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부터 시작된
어지러운 시국과 탄핵 정국으로
온 국민을 우울하고 암울하게 했던
병신년이 저물고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새벽을 깨우는 닭의 울음처럼
희망찬 새해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조류독감으로
많은 닭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라도 희망을 찾아
해뜨는 서산으로 떠나보자
1박2일의 겨울답사는
늘 손꼽아 기다려진다
소한 추위는 어디로 갔는지
이른아침 안개만이 자욱하다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을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가슴 한구석에 설레임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보니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덩어리를
머리에 이고 미소를 머금고 있는
마애삼존불이 멀리서 온 우리들을 반긴다
햇빛의 방향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게 한다는
백제의 예술기법이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온화한 미소에 볼이 터질것 같은
묘한 웃음과 도톰한 입술이
보는이로 하여금 더욱더
친근감을 주는것 같았다
우리도 이렇게 백제의 미소처럼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보원사지로 향했다
조선시대 의상을 계승한 화엄십찰중 하나로
보원사지는 호리병 모양으로
사찰 입구는 작았지만
3만2천평에 천여명의 승려가 있는
대사찰 이었다고 한다
왕권강화와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며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었지만
임진왜란과 고려말 왜구의 약탈로
더이상 지원이 되지 않자 유지가 어려워
그만 폐사 되고 말았다고 한다
너른 경내에는 5층석탑과 당간지주,석조등
보물들이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점심은 보원사 스님들이 직접 만든
음식으로 점심 공양을 했는데
어느것 하나 맛없는것이 없을 만큼
정갈하고 깔끔한 음식들은
기억에 남을 만큼 눈과 입을 즐겁게 했다
행복한 점심을 먹고 개심사로 가는길.
능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초지가
서산 한우목장 이란다
이곳에선 씨소의 정액을 공급하고
송아지의 아버지는 모두
이곳에서 사육 한다고 하니
엄청난 소들이 드넓은 초원을 뛰놀며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산 모양이 코끼리 상아와 뿔을 닮아서
붙여진 상왕산 아래 마음을 열고
들어가라는 개심사가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마음을 닦고
경지(연못)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뒤
나무다리를 건너 해탈문으로 들어갔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이용한 사찰답게
일주문도 마주보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대신하고
심검당 또한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사용한것이 정말 자연친화적 이었다
특히 봄이며 왕벚꽃이 장관을 이룬다고 하니
어찌 꽃피는 봄을 기다리지 않을수 있겠는가
또 절 앞마당에 두 그루의 파란 벚꽃이 핀다고 하니
이곳이야말로 무릉도원이 아닐까 상상에 빠져본다
푸른 벚꽃아! 꽃이 피거든 나도 꼭 불러다오
신선이 되어 구름속을 날며
나도 꽃이 되어 하룻밤 묵고 갈게
꿈속이라도 좋으니 꼭~말이다
절집을 나오는데 죽기전에 먹어야할
음식 10가지가 있다고 한다
막걸리에 도토리묵,더덕전등
참새(교수님)가 어찌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수 있겠는가
다행히 죽기전에 먹어야할
음식들을 뱃속에 채우고 해미항교로 향했다
초입에 300년이 넘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 해준다
나무는 홍살문을 따라 향교 앞마당까지 이어진다
할아버지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형상이라는데
정말 할아버지같은 느티나무를
자꾸만 뒤돌아보게 한다
정말 엄청나게 큰 나무들이다
어디선가 소와 닭이 울고 개짖는 소리에
유년시절 고향집 앞마당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지금처럼 치열한 경쟁속에서
학문에 열중했을 유생들을 떠올리며
은행나무밑에서 나도 잠시 머리를 식혀본다
시내 한복판에 원형이 잘 보존된
읍성 하나가 보인다
이곳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온갖 고문을 당했다는 해미읍성이란다
고창읍성,낙안읍성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읍성으로
해안에 자주 출몰하는 왜구를
막기위해 만든 성이라고 한다
또한 천주교 탄압으로
천여명의 신자들이 고문과 박해로
처형 당했던 아픔이 서린곳이기도 하다
천주교 박해의 아픔을 함께한
회화나무는 알고 있을것이다
많은 천주교인들이 아픔과
고통에 울부짖던 소리를...
