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 7일 박찬호(텍사스)를 마운드에서 끌어내린 원흉인 손가락 물집. 이날 공교롭게도 김병현(애리조나) 또한 오른손 중지의 살갗이 벗겨지는 부상을 당했다. 투구할 때 손가락과 공 실밥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는 일. 그래서 손가락 물집은 투수들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한다.
▲물집은 왜 잡히나
보통 강속구 투수에게 물집이 많이 잡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보급 투수’였던 선동렬이 그러했고 박찬호나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강속구 투수 놀란 라이언 또한 그런 케이스다. 하지만 강속구 투수만이 손가락 물집의 희생자(?)는 아니다. 투구 스타일과는 별도로 날씨나 그날의 컨디션,혹은 손의 상태에 따라서도 물집이 많이 잡히기 때문이다.
두산에서 중간계투로 활약 중인 차명주는 롯데 시절 손에 물집이 자주 잡혀 고생을 많이 했다. 손에 땀이 많이 고이는 체질적 습성 때문이었다. 차명주는 “날씨가 습할 때는 물집이 더 잘 생겼다”고 밝혔다. 나쁜 컨디션도 물집과는 상극이다. 최일언 두산 투수코치는 “투수들이 컨디션이 안 좋을 경우 우격다짐으로 공을 뿌릴 때가 있는데 이때도 물집은 잘 생긴다”고 말했다.
▲물집이 생기면
옛날에는 성냥개비의 황을 물집이 잡힌 손가락에 올려놓고 뜸을 떴다. 혹은 물을 빼낸 뒤 담뱃불을 가까이 대서 손가락 주위를 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속살까지 다치게 할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이 밖에 손에 작은 물집이 잡혔을 때 책상이나 콘크리트 벽에 손가락을 자주 문질러 물집 잡혔던 곳을 아예 굳은살로 만들어 버리는 방법도 있다. 차명주의 경우는 실이 꿰인 바늘을 물집 잡힌 부위에 관통시켜 이 실을 통해 물을 빼냄과 동시에 소독액을 상처에 직접 주입시키는 방법으로 물집을 치료했다.
최근 들어서는 물집 잡힌 손가락에서 물을 완전히 빼낸 뒤 (의료용) 본드로 그 위를 때우고 액상 반창고를 덧붙이는 방법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이는 지난해 두산 용병투수였던 베넷에 의해 알려진 방법으로 투구할 때 그다지 큰 방해를 받지 않아 좋다고 한다.
▲물집 재발을 방지하려면
차명주는 “손가락에 굳은살이 많거나 손톱이 길어도 물집이 잡힐 수 있다. 굳은살 안에 물집이 잡혀버리면 이는 최악의 경우다. 이때는 최대 한 달간 공을 못 던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차명주에 따르면 손톱 다듬는 칼로 굳은살을 적절히 갈아주고 손톱 또한 제대로 관리해줘야 물집이 잘 안 잡힌다고 한다. 물집에 특별한 치료법은 없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안 생기도록 방지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최일언 코치 또한 “물집이 잘 잡히는 것은 자기관리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결국 평소 철저한 ‘손가락 길들이기’만이 물집과의 악연을 끊는 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