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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만질지라도 고막에 구멍을 내지는 마시게...
날씨가 많이 선선해 졌다. 동네 친구들, 민규, 순남, 영원과 멀리 인천에서 온 연희와 함께 청량산행에 올랐다. 문 여사가 조금 늦게 합류하긴 했지만 기다리는 동안 다른 친구들과 이런 저런 얘기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오늘 산행을 위해 백사장이 여러 친구들에게도 문자를 넣은 모양이다. 많은 친구들이 함께 하지는 못 했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는 산행은 마냥 즐겁다.
짧은 코스 보다는 조금은 돌아가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하게 배합되어 있는 요즈음의 코스가 나는 좋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웃고 떠드는 가운데서도 뱃살을 어떻게 뺄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가 사뭇 진지해 보였다. 산행도중 마지막 즈음에 만나게 되는 막걸리는 예전엔 지나치기 어려운 난 코스였다. 술 한잔 하고 가자고 벌써 몇 번은 이야기 했겠지만 그것은 마음 뿐, 그 앞을 애써 태연한척 총총 걸음으로 지나가지만 동행하는 친구들에겐 조금 미안하다. 귀를 핑계로 그 앞을 지나친 게 벌써 육 개월이 지나기 때문이다. 전에는 꼭 막걸리 한잔씩은 걸쳤었는데...
그러니까 오른쪽 귀에 탈이 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었다. 일의 시초가 귀를 너무 많이 긁어서인지 아님 어렸을 적부터 귀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는 확실 하지 않다. 다만 대략 일여 년 전부터 귀에 물이 차는 증상이 생겨서 이비인후과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병원의 치료는 대개 삼분, 길어도 오 분 이내에 끝났다. 문제의 귀를 두세 번 소독하고 물리치료실에서 적외선램프로 귀를 이 분정도 쪼여주면 그것이 끝이었다.
문제는 치료를 받아도 계속 같은 증상이 생기는 것이었다. 귀에 물이 고이면 귀가 먹먹해지고 답답해진다. 또 가려워진다. 이런 경우에는 화장지를 말아서 귀에 고여 있는 물기를 제거해주면 귀가 뚫리면서 답답한 증상은 사라졌다. 병원에서의 치료가 효과를 보이지 못하자 병원치료 도중에 자가 치료를 해 보리라 생각했다.
약국에서 소독약으로 쓰이는 과산화수소수 한 병과 약솜 그리고 의료기구상에서 얇고 긴 치료봉을 샀다. 끝에 약솜을 말아서 사용 하는 도구로 약솜이 잘 풀리지 않도록 처리 되어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긴 막대에 약솜을 말고 소독약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소독약을 머금은 솜이 뭉툭해졌다. 조심스럽게 귀에 넣었다. 쏴~ 하는 소리와 함께 귀가 조금 따끔 거렸다. 쏴 하는 소리는 소독이 되면서 거품이 터지는 소리일 것이며 따끔거리는 것은 고막에 소독 액이 닿으면서 생기는 느낌이겠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소독 봉을 계속해서 몇 번을 휘둘러 돌리고선 두 세 번 이 과정을 반복했다.
아침, 잠에서 깨어나니 귀가 먹먹하다. 밤새 귀에 또 물이 찬 모양이다. 답답함을 일시적으로 해결하고자 휴지를 말아서 귀에 넣어 돌려 보지만 물이 묻어나오지는 않는다. 대신 따끔거리는 느낌과 함께 휴지 주위에 약간의 피가 묻어 나온다. 출근 하는 동안 내내 귀가 먹먹해서 출근 하자마자 병원에 갔다.
"귀가 먹먹합니다. 아마 물이 고인 모양입니다..." 내 말에 귀를 살펴보던 의사 선생님, " 고막에 구멍이 생겼습니다. 언제부터 이런 겁니까?" 그러고 보니 앞에 설치된 시시티비 모니터에 내 귀의 고막이 커다랗게 확대되어 보이고 그 속에 구멍 뚷린 내 고막이 시야에 들어온다. ' 아뿔싸! 사고다... 고막에 구멍을 만들다니...' 순간 마음이 철렁하다. 허나 상념도 잠시 선생님의 질문에 답한다. " 글쎄요,,, 지난 주 까지는 정상이었는데... 주말에 제가 귀를 좀 만졌습니다. 귀에 물이 차서 과산화수소수로 소독을 좀 했었습니다. 그땐 별일 없었던 걸로 기억 합니다만..." " 고막에 천공이 생겼습니다. 고막 재생은 상당히 늦습니다. 치료를 해 보고 끝내 재생이 안 되면 인조 고막으로 수술을 받으셔야 합니다. 치료가 끝날 때 까지 술을 드시면 안 되고 신경을 너무 쓰는 일은 귀에 안 좋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귀에 면봉을 넣어서는 안 됩니다. 소독이 안 된 면봉은 감염이 될 수 있으며 귀의 염증을 유발 합니다. 귀를 안만지는 것이 매우 중요 합니다" " 예, 잘 알겠습니다"
이렇게 내 고막치료는 시작이 되었다. 귀에 염증이 생긴 것이 원인이 되었지만 결국 내가 고막에 구멍을 만든 것이다. 컴퓨터에 비친 고막은 매우 커 보였고 내가 만든 구멍은 고막의 중앙 약간 아래 부분에 모양도 선명하게 뻥 구멍이 뚫려 있었다. 특별한 치료는 없었다. 고막 주위와 귀를 조심스레 몇 번에 걸쳐 닦아내고 램프로 빛과 열을 쪼여 준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구멍 난 고막을 가진 채 밖으로 나왔다.