웬지 모를 아픔이 가슴속까지 파고 든다
그래도 여태껏 살아 남아 있는 회화나무가
한없이 애처롭게만 느껴진다
가슴 한켠에 회화나무를 보듬고 간월암으로 향했다
일몰을 볼수 있을지 기대를 하고 갔지만
날이 흐린 관계로 볼수없어 많이 아쉬웠는데
다행히 물이 빠져서 걸어 들어 갈수는 있었다
물이 빠지면 넓은 갯벌이 드러나 육지가 되지만
물이 차면 섬이 되기 때문에
마치 바다에 떠있는 암자 같다고 한다
무학대사가 수도하던중
달을 보고 깨우쳤다고 하여
간월암이라고 하는데
바다에 떠있는 암자가 참으로 아름답다
바닷가 근처 펜션에서 여장을 풀고
저녁은 직접 해먹었다
힘은 들지만 만들어 먹는 재미도
추억에 남을것 같았다
그토록 오고 싶었던곳인데
간월도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다니
나는 내 자신에게 새해에
큰 선물을 준것 같아 참으로 뿌듯했다
이른 아침 회장님께서
혼자 아침식사를 다 해놓고
어린아이 깨우듯 우리를 깨운다
몸도 마음도 지쳤을텐데
그의 억척스러움에 또 한번 놀랐다
센스있지,동작 빠르지,음식 잘하지
그야말로 만능 재주꾼이다
아침식사는 굴국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부석사로 향했다
천수만을 지나자 정주영 공법으로
유조선을 막아 물막이 공사를 했다는 서산 간척지.
거센 물살과 빠른 유속으로
공사가 난관에 부딪히자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바다를 옥토로 만들어
연간 5만4천톤,쌀 68만 가마를
거둬 들인다고 한다
또 그는 이북에서 소 1마리를 몰고 이곳에 왔는데
훗날 500마리의 소를 2번씩이나 보냈다고 하니
그의 투철한 정신과 기발한 아이디어,검소함은
많은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것이고 귀감이 되고 있다
정주영 회장의 뚝심으로
바다가 육지로 변한 서산 방조제를 달려
부석사에 도착했다
일주문에 들어서자 용이 용을 물고 있는
처마밑 조각품이 눈길을 끈다
아마도 용과 관련된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설화이기도 하나보다
못다 이룬 사랑이 용이되어
나라를 지킨 선묘낭자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영주 부석사의 설화와도 똑같다
바닷가 어느곳에 뜬 바위가 있다는데
자세히 볼수는 없었다
별을 보러 류방택 천문기상과학관으로 향했다
우리나라 대동여지도를 완성시킨이가 김정호라면
하늘의 별자리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완성시킨이는
고려말 충신 류방택이다
별의 밝기에 따라 크기를 다르게 해서
돌에 새긴 석각천문도로
만원권 지폐에서도 볼수있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천체투영실에서 돔 스크린을 통해
밤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자리를 볼수있었다
별도 나이가 들면 죽는다는데
별똥별이 되어 떨어진다고 한다
우암 송시열이 후학들을 가르치기위해
사용했다는 혼천의 또한 천문관측기기로
천체(별과5행성)의 위치를 측정하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이렇게 신비롭고 재미있는
우주체험을 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우주에 와 있는 느낌이다
밤하늘의 별을 따라 서산객사로 가는길.
객사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로
고을 수령이 임금의 궐패를 모시고
배례를 올리던곳으로
사신들의 숙소로 사용했던 곳이라고 한다
서산의 전통음식인 게국지로
점심을 먹고 부성사로 향했다
사찰 인줄만 알았는데
최치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었다
교수님께서 관복으로 갈아 입으시고
모두 함께 참배를 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7년간 태수로 지내셨다고 한다
몽유도원도로 잘 알려진 안견.
전망이 꽤 좋은곳에 그의 기념관이 있었다
검은고을의 아들(현동자)은 죽어서도
자기가 태어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박팽년과 함께 도원을 몽유한뒤
안견에게 꿈에 본것을 설명한것인데
3일만에 그림을 완성했다고 한다
"복숭아꽃 여러 무리 자홍색 펼치고
맑은 시내는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데
소나무숲에 바람이 스치네
이세상 초목에 누런 먼지 분분하고
꽃과 대나무 항상 청춘인곳..."
그렇다. 바로 이곳이 무릉도원이다
내마음속에 무릉도원은
바로 오늘 서산이 아니었을까
이번 답사의 마지막 코스인
정순왕후생가로 가는길.
효종이 하사한 집으로
초입에 영조대왕비인 정순왕후의
어린시절 꿈을 키워주던 느티나무가 있었고
앞마당엔 작고 어여쁜 분재들이
왕비의 어린시절 만큼이나
예쁘게 자라고 있었다
서산에서의 1박2일은
나에게 참으로 많은것을 느끼게 했다
내가 그토록 그리워 하던
백제의 미소를 볼수있었고
회화나무에 매달려 온갖 고문을 당했던
천주교인들의 울부짖는 소리도 들었고
마음을 열고 연못에 비친
나의 부족함을 배웠으며
하늘의 별을 보러 우주에도 가 보았고
검은고을의 아들(현동자)이라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통해
신선이 되어 무릉도원에서
1박2일을 보냈으니
이곳 서산이야말로
무릉도원이 아니었겠는가!
출처: 부산 고적 답사회 원문보기 글쓴이: 염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