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杞溪 장날
박목월
아우 보래이.
사람 한평생
이러쿵 살아도
저러쿵 살아도
시큰둥하구나.
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
그렁저렁
그저 살믄
오늘같이 기계杞溪장도 서고,
허연 산뿌리 타고 내려와
아우님도
만나잖은가베.
앙 그렁가잉
이 사람아.
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
그저 살믄
오늘 같은 날
지게목발 받쳐놓고
어슬어슬한 산비알 바라보며
한잔 술로
소회도 풀잖는가.
그게 다
기막히는기라
다 그게
유정한기라.
박목월 시집 『나그네』, 《미래사》에서
어릴 적에 몇 번 장구경을 따라 나선적이 있다. 먹고사는 문제를 떠나오고 가는 이의 행색이며 표정에서 삶의 근황이 엿보이기도 했다. 박목월 시인의 시 「기계 장날」은 포항에 있는 장터를 말하고 있다. 1968년 시집 『경상도의 가랑잎』에 수록된 작품이다. "지게목발 받쳐놓고 / 어슬어슬한 산비알 바라보며 / 한잔 술로 / 소회도 풀잖은가. / 그게 다 / 기막히는기라 / 다 그게 / 유정한기라." 라며 장터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삶의 표정을 읽어내고 있다. 요즘도 5일장이 서고 7일장이 서는 곳이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장꾼을 모으기에는 옛날만큼 성황을 이루지 못한다. 볼거리, 먹을거리, 생활에 필요한 잡동사니들을 분주히 팔고 사는 모습에서 저렇게 사는 게 사람 삶이구나라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기계장에도 별반 다를 게 없었겠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그 자체가 유정한것이라 말하는 것을 보면 한잔 술이 담아내는 것이 무궁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며 가며 먼 사돈의 친척까지 안부를 묻고 지나가던 그 장날의 풍경만큼 세상이 이풍 졌던 시절이 있었다. 기계 장날, 허연 산뿌리 같은 길을 걷고 걸어 만났던 사람이 서로 얼굴 마주 보며 한잔 술로 목을 축였던 모습이 어제의 우리들 삶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