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의 은밀한 작전을 ‘기막힌’ 타이밍에 찍은 사진들, 알고 보니…
이철민 국제 전문기자별 스토리 • 6시간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무장 테러집단인 하마스 대원 3000여 명이 이스라엘과 접한 남북부의 국경 일곱 군데에서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시작한 것은 10월7일 오전6시30분(현지시간)였다.
곧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높이 6m의 최첨단 철제 감시 장벽인 ‘아이언 월(Iron Wall)’이 불도저에 무너지고, 하마스 대원들이 그 사이로 픽업트럭과 모터사이클 등을 타고 이스라엘 영토로 침입해 들어갔다. 이 모습을 담은 하마스의 동영상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세계로 퍼졌다.
그러나 이날 아침 하마스 기습 작전의 현장을 찍은 것은 하마스만이 아니었다.
국경을 넘어선 하마스 대원들이 이스라엘 전차를 포획해 불태우고 팔레스타인 깃발을 휘날리고, 전차에서 끌어내린 이스라엘군 병사를 집단 폭행하고, 이스라엘 키부츠 공동체에서 노인과 부녀자를 골프 카트에 태워 납치하고, 이스라엘군 병사 시신을 픽업 트럭에 실어 가는 모습 등 하마스의 이날 ‘전과(戰果)’를 보여주는 장면들은 AP, 로이터 통신, 뉴욕타임스, CNN 방송 등 유수의 뉴스 매체가 계약을 맺은 가자 지구 현지의 팔레스타인 프리랜스 사진기자들이 찍어 전세계로 전파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어떻게 이 이른 시간에, 하마스가 1년 여 넘게 이스라엘 정보 당국까지 속여가며 기획한 ‘알 아크사 홍수’ 작전을 ‘우연히도’ 가자ㆍ이스라엘 국경에 미리 가 있다가 찍을 수 있었을까.
미국 뉴욕시에 본부를 둔 친(親)이스라엘 언론 감시단체인 어니스트리포팅(Honest Reportingㆍ정직한 보도)은 8일 뉴욕타임스, AP 통신과 로이터, CNN 방송 등 유명 뉴스매체에 속한 이들 프리랜스 기자가 “하마스의 사전 협조와 승인 없이 공격과 만행 현장에 제때 동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며, 이들이 하마스와 ‘공모’했거나 범죄 행위를 방조ㆍ묵인했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이 하마스의 기습 작전을 미리 통보 받지 않았다면, 그날 그 이른 시간에 국경에 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 단체는 또 뉴욕타임스, CNN 방송과 통신사들도 프리랜서 기자들의 이러한 이스라엘 ‘침투’ 취재 또는 하마스 종군 취재를 허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과, 최소한 이들이 하마스와 ‘협력’해서 만행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는 상황을 알면서도 사진을 전파한 데 따른 ‘윤리성’ 문제를 제기했다.
예를 들어, AP통신과 CNN 방송의 프리랜서로 일하는 가자 지구에 거주하는 사진기자 하산 에슬라이아는 하마스 대원들의 공격으로 화염에 싸인 이스라엘 전차를 찍고, 한 이스라엘 키부츠의 철제 정문을 열고 뛰어 들어가는 하마스 테러범들을 찍었다.
AP 통신의 가자 현지 프리랜스 사진기자인 에슬라이아가 찍은 10월7일의 하마스 기습작전 장면/AP© 제공: 조선일보
그의 이름은 당일 AP 통신이 배포한 사진에 함께 실렸다. 에슬라이아는 과거에 가자 지구의 하마스 최고 실권자인 야히야 신와르가 그의 볼에 입을 맞추는 사진을 다시 공개되기도 했다.
가자 지구의 최고 실권자인 야히야 신와르가 AP통신과 CNN 방송의 팔레스타인 현지 프리랜스 사진기자인 에슬라이의 볼에 입을 맞추는 사진/X© 제공: 조선일보
또 AP 통신이 배포한, 하마스 대원들이 이스라엘 전차를 포획하고 그 위에 올라가 팔레스타인 깃발을 휘날리는 사진을 찍은 유세프 마수드는 뉴욕타임스의 프리랜스 기자이기도 하다. 이들은 모두 프레스(press) 조끼나 헬맷도 쓰지 않아, 하마스 대원들이 찍은 동영상에선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전차를 포획한 하마스 대원들이 팔레스타인 깃발을 휘날리고 있다. AP통신과 NYT의 현지 프리랜서인 유세프 마수드가 찍었다./AP© 제공: 조선일보
살해된 독일계 이스라엘 여성인 샤니 루크의 시신을 끌고 가는 하마스의 픽업 트럭, 가자 지구로 납치되는 이스라엘인들을 찍은 AP 기자들도 모두 가자 출신의 프리랜서들이었다.
‘어니스트리포팅’은 “흥미롭게도 이 사진 기자들의 이름은 현재 AP 통신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삭제됐다”며, 이는 AP 통신에서도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로이터 통신이 기습 작전 당일 ‘오늘의 이미지’로 선정한, 하마스 대원들이 이스라엘군 병사의 시신을 전차에서 끌어내려 잔혹하게 다루는 장면은 로이터 통신의 현지 프리랜스 기자들이 근접 촬영한 것이었다.
10월7일 당일 로이터 통신이 '오늘의 이미지'로 선정한 사진. 2명의 팔레스타인 현지 프리랜서가 하마스 대원들이 이스라엘 병사의 시신(가운데 모자이크 처리)을 전차에서 끌어내린 뒤 잔혹하게 다루는 모습을 찍었다./어니스트리포팅© 제공: 조선일보
어니스트리포팅의 이 같은 조사 결과가 나온 뒤, 이스라엘의 슬로모 카리 공보부 장관은 APㆍ로이터ㆍ뉴욕타임스ㆍCNN에 대해 “직원들이 하마스와 공모했는지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해당 뉴스 매체들은 하마스 공격에 대한 사전 인지(認知), 하마스 동행 취재 허용 등에 대한 어니스트리포팅의 의혹 제기는 모두 “터무니없다”고 반박했다.
로이터 통신은 9일 성명을 내고 “10월 7일 공격 계획을 사전에 알지 못했을 뿐더러, 현장 사진은 2명의 프리랜스 기자들이 기습 공격 두 시간 뒤에 찍은 것”이라고 밝혔다. AP 통신도 “공격을 사전에 알지 못했으며, 첫 현장 사진은 하마스 공격이 일어나고 한 시간 뒤에 받았다”고 해명했다.
뉴욕타임스는 자사의 프리랜스 기자인 유세프 마무드는 “그날 전개되는 비극을 기록하는” 사진기자로서의 일을 수행했을 뿐이라고 변호했다. NYT는 “본사의 누구든 하마스 공격을 미리 알고 있었거나 하마스 공격을 동행 취재했다는 어니스트리포팅의 주장은 진실이 아니며, 이는 이스라엘과 가자에 있는 우리 기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무모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CNN 방송은 하마스 공격의 사전 인지는 부인(否認)했지만, 9일 성명을 내고 이 방송의 프리랜스 기자인 하산 에슬라이아와의 모든 계약을 해지했다고 밝혔다. CNN 대표이사인 마크 톰슨은 9일 오전 직원들과의 컨퍼런스 콜에서 어니스트리포팅의 주장은 “불행한 뉴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