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은 학문의 역사에서 철학, 의학과 함께 가장 오래된 분야이다. 인간이 사회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한 법이란 제도는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고, 법을 대상으로 하는 법학은 앞으로도 계속 중요한 학문의 영역이 될 수밖에 없다. 법제도가 발전하면서 더구나 현대 실정법체계가 구축되면서 등장하는 법률용어들은 더욱 법학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한다. 대부분의 법률용어는 해석을 요하지만, 그 자체 이미 명확한 의미를 갖는 경우도 있다. 특히 형벌을 규정하고 있는 형법에 있어서 법률용어의 명확성은 국가와 사회 및 개인의 이익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형법상의 기본원칙인 죄형법정주의는 그 한 요소로써 명확성의 원칙을 수용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죄형법정주의의 한 요소인 명확성의 원칙을 정리하였다. 여기서는 죄형법정주의의 파생원칙 중에 하나인 명확성의 원칙을 중심으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검토한다.
Ⅱ. 사건개요 및 헌법재판소의 결정요지
1. 사건의 개요 청구인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인 청구외 이○○와 공모공동하여, ○○은행의 총재와 그 은행 법인대출 실무총괄자에게 “○○상선에 대한 대출을 하라”고 지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은행의 총재와 그 은행 법인대출 실무총괄자가 ○○상선에 대해 그 자금상황이나 회수가능성 등을 검토하지 아니한 채 무담보로 신용공여한도를 초과한 4,000억 원을 대출하여 주도록 함으로써, 직권을 남용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는 내용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으로 공소제기되었는데, 그 항소심 계속 중에 형법 제123조가 “직권”이나 “의무”와 같은 불명확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으나 법원이 그 신청을 기각하고 청구인에 대해 유죄판결을 선고하자 2004. 6. 30.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헌법재판소의 결정요지 죄형법정주의로부터 파생되는 명확성의 원칙은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구성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하여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바, 법률조항의 문언, 입법목적, 입법연혁, 체계적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였을 때 통상의 해석방법에 의하여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해 처벌법규의 보호법익과 금지된 행위 및 처벌의 종류와 정도를 알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면 처벌법규의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
형법 제123조는 공무원이 공무 수행을 위해 부여된 직권을 부당하게 사용하여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행위를 하는 것을 처벌함으로써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에 대한 사회 일반의 신뢰를 보호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조항이다. 공무원의 직무상 권한은 헌법과 법률 기타 법령의 근거를 가지는 것으로, 공무원이 현재 직접 수행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정당하게 수행할 수 있는 일반적인 직무에 관한 권한을 포함하며, 반드시 법률상 강제력이 수반되는 것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공무원의 직무의 내용에 따라서는 그 직권의 내용과 범위가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경우가 있으나, 직권의 내용과 범위가 포괄적이고 광범위하다는 것이 곧바로 “직권”의 의미 자체의 불명확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법원은 직권남용의 의미에 대해 “공무원이 그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직권의 행사에 가탁하여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하여 문언적 의미를 기초로 한 해석기준을 확립하고 있으며, 이 사건 법률조항 이외의 여러 법률에서도 이 사건 법률조항에서와 같은 의미로 “직권 남용” 또는 “권한 남용”과 같은 구성요건을 사용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을 뿐 아니라,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는 유형과 태양을 미리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입법기술상으로도 곤란하다. 또한 “의무”란 “마땅히 하여야 할 일” 또는 “해야 하는 일”을 의미하는데, 법률은 개인의 내면적, 심리적 차원에서의 자유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법적인 의미에서의 자유에 대해서만 제한하거나 보호할 수 있을 뿐이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이 의미하는 “의무없는 일” 역시, “법규범이 의무로 규정하고 있지 않은 일”을 의미하는 것임은 문언 그 자체로 명백하다.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의 입법목적과 연혁, 관련 조항의 규정 및 법원의 확립된 해석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살펴볼 때,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사건 법률조항이 의미하는 “직권”이나 “의무”의 의미를 충분히 알 수 있고, 이 사건 법률조항이 금지하고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
Ⅲ. 평석
1. 법치국가원리와 죄형법정주의 독일로부터 파생된 법치국가원리는 현행 헌법의 기본원리로서 자리잡고 있다. 법치국가원리는 인치가 아닌 법치, 법우선의 원칙이 적용되는 원리이다. 20세기 중반 이래 법치국가원리는 단순히 법의 지배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법의 지배를 말하는 것으로 법의 내용이 정의에 입각하고 있는 실질적 법치국가원리를 말한다. 이렇게 법치국가원리는 법우선의 원칙을 토대로 하여 헌법의 우위원칙이 지배하는 국가원리로 발전하였다. 법치국가는 국가권력을 헌법에 기속시키면서 분산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하여 흠이 없는 권리보호를 추구한다. 특히 인신의 자유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형벌권의 행사에 있어서는 죄형법정주의를 통하여 법치국가원리를 구체화하고 있다. 죄형법정주의는 헌법 제12조 제1항과 제13조 제1항을 근거로 하여 형사법의 기본원칙이다. 죄형법정주의는 법률주의, 불소급원칙, 명확성원칙, 유추해석금지와 적정성원칙 등을 그 요소로 하면서 국가에 의한 자의적 형벌권의 행사를 제어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헌재는 죄형법정주의의 한 요소로서 명확성의 원칙을 들고 있다. 명확성의 원칙은 법적 안정성을 위하여 필수적인 요소이면서 법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핵심이다. 특히 형법규정에 있어서 명확성원칙을 필수적인 원칙으로 국민의 예측가능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2. 법률용어와 명확성 원칙 이 사건에서 헌재는 형법규정의 법률용어들이 일반 국민이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 법감정을 갖고 있어서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라면 명확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미 헌재는 자신의 판례에서 법률용어의 대부분은 추상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랜 기간 그것의 의미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진행되어 그 성과가 쌓여있고 다수의 유권해석과 관련 판례들이 풍부하게 집적되면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헌재는 죄형법정주의로부터 파생되는 명확성의 원칙은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구성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하여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법률조항의 문언, 입법목적, 입법연혁, 체계적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였을 때 통상의 해석방법에 의하여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해 처벌법규의 보호법익과 금지된 행위 및 처벌의 종류와 정도를 알 수 있도록 규정하는 것은 처벌법규의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사건에서 헌재는 직권이나 남용 및 의무 등의 법률용어는 충분히 그 의미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명확성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는데, 정확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