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의 크리스마스]
1. 정원의 방(오전)
암전상태에서 타이틀이 뜨기 시작한다
화면이 밝아지면 잠을 자고 있는 한 남자의 얼굴이다.
평온히 자고있는 정원이 얼굴에 아침햇살이 닿는다.
2. 집 마당(오전)
마당 가운데 있는 수돗가. 소매 없는 런닝 차림의 정원이 이를 닦고있다.
부엌에서 머리가 희끗한 50대 후반의 남자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채 김이 나는 더운물을 담은 들통을 들고 나온다. 정원이 아버지다
들통을 정원의 옆에 내려놓고 정원 앞의 세숫대야에 더운물과 찬물을 잘 섞는 아버지
멀리서 확성기를 통해 학교 운동장의 소음이 들려온다
소리 : 열중 쉬어. 차렷, 교장선생님께 대하여 경례. 바로 열중 쉬어
다른소리 : 이어서 애국가 재창이 있겠습니다. 애국가는 1절부터 4절까지.
소리 : 전체 차렷.
아이들이 부르는 애국가 소리가 들린다. 정원 눈을 뜬다.
3. 운동장 옆 거리(오전)
학교 운동장이 내려다 보이는 거리를 스쿠터를 타고 달리는 정원
정원은 달리던 스쿠터를 잠시 멈추고 담 너머로 운동장을 바라본다.
운동장에는 줄지어 선 아이들이 방학식을 맞아 교가를 부르고 있다.
교가가 끝나고 아이들의 환호성 소리.
정원은 운동장의 모습이 재미있는지 씩 웃으며 바라보다 다시 스쿠터를 타고 달려간다.
4. 종합병원
종합병원의 진료실 앞 복도. 나무로 된 병원의자가 복도 양편에 놓여있고, 열 댓명 쯤 되어보이는 환자들이 무표정 하게 앉아 자기의 차례를 가다리고 있다.
그 중에 끼어있는 정원. 정원은 머리를 벽에 기대고 편안히 앉아있다. 정원의 맞은 편에는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앉아 바닥에 닫지 않는 두발을 흔들며 앉아있다 . 그 아이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바라보는 정원
5. 학교 운동장
여름방학을 막 시작한 텅빈 운동장.
멀리서 스쿠터 한 대가 털털거리며 운동장 안으로 들어온다.
여름 햇살에 이파리를 반짝이며 바람에 물결치는 미루나무.
운동장 한 끝에 스쿠터를 세우고 나무그늘 아래 벤치에 앉는 정원
정원은 벤치에 몸을 기대고 한낮의 텅빈 운동장을 바라본다.
나레이션 ; 내가 어렸을 때 아이들이 모두 가버린 텅빈 운동장에 남아 있기를 좋아했었다. 그곳에서 내 곁에 없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사라져 버린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운동장 끝에는, 미루나무들이 바람에 살랑이고 매미 울음소리가 기승을 부린다.
6. 사진관
사진 현상기에서 나오는 사진들. 사진을 빼내어 봉투에 집어넣고,
색 연필로 사진 맡긴 사람의 이름을 써넣고 정리를 하는 정원.
머리 큰 여자 문을 열고 들어와 이름을 말하며 사진을 찾는다.
정원 여자에게 사진을 내준다.
명함판 사진.
사진을 꺼내 보는 여자, 고민스러운 표정이다.
여자 : 아저씨, 얼굴이 좀 이상하게 나왔어요.
7. 사진관 안 촬영실
머리카락으로 최대한 뺨을 가리고 포즈를 취하는 여자.
얼굴이 이쁜 이 아가씨는 머리카락으로 최대한 뺨을 가려 큰 얼굴을 작아 보이게 하려고 애쓴다
정원은 사진을 찍으려다 말고 머리에 가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여자의 모습에 난감해 한다.
8. 사진관 앞.
사진관 앞 도로에 주차단속반 차량인 티코가 멈춰선다
차에서 내리는 한 여자. 사진관 안으로 들어간다.
9. 사진관
화면에 가득 찾던 초점이 안 맞는 승용차 사진이 화면 밖으로 사라지면
주차단속반원 아가씨 다림이 서 있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지 새로 맞춤을 한 티가 나는 엉성한 옷차림을 한 다림은 주차위반 차량의 사진들을 바라본다
다림 : 번호판이 하나도 한 보이네.
정원은 난처해하는 다림의 모습을 보며 웃는다.
다림 : 왜 웃어요?
이상하다. 잘 찍었는데, 아저씨가 잘못한 거 아녜요?
정원은 당돌한 주차단속원 아가씨를 보고 웃는다. 다림은 한숨을 쉬고 사진을
가방에 집어넣고는 정원에게 카메라를 내민다.
다림 : 할 수 없죠 뭐. 아저씨 필름 좀 넣어 주세요.
정원 : 필름을 넣을 줄 몰라요 ?
다림 : 좀 해주세요.
정원 : 이리 와봐요. 가르쳐 줄테니 잘 들어요
정원은 다림에게 카메라를 받아 필름 넣는 것을 설명한다.
정원에게 머리를 가까이 대는 다림.
정원의 코끝에서 다림의 머리카락이 닿는다.
다림의 좋은 머리내음.
다림은 정원의 설명은 듣지 않고 정원의 옷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는
얼굴을 찡그린다.
정원이 눈치를 채고 당황하자 필름을 넣은 카메라를 빠르게 낚아채고는
시치미를 땐다.
정원 : 설명은 듣지 않고.. 아가씨, 셔터 누를 때 숨을 멈춰.
정원 손으로 카메라 모양을 만들어 시범을 보인다.
카메라를 들고 정원을 따라 하는 다림.
밖에서 크락션 소리.
다림 꾸뻑 인사를 하고 바삐 나간다.
10. 동네
사진관이 멀리 보이는 동네 전경
골목앞에 경광등을 반짝이는 앰뷸란스가 서 있고, 동네 꼬마들이 무슨 신기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주위에 모여든다.
골목에서 흐느끼는 한 가족이 나온다. 정원의 친구
골목 앞에서 기다리는 정원. 정원의 친구 철구가 가족들의 틈에서 빠져나와 꼬마 아이들 틈에
서 있는 정원에게 두툼한 앨범을 건내고 바삐 앰블란스에 올라탄다.
철구 : 니가 알아서 잘 좀 골라 봐.. 이따가 병원에서 연락할께.
요란하게 사이렌 소리를 내며 모여있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는 앰블란스.
11. 사진관
세월이 보이는 앨범속의 사진들
앨범을 펼쳐보고 있는 정원
이리 저리 들쳐보다 한 중년의 남자 사진을 앨범에서 빼낸다.
12. 화장터 (아침)
매미 소리가 귀 따갑게 들리는 이른 아침이 햇살인데도 무척이나 따갑다.
화장터 건물을 등뒤로 하고 정원과 철구가 벤치에 앉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철구 : 아버지 친구분들이 영정 사진보고 막 웃으시더라구 예날 생각이 났나봐
정원 : 너무 젊었을 때 사진을 썼나 ?
철구 : 아니야 한참 잘나갈 때 사진이라서 당신도 좋아하셨을거야
아버지하고 나하고 닮았다고 생각하긴 처음이야
정원은 그냥 웃기만 한다. 가족중 한 명이 철구를 부르자. 일어나는 철구
벤치에 홀로 남은 정원
정원 옆으로 미루나무들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그 밑으로 방금 도착한 상복을 입은 후즐근한 이가족이 휘적휘적 화장터로 향한다.
13. 사진관 앞
문 닫힌 사진관. 출장 중이란 팻말이 붙어 있다.
문 앞에 주차단속원 다림이가 서 있다. 뜨거운 여름 햇살에 피할 곳이 없어
땀을 흘리고 있다.
다림의 등 뒤로 검은 양복을 입은 정원이 다가선다.
깜작 놀라는 정원.
정원 : 여기서 뭐해요?
다림 : 한참 기다렸어요.
정원 : ....
다림은 대답을 안하고 더위에 지친 찡그린 얼굴로 정원이 문을 열도록
비켜선다.
14. 사진관 안
사진관 안으로 들어오는 정원.
약간 신경질이 난듯한 표정으로 따라 들어오는 다림.
정원은 들어오자 마자 몹시 피곤한 듯 대꾸도 하지 않고 소파에 쓰러져 털석 앉아
머리를 벽에 기댄채 눈을 감는다.
다림은 화가 더 난 듯이 팔장을 끼고 정원을 노려본다
정원은 눈을 감은채 어렵게 입을 연다
정원 : 이따가 오면 안돼요 ?
다림 : 이거 급한거니까 빨리 찾아오래요. 얼마나 걸려요 ?
당돌해 보이는 다림은 서너통쯤 되어보이는 필름을 사잔관의 유리탁자 위에 쏟아놓는다
다림은 정원이 아무런 대꾸를 안하자 머뭇거리며 사진관 밖으로 나간다
--시간 경과--
씻은 듯이 얼굴이 밝아진 정원은 선풍기를 들고 양복을 벗는다
통속의 필름들을 꺼내며 밖을 바라보는 정원
다림은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땡볕 아래 사진관 앞을 서성거리고 있다
15. 슈퍼 앞 (오후)
다림은 슈퍼 앞의 천막 그늘에 의지해 더위를 피하고 있다.
그녀 뒤로 정원이 하드를 빨며 나타난다. 다림은 정원의 모습에 민망해
하며 자리를 피하려 한다.
하지만 그늘 밖은 너무나 뜨겁다.
정원은 자기가 빨아먹던 하드를 다림에게 내민다
다리이 고갯짓을 하며 난처해 하자 다른손에 감추었던 하드를 내민다
다림도 자신이 미안했다는 듯 장난을 받아주며 하드를 받아 먹는다
정원 : 아까 저 때문에 화났었죠 ?
