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납법의 기초(Du fondement de l'induction, 1871)
J. Chevalier(1906-1993), Les Oeuvres I, Dictionnaire, PUF, 1992, p. 1902. (P.2190.)
라슐리에(Jules Lachelier 1832-1918)
1856년 철학으로 교수 자격, 1871년 문학 박사학위. 파리고등사범에서 조교수, 공교육 감독관, 도덕 정치 아카데미 회원.
[프랑.위키에서: 1851년 파리고등사범학교 들어가서, 1855년(스물셋) 문학으로 교수자격(1등), 1863년(서른하나) 철학으로 교수자격(1등), 1871년(서른아홉) 귀납법의 기초(Du fondement de l'induction, 1871)으로 박사. 1863-1864년 모교 조교수 시절에, 학생인 라뇨(Jules Lagneau. 1851-1894)를 만났다. 논문 한편 「심리학과 형이상학(Psychologie et Métaphysique, 1885)」이 남아있다. 그는 생애 마지막에 자신의 모든 노트를 불태웠고, 사후에 개인적 편지들을 출판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럼에도 재단이 만들어져 1933년 그의 전집을 출간했다.
그는 라베송의 영향을 입었으며, 라베송(Félix Ravaisson, 1813-1900)에게서 빌려온 “정신주의적 실재론”(« réalisme spiritualiste »)이란 용어를 그 자신의 철학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다. 벩송(Bergson, 1859-1941)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의식의 무매개적인 자료들에 관한 시론(Essai sur les données immédiates de la conscience, 1889)을 그(라슐리에)에게 헌정했다. 이에 비해 폴란드 출신이며 실재론적 인식론자인 메이에르송(Emile Meyerson, 1859-1933)은 그의 귀납법 이론에 이의를 달았다. (54LLI)]
# 귀납법의 기초(Du fondement de l'induction, 1871)
프랑스 철학의 고전[전통]은 원리들을 탐구하는데, 그 원리들은 “사실들의 인식으로부터 이 사실들을 지배하는 법칙들의 인식으로 이행하는 사유를 허락해준다.” 몇 가지 현상들에 제한된 관찰들로부터 모든 시기에 모든 장소에서 검증가능하고 적용 가능한 법칙들을 어떻게 정식화하는가? 말하자면 [정식화한 것이]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이 불합리 또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게 해주는 보편적이며 필연적 법칙들을 어떻게 정식화하는가? [라슐리에 의 주제는 경험을 통한 일반화가 주제일 것이다.]
라슐리에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전384-322)의 「분석론」에 대해 통용되지만 오류가 있는 해석[해설]을 반박하며, 또한 그[리슐리에]가 이론들의 중요한 대리자들이라고 인용한 이론들을 반박한다. 그 반박될 이론들은 동일성의 원리(le principe d’identité)에 근거하여 귀납법을 세우고, 또한 (무슨)주의(이즘)들의 모순들과 불충분들을 지적하면서 실용주의에 근거한, 경험주의, 기계주의, 결정주의, 실체주의, 직관주의, 주관적 관념주의(흄) 또는 객관적 관념주의(칸트), 목적론(finalisme) 등을 비판하고 있다.유일한 원리 즉 문제의 유일한 측면만을 특권화하는 각각의 이론은, 마치 논리학의 시련에 견디는 것처럼, 사실들의 시험에 견디며 회의주의에 이른다.
그럼에도 라슐리에는 칸트에게서, 법칙들에 의해 정식화된 질서(l’ordre)가 우리의 고유한 사유의 요청들(les exigences)에 응답한다는 생각을 빌려온다. 그리고 그는 현상들의 지성성과 현상들의 객관적 현존에 관하여, 그리고 사유를 실재적이게 하고 동시에 실재성은 지성적이게(지식일 수 있게) 하는 가능성에 관하여, 자기의 고유한 반성에 의해서 이런 생각을 깊이 파고든다. 이러한 이유로 사유([la] pensée)와 실재성([la] réalité)은 동일하고 유일한 일체(집합)에 속하며, 그 일체는 관계들의 동일하고 유일한 체계를 구성하며. 그 일체 속에서 각 부분은 상호 작용의 보편적 놀이(un jeu)로 들어간다.
