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속의 한민족사
역사에 대한 인식은 미래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한다. 조선일보사에서 주관하는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여행에 참가했다. 부산-후쿠오카-구마모토-아스카-나라-교토-오사카-그리고 다시 혼슈, 시코쿠, 큐슈의 큰 섬 사이에 있는 일본의 세토내해(內海)를 거쳐 현해탄을 건너오는 코스이다.
전국에 있는 학교에서 추천한 중, 고교 교사 350여명과 함께 일반인으로 참가를 했다. 11월11일부터 17일까지 6박7일간의 26,000톤의 전세 크루즈 선으로 선실과 육지에서 역사를 전공한 교수님의 강의가 계속해서 있었다.
하카다(博多), 다자이후(大宰府), 후나야마고분, 시텐노지(四天王寺), 오사카(大阪)성, 니조(二條)성, 교류지(廣隆寺), 도다이지(東大寺), 이시부타이(石舞臺), 아카마쓰테라(飛鳥寺), 호류지(法隆寺), 교토(京都), 나라(奈良) 등등 우리 조상들의 흔적은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특히 손승철 교수의 조선통신사에 대한 강의는 인상적이었다.
1392년에 건국한 조선은 왜구의 야만적인 노략질로 엄청난 고통과 피해가 막심했다. 임진왜란 이전에 약 200년간 양국에서 번갈아 통신사가 이어지다가 왜란이 끝나고 10년만인 1609년(광해군 1년) 조선통신사는 조선의 안녕(安寧)과 명예(名譽)를 안고 다시 그 길을 갔었다.
조선통신사란 극성을 부리든 왜구문제를 해결하고 양국 간의 우호교린(友好交隣)을 목적으로 하고 두 나라간의 중요외교현안을 조율하고 문물의 교류를 통하여 이웃관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조선조정이 일본에 파견한 사절단이다. 말하자면 양국 간의 소통에 큰 목적이 있었다.
거대한 조선통신사절단(300명에서 500명)의 일본에서의 모든 경비는 그때의 일본 막부정부가 부담했다. 막부정부의 일 년 예산에서 대단한 금액이었다. 양국 통신사의 왕래는 일본 쇼군(장군)의 습직이나 두 나라 간의 긴급한 외교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녀오는 기간은 그 시절의 불편한 교통사정으로 3개월에서 6개월이나 걸렸다.
도쿠가와 막부시대엔 그런대로 소통이 잘 되어 두 나라가 우호공존의 시대였다. 후기 통신사의 역할이 원만했던 약 260여 년 간은 평화의 시대였지만 그 후 여러 사정으로 통신사의 단절은 양국사이에 불행한 역사가 반복 되었고 우정과 배신의 역사로 점철되었다.
일본 속에 담긴 한반도의 문화흔적을 찾는 여정은 계속 되었다.
아침이면, 숙소인 하모니크루즈를 떠나 고분(古墳), 신사(神社), 사찰(寺刹), 성(城)을 하루 종일 답사하며 현장에서 역사학자들의 강의를 들었다. 답사를 마치고 크루즈선(船)으로 돌아온 저녁에는 선상 강좌가 개최되었다.
정영호 단국대 석좌교수의 ‘일본고대문화의 이해’, 손승철 강원대 사학과 교수의 ’조선통신사는 왜 일본에 갔는가‘, 서정석 공주대 문화재 보존학과 교수의 ’백제와 왜‘라는 테마로 우리와 일본역사에 숨어 있는 여러 이야기를 알기 쉽게 들려주었다.
일행은 답사와 강의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한민족이 일본에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사실적(史實的)으로 정리하면서 흐뭇한 자긍심을 가지기도 했다.
오사카항을 출발하여 귀국하는 여행 마지막 밤, 정호승 시인의‘ 내 인생에 힘이 되어 주는 詩 ’라는 주제로 강좌가 있었다. 편안하고 온화한 자세로 들려주는 시인의 강론은 그동안 피로(疲勞)했던 영혼과 마음을 안온하게 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심장을 어루만지려는 듯 유머 넘치는 따뜻한 목소리로 시를 낭송했고, 노래를 들려주었고, 詩적인 교양을 함양시켰다.
여행은 일상에서의 탈출이다. 여행은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꿈꾸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가진다. 이번 여행의 색다른 맛은 다른 삶을 산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새로운 우정을 싹 틔우는 일이었다.
일행 645명은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로 산산조각으로 만나 한 배를 타고 6박7일을 함께하고는 끝내 산산조각으로 헤어졌다. 결국은 뿔뿔이 흩어지고 산산조각이 되어도 여행은 우리 인생에서 보람 있는 순간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