다림 : 아침부터 혼나고, 너무 더워서 그래요.
정원은 파라솔 그늘에 앉는다.
정원 : 이리와 앉아요.
다림은 힘없이 털썩 주저앉는다.
다림 : 더운건 정말 싫어요
정원 : 난 좋은데
다림 : 이번 사진은 어떻게 나올지..걱정된다. 이번에도 촛점이 안맞으면
그건 내 잘못 아니예요 아저씨 잘못이지
16. 정원의 집(저녁-비)
마당에는 잘 가꾸어진 화초들이 나란히 놓여 잎사귀마다 빗방울을
떨구어 내고 있다.
수돗가에 놓인 자주색 다라이 위에는 노란 바가지가 둥둥 떠 있고,
바가지가 움직일 때마다 다라이에 가득찬 물이 넘쳐 시멘트 바닥 위로
흘러내린다.
ㅁ자형으로 된 한옥의 마루 미닫이 문은 활짝 열려 있고,
마루 위에는 모시 옷을 입은 정원의 아버지가 선풍기 바람을 쐬며
누워 있다. 정원이 부엌에서 나와 마당을 가로질러 장독대 옆, 나무상자에
심겨져 있는 파를 몇 뿌리 캐내어 수돗가에서 씻는다.
조금씩 내리는 빗방울이 정원의 어깨를 적신다.
정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17. 지하상가. (오후)
수많은 옷가게들이 늘어선 지하상가.
접은 우산을 손에 쥔 다림이 옷을 구경하며 걷고 있다.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다
꽃가게 앞에서 꽃들을 구경하는 다림.
그녀는 상가의 가게들을 구경하며 비오는 오후를 소일하고 있다.
같은 길을 여러번 왔다 갔다 하는 다림.
18. 다림의 집(밤)
연립주택 문을 열고 들어서는 다림
어수선한 신발장과 널려 있는 신발들.
좁은 연립주택의 공간에는 버리지 못한 낡은 물건들이 잔뜩 널려 있다.
안방의 문이 잠시 열렸다가 닫힌다
아버지 : (소리) 뭐하다가 이렇게 늦게 들어오냐.
다림은 냉장고 안에서 김치를 꺼내고 랜지에 찌개를 데운다.
다림은 밥솥에서 밥을 퍼서 식탁에 놓고 찌개가 데워지기를 기다린다.
19. 다림의 방(저녁-비)
좁은 방 안에는 여자방이라고 할 수 있는 물건은 화장대와 옷장뿐이고
주방도구들이 상자에 담겨 옷장 위에 올려져 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 다림.
안방에서 들리는 텔레비젼 소리는 얇은 벽을 뚫고 다림의 방을 왕왕 울린다.
다림은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긴 한숨처럼 내뿜어져 나오는 담배연기.
창밖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다.
20. 사진관 .
사진관에는 세명의 남자 중학생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다.
그들은 정원 앞에 사진 한 장을 놓고 머리를 맞대고 있다.
한 눈에 개구장이들인 그들은 초등학생 티를 아직 못 벗은,
반에서 맨 앞 줄에나 앉을 것 같은 녀석들이다.
중학생 1 : 여기있는 애가 내가 찍은 애예요.
중학생 2 : 이 애는 내꺼예요.
중학생 2 : 뻥가고 있네. 이게 어디 예쁘냐? 아저씨 얘가 더 예쁘죠?
서로 자기가 찍은 여자들이 더 예쁘다고 아웅다웅한다
그 모습을 보고 웃는 정원
정원 : 이 걸 확대하면 좀 흐리게 나올텐데.
중학생 1 : 괜찮아요.
정원 : (아무말 없는 중학생 3 을 보고) 너는?
중학생 3 : (멋적게 웃으며) 난 좀 많아요.
중학생 1 : 너 내꺼 건드리지마.
정원과 중학생들 앞에는 여자 중학교 학생들의 단체 사진이 놓여 있다.
사진 속에는 여자 아이들이 활짝 웃고 있다.
중학생 3 이 사진 속의 여자 아이들을 가리킨다.
중학생 1 과 중학생 2 가 중학생 3 에게 달려든다.
아마 자기들이 좋아하는 여자 아이를 확대해 달라는 모양이다.
정원 : 야 야. 싸우지들 마라. 너희들 이 여학생들한테 말이나 걸어 봤어?
떠들던 중학생들이 한순간 조용해지고 곧이어 멋적은 웃음이 터진다.
아이들의 소란 속에 어느새 다림이 사진관에 들어와 있다.
정원 : 자식들.. 알았어. 내일 와라.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고 다림이 정원 앞으로 다가 선다.
다림 : 어른이나 애들이나 남자들은 왜 그래요?
정원 : (웃으며) 왜.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게 나쁜가? 그래도
여자 발가벗은 사진 갖고 와서 확대해 달라는 것보다는 낫지.
다림 : 아저씨는 그런 것도 해 줘요?
정원은 실없이 그냥 웃기만 한다.
다림은 정원을 흘겨보고는... 정원 앞에 다섯 통의 필름을 내놓는다.
다림은 사진관을 둘러본다
사진관 벽에는 돌사진, 가족사진, 등 평범한 인물사진들과 그 옆으로 구도가 잘 잡힌 흑백사진들이 걸려있다.
다림 : 이 사진들 다 아저씨가 찍은 거예요?
정원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다림 : (인물사진들을 보며) 이 사진은요?
정원 : 아버지가 찍으신 거예요. 지금은 눈이 나빠지셔서 사진을 찍으면 포코스가 잘 안맞아요
다림 : (웃으며)나랑 비슷하시네.
다림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흑백 사진들을 다시 바라본다
다림 : 이런 사진찍기는 굉장히 힘들 것 같은데 ..
이제보니 사진작가구나
정원 : 학생때 찍은건데..저런 인물사진 찍기가 더 힘들어요
나도 어렸을땐 몰랐어요
정원의 어렵다는 말에 다림은 정원을 흘겨보고는 ..정원 앞에 다섯통의 필름을 내 놓는다
정원 : 벌이가 좋네요.
다림 : 아저씨는...
정원 : 오늘은 급한거 아니죠 ?
다림이 살짝 웃는다.
21. 거리.
스쿠터를 멈추고 길 건너를 바라보는 정원
도로 저편에서 주차단속원들이 보인다.
대머리 아저씨와 싸우고 있는 다림.
아저씨의 핏대를 올린 욕지거리에 두눈을 똑바로 뜨고
고개를 든 채 노려보는 다림.
다림 아저씨의 말을 무시하고 가는데 아저씨 다림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진다.
다림 뿌리치려 하지만 아저씨 끝까지 잡고 늘어진다.
다림과 아저씨의 몸싸움.
정원 지나치다 그들의 모습을 본다.
다림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정원
22. 사진관 (오후)
문을 열고 들어서는 다림.
언제 싸웠냐는 듯 생글거리는 모습이다.
다림의 손에는 필름이 다섯통 쥐어져 있다.
다림이 정원에게 필름을 주려다 멈칫한다. 필름통에 땀이 번져있다.
당황하며 옷깃으로 땀을 닦는 다림.
정원 : 괜찮아 이리줘
다림은 생글거리지만 눈가에는 눈물자국이 남아있다
다림 : 아저씨가 쓰는 카메라 얼마쯤 해요 ?
정원 : 어떤 카메라 ?
다림 : 있잖아요. 노란 끈 달리고 사진기 앞에 대포처럼 튀어나온거
그런거 하나 살 생각이예요
정원 : 왜요?
다림 : 그냥요.. 그런거 가지고 다니면서 단속하면 사람들이 무시 못할꺼예요
다림은 소파에 털썩 주져 앉는다.
다림 : 좀 쉬었다 가도 돼죠 ?
더운건 이제 지겨워요
다림 정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림 : 사자자리죠 ?
정원 : ...
다림 : 생일이 팔월 아니에요? 사자자리가 나랑 잘 맞는데...
근데 아저씨 몇 살이에요?
정원 : 이십대 후반
다림 : 삼십대구나?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완전히 아저씨네
결혼은 아직 안했죠?
정원은 다림의 쫑알대는 모습에 장난을 치고 싶다.
정원 : 벌서 애가 둘인데.
다림 : 아저씨 옷 입는 거 보면 알아요. 거짓말 마세요.
사귀는 여자도 없죠?
정원 : 어린 것이 별 걸 다 묻네.
다림 : 어린 것이라뇨. 기분나빠. 나 이제부터 십분만 잘테니까 말시키지 마요
다림은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돌려 갑자기 정원을 빤히 쳐다본다.
다림 : 그런데 아저씨, 왜 오늘은 반말해요.?
정원은 웃으며 다림의 시선을 피한다.
23. 정원의 집 부엌.(저녁)
정원이 도마에 파를 다지고 있다.
큰 양푼에는 돼지고기가 담겨져 있다. 도마의 파를 양푼에 넣고,
그릇에 담긴 다진 마늘을 넣고 찬장에서 정종병을 꺼내어 돼지고기
위에 뿌린다.
간장을 넣고 마지막으로 고추장을 수저로 덜어 넣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손에 끼고 고기를 버무리는 정원.
부엌 밖 마당에는 정원의 동생 정숙이가 휴대용 가스렌지에
전을 부치고 있고, 아버지는 수돗가에서 포도를 씻고 있다.
대문이 열리며 다섯 살 정도의 사내아이가 대문을 열고 뛰어 들어 온다.
사내아이 : 할아버지!
사내아이는 (정원의) 아버지에게 안길 듯하다가 부엌에서 나오는
자기 엄마를 보고 그 쪽으로 달려간다.
곧이어 정숙의 남편 석희가 비닐 보따리를 들고 들어온다.
