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갈리디아 교인들에게,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끝을 맺으려 하느냐고 야단치면서, 아브라함의 경우를 예로 들어 율법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믿음의 의미에 대해 설명합니다. 모세의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인으로 인정해주신 것처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율법의 행위에 의지하는 사람은 저주 아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율법의 의미는 무엇이냐고 묻고 싶어질 텐데, 이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21~25절을 보겠습니다.
21 그렇다면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과는 반대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어진 율법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의롭게 됨은 분명히 율법에서 생겼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성경을 보면 모든 것이 죄 아래 갇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약속하신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근거하여,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려고 한 것입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의 감시를 받으면서, 장차 올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다.
24 그래서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개인 교사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게 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25 그런데 믿음이 이미 왔으므로, 우리는 이제 개인 교사 밑에 있지 않습니다.
율법은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한시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예수님이 오셨으므로 그 굴레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논리입니다. 이어지는 본문 26~29절을 보겠습니다.
26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28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29 여러분이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있으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을 따라 유업을 이을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답니다. 종족과 신분, 남녀의 차이를 넘어서는 인권의 동등성과 절대성에 대한 대선언입니다. 이천 년 전 사람으로서 이런 인식을 했다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