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ony Perrottet
자전거를 타고 중국 수도 베이징을 돌다보면 어떤 것을 만나게 될 지 모른다. 벨기에 출신 기업가 후안 반 바센호브는 8년 전 사라져가는 후퉁(胡同, 골목길)을 탐험하기 위해 집을 나섰는데 자회색 지붕 위로 사리탑 꼭대기 같은 것이 솟아있는 게 눈에 띄었다. 철문을 열고 들어서니 버려진 목조누각의 절이 나타났다. 청나라 시대 장인들이 만든 아름다운 복층 구조의 메인홀을 갖추고 있는 보기 드문 건축학적 보물이었다. “그날 난 내 사명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신도들에겐 ‘지혜의 사찰’이라는 뜻의 ‘지주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있는 이 고대 건축물은 18세기 중엽 황궁(자금성) 근처에 지어진 티벳불교 사찰 3곳 중 하나였다. 그동안 화재로 무너지고 전소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했다. 하지만 몇 년간 복원하려 노력한 끝에 럭셔리한 객실 8개와 갤러리, 레스토랑, (지극히 효과적으로 조각작품들을 전시한) 안뜰이 있는 부티크 호텔로 다시 태어났다. 무너져내리기 직전이었던 절은 이제 삭막한 공산주의식 외관을 벗고 동양의 영적인 요소와 서양의 현대적 요소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새로운 공간이 된 것이다.
호텔 벽에는 중국의 드라마틱했던 역사가 그대로 씌여있다. 청왕조의 부귀영화가 절정에 달했던 1700년대 중반,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황제는 이곳에 티벳 사찰을 짓기로 했고, 지주사는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받던 현인의 집이 됐다. 200년 후인 1949년 인민해방군이 베이징으로 진군해왔을 때도 6명의 살아있는 부처가 지주사에 머물고 있었다. 이후 왕정시대의 상징들은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 용도가 변경됐다. 지주사는 공장으로 전락했다. 처음엔 모자이크 공장, 이후엔 자전거, 의료품 공장, 그러다 1970년대 들어서는 중국 첫 흑백 TV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쓰였다. 이렇게 경시되고 오용되면서 건물은 점차 폐허가 됐다. 반 바센호브는 2005년 처음 이곳을 발견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그대로 놔뒀더라면 3~4년도 못 가 허물어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반 바센호브는 (중국 영화업계 베테랑) 린판과 리초우 두 명의 사업파트너와 연락을 취했고, 2007년 잔해 제거작업을 마치고 투자자들이 지주사가 지닌 가치를 직접 볼 수 있게 했다. 메인홀의 초라한 현대식 천장을 걷어내고 나니 산스크리트 페인팅으로 덮힌 나무패널이 모습을 드러냈다. 2008년 이곳을 부티크 호텔로 재탄생시킨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투자자들은 단번에 매혹됐다. 반 바센호브는 “템플 호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엔 아주 적기였다”고 회상한다. “중국인들은 수년간 전통과 담을 쌓고 살아왔던 터라 때마침 왕정시대 건축물 복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었다. 10년 전이었다면 필요한 숙련근로자들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템플 호텔은 2011년 드디어 대중 앞에 그 일부를 선보였다. 프랑스 레스토랑 ‘템플 레스토랑 베이징’이 있는 윙(중심 건물에서 옆으로 늘인 부속 건물)이 문을 연 것이다. 레스토랑 운영자는 미슐랭 스타 3개에 빛나는 뉴욕 맨해튼 소재 레스토랑 ‘다니엘’의 총지배인이었던 벨기에 태생의 이그나츠 레클레어다. 그는 처음 이곳을 봤을 때 매료됐지만 상태가 너무 열악해 진짜 사업을 할 수 있으리라곤 믿지 않았다. 적어도 개조작업을 거친 모습을 다시 볼 때까진 그랬다. 현재 그의 레스토랑은 부유한 중국 거주 외국인, 호기심에 찬 여행객, 상류층 중국인 등 다양한 손님을 끌어들이고 있다. “중국인들이 이곳을 기피할까봐 걱정했지만 이젠 손님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다.”
호텔은 반 바센호브가 친구들을 통해 입수한 중국 및 국제 현대 미술작품을 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조명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위주로 했다. 사찰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독일 디자이너 인고 마우어와 아틀리에 ‘아레티’가 첨단 조명을 선사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최고는 ‘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확보한 것이었다. 은둔자로 유명한 터렐은 디자인 세부조정을 위해 베이징을 직접 방문했다는 후문이다. “제임스는 이 공간에 감동을 받았다. 이곳은 유물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 아니라 지극히 현대적인 세팅 속에 살아있는 공간이다. 인구 수백만의 도시 한가운데 위치해 있어 세계 어디보다 터렐의 작품을 가까이서 즐길 수 있다.”
템플 호텔은 교통이 혼잡한 베이징 안에서 평화와 안식을 느낄 수 있는 오아시스나 마찬가지다. 이곳에선 아침에 새소리를 들을 수 있고 나비도 볼 수 있다. 몇몇 객실은 TV 공장으로 쓰였던 건물에 있지만, 그런 것보다는 수백년된 사실(私室)들을 합쳐 만든 객실에서 잔다는 느낌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바닥은 겨울에 난방이 들어오고 격자창은 이중유리로 단단하니 더 바랄 게 없다. 매주 일요일 해질 무렵이면 손님과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일반인들은 터렐이 연출한 고즈넉한 ‘스카이스페이스(하늘 공간)’를 즐길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는 가운데 LED 조명이 다채로운 색으로 저물어 가는 하늘을 비추고, 난 바닥에 누워 천장에서 날아 내리는 박쥐들을 본다. 그때 (베이징에선 기적처럼) 별 두 개가 하늘에 뜬다. 난 다시 호텔 안뜰로 돌아가 창 대신 작은 불기둥 같은 전등을 들고 있는 작은 병사 조각상들을 지나 명나라 시대 처마 아래 위치한 레스토랑 바로 들어간다. 반 바센호브는 “우리가 이 사찰의 수명을 300년은 연장했다고 생각한다”며 “사명을 다한 느낌이다. 다른 이들도 같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The Temple Hotel, 23 Shatan North Street, Dongcheng Distri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