이 전체적 단위(통일성, une unité globale)에서, 효과인(결정주의)과 목적인(목적론téléologie: 텔레오노미téléonomie라는 용어는 여기서는 아직 대체되지 않았다)으로 활용되는 역할의 이중적 주장(긍정)은 온전히 자기 의미를 지닌다. 현상들 사이에서 두 종류의 연관들이, 즉 “원인과 결과의 연관들과 수단과 목적의 연관들이 나타난다.전자의 연관들에 의해서, 현상들은 시간 속에서 연속적인 계열을 형성한다. 후자의 연관들에 위에서, 자연(la ntaure)의 체계적이고 조화로운 통일성(단위)이 근거한다.”
현존의 두 형식은 이때부터 자연 안에서 서로 이해된다[잉태된다]. 하나의 형식에서는 과학이 자기 대상 속에서 파악하는 형식이, 또한 원인성[인과성]의 필연적 법칙을 규정하는 형식이 있다. 다른 하나의 형식은, 비결정적인 영역 안에서 자유의 기능에 근거하며 또한 목적인들의 우연적 법칙에 소속된다. 이런 메카니즘은 목적성(finalité)의 종속되어 있다.
여기에서 저자는, 이것으로부터 먼 범위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20세기 말의 과학들이 예시하게 될 비결정성과 불확실성의 원리를 도입한다.이와 동일한 시기에 그는 귀납법의 가치와 한계를 고정시킨다. 내재하는 목적인에 의해 우주를 지배한다고 여기는 정신의 현존을 주장함이 없이, 그는 사유 속에서, 우주의 다른 모든 부분들과 잠재적인(potentielle)이며 또한 완전한 상호관계인 인식의 장치 전체로부터, 역동적(dynamique) 단위[통일성]을 본다[깨닫는다]. [잠재적인 인식 장치에서 역동적 통일성(단위)을 파악한 것은 스피노자의 길과 같은 것이리라. 르네상스 이래로 소우주와 대우주의 유비관계로서(동연성에서) 통일성을 보았다면, 생명과 영혼에서는 잠재적이고 역동적인 권능(영혼, 본성)이 대우주와 상호연관 속에서(공연성에서) 결을 펼치고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이 내재적으로 잠재적이고 단위로서 활동적인 역동적 권능으로부터 철학(형이상학)이 도래할 것이다. 윤리학에서 스피노자, 형이상학에서 벩송일 것이다. (54LME)
이리하여 그는 결론을 낼 것이다. “유물론적 관념론은 (…) 절반만을 표상할 따름이며, 또는 오히려 사물들의 표면만을 표상할 따름이다. 반대로 자연(본성)의 진실한 철학은 유심론적 실재론이다. 이런 시각에서 모든 것(tout)은 힘이며, 모든 힘은 사유 자체의 점점 더 완전한 의식에로 향하는 사유이다.” [유물론적 관념은 원인결과의 지식을 추론하는 사고 이라면, 유심론적 실재론은 수단목적의 과정을 실행하는 사유의 역동성에 근거한다.]
# 「심리학과 형이상학(Psychologie et métaphysique, 1885)」
이 논문은 1885년 5월에 철학지에 발표되었는데, 귀납법의 기초(Du fondement de l'induction, 1871) 1916년 제7판에 다시 실려있다.
이 논문은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에서 묘사된 경향성을 확정하며, 그리고 “심리학의 가장 고양된 부분은 형이상학과 하나(일치)를 이룬다”고 한다.
이 연구의 범위는 그것을(형이상학을) 태어나게 했던 기회를 훨씬 넘어서며, 쿠쟁(Victor Cousin, 1792-1867)의 심리학 반박을 넘어선다. 이로부터 구분해낸 ‘의식’(la conscience)의 용어는 물리학자들(자연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이 오늘날 자신들의 분석들에서, 마치 하나의 요청으로서(comme un postulat), 발견하는 용어에게 길을 연다. 그 요청에 근거하여 과학들은 더 이상 발언하지 않을 것이며, 철학자들에게 이런 배려(ce souci)를 넘겨 준다. [벩송의 첫 작품 의식의 무매개적인 자료들에 관한 시론은 라슐리에의 의식인 셈이다. 이 의식은 수학과 물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개념과 관념을 다루는 지성적 의식이 얼마나 공간화되어 있지는 지를 벩송은 비판한다. 결국 의식 상태들(les états)은 의식이 이미 만들어 놓은 사태들(les faits)과 달리 다루어야 한다. 의식 상태는 지속이며, 실증적으로 기억이고, 생명체에서 생명이다.] (J. Chevalier)
(3:33. 54L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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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 en. Aristotle 전384-322)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 소요학파.
