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중앙대 영화학회에서 컬트영화제를 개최함과 동시에 각 방송국의 절대적인 홍보와 언
론매체들의 비호를 받으며 흔히 '컬 트영화(Cult Movie)'라고 일컫어지는 영화들을 접할 수 있
었다. 이러한 컬트영화의 붐(Booming)은 대학영화 동아리의 각종 컬트 영화 페스티발들과 어
우러지어 대중적인 상식으로까지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대중매체나 언론매체에서 컬트영화는 퇴폐적/자극적인 영화라는 공식을 대중들에게
피상적으로 주입시킴으로서 그 자체 의 '컬트적인 면'에 대한 오해를 낳게 되었다. 즉 컬트영화
는 뭔 가 선동적이고 자극적이며 퇴폐적인 특징으로 기존사회의 금기 (Taboo)를 깨는 과격한
영화라는 편견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후 컬트영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컬트영화는 관
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모토를 깔며 이율배반적으로 미국이란 사회에서 만들어진
컬트영화가 마치 전세계의 컬트영화 라도 되는양 영화목록까지 작성해서 영화광이라면 이정도
영화는 섭렵해야 한다는 식의 글들이 각종 영화잡지를 통해서 유포되기 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가지 작업속에서 그 본질적인 의미를 찾는 작업을 시작하기전에 뿌리내린
몇가지의 잘못된 오해들이 있다는 것을 먼저 파악해야한다.
먼저, '컬트영화는 호러/서스펜스영화이다'라는 식의 장르적 구분이다. '컬트영화'는 장르적
개념이 아닌 영화 문화로서 영화 의 성격일 뿐이다. 이는 기존의 영화장르에 종속될 수 었는 영
화 자체의 성격, 즉 '컬트적'인 요소일 뿐이지 그자체로서 '컬트영 화'를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음으로 '컬트영화가 급진적/과격한 이데올로기적 파괴를 시 도한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컬
트영화라고 일컫는 영화들에게서 컬트영화로 구별되는 각개의 동일한 이데올로기적 바탕의 상
관관 계를 찾기 힘들다 이러한 오해는 우리나라에 컬트영화의 소개를 시도했던 초기 상영작품
들의 성격에 의해 철저히 규정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컬트영화는 상업적으로 흥행에 실패한 영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상업적인 성공
의 여부가 컬트영화를 일반적으로 규정지을 수 없다는 것은 앞으로의 컬트영화에 대한 이해작
업을 통해 밝혀질 것이다. 이것은 헐리우드의 제작시스템에 의해 벗어 난 영화들에 대한 사고
를 기반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2. [컬트]의 시작과 정의
컬트영화에 대한 어느 글에서나 볼 수 있는 컬트영화의 언어적 정의부터 살펴보자. '컬트
(CULT)란 숭배, 찬양을 뜻하며 이는 밀 교적인 성격을 가진 종교적 의식의 뜻을 내포한다. 그러
나 그 의 미는 집단내부의 특정 구성원들만 이해하고 지지하는 어떤 시스 템이나 대상을 지칭
하는 것으로 의미가 확대/변형되어 사용되어 졌다.
영화에서 컬트란 말이 사용된 것은 1960년대 미국의 로드무비 (Road Movie)로부터 시작되었
다. 60년대 미국사회는 반전시위와 물질적인 기계문명을 거부하는 히피문화, 락문화 그리고 반
인종 주의 등 기존의 사회체제에 대한 반발(Anti)의식이 하나의 대항 문화를 형성하였다. 그들
에겐 헐리우드의 제작중심(Major System)을 통해서 배출된 상엉영화에게선 만족할 수 없었으
므로 그들의 손으로 다큐멘터 리, 실험영화 등의 요소들을 흡수하며 자신의 생각을 담아낸 영
화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영화들은 전형적인 헐리우드영화를 배 척하며 기상천외한 아이디어
와 놀랄만한 플롯, 다양하고 실험적 인 카메라이동(Camera-Work)을 시도했으며 소극장이나
영화집단 (Cine-Club)에서 소수그룹의 욕구를 채워주며 상영되었다. 그런 당시의 그들에게 데
니스호퍼의 <이지라이더(Easy Rider)> (1962)와 아서펜의 <엘리스의 레스토랑(Alice's
REstaurant)> (1969)등은 당시 미국의 기성세대들에게는 충격을 주었지만 히피 문화를 지지하
는 젊은이들에겐 새로운 우상의 출몰이었다. 이러한 영화들은 미국내의 성공으로 전세계에 수
출되어 선풍적 인 눈길을 끌었으며 예술영화극장이나 소극장에서 꾸준히 상영됨 으로써 몇번
이고 다시보며 재해석하고 재평가하는 컬트영화의 징 후를 보여주는 선구자적인 컬트영화의
