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65〉무주상자비
똑똑한 스님보다 따스한 인간이 돼야 한다
구한말 경허 선사의 제자 가운데 혜월(慧月, 1861~ 1937) 선사가 있다. 이 혜월 선사를 후대의 우리들은 ‘천진도인(天眞道人)’이라 부른다. 왜 그 어른을 천진도인이라고 할까?
스님께서 선암사에 상주하며 주지로 사실 때의 일이다. 겨울철이 되자, 마을 장정들이 사랑방에 모여 술을 마시거나 도박을 하였다. 장정들의 이런 생활에 동네 아낙들의 한숨은 점점 깊어갔다. 사찰에 온 신도로부터 이런 상황을 들은 스님께서 ‘절 앞에 황무지를 개간한다’는 소문을 내고, 동네 장정들을 불러들였다. 절에 일거리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장정들이 모여들었고, 일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겨울 내내 장정들이 모여 황무지를 개간하기는 했으나 결과적으로 겨우 논 두 마지기에 불과했다. 막상 그들에게 품삯을 지불하려고 하니, 논 열 마지기 값에 해당되었다. 큰돈을 지불하기 위해 혜월은 겨우 겨우 돈을 마련해 그들에게 품삯을 주었다. 그러자 젊은 스님들이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
“스님, 우리가 그 농부들에게 속은 겁니다. 겨우 논 두마지를 위해 논 열 두마지기를 손해 본 겁니다.”
이 말을 들은 혜월 스님께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논 두 마지기가 절 앞에 새로 생겼고, 열 마지기는 그대로(장정들에게 품삯 지불한 돈) 저들에게 있지 않은가? 겨울 내내 놀지 않고 일을 했으니 장정들이나 그 가족들에게도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내년 겨울에도 그들을 하릴없이 놀리지 않고, 또 논을 만들 생각이네.”
무주상으로 베풂이 진정한 자비
분별심에서 인위적인 것은 위선
소납이 곱씹고 곱씹는 스님의 (존경스런) 계산법이다. 왜 혜월을 천진이라고 하는지 이해될 것이다. 혜월은 논밭을 지나다가 주인 몰래 소를 풀어 주기도 하고, 지게에 쌀을 훔쳐 지고 가려는 도둑이 끙끙거리자 지게를 밀어주기도 하였다. 또 스님께서 49재 제사 준비를 하러 장에 가는 도중 불쌍한 여인에게 돈을 다 주고 사찰로 돌아온 일도 있었다. 이 혜월과 비슷한 선사가 일본에도 있다.
임제종의 종조인 에이사이(榮西, 1141~1203)이다. 에이사이가 건인사(建仁寺)에 머물고 있을 때, 한 걸인이 병들고 굶주린 몸으로 선사를 찾아왔다. 선사는 줄 물건이 없자, 법당으로 들어가 약사여래상의 금박 광배를 잘라서 걸인에게 주었다. 제자들은 스승에게 부처님을 욕되게 한 일이라며 투덜거리자, 선사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무엇이 욕된 일인가? 만약 부처님이었다면 팔을 빼어 줬을 것이네. 광배 하나 빼어 중생에게 준 것이 무슨 큰 일이라고 소란을 피우는가?”
10년 후 이 걸인은 관리가 되어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풀었고, 선사의 절대적인 후원자가 되었다. 소납은 어른 스님들의 이런 일화를 언급할 때마다 마음이 편치 못하다. 거두절미하고, 자비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년 전 중국 사찰 순례를 장기간 한 일이 있다. 선종 사찰은 대체로 시골이나 산골에 위치해 있어 택시를 타야할 경우가 많다. 숙박비나 택시비, 물건값에 온전한 금액을 지불한 적이 별로 없었다. 변명이지만 중국은 호텔이나 택시, 버스비가 정액제가 아닌데다 사회 전반적으로 대금이나 물건 값을 흥정하는 문화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중국에서 순례하는 동안 요금 문제만큼은 거의 싸움닭에 가까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민망한 일이지만, 당시 몇 달간의 장기 순례인데다 외국에 오래 있다 보니, 내 나라 귀한 돈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지론이었다.
자비도 혜월이나 에이사이처럼 지혜의 작용에서 나와 무주상(無住相)으로 베푸는 것이 진정한 자비라고 본다. 분별심에서 나와 인위적으로 억지로 하는 것은 위선이다. 하지만 마음속에 늘 견지하는 관념은 분명하다. 지혜를 갖춘 똑똑한 승려보다는 자애심을 지닌 따스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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