24. 정원의 집 마루(저녁)
정숙이 부부와 아버지 정원이 마루에 옹기종기 앉아 포도를 먹고 있다.
정숙의 아들은 포도 껍질만 벗겨 빨고 알맹이는 버린다.
정숙 : 철구 오빠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면서?
정원은 건성으로 고개짓만을 한다.
정숙 : 오빠 약은 시간 지켜 잘 먹지?
아버지 : 밥 잘먹고 약만 꼬박꼬박 시간 지켜서 먹어도 병이 낫는다는데.
정숙 : 아빠가 잘 감시하세요.
석희 : 의사는 별 말이 없어요?
정원 : 응.
석희 : 그 병원에 내가 아는 선배가 있더라구요. 형님 이야기를 했는데...
정원은 자기 무릎에 민호를 앉히고 포도 먹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포도를 입에 물고 껍질의 단 맛을 빨고 씨만 뱉어 낸다.
민호는 따라 해보지만 그의 입에서는 여전히 포도 알맹이가 뱉어진다.
25. 수산시장안 (오전)
수족관 속에 활어들이 힘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구경하는 정원.
회 가게 앞에서 생선을 고르는 아버지.
주인이 횟감 상자를 가져오자 정민이 받는다.
아버지는 정원이 들고 있던 한보따리의 비닐 봉지를 억지로 빼앗고
달랑 횟감 상자만을 쥐어 준다.
26. 수산시장 앞길(오전)
늙은 아버지는 한 보따리를 들고 있고, 앞서서 걸어가는 정원이는
달랑 횟감 상자만을 들고 있다.
정원이는 길가 노점상들의 물건을 구경하면서 간다.
앞서가는 아들의 뒷 모습을 바라 보던 아버지.. 걸음을 멈춘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빨갛게 충혈이 된 눈에서 굵은
눈물 방울이 흐른다.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을 하는 아버지.
마디가 굵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훔치지만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흐른다.
앞서가던 정원은 아버지를 보고는 천천히 다가온다.
아버지는 눈물을 닦고 정민이에게 그냥 가라고 손짓을 한다.
27. 거리
동네 담장들이 늘어선 골목. 나무 그늘을 지나는 정원의 스쿠터.
맞은 편에서 여자가 걸어오다 멈칫하고 선다.
그녀를 지나쳐 가던 스쿠터가 멈춘다.
스쿠터에 내려 여자에게 가는 정원.
정원과 마주선 여자는 고개를 내리 깔고 발끝만 바라본다.
정원 : 오랜만이다.
지원 : 그러게, 꽤 됐지?
정원 : 집에 왔니?
지원 : 응.
둘은 별말이 없는 것 같다. 어색하다.
지원은 정원을 슬쩍 보고는 웃는다.
지원 :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 같구나.
정원 : 그렇치 뭐.
지원 : 나 갈께.
정원 : 그래 잘가.
지원이는 몸을 돌려 가던 길을 간다.
정원은 그녀의 뒷 모습을 보다가 자신의 스쿠터로 돌아가 시동을
거는데 지원이가 되돌아온다.
지원 : 저기 있잖아...
사진관에 걸려있는 나하고 정숙이하고 찍은 사진 말이야.
그것 쫌 치워 줄래?
정원 : 왜? 보기 싫어?
지원 : 그런건 아니구...
정원 : 알았어. 치울께.
지원 : 고마워.
돌아서 가려는 정원 갑자기 지원에게 손을 내민다.
지원은 정원의 내민 손을 보고 영문을 모르다가 빙그래 웃으며
손을 내밀어 악수한다.
28. 사진관 밖.
사진관 유리창에 진열된 사진.
교복을 예쁘게 차려입고 활짝 웃고 있는 여고생들의 사진액자가 보인다.
정숙이와 그녀의 친구 지원이가 같이 찍은 사진이다.
그녀들의 사진 액자 위로 유리창에 반사되는 정원.
사진을 바라보다가 사진관 안으로 들어간다.
사진관 안에서 지원의 사진을 꺼내는 정원
29. 아파트 단지 앞 거리
스쿠터를 타고 달리는 정원.
좁은 골목들을 빠져나와 아파트 단지로 들어간다.
태권도장 스티커를 끔직하게 붙인 봉고차가 서 있고, 하얀 도복을
입은 조무라기들이 조잘 거리며 봉고차에서 내린다.
철구가 찻길의 한 가운데로 나와 조무라기들이 길을 건너도록 차를
세운다.
정원의 스쿠터가 철구의 코 끝에 바싹 붙어선다.
서로 마주보며 웃는 두사람.
정원은 철구를 비켜서 갈 길을 간다. 손을 흔들어 주는 철구.
30. 아파트 단지 앞 다른 거리
스쿠터를 달리는 정원의 시야에서 다림의 뒷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혼자서 종이뭉치를 한 덩어리 낑낑거리며 들고 가고 있다.
그녀 옆으로 서는 정원의 스쿠터.
다림 : 아저씨. 어디가요?
정원 : 가게로 가는데.
다림 : 숙녀가 이렇게 무거운 걸 들고 가야 되겠어요?
정원 : 단골 손님인데. 뒤에 타.
정원은 다림의 종이뭉치를 스쿠터에 실은 후, 다림을 태우고 달린다.
정원 : 구청으로 가야되지.
다림 : 예.
다림을 뒤에 태우고 달리는 스쿠터.
31. 아파트 단지 앞
나무벤치에 기대 쉬고 있는 정원.
다림 하드를 사가지고 정원의 자리에 앉는다.
다림은 껍질을 벗겨 혼자서 먹는다.
정원이 쳐다보면 한입 베어먹은 하드를 내민다.
정원은 태연히 다림이 내민 하드를 받아먹는다.
다림 : 복수하려고 했는데.. 또 당했네.
정원과 다림은 서로 마주보며 웃는다.
다림 : 어지럽다면서 이젠 괞찬아요? 이것도 아저씨 마시세요.
다림 한 쪽 손에 숨겨 두었던 건강음료를 내민다.
정원 : 이젠 괞찬아.
다림 음료수를 따 입 안 대고 반쯤 마시다 정원에게 다시 건네준다.
다림의 입가에 음료수 자국이 조금 남는다.
손수건을 꺼내 입주위를 닦는 다림.
정원 : 예전에 이 앞을 지나면 아카시아 냄새가 진동을 했었는데.
오월이면 신선하고 좋잖아. 밤에 여자 친구하고 이 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아카시아 냄새만 맡았어.
다림 : 아무말도 안하고요?
정원 : 응. 그냥 걷기만 했어.
다림은 웃으며 크게 심호흡을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웃는 정원.
다림 : 난 아직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해 봤는데.
정원 : 좋아하는 남자 없어?
다림 : 다들 시시해요.
정원 :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달라질걸.
다림 : 모르죠. 어느 세월에.
여름날 한낮의 아파트 단지는 뜨거운 햇살로 인적이 없고 매미소리만
시끄럽다.
32. 정원의 집(해질녁)
정원 대문을 열고 들어간다.
정숙이는 마당에서 빨래를 걷고 있다.
정원 정숙이가 빨래 걷는 것을 도와준다.
33. 부엌(저녁)
부엌 문지방에 서 있는 정원.
동생 정숙이가 부엌 안에서 김치통을 냉장고에 넣고 있다.
정숙 : 이건 열무김치니까 냉장고에 두고 삼일 후부터 꺼내 먹고.
요건 배추김친데 여기 둬서 익은 다음에 먹어.
정원 : 수고했다.
정숙 : 나 갈께.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 줘.
정원 : 수박 먹고 갈래?
정숙 : 그럴까?
34. 정원 집 마루(저녁)
마루에는 곱게 썰어 놓은 수박이 놓여있고 마루 미닫이 문 끝에는
모기향이 연기를 올리며 타고 있다.
정숙 : 낮에 지원이 집에 잠깐 갔었어.
힐끔 정원의 표정을 보는 정숙.
정원은 아무말 없이 수박을 베어 물고 수박씨를 마당에 배뱉는다.
정숙 : 지원이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파.
남편이 노름을 했대. 그리고 때리기 까지 했나봐.
정원 : 그런 얘기 이제 그만해
정숙 : 그래도 안된걸 어떡해.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
오빠 아직 지원이 좋아해 ?
정원 : ...오래전 얘기야
정숙 : 생각나 ? 오빠 고등학교 다닐 때 책갈피에 지원이 사진넣어 다니고 그랫었잖아...
정숙이의 말을 외면하듯 수박씨를 마당에 멀리 내뱉는 정원.
정숙이가 흘겨보다가 같이 내뱉는다.
마주보며 웃는 남매.
정숙은 웃다말고 웃고잇는 정원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정숙 : 오빠...
35. 사진관 (오전)
뚱뚱한 30대 중반의 여자가 비오듯이 땀을 흘리며 사진관으로 들어온다.
정원의 눈치를 보면서 머뭇거리다가는 힘들게 입을 연다.
여자 : 옛날 사진이 있는데, 이거 많이 구겨졌어요.
정원 : 어디 봐요.
여자가 내민 사진은 많이 구겨지고 손상되어 있다.
그 사진에는 예쁜 소녀가 발레를 하고 있다.
아마도 여자가 소녀 때의 사진인 모양이다.
정원 : 아줌마세요?
여자 : (얼굴을 붉히며) 예. 고등학교 때 무용을 했어요.
정원 : 사진이 많이 상했네.
여자 : 무용할 때 사진은 이것 밖에 없는데, 애기가 이렇게 해 놨어요.
정원 : 걱정마세요. 새 사진으로 만들어 드릴께요.
여자 : 고마워요.
여자가 가고 정원은 사진을 바라본다.
소녀의 사진.
정원은 고개를 돌려 진열장에서 치워놓은 지원과 정숙이의
고등학교 때 사진을 바라본다.
