀착시켜 자기 체온으로 녹여주며 잠을 청했습니다.
도저히 잠을 못 이룰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꿈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꿈속에서 주님께서 환히 기쁘게 웃고 계셨습니다.
“프란시스코야! 나는 네가 사랑하는 예수란다.
네가 나를 이렇게 극진히 대접했으니
하늘에 상이 클 것이다.”
“아 주님! 나는 아무것도 주님께 드린 것이 없습니다.”
꿈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자리에 일어났습니다.
벌써 날이 밝고
아침이었습니다.
그러나 침대에 같이 자고 있어야 할 문둥병환자는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름냄새가 베어 있어야할 침대에는
오히려 향긋한 향기만 남아 있을 뿐
왔다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아! 그분이 주님이셨군요.
주님이 부족한 저를 이렇게 찾아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모든 것을 깨닫고 밤에 문둥병 환자에게 불친절했던
자신의 태도를 회개하며 자신과 같은 비천한 사람을
찾아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이 기도가 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프란시스코’의 ‘평화의 기도’입니다.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가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 용서 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가 바로 전세계에서 가장⁶ 사랑받는
‘프란시스코’의 ''평화의 기도'' 입니다.
Merry Christm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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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와 지혜
태양(太陽)이 지면
그때가 저녁입니다.
결정(決定)은 태양 (太陽)이 하듯
인생 (人生)도 그때를 스스로 정(定) 하지 못합니다.
돈은 가치(價値)를 묻지 않고
오직 주인 (主人)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몸이 지치면 짐이 무겁고,
마음이 지치면 삶이 무겁습니다.
각질(角質)은 벗길수록 쌓이고
욕심(欲心)은 채울수록 커집니다.
댐(dam)은 수문
(水門)을 열어야 물이 흐르고
사람은 마음을 열어야
정(情)이 흐릅니다.
몸은 하나의 심장
(心臟)으로 살지만
마음은 두 심장(心臟)인 양심(兩心)으로 삽니다.
친구(親舊)라서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게 아니라
친구(親舊)라서
이래선 안 되고
저래선 안 된다는 것을 명심(銘心) 해야 합니다.
때론 침묵(沈默)이
말보다 값진 것이 되기도 합니다.
함부로 내뱉은 말은
상대방(相對方)을
공격(攻擊)하게 되고
다시 나를 공격(攻擊) 하게 만드는 원인(原因)이 됩니다.
나이가 들면 어느 순간(瞬間) 젊은 날이 그리워지고,
시간(時間)을 되돌리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나이를 먹는 동안 소중(所重)한 경험(經驗)을 통해서
연륜(年輪)과 지혜 (智慧)가 생깁니다.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입니다.
첫댓글 아!
차카게 살자!!!
전 차카게 살려고 노력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