징후군을 남겼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집단적인 제의에 가까운 영화보기양식의 시 발은 짐샤만감독의 <록키호러
픽쳐 쇼(Rocky Horror Picture Show)>(1975)라고 할 수 있다. 무섭다기보다는 괴상하고 우스꽝
스러운 호러무비에 록뮤직, 섹스등을 가미한 이 잡탕같은 영화는 개봉되었던 대극장에선 성공
을 거두지 못하였으나 그후 변두리의 드라이브 인 극장(DRIVE IN THEATER: 차를타고 들어가서
보는 야 외극장)이라는 미국 극장문화의 특수한 형식 속에서 큰성공을 거 두었다. 관객은 이미
몇번씩 이 영화를 봐서 내용을 훤히 알고 있으며 그에 맞는 특수한 제식에 참여함으로써 밀교
집단의 신도와 같이 즐거움을 느낀다. 예를 들어 영화속에서 춤을 추는 장면에서 갑 자기 관객
에게 스텝설명이 나오면 관객들은 이미 연습해간 스탭 을 추어가며 영화속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비오는 장면이 시 작되면 물총으로 서로에게 물세례를 주기도 한다. 이러한 의식화 된
행위들은 관객자신들이 창조해내고 그것을 관객에게 선보임으 로써 관객의 환호성을 받아들이
고 굳어져 형식화된 것이다. 이러한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의식속에 진행되는 직접적, 참여 적
영화보기행위는 특히 미국의 주말저녁을 신나게 보내기위한 모든 행동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극장보다는 더 많은 행 동의 자유가 가능한 드라이브인 극장문화와 팝콘과 햄버거,
콜라 를 마시며 환성과 야유의 고함을 치고 배우와 함께 대사를 읊조 릴 수 있는, 좋게 말해 관
객참여적인, 나쁘게 말하면 버릇없고 저속한 영화보기 문화속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유럽이나 영국에서는 극장안에서 장난한다거나 떠드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다. 예를 들어 <로
보캅 I>의 마지막 장면에서 "네이름이 뭐냐"라고 사장이 묻자 관객들은 "머피"라고 소리친다. 아
니나 다를까 인간 머피의 기억을 잊은 것으로 되어있던 로보캅은 "머피"라고 대답 한다. 관객의
기도와 같은 주술/외침으로 로봇캅이 인간 머피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러한 관계의 형성속에서
관객은 주술적인 힘 에 빠져드는 것이다.
최근의 가장 컬트적인 영화로는 스타트랙을 들 수 있다. 열광 팬들은 스타트랙회지를 만들고
좋아하는 인물로 분장하고 파티를 하는 컬트적 제식행위를 한다. 또 제작사측에서도 엔터프라
이즈 우주선의 모형에 팬들을 초청함으로써 관객의 영화속에 참여하는 듯한 몽환적 착각을 상
업적인 인기전략으로 사용한다. 이렇듯 컬트영화는 관객이 참여하는 집단적 영화보기의 한 형
태이며 이는 문화적인 기본바탕하의 미국문화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1970년대를 지나 1980년
대에 이르면서 단순히 열악한 제작여 건을 회복하고 헐리우드 제작기반에 흡수되면서 관객에
의해서 완성되던 컬트영화가 영화작가의 주관적인 시각이 투영된 의도적 으로 만들어진 컬트
영화들이 등장하였다.
이들 일련의 영화들은 비평가들에 의해서 영화적 가치를 인정 받게 되고 컬트영화라는 의미는
일반 대중관객층에게서 점차 확 산되어갔다. 이러한 결과로 컬트류의 영화감독군이 형성되고
감 독 스스로도 컬트적이라는 굴레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나 컬트영화라는 본래적 의미가 가지
고 있듯이 컬트영화는 관객에 의해서 발탁/완성되기 때문에 감독이 관객을 의도적으로 컬트영
화광으로 유도하는 것은 진정한 컬트영화감독군이라고 볼 수 없다. 이것이 컬트영화가 가지는
독특한 특징이며 영화와 영 화감독은 별개이며 그간의 통념적인 작품-감독과의 완성품-제품
의 관계는 작품-관객으로 대상의 전이를 갖게 되었다.
3. 한국의 영화상황에서의 진정한 컬트영화란?
앞의 글들에서 우리는 컬트영화의 발생이나 존속자체가 철저히 미국적인 영화보기행위 속에
서 이루어진 것임을 살펴보았다. 그 러기에 우리가 접하게 되는 컬트영화의 목록이나 영화자체
는 거 의 전부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한 개체들이 과연 한국 의 영화상황속에서도 동
일한 컬트영화로써 기능하게 될지는 의문 이다. 컬트영화의 근본적인 의미가 관객의 참여에 의
해서 만들어지며 지탱된다는 것을 상기할때, 한국에서 컬트영화라고 열광하는 것 은 냉정히 말
해서 그동안의 헐리우드 영화의 흐름에 물든 한국의 영화관객이 가지는 또다른 방향으로서의
문화적 식민주의적인 결 과물일 뿐이다.