36. 유치원
카메라를 들고 아이들 사이를 누비는 정원. 유치원 행사날이다.
유치원 마당에 아이들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있다.
카메라의 뷰 파인더를 들여다보는 정원.
아이들 조잘거리며 활짝 웃고있다.
37. 사진관 앞
사진관의 유리창을 닦고 있는 정원.
비눗물이 유리창 닦이에 굵은 선으로 지워지고 유리창 안의 풍경이 드러난다.
38. 사진관 안.
깨끗해진 유리창을 뒤로하고 도구를 챙겨 사진관 안으로 들어가는 정원.
사진관 안에 여자가 앉아 있다.
정원 : 깜짝 놀랐네. 언제 들어 왔어?
지원 : 몰래 살금살금.
정원 : 커피 줄까?
지원 : 안돼. 밤에 잠을 못자.
정원 : 정숙이가 찾아갔었다며.
지원 : 응. 오늘이 8월 15일이야.
정원 : 그래 난 아직도 오늘이 되면 방학이 끝나간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 : 맞아 이맘때부터 일기쓰고 숙제하기 바쁘지
정원 : 너 생각나니?
지원 : 뭐
정숙 : 내가 니 일기보고 날씨 베낀거
지원 : 맞아 정숙이꺼 보고 베기지 왜 내 껄 보냐고 싸웠지.
정원 : 그때가 벌써 이십년전이네
지원 : 그래 눈감작할 사이에 어른이 되어버렸어
정원 : 욱영수 여사 죽은날 기억하니 ?
지원 : 응 그때 꽃밭에서 맨드라미를 보고 있었어.
그런데 육영수 여사가 죽었다 그러더라구.
테레비를 보면서 무서웠어. 내 첫 애도 오늘 태어났어.
난 오늘만 되면 피 냄새가 나는 것같아.
정원은 지원이 옆에 앉아 있다. 잠시 동안 둘다 말이 없다.
정원 : 아픈 데는 없니?
지원 : 내가 물을 말인데.
정원은 웃는다. 지원이도 담담한 모양이다.
지원 : 오빠는 이 동네에서 이십년이 넘게 살았는데 지겹지도 않아?
정원 : 모르겠어. 지겨운 것도 잊고 살아. 그냥 아무 생각 없어.
지원 : 여기를 다시 오게 될 줄은 몰랐어.
정원의 얼굴을 바라보는 지원. 정원은 그녀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떨군다.
지원 : 왜 아직 결혼 안했어?
정원 : 너 기다리느라고.
지원 : (웃는다) 오빠. 많이 아프다면서?
정원 : 겉은 멀쩡해. 속에서 곪나 봐.
지원 : 심각해?
지원은 정원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정원은 그녀의 눈길을 피해 한숨을 쉰다.
말없이 창 밖을 쳐다보는 두 사람.
39. 버스 안 (오후)
달리는 좌석 버스 안에 앉아 창밖풍경을 바라보는 정원
버스에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산울림의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가 흘러 나온다.
정원은 낮은 목소리로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달리는 버스이 차창으로 상점들 마다 태극기를 걸어놓은 거리가 보인다.
40. 종합병원 도로
늦 여름의 햇살이 뜨거운 오후.
길게 뻗은 병원의 도로를 따라 내려오는 정원.
늦 여름의 햇살이 뜨겁고 매미 울음소리가 시끄럽다.
41. 정원의 집 부엌(오후)
냄비에 라면이 끓고 있다.
정민은 싱크대에서 씻은 파를 가위로 썰어 라면에 넣는다.
마루에 걸터앉아 선풍기 바람으로 라면을 식혀 먹는 정민.
다시 부엌. 설거지 통에는 밀린 그릇들이 많다.
정원은 수세미에 퐁퐁을 묻혀 그릇들을 설거지하기 시작한다.
숟가락 젓가락 하나 하나를 천천히 닦아 내는 정원.
설거지 된 그릇들을 깨끗하게 포개 놓는다.
42. 정원의 집 마루(해질녁)
해질녁이어서 어둡게 형체만 드러나는 정원의 뒷모습
정원은 몸을 구부려 발톱을 깍고 있다
조용한 저녁에 정원의 발톱깍는 소리만 들린다.
손톱을 다 깍고 나서 마루에 드러눕는 정원
정원의 눈에선 눈물이 흐른다.
43. 초등학교 운동장.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는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불어오는 바람에 쏴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미루나무 잎새들.
44. 사진관 앞.
사진관의 문을 잠그고 스쿠터에 올라타는 정원. 다림이가 헐레벌떡 달려온다
다림 : 아저씨, 이거 오늘 꼭 맡겨야 돼요.
정원 : 출장가는 길인데 내일 오지 그래.
다림 : 안돼요. 급한거예요.
정원 : 그럼 저기 큰 길에 17분 완성에 갖다 맡겨.
다림 : 안돼요. 거기는 가기 싫어요. 아저씨..
어리광을 피우며 정원을 붙잡고 매달리는 다림.
45. 사진관 안.
탁자 위에 먹을 것이 가득 늘어져 있다.
정원과 다림은 퍼먹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몇 술을 뜨고 손을 놓는 정원.
다림 : 아저씨. 아이스크림 안 좋아해요?
정원 : 아니. 많이 먹었어.
다림 : 아저씨 외아들이죠.
정원 : 어떻게 알았어?
다림 : 형제가 많은 집에서 자란 사람은 먹는 거 보고 알아요.
우리집은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려면 전쟁을 해야 되요.
나하고 막내동생은 늘 죽자사자 해야 겨우 얻어먹었어요.
정원 : 형제가 많아?
다림 : 우리 엄마는 뭐 한다고 그렇게 많이 낳았는지 몰라요.
다림은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의 선을 긋는다.
다림 : 잘 봐요. 이렇게 똑같이 나누는 것부터 싸움의 시작이에요.
좀 편하게 바라보면서 먹은 적이 없어요.
오빠들은 후다닥 먹어 치우고 내걸 빼앗아 먹으려고 난리를 치죠.
지겨워.
정원은 다림을 보고 웃으면서 다림이가 나눈 선 안쪽을 먹는다.
다림도 선 바깥 쪽을 천천히 퍼서 먹는다.
다림은 사진관에 있는 지원이와 정숙이의 사진을 본다.
다림 : (사진을 가리키며) 아저씨 저기 저 여자요.
아카시아 냄새 맡으면서 같이 걸었던 여자죠?
정원 :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다림 : 여자의 직감이죠.
정원은 다림을 보며 웃는다.
다림 : 맞죠.
정원은 아무말 없고 그저 웃기만 한다.
다림 : 아저씨는 웃는 걸로 다 떼울려고 해.
정원 : 아가씨랑 노니까 정말 재미있다.
다림 : 나도 아저씨랑 노니까 편해요.
정원 : 사진이 다 나왔겠는데.
정원이 웃으며 일어난다.
46. 음식점
차들이 주차된 음식점 앞거리
다림과 효정이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음식점 안에서 식사를 하다만 사람들이 뛰어나온다
다림은 무어라 말을 하려 하지만 사람들은 허둥지둥 세워 놓은 차에 올라타 차를 뺀다
효정 : 다른데 가서 먹자
효정과 다림은 다른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47. 동네 공터의 나무그늘.
동네의 나무그늘 밑에 차를 주차시켜 놓고 한낮의 더위를 피하고 있는
다림과 효정.
효정이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누워 있고, 다림이는 차 밖으로 나와
나무그늘 아래에 앉아 있다.
정원이 인적없는 골목을 들어서다가 다림을 보고 웃는다.
정원 : 여기서 뭐해?
다림 : 너무 더워서 쉬고 있어요. 어디 갔다 오세요?
정원 : 응. 시장.
다림 : 아저씨가 시장엘 가요?
정원 : 난 음식 잘해.
다림 : (웃으며) 정말요?
다림은 정원의 비닐 봉투 안을 뒤져본다.
다림 : 이거 마늘 쫑 아냐? 아저씬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요.
정원 : 먹을 정도는 돼.
다림이 재미있어 하면서 비닐을 뒤진다.
누워있던 효정 일어나 다림과 정원의 모습을 본다.
밝은 햇살 속에서 등나무 잎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며
두 사람의 얼굴 위로 그림자를 흔들어 댄다.
48. 사진관 앞(해질녁)
해가 지고 정원은 소파에서 일어나 사진관 앞을 쓸기 시작한다
주차단속차량 티코가 멈춰서고, 효정이 운전석에서 내려 정원에게
필름을 내민다.
정원 차안을 살펴본다.
조수석에 앉아 있는 다림은 눈을 감고 유리창에 기대있다.
효정 : 다림인 자요. 오늘 일이 많았거든요.
안 깨웠다구 혼나겠는데요.
효정은 정원에게 필름을 건네주고 차를 타고 떠난다.
정원은 다림이 안쓰러운지 다림을 바라본다.
출발하는 차.
주차단속차량이 정원의 시선에서 사라질 쯤해서 창문 밖으로
흔드는 다림의 손이 보인다.
49. 태권도장
어린 아이들의 우렁찬 기합소리. 한 꼬마가 앞차기를 하다가 뒤로 발랑 자빠지고 아이들도 웃는다. 정원 창밖에서 철구의 동작에 맞춰 따라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다 웃는다.
50. 일식집.(저녁)
방 안에 마주 앉은 두사람. 아가씨가 부지런히 음식을 상위에 차려 놓는다.
철구 : 여기 괜찮치?
정원은 자기 앞에 놓인 죽을 먹기 시작한다.
정원 : 너하고 이렇게 술마시는 것도 정말 오래간만이다.
철구 : 결혼한 뒤로 처음인 것 같은데.
정원 : 그래. 너 제대하고 할 일 없을 때 매일 갔던 그 술집 기억 나냐?
