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부 두 자아 Two Selves
우리는 기억 자아는 소중히 대하면서 정작 경험 자아에는 무관심하다.
즐거운 경험을 윟 여행을 더났는데, 정작 사진만 잔뜩 찍고 돌아온 경험은 없는가?
인간은 기억 자아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35 두 자아
'효용(utility)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두 가지 다른 뜻으로 쓰였다.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은
《도덕 및 입법 원리 입문(An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dnd Legislation)》을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장으로시작했다.
"자연은 인류를 두 통지차의 지배 아래 두었다. '고통'과 '쾌락'이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일도,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일도 오직 이 둘의 몫이다."
벤담은 다소 어색한 각주를 달아, '효용'이라는 말을 쓴 것을 사과하면서 더 나은 말을 찾지 몸ㅅ했다고 했다.
나는 벤담이 말한 효용을 따로 구분하기 위해 그것을 '경험효용(experienced utility)'이라 부르겠다.
지난 100년 동안 경제학자들은 효용을 벤담과는 다른 뜻으로 사용했다.
결제학자와 결정 이론가 들이 사용한 이 용어의 의미는 '욕구 충족력(wantability)'이다.
나는 이를 '결정 효용(decision utility)이라 불렀다.
이를테면 기대효용 이론은 결정효용을 지배해야 하는 합리성 원칙에 관한 것이지,
쾌락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물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즐기는 것이고, 스스로 선택한 것을 즐긴다면 두 가지 효용은 일치한다.
그 둘이 일치한다는 단정에는 경제주체가 합리적이라는 보편적인 생각이 은연중에 녹아 있다.
합리적 행위자라면 현재와 미래의 자기 취향을 알 테고, 자기 이익을 극대화할 좋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경험 효용
내가 경험효용가 결정 효용이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에 매료된 계기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모스와 전망 이론을 연구하던 나는 문제를 하나 만들었다.
고통스러운 주사를 날마다 한 때씩 맞는 사람을 상상해보자,
고통에 적응되는 일은 없어서, 고통은 날마다 똑같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남은 주사 횟수를 20회서 18회로 줄일 때와
6회에서 4회로 줄일 때 똑같은 가치를 부여할까?
둘을 구분한다면 그럴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을까?
결과는뻔해서 따로 자료를 모으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주사 횟수를 10분의 1 줄일 때(20회 → 18회)보다 3분의 1 줄일 때(6 → 4회)
더 많은 돈을 들이리라는 것쯤은 다들 자신을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두 번의 주사를 피하는 결정효용은 6회에서 4회로 줄어들 때가 20회에서 18회로 줄어들 때보다 더 크고,
누구든 6회에서 4회로 줄이는 데 돈을 더 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차이는 터무니 없다. 고통의 정도가 날마다 달라지지 않는다면
전체 고통의 양에서 두 번의 주사를 줄이는 효용이
이제까지 주사를 몇 대 맞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논리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이 문제는,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자면, 경험효용은 주사 횟수로 측정가능하다는 것을 보어준다.
그리고 적어도 일부 경우에, 경험효용은 결정을 내리는 기준이다.
똑같은 경험효용을 얻는 데(또는 똑같은 손실을 피하는 데) 다른 금액을 지불하겠다고 결정했다면 실수다.
뻔한 말처험 들리겠지만, 결정 이론에서 결정 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유일한 근거는
다른 상황에서의 선호도와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아모스와 나는 이 문제를 토론했지만, 더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나 나는 다시 이 문제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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