그리고 반항적인 색체, 반동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는 컬트영화 를 보는 것은 영화광이 가지는
기본적인 미덕인양 [컬트영화팬= 영화광]이란 등식을 무비판적으로 유포한 그간의 여러 영화
관련 잡지의 기사나 프로그램들에게 어느 정도의 비난의 화살은 돌아 가야 한다.
컬트영화광은 기본적으로 그 개개의 영화에 열광하는 것이지 모든 영화에 대해서 열광할 필요
는 없다. 그들에게 있어 영화를 보는 것은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도구로써, 그리고 집
단적인 최면(관람) 효과를 얻어낼 수 있는 행사적인 의미를 가진 다. 다만 그런 사람들 중에는
영화를 좋아하는(당연히 여러종류 의 영화를 접하려고 하는)사람이 많은 수를 차지하지만 당위
적으 로 그럴 필요는 없다.
더불어, 다수의 관객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소수의 관객에 게 계속 상영, 지지를 받는 컬트
영화의 또다른 속성을 생각한다 면 우리의 관람문화에서는 예술성 강한 유럽영화의 전부가 컬
트 영화로 파악되는 오류의 위험요소를 가진다. 즉,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극장상영 조건이나
관람문화에서는 이러한 컬트영화의 본래적인 뜻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그 나름대로의 컬트적인 영화를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은, 근래들어 그
숫자가 대폭 늘고 있는 시네마떼끄의 영화상영공간과 독립적인 제작방식과 배급/상영방 식을
취하고 있는 소형영화운동의 결과가 될 것이다.
씨네마떼끄운동의 영화보기는 컬트영화의 기본적인 바탕중의 하나인 관객의 영화상영중의 참
여는 미약하지만, 어떤 영화에 대 해 자유롭게 열광할 수 있고, 열띤 토론이나 비슷한 감상을 가
진 사람의 모임을 통해 자신들의 신화적 영화를 도출시켜내며 지탱 시킨다는 점에서 영화보기
의 집단적 관람이 불완전하게나마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영화운동으로서의 소형영화의 영화제작/상영/관람의 형태는 한국의 정치상황이 가
지는 폐쇄성으로 말미암아 컬트적인 기본 바탕에 훨씬 근접해 있다. 이를 <파업전야>라는 장
산곶매의 영화를 예로 삼아 생각해보자. 이 영화가 영화운동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은
이후의 의식있는 소형영화 운동에 있어서 형태의 전형을 이룬다는 면에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
다. 파업전야는 영화자체가 가지는 금기적인 요소(이것은 분명 한 국의 정치상황이 만들어낸
오류이다)로 인해 영화는 표면적이고 일반적인 상업적 배급망을 지나지 못하고 암묵적으로 소
외되어 자체의 나름대로의 배급망을 따라 각개 필요 대중들(학생, 노동 자 등)의 소규모 모임에
초청/상영/관람되어진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관객들은 <파업전야>의 주제가를 부르고 의도
적인 일체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영화속에서도 파업장이나 노동작업장의 장면등에서 관람하는
대중들에게 영화속에서 보여 준 가상적인 현실에 참여할 것을 의식적으로 되풀이하며 강요하
며 관객또한 영화속의 상황을 현실자체로 인식하며 참여한다. 영화가 끝난 다음에는 다시금 영
화의 주제가를 되씹으며 이러 한 비밀스러운 의식에 대한 의미를 정리한다. 그들은 이 영화를
계속적으로 관람하며 서로의 의지를 확신하고 그러한 집단들은 다시금 소규모로 분화되어 열
광적으로 이 영화에 대해서 반응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영화보기형태에서 진정한 컬트영화(미국적 인 컬트개념을 사용한 영화)를
찾는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 다. 즉 미국의 관람문화가 만들어낸 관객이 참여하는 집단적
영 화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특수성 속에서 컬트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영화를
찾는다면 시네마떼끄의 영화보기운동과 소형영화운동의 결과물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와 덧붙여 청소년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홍콩영화의 일부(영웅본색, 천녀유혼 등)또한
영화속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 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환성과 한숨을 짖는 다른 세대가 이해할
수 없는 독립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나름의 특별한 형식의 영화보 기(영화보러갈때 괜히 바바리
를 입는다는지 , 한때 모형총싸움이 극장안에서도 유행이었다는 것, 영화를 사진기로 찍어 가
지고 다 는다든지, 계속적인 관람을 시도한다는지 하는 것 등)를 수행했다는 면에서 컬트영화
의 하나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같이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컬트영화에 대한 오류 들을 다시금 나름대로 재정립하
게 된다면 진정한 우리나라의 컬 트영화의 탄생도 기대되리라 생각된다.
- 이글은 영화평론가 유지나씨의 <컬트영화의 이해를 위하여>를 기존 축으로 삼아
하이텔 시네마 천국의 황대준 :ID(baquibul)님이 쓰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