아가씨가 회를 한 접시 가져온다.
철구 : 학교 앞에? 주인 딸이 예뻣잖아.
정원 : 너 그 아가씨 따라 다니며 노태우 선거 운동까지 했잖아.
둘은 서로 마주보며 웃는다.
철구 : 몇 해 전인 것 같은데, 벌써 10년이 지났어.
정원 : 그만큼 나이를 먹은 거야.
술을 따라주는 철구. 서로의 잔이 오간다.
51. 일식집 앞 (밤)
문을 열고 나오는 두 사람.
철구 : 한잔 더 해야지.
정원 : 그만하자. 내 몸이 예전같지 않아.
철구 : 자식 웃기네. 스물아홉 살 마지막에 너랑 나랑 뭐라 그랬냐?
둘은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정원, 철구 : 술 먹구 죽자!
둘은 소리내어 웃으면서 서로의 어깨를 걸고 길을 간다.
둘은 골목으로 들어가 나란 히 서서 오줌을 싼다.
철구가 정원에게 바싹 붙으면서 머리를 맞댄다.
철구 : 정원아. 우리 마누라가 이상한 말을 하던데.
정원 : 뭘?
철구 : 정숙이한테 들었다면서 뭐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냐?
정원은 옷을 추스르면서 철구를 바라본다.
철구 : 너한테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냐?
정원은 철구를 바싹 어깨동무하고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말을 다 들은 철구는 정원의 팔을 풀고 한 걸음 물러선다.
정원을 한동안 멍하니 쳐다보는 철구
정원 철구를 보고 씩 웃는다.
철구 : 웃지마 이 자식아
정원은 철구의 어깨를 두드리며 끌고간다
말없이 길을 가는 두 사람의 뒷 모습.
52. 파출소 (밤)
늦은 밤의 파출소는 어수선하다. 의자에 철구와 정원이 앉아 있다.
철구는 자고 있고 정원은 오가는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다.
술취한 중년의 남자 경찰에게 끌려온다.
남자 : 술먹고 운전한 것도 죄냐? 가둘래면 가둬 새끼들아.
내가 무서운 게 있으면 술을 쳐 먹지도 않았다. 개새끼들아.
의자에 앉혀진 남자는 조용해진 주위의 분위기에 약간 주눅이 들기
시작한다.
눈치를 보던 남자가 슬그머니 일어나 비틀거리며 경찰에게 간다.
남자 : 아저씨,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지만 난 이동네 민정당
조직책인데, 이런 거 밝히기는 싫은데.
경찰관은 그 사나이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경찰관 : 아저씨 앉아 계세요.
남자 : 민정당 조직책이면 뭐 어떻게 안되나.
경찰관 : 그래서 어쩌란 말이에요!
저 아저씨가 민정당 없어진지가 언젠데...
무안해진 남자는 뒤돌아 의자로 가면서 갑자기 소리친다.
남자 : 민정당 새끼들은 다 도둑놈들이야. 사과박스. 사과박스.
이어서 멀쩡하게 생긴 여자 둘이 들어온다.
경찰관 앞에서 조용하던 두 여자는 갑자기 머리를 잡고 바닥을
뒹굴며 싸우고, 남자는 계속 사과박스를 외친다.
경찰관 : 조용하세요.
정원 : (큰 소리로) 니미 씹이다. 조용히 하라구? 내가 왜 조용히 해.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래지며 정원을 쳐다본다.
소란에 잠이 깬 철구가 정원이의 어깨를 잡고 말린다.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는 정원.
정원은 철구를 끌어안고 울기 시작한다.
53. 정원의 집 마루(아침)
아침볕이 내려앉은 마당과 마루
전하벨이 울리고 있다.
방문이 열리고 잠이 덜 깬 얼굴의 정원이 나와 전화를 받는다
정원 : 여보세요? 철구냐? ..... 파출소 갔었냐? .....
포장마차 들어갈 때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주차단속 ? ..... 기억이 안 나는데..... 그래 다음에
또 전화하자.
전화를 끊고 자리로 돌아가 눕는 정원.
정원 천장을 쳐다보며 어제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54. 거리(오후)
주차단속원 차량인 봉고가 주차된 차 뒤에서 마이크로 방송한다
소리 : 칠이사팔 세피아 칠이사팔, 세피아 차량 이동시켜주세요.
차안에 있는 네명의 단속원들의 고개가 모두 가게 한곳으로 돌아가 있다.
잠시 후 한 여자가 뛰어나와 운전석에 올라탄다.
철이와 다림은 뒤좌석에 나란히 앉아있다.
마이크를 들고 있는 철이. 다림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철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던 다림과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는다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는 다림
앞에 주차된 차 뒤로 가서 다시 방송하는 봉고
소리 : 육육칠팔 코란도 육육칠팔 코란도
남자가 황급히 뛰어나온다. 다시 이동하는 봉고.
55. 사진관. (오후)
자리에 앉아 무언가 골똘히 생가에 잠겨있는 정원.
사진관 밖에는 유니폼 차림의 다림이 나타나서
생각에 잠긴 정원의 뒷모습을 본다.
사진관 안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다시 창쪽으로 오는 다림.
장난을 하고 싶은 표정이다.
똑똑똑 유리창을 두드린다.
창두드리는 소리에 밖을 보는 정원
유리창에 바짝붙어 생글거리는 다림의 모습이 귀엽다.
다림 : (들리지 않고 입모양과 손으로) 아저씨 뭐해요?
정원 : (다림의 웃는 모습을 보고 네가 필름을 들어 보이며) 일하고 있어
다림 : (알아들은 것 같다) 나 들어가도 돼요?
정원 : 뭐라고 ?
다림 : (유리창에 좀 더 가까이 와서 입모양을 크게 손짓을 하며)
나-들-어-가-도-돼-냐-구-요-
정원 : (입모양이 따라 커지며) 커피한잔 할까? 커피!(커피마시는 동작을 한다)
다림 : (입모양)알았어요 들어갈께요.
능청스럽게 창 밖에서 사진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다림.
그런 다림의 모습을 보며 웃는 정원
다림 : 왜 나만 보면 웃어요 ?
정원 : 귀여워서
다림 : 싱겁기는//
정원, 커피포트를 꼽고 잔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정원 : 아가씨 일하는게 힘들지?
다림 : 내 이름은 아가씨가 아니고 다림이에요
정원 : 힘들지 않아?
다림 : 뭐 그냥 그렇고 그래요. 사람 사는게 다 그렇죠. 자기 뜻대로만 살수 없드라구요
정원 : 참 나 애 늙은이네
다림 : 아저씨, 사는게 재미가 없죠?
정원 : 나도 뭐 그냥 그래 ...
다림 : 고등학교때도 지금처럼 별 볼일 없었어요..그냥 그렇게 사소해요
아둥바둥 유명해지는것도 우습고, 집이 싫어 빨리 시집이나 갈까...
에이 이런 얘기 하지말자 신경질난다.
참 아저씨 나 아저씨 한테 줄거 있어요
다림, 핸드백에서 초콜릿을 꺼내 정원에게 건네준다.
다림 : 선물이예요
정원 : 근데 어떡하지 난 아무것도 줄게 없는데
다림 정원을 빤히 쳐다본다.
커피물이 끓는다.
55. 사진관 촬영실.
사진기의 가만 프레임 내부에 다시 네모난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거꾸로 상이 맺혀있는 다림의 모습이 보인다.
화면 밖에서 정원의 소리가 들린다.
정원 : 얼굴을 조금만 왼쪽으로, 조금만 더 턱 좀 내리고..
그때마다 다림은 조금씩 움직인다.
정원 : 살짝 웃으면 더 예쁘겠는데
다림 애써 웃으려 하지만 잘 안되고 어색하다
그래도 잠시동안 화면을 보고 웃는데 정원 놓치지 않고 셔텨를 누른다
57. 거리. (밤)
화장품 가게 안의 다림. 화장품을 고르고 있다.
이것 저것을 신중하게 고르다 주인에게 값을 묻고는 선택을 망설인다.
끝내는 아무 것도 사지를 못하고 화장품 가게를 나온다.
길가에 늘어선 옷가게들의 쇼윈도를 보면서 걷는 다림.
신사복을 파는 가게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남자 옷을 바라다보는 다림.
그녀는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다.
58. 다림의 집. (밤)
침대에 엎드려 여성잡지를 보고있는 다림.
대강 대강 사진만 보고있다.
다림 책을 한쪽에 치워놓고 일어나 가방에서 사진을 꺼낸다.
정원과 다림의 사진이다.
다림, 책갈피에 끼워놓고 좁은 방안을 걸어본다.
다림은 세발짝도 못 가서 벽에 부딪히고 만다.
벽 앞에서 스스로 주저앉는 다림.
59. 사진관 (오후-비)
사진관 창으로 빗줄기가 거세게 부딪친다.
우산을 쓴 한 가족이 사진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우산을 접고 들어오는 가족들은 순식간에 사진관 안에 꽉 들어찬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부터 어린 꼬마들, 부부들, 할머니까지 4대가
모인 것같다.
어린 아이들은 그 수선 속에서도 사진관을 휘젓고 다닌다.
어른들의 나무라는 소리. 정신이 없다.
잠시후, 카메라 앞에 온 가족들이 자리를 잡고 서 있다.
곱게 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가운데 앉고 그 옆에 대여섯살의 손자,
손녀들. 그리고 솜털이 부숭부숭한 중고등학생 손자들.
장가든 손자와 아기를 안은 손자 며느리. 아들들 내외.
후라쉬가 세 번 터지고 가족들이 일어선다.
큰 아들과 며느리가 어머니를 자리에 앉힌다.
며느리 : 어머니. 독사진 찍으세요.
할머니는 아들 내외의 권유에 마지 못해 자리에 앉는다.
