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의 결혼식이 드디어 내일로 다가왔다. 그 아이를
뱃속에 품고 키워가며 나는 심한 임신중독증을 앓았지만
아기는 무사히 세상에 태어났다. 아빠를 닮아 눈이 동그랗고 잘생긴 아이는 큰 선물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엄마"라고 입을 뗄 무렵 남편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고 우리 가족은 기약 없는 어둠속을 걸어야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7~8번이나 여러 친척들에게 맡겨졌다. 남편의 입원 생활이 길어질 땐 전학을 시켜
낯선 친척 집에서 지내게 했다.
예민하고 유난히 겁이 많았던 아이는 그 상황들이 두려우면서도 울음소리조차 내지를 못했다.
아이가 방학동안 열심히 숙제를 마쳤어도 새로운 학교에선 그 숙제는 소용이 없었다. 숙제를 내야 하는 그 시간이 아이에겐 고통이었지만 우리는 아이의 아픔을 보듬어줄 여유가 없었다.
어쩌다 아이를 찾아가면 손이나 몸에 상처가 보이곤 했다. 아이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한 흔적이기도 했고 준비물을 안 가져가 선생님으로부터 심하게 매를 맞은 것이기도
했다. 온갖 아픔으로 얼룩진 아이의 등을 나는 그저 쓰다듬으며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이는 엄마의 가슴앓이를 아는지....... 상처가 남아 있을 뿐 이제는 아프지 않다고 했다.
어느 날 고향친구가 왠만하면 아이들을 데려가라고 했다. 큰아이가 동생을 안고 큰 길가에 나와 앉아 온종일 아빠,엄마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네 살이던 작은아이가 몸이 아파 울기 시작했고, 그것이 안타까웠던 큰아이는 아빠, 엄마에게 가자며 무작정 큰길에
나와 기다렸던가 보다.
큰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나는 남편의 신장이식을 위해 외국에 있었다. 전화 카드를 구입해 국제 전화를 걸어오는 아이에게서 참 따뜻하고 바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하며 안도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의 학교로 찾아가 담임을 만났다. 아이와 상담으로 우리 집 사정을
모두 알고 있던 담임이 "지금은 힘드시지만 희망을 가지세요. 참 똑똑하고 심지가 굳은 아이입니다" 하며 나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었다. 선생님은 참고서를 살 수 없는 아이를 위해 출판사엣니 홍보용으로 보내오는 책들을 챙겨 주었다고
한다. 아이는 좋아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제동생이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동생 참고서도 좀 구해 주실 수 있을까요?" 머뭇거리며 말했다고 한다.
그러던 아이가 대학에 가고 군대를 제대하면서 누워 지내는 아빠와 부딪침이 잦아졌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아빠가 천국으로 이사한 후엔 책임감 때문인지 차츰 안정이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아들은 오랜 자취 생활 탓인지 몸이 불어나고 건강도 나빠졋다. 집에 오는 일도 뜸해질 무렵, 급성 당뇨와 간 기능 저하로 치료받기 시작했고 부정맥으로 잠도 잘 못자는 것 같았다.
병든 남편을 지켜본 25년의 생활로 하느님께. 이미 충분히 바쳤다고 생각 했었다. 그런데 참아온 날들의 결과가 이것인가! 모든것에 회의가 들었다. 퇴근 후면 텅 빈 성전에서감실을 쳐다보며 울부짖었다. 얼마나 그런 날들이 지났을까? 욥의 기도가 떠 올랐다. 재산과 7명의 자녀를 모두 잃고서도 하느님을 찬양하던 욥의 믿음에 생각이 멈추었고, 내 안에 가득하던 분노들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남편도 자식도 나 자신까지도 내 소유가 아니었는데 내 것을 빼앗긴다고 거품을 물고 하느님께 대들곤 했던 어리석음이 깨달아졌다.
지난 늦은 봄, 텃밭에서 독사에게 물려 나는 병실에 누워 있었다. 코로나로 보호자 없이 정신을 잃은 채 3~4일이 지나 깨어난 후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고백하며 아이에 대한 끈끈한 애착까지도 그분께 드릴수 있었다.
며칠 후 아이가 병원 면회가 가능하냐며 전화를 했다.
전날부터 퇴원하려고 마음먹고 있었기에 집에서 만나자며
퇴원을 서둘렀다. 아이는 여자친구와 함께 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 가정에 새 희망이 싹틔우는 기적이 주어졌다. 아들의 결혼 날짜를 잡고도 한동안은 믿기지 않아 오히려 불안이 커져만 갔다. 절망과 상실에 길들여져 이젠 어떻게 기뻐해야 하는지 표현도 되지 않았다.
나는 아이의 결혼식이 내게서 도망이라도 갈까 봐 꼭 붙잡는 심정으로 결혼식이 있을 서울로 하루 전날 아침부터 올라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오서연(월간독자Reader2023.2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