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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종 야곱아 두려워하지 말라
이사야 44:1~5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듬뿍 담긴 은혜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용기를 갖게 되고 소망을 갖게 됩니다.
본래 이 말씀은 바벨론에 포로 생활하는 유다 백성들에게 주시는 격려의 메시지로 주어진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 당시에는 사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기 전입니다. 하지만 모든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경고하되 듣지 않고 선지자의 말을 들으나 도리어 완악하여 선지자를 대적하게 됨으로 그 땅이 황폐하게 되고 그 남은 백성은 상수리 나무가 베어졌으나 그 뿌리 부분은 그루터기만 남은 것처럼 남을 것이라고 예고하신 바 있습니다. 실제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후 100년 후에 그대로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먼 나라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70년 동안 쓰라린 징계의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가 미리 예언하기를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포로되었던 바벨론 땅에서 다시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을 멸망시킬 자가 바사 왕 고레스라는 사실도 이사야 44장 말미에 가면 미리 밝히시기도 하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사야 후에 유다가 멸망당하는 시기에 활동한 선지자인데 그는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70년간 복역 기간을 채운 뒤에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구체적인 포로 생활의 기간도 예고한 바 있습니다. 그 모든 말씀은 다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의 삶을 다 알고 계시며, 우리가 믿기 이전부터 우리를 주시하시며 우리 발걸음을 인도하셨고 우리의 미래도 하나님의 손으로 붙잡고 계시고 그의 팔로 우리를 붙들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읽은 이 본문 말씀인 이사야 44장 이전의 43장 22절로부터 28절까지의 말씀은 유다 백성들의 패역함과 그들의 죄악들을 고발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시고 바베론에 파실 수밖에 없는 당시의 현실을 한탄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초월하시면서도 동시에 역사의 현재 속에서 자기 백성을 다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 알고 계시고 정하고 계시며 인도하시는 분이시면서도 동시에 주의 백성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신앙적 결단과 윤리적 책임을 다하기를 기대하시며 그러한 선택과 신앙적 결단에 대하여 응답하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은 그들의 죄악과 불순종의 결과에 대한 징계로 주어진 것인데, 그들을 다시 돌이켜 고토로 돌이키신다는 말씀을 하시는 중에 오늘 본문 말씀을 베풀고 계십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된 까닭은 그들의 죄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 백성을 아주 버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죄는 책망하시고 교정하시고 온전하게 하시기 위하여 시련을 허락하셨지만, 그러나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징계하시는 중에 하나님의 사랑은 더욱더 더 깊어져가고 더 안쓰럽게 여기고 그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붙잡아 다시 일으키고자 하시는 마음이 더욱 커져가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전체는 포로로 끌려간 자기 백성들, 시련으로 징계를 받는 자기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본래 그 마음에 갖고 계시는 그의 깊은 사랑을 알게 하며, 그 백성의 장래에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는 축복의 계획을 알려주면서, 그들로 하여금 죄를 이기고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삶을 살기를 당부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두 차례나 1절과 2절 말씀을 살펴보았지만 다시금 조금 각도를 달리 해서 1절과 2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2절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하여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말라’고 당부하시는 부분은 이사야서 40장부터 자기 백성을 향하여 자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당부 말씀입니다. 우리가 자주 암송하는 이사야서 41:;10 말씀이 그 대표적인 말씀일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우리 주님께서도 요한복음 14:27 말씀에서 이르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 심령을 향하여 자주 이 말씀을 속삭여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종종 두려워하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범죄할까 두렵고, 우리 자녀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두렵고, 우리 직장이 없어질까 두렵고, 우리 건강에 이상이 생길까 혹은 더 악화되지는 않을까 두렵고, 우리의 경제적인 삶에 갑작스럽게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두렵고, 우리의 미래가 불안정할까 두려워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그런 우리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곤 하십니다. 강하고 힘이 되는 말씀으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까요? 그 근거가 무엇인가요?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근거를 여러 모양으로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낳으셨기 때문입니다.