카메라 뒤에는 정원과 가족들이 할머니를 지켜보고 있다.
손자, 손녀들이 키득거린다.
어색하게 안절부절못하는 할머니.
60. 거리. (오후-비)
빌딩의 주차장에 서 있는 티코.
차 안에는 앞 좌석에 철이, 그리고 그 옆에는 효정, 뒷 좌석에
다림이가 앉아서 햄버거를 먹고 있다.
철이 : 엄청나게 온다. 비가 오니까 한잔하고 싶어지는데요.
효정씨, 다림씨. 이따가 한잔 어때요?
효정 : 괜찮죠.
철이 : 다림씨, 같이 가는 거죠?
다림 : 난 술 못 마셔요.
철이는 다림을 룸미러로 홀깃 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린다.
철이 : 그러면 피자 먹으로 가는 건 어때요?
다림은 아무말 없이 차창밖에 비오는 모습만 보고 있다.
61. 거리 - 오토바이 수리점 - 거리 (오후)
비오는 거리를 걷고 있는 다림.
길건너 오토바이 수리점에 정원이 있는 것이 보인다.
다림은 길을 건너 정원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정원의 스쿠터를 수리공이 손보고 있고 정원은 비에 홀딱 젖은 채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정원의 등 뒤로 다림이 다가 온다.
다림 : 아저씨.
정원 : 어.. 여기 웬 일이야.
다림 : 꼭 아저씨를 만날 것 같더라구요. 내 예감이 맞았어.
정원 : 잘 왔다. 우산 좀 빌려 줘.
다림 : 나는 어떡하라구요.
정원 : 그러면 사진관까지 나 좀 바라다 줘.
다림 : 맨 입으로?
정원은 웃으면서 다림의 우산을 받아 쥐고 함께 우산을 쓰고
오토바이 수리점을 나선다.
바람이 불어 정원이 쥔 우산대가 자꾸만 다림의 이마를 친다.
정원은 당황하고 다림이도 어색해 진다.
정원이 우산대를 고쳐 잡지만 우산대는 계속 다림의 이마에 부딪친다.
당황하는 정원.
다림은 이마를 치는 우산대와 정원이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푸하하
웃음을 터트린다.
다림 : 아저씨, 이따가 일 끝내고 올꺼니까 술 사줘요.
정원 : 그래.
빗 속을 걸어가는 두사람의 뒷 모습.
62. 사진관 (밤)
창 밖을 내다 보는 정원.
빗줄기가 많이 약해 졌지만 약속을 한 다림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가게를 정리하고 있는 정원.
사진관 문이 열리며 아까 그 할머니가 쭈삣거리며 들어온다.
할머니 : 저기.. 끝났어요?
정원 : 아뇨. 낮에 오신 분이시죠.
할머니 : 부탁이 있어서 왔는데.
할머니는 오후의 그 옷이 아니라 예쁜 한복에 화장까지 한 모습이다.
할머니 : 아까 찍은 사진이 영 마음에 걸려서..
정원 : 다시 찍으시려구요?
할머니 : 내 나이가 여든 일곱이유. 이제 갈 준비도 해야 되는데,
아까 사진은 영...
정원 : 이리 오세요. 다시 찍어 드릴게.
할머니 : 곱게 나와야지, 죽은 다음에 애들이 그 사진으로 날 기억할 텐데..
정원은 카메라를 준비하고 조명을 준비한다.
정원 : 할머니, 앉으세요.
할머니가 앉고 조명을 켠다. 할머니는 어색한지 인상이 주눅들어 있다.
정원 : 할머니 웃으세요.
할머니 : 웃어야 되는데, 이거 원..
먼저 간 사람들 사진을 보면 다들 그렇게 인상들을 쓰고
있어서 난 그렇게 하지 말아야 되는데.
정원 : 할머니. 영정에 쓸 사진이라고 생각하니 좀 쓸쓸하시지요?
할머니 : 이제 나도 가는구나.. 이런 생각이지.
내 어머니도 갔고 이제 내가 가는데 뭘.
할머니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할머니 얼굴에 터지는 플래쉬 불빛
정원 : (할머니 얼굴을 바라보고는 필름을 갈아 끼우며) 할머니 잠깐만요.
63. 사진관 밖
비오는 사진관 밖 거리. 스쿠터가 비를 맞고 서있다.
사진관 안쪽에서 터지는 플래쉬 불빛이 사진관 유리를 통해 밖으로 새어나온다.
잠깐의 사이를 두고 또 한번 새어나오는 불빛.
64. 정원의 집.
정원 방의 미닫이 문이 열리고 속옷 차림의 정원이가 마당으로 나온다.
비는 아직까지도 추적 추적 내리고 있다.
정원은 마루 끝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불이 꺼진 아버지 방문을 살살 연다.
어슴푸레 보이는 아버지의 얼굴. 작게 코를 골고 있다.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문갑 위에 놓인 담배를 찾는 정원.
담배를 집어들고 방문을 닫고 마루로 나온다.
마루 끝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는 정원. 깊게 한 모금을 들이킨다.
마당의 화분들 위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다시 깊게 한 모금을 들이키는 정원.
어지러운지 마루바닥에 몸을 눕힌다. 불이 꺼진 집안은 조용하고
빗소리만 들린다.
65. 초등학교 운동장
아무도 없는 텅빈 운동장 위로 비가 내린다.
정원 : 나레이션 시간이 얼마 안남았는데 나는 긴 시간이 거리는 사랑을 시작하고 있다.
66. 백숙집
교외의 한적한 음식점.
나무 그늘이 시원한 평상 위에 일곱 명의 남자들이 모여 앉아 있다.
정원과 철구 그리고 친구들이 보인다.
음식도 거의 다 먹어 가고 술을 마시는 중이다.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는 친구들을 두고 정원은 옆자리의 빈 평상에
몸을 기댄다.
민구가 정원이 있는 곳으로 다가와 앉아 담배를 피운다.
실눈을 뜨고 민구를 보며 웃는 정원.
민구 : 오랜만에 모이니까 좋구먼.
정원 : 철구가 연락했지?
민구 : 응. 너 하는 일은 잘 되냐?
정원 : 잘 모르겠어.
민구 : 정말 아차하면 끝이야. 서울역 지하차도가 남의 일이 아니라고.
정원 : 넌 일 좀 하냐?
민구 : 인생에 반을 살았는데 갈수록 어렵다. 장가가기도 힘들 것 같고.
정원 : 그래, 따지고 보면 많이 살았어. 삼십사년이나 살았으니.
민구 : 여자는 있냐?
정원 : 없어.
민구 : 너 옛날에 그 아가씨는 참 아까웠는데..
음식이 있는 평상에서는 왁자지껄하다. 화투를 치기 시작한 모양이다.
푸르른 나무들 사이로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다.
67. 사진관. (밤)
정원의 친구들이 카메라 앞에 나란히 서 있다.
아까의 왁자하던 모습은 간 데 없고 모두 조용하다.
정원이 카메라를 맞춰 놓고 친구들 사이로 간다.
철구 : 좀 웃어라 웃어. 누구 죽었냐.
정원과 철구만이 활짝 웃고 나머지는 억지로 웃는 낯이 된다.
68. 정원의 집(밤)
부엌만 불빛이 밝혀 있고 집안은 조용하다.
냉장고에서 물을 따라 약을 먹는 정원.
싱크대를 보니 설거지를 안해서 그릇들이 쌓여 있다.
정원은 그릇들을 하나하나 설거지하기 시작한다.
얼마 안 있으면 다시는 못 만져 볼 물건들이다.
달그락거리는 그릇소리가 부엌을 새어 나간다.
69. 정원의 집(밤)
테레비 앞에 앉아 있는 아버지. 정원이 안방에 들어선다.
정원 : 아버지 안 주무세요?
아버지 : 야... 이거 정말 어렵구나.
정원 : 왜요?
아버지 : 조금 있다가 콰이강 다리를 하는데 그걸 예약 녹화해야
내가 잠을 자지.
정원 : 그거 보려고 아직 안주무셨어요?
아버지 : 니 어미하고 봤던 영화잖아.
정원 : (웃으며) 제가 해드릴께요.
테레비 앞에 앉아 예약 녹화를하는 정원.
아버지는 정원이가 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정원 : 이제 아버지가 한번 해 보세요.
아버지는 순서를 기억하지 못하고 자꾸 틀린다.
정원이가 가르켜주고 아버지는 반복해서 따라 하지만 제대로 작동을 시키지
못한다.
백지에다 비디오 작동법을 큰 글씨로 그리는 정원.
아버지 그 종이를 들고 비디오를 작동시켜 본다.
이번엔 성공이다.
70. 정원의 방 (밤)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시끄럽다.
천둥 소리에 이어 벼락치는 소리.
잠에서 깨어나는 정원. 방문을 열고 마당을 바라본다. 번쩍이는 번개.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서성이는 정원.
정원의 얼굴 위로 번개불빛이 번쩍거린다.
그리고 잠시 후 찢어지는 천둥소리가 들린다.
정원 다시 자리에 누워 잠을 자려 눈을 감지만 천둥 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71. 안방. (밤)
안방 문이 스스로 열리고 베개를 한 손에 쥔 정원이 들어온다.
빗소리와 천둥 번개에도 아버지는 깊은 잠에 빠져있다.
정원은 아버지 옆에 조심스레 누워 눈을 감는다.
72. 초등학교 운동장
바람에 흔들리는 미루나무 잎들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운동장에는 군데 군데 물 웅덩이가 생겨있다.
고인 물위로 하늘이 비치고 구름이 흘러간다.
73. 정원의 집
비 개이고 맑은 하늘.
정원은 마당의 수돗가에서 쌀을 씻고 있다.
쌀뜬물이 하얗게 시멘트 바닥을 흘러간다.