O
1711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 경제학자, 역사가.
1724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았고 독일 관념철학의 기반을 확립한 프로이센의 철학자이다.
1792 쿠쟁(Victor Cousin, 1792-1867) 프랑스 철학자 정치가. 유심론 철학자이며 절충학파의 선두였다. 철학사 연구의 전통을 세우고, 고등학교 철학 교육의 개혁가였다. .
1832 라슐리에(Jules Lachelier 1832-1918) 프랑스 철학자, 귀납법의 기초(Du fondement de l'induction, 1871)
1906 슈발리에(Jean Chevalier, 1906-1993(à 86 ans), 프랑스 작가, 철학자, 신학자. 카톨릭 신자인 것 같다. 유네스코에서 일했다.
*참조 1: 인용문***
“가장 잘 행해진 경험은 어떻게 현상들이 우리 눈아래서 연결되는지를 우리를 정확하게 가르치는 데 쓰인다. 그러나 현상들이 항상 도처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은 경험이 우리에게 전혀 가르쳐주지 않는 무엇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저하지 않고 긍정하는 무엇이다.”귀납법의 기초(Du fondement de l'induction, 1871)의 결론부분.
- [벩송이 라슐리에게 귀납법 또는 경험론이 지닌 장점을 알았다는 것은, 프랑스 철학이 꽁트의 실증주의에 빚지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실증주의 현상의 경험일 수 있는데 비해, 벩송은 영혼(프쉬케)에 실재성에 대해 라슈리에게서 깊은 영향을 입었을 것이다. 벩송이 그의 형이상학을 총체적 경험의 학문이라고 했을 때, 행위와 조작의 실험과 같은 경험이 아니라, 인간이 처한 상황과 사건에서 경험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54LMD)]
*참조 2: 인용문***** Psychologie et métaphysique
“우리가 존재를 생각하는 대로 그 존재(l'être)는 우선 맹목적 필연도 아니고, 그 다음으로, 필연에 의해 미리 연쇄되어 있으리라는 의지도 아니고, 결국에는 하나[필연]의 또는 다른 하나[의지]의 현존(l'existence)을 확증해야만 할지 모를 자유도 아니다. 존재는 그 스스로 생산하는 한에서 전적으로 자유이며, 그 존재가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어떤 사물처럼 스스로 생산하는 한에서 전적으로 의지이다...”「심리학과 형이상학(Psychologie et Métaphysique, 1885)」, 170.
(4:30, 54LME)
참조: *********
바르텔미-마돌: "벩송(Bergson, 1967)", 제1장 생애 에서
<그러고 나서 [벩송은] 결국에는 라슐리에(Jules Lachelier 1832-1918)를 마주쳤다. ‘어느 날 나는 귀납법의 기초(Du fondement de l'induction, 1871)를 발견했다. ... 굉장한 책이었다! 나는 그 철학이 중요한 어떤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나는 매우 강하게 라슐리에의 변증법에 빚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 책 속에서 자연은 관념론적 전망에서 제시되었는데, 그 전망에서 각 관념은 “세계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부터” 생겨난다. 여전히 라 아르쁘에 의해서 우리가 알게 되었는데, 또한 그[벩송]가 수학자 꾸르노(Antoine Augustin Cournot, 1801-1877)의 작품을 읽었는데, 그는 그를 매우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 확률론 수학자는 정확한 언어를 구사했으나 애석하게도 죽은 언어(langue morte)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벩송은 이 사상가들로부터 철학이 중요한 일거리(une occupation sérieuse)이지 언변의 장난(un amusement oratoire)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했다. 꾸르노로부터 스펜서로 이행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우리는 ‘지속’에 관한 부분에서 다시 말할 것이다.>
* 라 아르쁘(Jean de La Harpe, 1892-1949) 철학자이며, 스위스 로잔대학 문학박사. 당시 뇌샤뗄에서 문학부 교수 였다. 벩송과 대담자.
(5:12, 54L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