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에 나가기만 하면 메달은 거의 따놓은 당상이었던 한국양궁. 여기서 잠시 간단한 산수공부를 해보자. 여자 양궁이 네 차례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100%. 나가기만 하면 금메달이었다. 다섯번 열린 개인전에서도 모두 우승했으니 여자 대표팀 선수 세 명 중 한 명(33.3%)은 2관왕이었다는 얘기. 한편 남자는 네 차례 단체전 중 두번 우승했으니 금메달 확률이 50%다.
그러나 올림픽 대표 선발과정은 무시무시하다. 1~4차 선발전을 통해 남녀 국가대표 각각 8명을 뽑고, 그 8명을 대상으로 ‘피말리는 최종관문’인 세 차례 평가전을 벌여 단 세 명의 ‘영광의 궁사’를 뽑는다. 최종관문 경쟁률만 8대3(37.5%)이다. 이러니 2000시드니올림픽 2관왕 윤미진(21·경희대)마저도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올림픽에 나가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을 서슴지 않을 수밖에. 그리고 최종관문인 세 차례의 평가전 중 마지막 평가전이 22일부터 5일간 태릉양궁장에서 벌어진다.
◇피말리는 선발전-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올림픽에 가느냐 못가느냐’가 걸린 최종관문은 톱랭커에게도 피말리는 긴장, 그 자체다. 남자 대표팀 에이스인 장용호(28·예천군청)는 태릉에서 열린 지난 1차 평가전(4월 28일~5월 2일)에서 떠오르는 고교생 신예 임동현(18·충북체고)과 서로 타깃이 바뀐지도 모르고 한 엔드를 경기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세 발의 화살은 0점 처리됐다. 세계랭킹 수위에 드는 선수가 타깃을 바꿔선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 쯧, 얼마나 긴장감이 컸으면! 지난 88년 대표선발 최종평가전에서는 그야말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선발전 1위를 달리던 여자부 김경욱(96년 애틀랜타올림픽 개인 금메달리스트)이 마지막 화살을 쏜 뒤 기록체크 전에 화살을 미리 뽑아 실격처리된 것. 탈락한 김경욱이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은 그로부터 8년 뒤였다.
◇침묵이 많아진다. 대신 화살이 말을 한다
올림픽 대표 파견 2차 평가전(10~14일)이 벌어진 원주양궁장을 찾았다. 휴식시간조차 당겨놓은 활처럼 분위기가 팽팽했다. 자신의 타깃번호 앞에 앉아 있는 선수들은 한 경기를 마치고 다음 경기를 기다리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남자대표팀의 장용호가 고개를 숙이고 이미지 트레이닝과 호흡법을 통해 집중력을 조율하는 사이 고교 궁사 임동현이 의외로 웃음을 터뜨리며 박경모(29·인천계양구청) 등 선배들에게 농담을 건넸다.
서거원 대표팀 감독은 “선수가 오래 혼자 집중력을 모으는 것은 집중력이 떨어졌다는 방증이고, 반대로 일부러 말을 크게 하는 것은 긴장하고 있다는 얘기”라고 귀띔했다. 그 어느 국제대회보다 중압감이 크다는 선발전 기간에 선수들은 극도로 예민해진다.
‘행여 한 발의 화살에 영향을 미칠까’ 싶어 코치들도 극도로 말 조심을 한다. 선수들은 말수가 줄고, 자기와의 싸움을 벌인다. 심지어 저녁에 가족과도 거의 통화하지 않는다고. 그렇다. 입술이 아니라 화살이 말을 하기 때문이다.
◇가장 완벽에 가까운 선발방식
양궁인들은 지난 20년간 개선·발전시켜온 올림픽 대표 선발 방식을 가리켜 ‘세계 최고의, 모든 통계와 가능성을 다 점검하는,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선발방식’이라고 부른다. 결과적으로 그렇다. 개인전이 생긴 84년 LA올림픽, 단체전이 생긴 88서울올림픽 이래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금메달 12개 등 수많은 메달을 따냈다. 매번 올림픽 2연패, 3연패, 4연패의 숙제들을 완벽하게 완수했다.
대한양궁협회 황도하 사무국장은 “실력이 좋은 선수일지라도 국제대회, 특히 올림픽이 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단지 실력뿐 아니라 정신력, 체력, 담, 승부근성 등이 모두 검증될 수 있는 선발과정을 고안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시작돼 다음달 초까지 6개월간 총 7차례 열리는 마라톤 선발전은 체력과 중압감을 이겨내는 능력 등 가능한 한 모든 변수를 테스트했다. 2차 평가전이 1·3차 평가전과 달리 원주에서 열린 것도 연유가 있었다. 4차로 국도변에 있는 원주양궁장은 비행장이 가까워 소음이 많고, 지형상 바람까지 심하기 때문이다.
고즈넉한 태릉양궁장과는 정반대의 환경. 또 양궁은 전천후 경기다. 2차 선발전 기간 날씨는 10일 첫날 ‘맑음’, 2일째 ‘비’, 3일째인 13일은 ‘바람’이었다. 서거원 남자대표팀 감독은 “그래, 제대로 할 거 다 해보는 거지”라고 중얼거렸다. 환경과 변수를 이겨내는 능력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는 것이 바로 올림픽 금메달보다 힘들다는 대표선발전이다. 그 ‘바늘구멍’을 통과한 선수만이 비로소 올림픽 무대의 영광을 누릴 자격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