74. 사진관 밖
유리창 너머로 정원이 사진들을 정리하는 모습이 보인다
다림 창 밖에서 정원을 바라보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75. 사진관 안
다림 정원에게 필름을 건네준다.
다림 : 아저씨 어제 내가 안와 삐졌죠
정원 : (웃으며) 왜 안왔어?
다림 : 그냥 오기 싫어서 안 왔어요
일하러 갈께요
정원이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사진관 밖을 나가는 다림
76. 권투 도장
아무도 없는 권투도장 안
텅빈 링을 배경으로 바싹 마른 청년이 손에 붕대를 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원 : (웃으며) 다시 한번 더요.
권투선수인 청년은 폼을 잡으며 다시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한다.
77. 사진곤 밖.
사진관 안을 기웃거리는 다림.
문은 열려있지만 사진관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78. 사진관 안
다림 문을 열고 들어오면 텅빈 사진관.
소파에 앉는 다림. 곧 일어서서 테이블을 정리하고 바닥을 쓸기 시작한다.
정원이 비닐 봉투를 들고 들어온다. 다림을 보고 놀라는 정원.
다림이는 평소의 옷차림과는 다른 모습이다.
정원 : 화장했네.
다림 : 왜 보기 싫어요?
정원 : 아니.
다림 : ...
잠시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정원은 비닐봉투에서 무엇인가 주섬주섬 꺼낸다. 캔맥주와 마른 안주다.
다림 : 혼자 술 마시려구요?
정원 : 다림이는 술 마시나?
다림 : 잘 마셔요.
정원은 웃으면서 캔 맥주를 하나 건네준다.
정원 : 잘 됐네. 혼자 먹기도 그랬는데.
다림은 정원이 먹기 좋게 대구포 안주를 잘게 찢어 놓는다.
정원 : 여자랑 이렇게 술 마시는 게 오랫 만인데.
다림 : 혹시 처음 아니에요?
정원은 다림을 보며 웃는다.
다림 : 아저씨 쉬는 날 뭐해요.
정원 : 잠자.
다림 : 하루 종일 잠만 자요?
정원 : 응.
다림 : 아저씨. 여자들이 재미없는 남자 싫어한다는 거 알아요?
정원은 그저 웃기만 하면서 맥주를 마신다.
다림 : 내가 얘기 안했나? 롯데월드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거든요
도날드 인형쓰고 애들하고 놀아주는 거예요
정원 : 그거 굉장히 더울텐데..
다림 : 롯데월드가면 걔가 공짜로 표 얻어다 준다고 그랬거든요 근데...
다림이 말을 잘 잇지 못한다.
정원 : 근데
다림 : 그냥 그렇다구요. 언제 한번 가긴 가야 되는데 시간이 나야 말이죠
정원과 다림 잠시 말이 없다.
79. 놀이공원. (로울러 코스터)
로울러 코스터를 타고 있는 정원과 다림.
정워과 다림의 아우성 치는 모습
정원의 시점으로 달리는 롤러 코스터에서 보여지는 풍경
심하게 흔들리며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이 고속촬영으로
흔들림과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며 화면도 어두워진다
80. 벤치
정원과 다림이 하드를 먹으며 말없이 앉아있다
사이를 두고 앉은 둘의 모습이 어색해 보인다.
81. 학교 운동장
멀리 텅빈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정원과 다림의 모습이 보인다.
운동장을 달리고 있는 다림과 정원.
정원은 얼마를 못가서 자리에 멈춰 서 가쁜 숨을 고르고 있다.
정원을 뒤에 두고 달리는 다림.
혼자서 운동장을 달리는 다림.
운동장 나무 그늘에 앉아 있는 정원.
다림 정원 앞으로 숨을 헐떡이며 다가오다.
다림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리고 머리카락이 젖어서 목덜미와
이마에 찰싹 달라 붙어있다.
그녀는 옷을 펄렁이며 바람을 집어넣는다.
다림은 정원 옆으로 앉는다.
그녀의 등은 땀으로 젖어 속옷이 드러나 보인다.
바람이 불어오자 고개를 들며 몸을 최대한 펼쳐 바람이 온몸
구석구석에 닿도록 하려는 다림.
정원은 그녀의 행동을 따라 기지개를 펴 듯 몸을 펼친다.
82. 목욕탕 앞거리(초저녁)
양손에 귤을 들고 목욕탕 문 앞에 앉아있는 정원.
여탕 문으로 아줌마가 나오자 슬거머니 자리를 비켜 지나가도록
해주고는 문이 정면으로 보이는 맞은편에 가서 서 있는 정원.
문이 열리며 다림이 나온다.
방금 목욕을 해서 얼굴이 뽀얀 다림.
다림 : 벌써 나왔어요? 남자가 역시 빠르기는 빠르구나.
정원은 다림에게 귤을 내민다.
웃으면서 귤을 받아드는 다림.
83. 골목길 (저녁)
밤길을 걷는 정원과 다림.
간간히 보안등이 켜 있고 인적이 없다.
정원 : 초소에서 내 바로 밑에 애하고 보초를
서고 있었거든. 그때도 이렇게 더운날이었어.
한참 졸리던 판에 어디서 방귀냄새가 나드라고.
그래서 같이 보초서던 애에게 너 방귀꼈지 하니까
자기는 안뀠데. 나보고 그랬으면서 거짓말 마라고 한참을
옥신각신했거든. 그냥 싸우기 싫어서 그러고 넘어갔는데
내무반에 와서 얘가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거야. 자기는 절대
안뀠다고. 나도 분명 안뀠거든. 나중에 알고 보니까
몇 년 전에 보초서던 군인이 애인이 변심했다고 목매달아 죽은 곳이래.
그 초소가..
다림은 정원의 이야기를 듣고 무서운지 정원에 바싹 붙어 걸어간다.
다림 : 큰일 났네. 내일부터 무서워서 이길을 어떻게 다니지.
아저씨도 귀신이 무섭죠? 직접 냄새까지 맡았으니까?
정원 : 어떨 때는 무섭고, 또 어떨 때는 안 무섭기도 해.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되는 거 아냐? 다림이나 나도 그렇고.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도 안 무서운데. 그런데 어떨 때는
막 무서워져.
다림 : 아저씨 말 들으니까, 갑자기 하나도 안 무서워지는데요.
다림을 바라보고 웃는 정원.
골목길을 따라 걸어가는 두사람의 뒷 모습이 보인다.
84. 구청식당
식판을 들고 식탁으로 가서 앉는 다림과 효정.
그들이 앉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철이 다림 옆으로 앉는다.
철 : 같이 식사해도 돼죠?
효정 : 앉으세요.
철 : 다림씨, 다음 주에 로테이션 되는 거 아시죠?
다림 : 잘 되었네요. 철이씨 얼굴 안 봐도 되니까. 그런데 어디로 간데요?
철 : 아직 안 정해졌을 걸요. 다림씨는 무슨 섭섭한 말씀을 그렇게..
효정 : 그러다 둘이 정든다... 그러나 저러나 이번에는 어디로 가려나.
철 : 떠나기 전에 술 한잔해야죠.
(웃으며) 근데 다림씨 보고 싶어서 어떻게하죠?
다림은 철이의 말은 듣지 않고 창밖을 보며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
85. 종합병원
정원과 동생 정숙이 병원문을 나와 걸어간다.
두사람은 아무 말도 없다.
86. 사진관
사진관의 자동 현상기 옆에 백지를 펴놓고 소파에 앉는 정원.
정원은 백지위에 색색가지 싸인펜을 가지고 사진관의 자동현상기작동법을
큰 글씨로 알기 쉽게 그리고 있다.
87. 정원의 집, 방(늦은 밤)
늦은밤 어디선가 울음소리 들린다. 방문을 열고 나오는 아버지
정원의 방문 앞으로 다가가 살짝 문을 연다
불을 켜놓은 방안에는 정원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소리내어 울고 있다.
조용히 문을 닫는 아버지.
88. 사진관 앞.
잠겨진 사진관 안을 들려다 보는 다림. 문에는 출장중이라는 팻말이 걸려있다
다림이는 그 앞을 서성대며 기다린다. 앞에 진열된 사진들을 보다가 발길을 돌리는 다림.
89. 거리 (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다림.
버스한대가 멈추어 서려다가 다림의 탈 기미가 안보이자 그냥 지나친다.
90. 효정의 집. (밤)
방에 누워있는 효정과 다림.
다림 : 이런 방 얻으려면 얼마나 있어야 돼?
효정 : 여긴 얼마 안해. 너 집 나오려고?
다림 : 응.
효정 : 그러면 너 나하고 합치자. 원룸으로 갈 수 있을 거야.
다림 : 괜찮기는 한데...
누워서 천정을 바라보고 있는 다림.
다림 갑자기 어떤 생각이 났는지 효정에게 고개를 돌리고 웃으며
말한다.
다림 : 너 귀신 이야기 해줄까?
효정 : 귀신 이야기?
다림 : 응. 너 귀신 봤어?
효정 : 아니
다림 : 귀신을 본 사람은 많아도 냄새를 맡은 사람은 별로 없을걸
효정 : 냄새 ? 우 와 귀신도 냄새가 있어?
다림 : 내 손 꼭잡고 들어봐
91. 사진관 앞.
다림은 필름통을 손에 쥐고 사진관 앞에 서 있다.
문은 여전히 잠겨있다.
크락션 소리가 들리고 다림은 머뭇거린다.
계속되는 크락션 소리.
깜박등을 켠 채 주차하고 있는 단속차량에 철이가 고개를 내밀고
다림을 부른다. 다림은 필름통을 손에 쥐고 사진관 앞에 서있다.
92. 다림의 방
호출기 번호를 보고 전화를 하는 다림.
메세지를 확인한다.