눈에 비친 세상은 예전과 같아 보였지만 귀의 먹먹함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특히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내 옆을 지나갈 땐 귀에 들리는 소리는 너무 달랐다. 텅텅텅텅~ , 고음영역은 많이 들리지 않고 저주파 영역의 낮은 음들이 둔탁하게 내 귀를 울리고 있었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현실적으로 다가 왔다. 한쪽 귀로만 듣는다는 것은 한쪽 귀를 손으로 막았을 때의 느낌과는 많이 달랐다.
지난 육 개월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귀 치료에 매진했건만 아직 고막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에 얇은 인조 보조 고막을 네 차례 뜯었다 붙였다를 했다. 삼계탕을 먹은 후 갑작스레 증가한 귀속의 물 때문에 붙여놓았던 인조 고막이 떨어진 일이며... 봄 산행 때의 족구시합 때 두어 번의 헤딩으로 인해 귀속의 패치가 밀려나 다시 붙였던 일... 귀속에 염증이 생겨서 이 주 동안 귀에서 물이 계속 나온 일 등등... 나는 귀에서 그렇게 많은 물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 하도 물이 많이 나와서 뇌의 다른 부분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심히 걱정되기도 하였다. 귀 치료는 정말 어려운 일의 연속이었다.
한쪽 고막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반대편 귀도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오른쪽 고막에 문제가 생겼지만 정작 이상하게 들리는 쪽은 정상적인 왼쪽 귀였다. 처음에는 왼쪽 귀에 이상이 생긴 줄로 알았다. 귀가 답답하고 저음위주로 들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구멍 난 오른쪽 고막에 의한 것임을 아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귀는 두 쪽이 모두 완전해야 비로소 제 기능을 다 하는구만... 나는 그제서야 중요한 걸 깨달은 양 중얼 거렸다.
부족한 하나의 귀 일지라도 귀 두 개를 인간이 가졌음에 얼마나 감사 했던지...
그러고 보니 인간의 중요한 감각기관은 모두 두 개로 이루어 졌음을 발견했다. 눈, 코, 귀 이 모두는 두 개로 이루어져 혹시 하나가 문제가 생기더라도 나머지 하나로 그 부족함을 어느 정도 대신 할 수 있다. 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눈이 하나인데 그 눈을 다쳐 모든 것을 볼 수 없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스러운 일이다.
나는 이 일을 경험코자 집사람과 저녁 산책길에 두 눈을 감고 걸어 보았다. 두 눈을 감고 오 분 이상 걸어 본적이 있는가? 처음 눈을 감았을 때는 예전 감각이 많이 남아 있어서 몇 걸음 걸어갈 수는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방향 감각은 사라지고 누가 나와 부딪히지는 않을까?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가 하는 불안감등이 수없이 밀려 왔다. 누군가의 안내를 받지 않는다면 십초도 긴 시간 이었다. 그냥 그 자리에 마냥 서 있을 수 있을 뿐...
집사람의 손을 붙들고 안내 받아 가기를 약 삼십여 분.... 눈을 떴을 때 내 눈에 다시 들어온 세상의 경물은 예전의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너무 큰 감사함과 기쁨을 느낀다. 귀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귀를 다침으로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면 그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참으로 감사 할 일이다.
귀 치료를 시작한 이후 술은 거의 하지 않았다. 지난번 예봉산에 올랐을 때 분위기에 못 이겨 산정에서 딱 한 모금을 했건만 역시 술은 치료와는 한편이 아님을 경험으로 터득 해야만 했다. 그러나 요즘 가끔씩은 시원한 맥주 맛과 예전에 청량산행 길 에 맛보았던 막걸리의 시원함이, 달착 시큼한 그 맛이 그립다.
귀 치료의 어려움을 알아 갈수록 삶에서 되풀이 할 수 있는 수많은 오류와 그로 인한 예기치 않았던 일의 결과들에 대해서 생각 해 본다. ' 무엇을 망가뜨리기는 쉬우나 그것을 원상으로 복구 한다는 것이 그 얼마나 어려운 일임을... '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랜 시간을 걸쳐 만들어 졌을 고막을 내 한 순간의 부주의로, 잘못된 생각으로 고막을 망가뜨리는 데는 불과 몇 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내가 삶을 살아가면서 힘들게 이루어 놓은 귀중한 일들... 이들을 이루는데 내가 기울였을 그 수많은 시간들과 노력들을 생각 한다면 나의 행동 하나 하나에 신중에 신중을 기할 일이다. 나의 이러한 뒤 늦은 깨달음도 소중 하지만 내 고막이 원래의 상태로 하루 빨리 재생되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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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무엇을 망가뜨리기는 쉬우나 그것을 원상으로 복구 한다는 것이 그 얼마나 어려운 일임을...]좋은 말씀이에요...상쾌하게 치유되길 빌어요......어젠 연희도 함께였구나...중국에서 잠시 다니러 온거야
연희는 국내에서 사는것 아닌가? 연희가 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빨리 치유되기를 바란다.
고마우이.
오늘에야 조용한 아침 시간을 가지며 제식의 아픔을 알게 됬구나.. 정말 고생하네.. 원래 이비인후과 특히 귀는 장기치료를 받던데.. 빨리 완쾌하길,.. 저번에 연희가 왔었구나.. 민규의 문자를 받긴했는데 토요일 아침에 털고 나서기가 쉽진않더군..미안허이..
귀의 불편함때문에 제식이가 철학자가 됬구나. 빠른쾌유를 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