1절과 2절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낸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야곱의 자손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여기서 그들을 모태에서 지어낸 여호와라고 자기를 소개합니다. 곧 여인이 아기를 그 뱃속에 잉태하여 열 달을 품었다가 낳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렇게 친히 낳으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은 나이 백세에, 그 할머니 사라는 나이 구십 세에 경수가 다 끊어진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잉태의 은총을 주셔서 이삭을 낳지 않았습니까? 야곱의 출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아버지 이삭과 그 모친 리브가가 결혼한 지 20년이 되어도 잉태가 안 되니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서 응답받아 잉태된 것이 야곱 아닙니까? 또한 야곱에게 열두 아들을 주시고 그 백성들을 저 애굽의 고센 땅에서 사백 삼십년 년 동안이나 평온하게 번성하게 하시되 놀랍게 번성하게 하사 그 애굽에서 나올 때에는 장정만 육십만 명 곧 남녀 노유를 포함하면 이백 만 명이나 되는 거대한 민족으로 번성하도록 길러주신 분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양육과 번성의 은혜 없이는 가능이나 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모태에서 그들을 지어낸 분이 하나님이신 말씀은 과장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자식을 뱃속에서 열달이나 품고 마침내 산고의 고통을 겪고 낳은 자식에 대한 그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유별난 것처럼 하나님 역시 자기의 백성을 잉태하여 길러내신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얼마나 각별한 사랑이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그 백성이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현실의 삶 속에서 두려워할 때에 어찌 그냥 놔두겠습니까? 자식이 삶의 현실에서 어찌할까 몰라 두려워하며 겁을 먹고 있고 있을 때 어찌 그 부모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모든 능력,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돕고자 하지 않겠습니까? 인간의 부모는 그 힘이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부모는 그 지혜가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성령 하나님은 그 능력과 지혜가 한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너끈히 두려워 떨고 있는 우리를 도우시기에 넉넉하기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우리를 낳으신 하나님의 이 말씀을 그대로 믿고 두려움을 떨쳐내시기 바랍니다. 미래의 불안을 향해서도 떨쳐내시기 바랍니다. 자식의 미래에 대한 불안도 내려놓고 안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경제적인 면에서의 불안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고 하늘의 까마귀도 먹이시는 하나님이 어찌 자기가 친히 낳으신 우리를, 그의 독생자의 피로써 값을 주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우리를 어찌 친히 먹이시고 입히시고 기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기도하며 맡기십시다. 장래 일을 미리 염려하지 말고 하루 하루 감사하며 기뻐하며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성령을 주시며 복을 부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3절과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같이 할 것이라”
유다 백성들은 앞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하여 징계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는 예고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백성의 죄와 불순종에 대하여 눈 감지 않으십니다. 신실하게 징계하십니다. 만약 자식을 징계하지 않으면 그는 참 아들이 아니라 사생자라고 히브리서 12장에서 말씀하시 바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깊이 사랑하시기에, 자기의 참 자녀로 여기시기에 우리가 마음대로 행하고 하나님의 법을 떠나 인간의 술수를 따라 살고 인간적인 욕심으로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 행하면, 쓰라린 대가를 지불하도록 섭리적으로 일하십니다. 세상에 실패하고 고통을 겪고 반드시 자기의 죄로 인하여 이러한 일을 당했구나 생각하게 만드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죄를 범함으로 인하여 당한 징계인 줄 알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없을 만큼 그 내면이 허약합니다. 율법은 선한 줄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한 줄 압니다. 하지만 그 뜻을 행하고자 하지만 내 안에 욕심이 너무 강합니다. 내 안에 야망이 너무 큽니다. 내 자아가 너무 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지 못하고 육신의 소욕을 따라 행해버립니다. 자기를 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며 주님을 따라가기보다는 주님을 이용하여 내 욕심과 내 야망을 이루고자 이용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되 내 욕망을 채워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내 뜻을 쳐서 주님 뜻에 복종하고자 기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은 어렴풋이 망하는 줄 알면서도 끝내 하나님의 뜻에 불복종하여서 바벨론에까지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 망하게 되었을 때에야 그들은 그곳에서 자기들의 죄를 깊이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그렇게 처참하게 무너진 상태에서 자기 은혜를 받고 회복이 되고 고토로 돌아와서 살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다시 놀라운 축복을 누리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또 그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살 수 있는 능력 곧 성결의 능력을 얻게 되리라는 생각조차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기서 그들에게 그러한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이 그들에게 부어짐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목마른 자에게 물이 주며”라고 했는데, 준다는 말은 원어로 ‘붓는다’는 ‘야차크’라는 단어입니다. 