철이의 목소리.
소리 : 다림씨, 저 철인데요. 저. 연락 좀 주세요
다림 메세지를 지우고, 창밖을 본다.
일어나 담배를 피우는 다림.
다림 문득 담배불을 끄고 책상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다림 책상 서랍을 연다. 예쁜 편지지들. 그 중에 한장을 고르는 다림.
다림은 잠시 망설이다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93. 정원의 집
정숙이와 그의 남편 석희가 마루를 올라선다.
아버지는 부엌에서 나와 그들을 따라 방안으로 들어간다.
석희 : 아버님. 빨리 가야 돼요. 여보. 간단하게 속옷만 챙겨요.
정숙 : 아빠. 오빠 옷들이 어디 있어?
아버지 : 그건 놔 둬라. 내가 할게. 너희는 어서 정원일 차에 태워라.
정숙이와 석희가 정원을 부축하며 마루로 나간다.
방안에 홀로 남은 아버지는 옷장에서 정원의 속옷을 꺼낸다.
하얀 속옷들을 꺼내며 차근차근 개는 아버지.
가방을 장롱 위에서 꺼내어 먼지를 털고 정원의 속옷을 꺼낸다.
정숙이가 방으로 들어온다.
정숙 : 아빠. 그릇하고 담요를 가져 가야지.
아버지 : 너무 많이 가져가지 마라. 어떻게 될지 모르니.
가방을 들고 마루로 나가는 아버지와 정숙.
그들이 나가고 텅빈 정원의 이부자리만이 헝크러진 채로 남아 있다.
94. 차안.
다림의 시점으로 사진관을 스쳐 지나간다..
굳게 닫힌 사진관.
다림 고개를 돌려 사진관을 바라본다.
다림 철이에게 차를 세워달라고 한다.
95. 사진관앞 도로
차에서 내려 사진관 쪽으로 뛰어가는 다림.
96. 사진관 앞
문 닫힌 사진관. 사진관 안을 들여다보는 다림. 정원은 없다.
다림은 가방에서 편지를 꺼내어 문틈으로 집어넣는다
그러나 좁아서 들어가지 않는다. 편지 겉봉이 많이 구겨진다.
다림은 구겨진 봉투를 가방에 넣고 새 봉투에 편지를 넣고 몸을 구부려 문 밑으로 집어 넣는다. 문안으로 들어가는 편지
97. 병원 입원실 ( 밤 )
네명의 환자들이 같이 쓰고 있는 병실에는 보안등 만이 희미하게 켜 있고
나직하게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정원은 창가에 누워 있고 보호자 간이침대에는 정숙이가 앉아 정원을 바라보고 있다.
잠을 자고 있는 정원의 얼굴. 좋은 꿈이라도 꾼 듯이 정원은 살며시 미소짖고 있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는 정원.
정숙 : 오빠. 깼어 ? 아프진 않지?
정원 : 응
정원은 멀뚱히 천장을 바라본다.
정숙 : 무슨 생각해
정원 : 갑자기 아카시아 냄새가 맡고싶어 아파트가 들어서기전 삼거리 동산이 있었잖아
밤 늦게 버스가 지나갈때는 아카시아 냄새가 바람을 타고 버스 안으로 들어왔었어
정숙 : 오빠 요새 ....어떤 아가씨하고 친하게 지낸다며?
연락해서 오라고 할까?
정원 : 됐어 보고싶은 사람없어.
눈을 감는 정원.
정숙이 정원에게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본다.
98. 사진관.
잠겨진 사진관 앞에서 서성거리는 다림.
다림은 닫혀진 사진관 문의 손잡이를 잡고 흔들어 본다.
100. 다른 사진관
가만히 의자에 앉아 사진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다림.
소리 : 사진 나왔어요.
다림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101. 호프집(저녁)
다림과 효정, 철이와 몇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다.
모두들 떠들고 웃는다. 다림은 자기 앞에 놓인 맥주를 계속 마신다.
효정 : 다림아. 너 취하겠다.
다림은 웃으며 잔을 비운다. 철이가 기분이 좋아 다림에게 술을 따라 주고
다림과 철이는 잔을 부딪친다. 단숨에 비우는 두사람.
철이 : 다림씨 한잔 더 해요.
다림 : 좋아요.
철이 : 난 안따라 줘요?
다림이는 웃으면서 술을 따라 준다.
철이 : 다림씨. 마셔요.
사람들은 모두 잔을 채우고 건배를 한다.
다림은 약간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철이 : 다림씨, 어디 가요?
다림 : 화장실 가요.
다림이 일어서자 효정이도 따라 일어선다.
102. 화장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다림.
세면대 앞에 선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다가 울음을 터뜨린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다림.
103. 사진관 앞.
사진관 앞에 서있는 다림.
한참을 서있는 다림. 다림은 발길을 돌려 한쪽길로 사라진다.
다림이 사라진 사진관 전경.
잠시 후 갑자기 다림이 다시 들어와 유리창에 무언가를 던진다.
깨지는 사진관 유리창
멍한 표정으로 깨진 유리창안을 바라보는 다림.
104. 도로(차 안-오후)
승용차의 뒷좌석에 앉아 있는 정원.
그는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의 풍경을 보고 있다.
운전석에는 석희가 있고 그 옆에는 정숙이가 있다.
정원이는 동네 입구에 들어서자 길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본다.
105. 사진관 앞. (낮)
정원 사진관 앞으로 걸어온다.
외출중이라는 팻말을 물끄러미 보고나서 사진관 문을 여는 정원
106. 사진관 안(낮)
쇼파에 앉아 다림의 편지를 읽는 정원.
정원은 간간히 미소 지으며 다림의 편지를 읽는다.
정원은 편지를 다 읽고 곱게 접어 봉투 속에 넣는다.
편지를 바라보는 정원.
사진관 밖으로 나가는 정원
107. 구청 앞.
멀리 스쿠터를 타고 구청으로 들어가는 정원이 보인다.
정원은 구청에서 나오는 주차 단속반원들을 보자 뭐라고 물어본다.
108. 찻집.
거리가 보이는 찻집. 정원 창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정원 창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유리창에 반사된 정원의 얼굴.
얼굴 너머로 멀리 분주하게 일하고 있는 다림이 보인다.
정원 손가락을 가만히 유리창에 갖다 대 본다.
다림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손가락.
109. 암실 .
현상액 속에 인화지를 넣는 정원. 서서히 사진의 형체가 드러나면서 다림의 얼굴이 보인다
전에 정원이 찍어준 다림의 증명사진이다. 현상액 속에서 웃고있는 다림의 얼굴
110. 정원 집 마당.
잎새가 다 떨어지고 가지만 남은 화초들이 화분에 담겨 마당에 놓여있다.
카메라가 마루로 천천히 이동하면 정원이 바가지를 앞에 놓고 만년필을 만지고 있다.
만년필의 촉을 빼고 안을 분해하자 말라붙은 잉크가 덩어리 져 있다.
잉크가 말라붙은 심을 물이 담긴 바가지에 담자 투명한 물에 잉크가 번진다.
111. 사진관
정원은 테이블 위에 편지지를 놓고 편지를 쓰고 있다.
다 쓴 편지는 곱게 접어 봉투에 넣는 정원
112. 슈퍼마켓 앞
카운터 의자에 나란히 앉아있는 철구와 정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본다.
철구 : 그 주차단속원 아가씨 너 입원하고 안보이더라
정원 : 그만 뒀데?
철구 : 야 벌써 가을이 다 갔네.
정원은 길가의 앙상한 가지들을 바라다 본다.
113. 사진관
정원은 선반위에 있는 박스와 앨범을 꺼낸다.
자신이 학생때 찍은 사진들 몇장이 나온다
한 장 한 장 앨범을 넘기면서 미소를 짖는다.
앨범을 넘기면서 정원의 미소는 점점 사라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눈물을 글썽거리는 정원. 한 장의 사진이 앨범에 붙어있다.
자신이 찍어준 다림의 사진.
정원 앨범을 덮고 다림이 보낸 편지와 함께 다시 박스 속에 집어 넣는다
굳게 밀봉되는 박스.
114. 촬영실.
정원 벽에 걸린 손님용 양복을 입는다. 넥타이를 메고 의자에 앉는 정원.
정원 다시 일어나 카메라를 보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자리에 앉는다.
후레쉬가 터진다. 한번, 두번, 세번, 활짝 웃는 정원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 찬다.
그 사진은 그대로 정원의 영정 사진으로 디졸브 된다.
활짝 웃고있는 정원의 영정 앞에는 향불이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다.
암전.
115. 사진관 앞. (오후-눈)
눈이 내리는 사진관 앞 거리...어딘가에서 클스마스 캐롤이 흐른다.
사진관 문이 열리고 정원의 아버지가 나온다
문을 잠그고 스쿠터를 타고 멀어져 가는 아버지.
겨울 코트를 입고 털모자와 목도리를 한 다림이 사진관 앞으로 걸어간다.
그러다 문득 다시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히 사진관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다림.
유리창 안에서 밖을 보면 다림이 다가와 사진관 앞에 선다.
사진관 안을 가만히 들여다 보다가 시선이 한곳에 머무는 다림.
놀라움이 조금씩 얼굴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돌아서 양손에 입김을 불어넣는 다림.
활짝 웃는다.
양손을 입에 댄체 입김을 불어넣으며 서서히 멀어져 가는 다림의 뒷모습.
사진관 진열대에는 활짝 웃는 다림의 얼굴이 액자에 걸려있다.
멀어져 가는 다림의 뒷모습.
116. 초등학교 운동장 ( 해질녁 - 눈 )
운동장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 위로 서서히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남긴 무수한 발자국들 위로 흰눈이 쌓여간다.
나레이션 : 내 기억속의 무수한 사진들 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