목마른 땅 광야에 물이 폭포수처럼 부어질 것이며, 마른 땅 사막에도 시내가 홍수처럼 흘러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넘치는 물은 이어지는 성령의 부어짐을 가리킵니다.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붓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그들은 마음이 변화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을 가슴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모든 율법을 즐거움으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 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이사야도 예언했고 나중에 예레미야도 예레미야 31장에서 예언하며, 에스겔 선지자도 36장에서 거듭 예언하였습니다. 요엘 선지자 역시 말세에 만민에게, 남종과 여종에게 하나님께서 자기의 영을 물 붓듯이 부어주시겠다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체포되기 전에 친히 제자들에게 예언하였고 부활 승천 후 10일만에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그 일은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할렐루야. 그리하여 율법을 이전에는 지킬 수 없었던 자가 율법을 자원함으로 지켜 행하게 되는 놀라운 영적 승리가 이루졌습니다.
성령은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죄를 이기고 밟고 거룩함의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십니다. 죄가 더 이상 우리에게 왕노릇하지 아니하고 다만 틈을 타고 노리는 존재에 불과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은혜가 죄를 정복하는 승리자가 되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셋째로, 하나님은 영적인 축복만이 아니라 육신의 복도 부어주십니다.
그것을 3절 후반절로부터 4절에 보면,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주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같이 할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그 약속대로 그 노예 생활이 변하여 고토로 돌아와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고 그들이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신약 시대에 들어서서 성령받은 모든 주의 백성들이 핍박을 받기도 하지만 생활적인 면에서도 하나님께로부터 넘치는 복을 받게도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영적인 축복만이 아니라 지혜와 명철과 재능의 신이기도 합니다. 삶의 지혜를 주시어 분별력을 주십니다. 그리하여 성령을 받은 자녀들은 놀랍게 위에 있게 되고 머리가 되게 합니다. 요셉, 다니엘 다 성령의 사람이었는데 그들은 그 시대에 위대한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그러하게 될 것입니다. 물질적인 면에서도 하나님께서 원하실진대 얼마든지 주실 것입니다. 신령한 것을 주신 분이 어찌 작은 축복인 육신의 것들을 아끼시겠습니까? 할렐루야. 이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리하여 우리가 받는 축복을 보고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것이 5절의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한 사람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또 한 사람은 난느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또 한 사람은 야곱의 이름을로 자기를 부를 것이며, 또 다른 사람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그의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깊은 교제의 삶, 성령의 인도하는 삶을 살아갈 때 반드시 우리의 삶에 다가오는 변화와 축복들을 보고 전도의 열매가 저절로 맺혀지게 될 것입니다. 많은 영혼들이 사모하여 교회에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복이 온 세계에 지금까지 이루어져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이러한 복과 은혜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의 삶에 충만히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현실의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혹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 속에 연단받는 과정에 있을 지라도 두려워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돕는 자십니다.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그의 생명과 축복의 영을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물 붓듯이 부어주시는 분입니다. 자기 백성들을 흥왕하게 하시며 주님의 교회들을 힘있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잠시 버림을 받는 것 같을지라도 우리를 모태에서 낳으신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심을 믿고 소망을 붙들고 더욱 기도하며 인내하며 때를 기다립시다. 주님께서 그의 약속대로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성령과 복을 물 붓듯이 부어주사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많은 이들이 주님께 돌아와 자기도 하나님께 속했노라고 고백하는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