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6년 6월 가족법회
지안 대종사 법문
녹음이 우거지는 6월이 되었습니다. ‘綠陰芳草勝花時(녹음방초승화시)’라는 옛말이 있지요. ‘푸른 녹음과 그늘, 그리고 향기로운 풀이 꽃보다 더 아름답고 좋다’는 뜻이지요. 사람이 계절의 정서를 통해서 자기 마음속 정서의 순환을 가져올 수 있고, 불교적으로 말하면은 번뇌의 찌꺼기를 조금은 씻을 수 있지요. 그래서 옛날부터 스님들이 출가하는 것을 入山出家(입산출가)라 그랬어요. ‘산에 들어가서 出家(출가)한다’는 뜻이지요. 또 出家(출가)란 말 대신에 修道(수도)란 말을 붙여서 入山修道(입산수도)라는 사자성어를 만들어서 써왔습니다. 산에 가는 것이 단순한 운동을 위한 등산 개념이 아니고 마음의 수양을 닦고자 하는 의미에서 해온 말들이죠. 그래서 산에 오면 자연히 정서적인 순화도 되고 번뇌의 때가 조금은 씻긴다고 하여, 우리나라나 중국의 대부분 유명한 전통사찰이 산속에 있습니다. 이것이 도시를 피해서 산중으로 그냥 몰려간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수행 분위기를 우리나라 역사로 말하자면 삼국시대로부터 山寺(산사)의 도량에서 유지해 왔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포교적인 면에서 보면 도시에 포교당이 개설되어 일반인들이 쉽게 절에 올 수 있도록 하고, 불교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기도 했죠. 어쨌든 우리는 매월 산사에서 법회 날을 정해서 한 번씩 모이고 하는 것이, 신앙 정서를 키우는 것임과 동시에 우리 마음의 회포를 아늑하게 만들어가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요즘 우리들 사는 시대가 너무 딱딱하게 돌아가는 시대라 볼 수 있어요. 경전에도 그런 말이 나와요. 말세의 중생을 剛強衆生(강강중생)이라 합니다. 『金剛經(금강경)』 할 때 剛(강)자와, 강하다는 뜻의 強(강)자인데, 剛強衆生(강강중생)이란 말의 剛強(강강)이라는 뜻은 ‘딱딱하고 고집이 세서 교화하기가 어렵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요즘에는 내 뜻을 남에게 충분히 이해시키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자기 견해를 우선으로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남의 견해를 공감해서 받아들이는 그런 정신적인 힘이 옛날 사람들에 비해 약해졌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자기주장은 끝까지 관철하려고 하는데 남의 주장은 쉽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이 현대인들의 특징이라고, 심리적으로 분석해 놓은 말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불자로서 매월 산사를 찾는 마음으로, 앞서 말했듯이 정서순환을 하고 부처님 법을 통해서 인생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찾아야 됩니다.
불교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잘 쓰게 하는 기술을 습득해서 인생을 살아가는 가르침이에요. 이미 전에도 소개했습니다만, 요즘 누구에게 “불교를 어떻게 믿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경전에 나오는 말 한마디씩을 소개해서 “降伏其心(항복기심)하고 善用其心(선용기심)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여러 차례 소개했습니다. 『金剛經(금강경)』을 읽다 보면 降伏其心(항복기심)이라는 말이 나오죠. 가령 貪瞋痴(탐진치) 三毒心(삼독심)이 중생의 근본 번뇌입니다. 화가 나려 할 때 화가 나려는 마음을 降伏(항복)―억제하는 것이 좋은 것이죠. 욕심이 지나칠 때 그 욕심도 좀 억제하는 게 좋은 거예요. 그래서 貪瞋痴(탐진치) 근본 번뇌부터 항복하려 하는 마음을 일으킬 때 불교 수행이 시작되는 것이죠. 그래서 번뇌가 일어나는 妄心(망심)을 항복시키라는 뜻이고, 항복시킨 마음, 이게 굳이 말하자면 진심입니다. 참된 마음이 진심이고, 다스려진 마음·편안한 마음이지요. 사람이 매사에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 게 좋죠. 불안하거나 초조하거나 이런 데 너무 쫓기면 안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항상 자신을 점검하는 공부 방법을 일러놓은 중국 선사들의 말이 있는데, 내 마음이 어떤지를 점검해보라는 겁니다. 마음이 편안하면 매사에 임하는 태도랄까 자세가 편안해지겠죠. 마음이 불안하면 매사에 다 불안해지는 거예요. 뒤에 나오는 善用其心(선용기심)은 『華嚴經(화엄경)』 「淨行品(정행품)」에 쓰여 있는 경문인데, 마음을 잘 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 한 번 먹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는 말도 뒤에 나왔죠. 마음 한 번 먹는 것이 인생의 전부예요. 우리가 하루하루 생활하면서 ‘오늘은 어디로 가볼까?’라고 목적지를 정하는 것은 자기 마음 한 번만 먹는 거예요. 비근한 예를 들어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듯이, 마음 한 번 먹는 것이 내 인생을 펴가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 한 번 잘 먹기 위해서 ‘降伏其心(항복기심)하고 善用其心(선용기심)하라’고 말합니다.
요즘 세태를 가만히 보면, 사람 사는 생활 공간이 수직적으로, 수평적으로 말하자면 가로 세로의 공간 영역이 있어요. 보통 동양에서 내세우는 윤리적인 문제는 수직적인 가치 체제입니다. 쉽게 말해서 노인을 받들어야 하고 아랫사람을 부드럽게 지도해야 되는 거예요. 상하관계가 원만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요즘은, 가령 3대가 있다면 할아버지·아버지·아들―이렇게 3대라고 예를 들어 말할 수 있잖아요. 중간에 아버지, 또 아버지를 나로 볼 때는 밑에 자녀가 있죠, 위에 부모가 있고요. 그런데 이 중간의 기준이 되는 사람들이 많이들 위로는 잘 안 가요. 내가 책을 읽다가 ‘어른을 향하는 마음은 점점 다운된다’는 글귀를 봤어요. 아래로 신경 쓰는 마음은 늘어난다는 거예요. 어떤 면에서는 바르지 못한 거죠. 上下(상하)가 다 같이 잘 조화를 이룬 상태에서 마음이 써져야 되고 편안해져야 되는데, 위로 보살피려는 마음은 줄어들고 아래로 시키려는 마음은 늘어나니까요. 그래서 윤리의식이 과거의 전통의식에서 볼 때는 매우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三國遺事(삼국유사)』에 보면 모자의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우리가 효녀 심청 얘기를 전설적으로 많이 들어왔죠. 효녀 심청은 실존 인물이 아니에요. 꾸며낸 이야기예요. 『三國遺事(삼국유사)』에 나오는 孫順(손순)이라는 사람은 경주에 실제 살았던 경주 孫(손)씨 이야기라고 해요. 孫順(손순)이라는 사람은 끼니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집안이 가난했습니다. 孫順(손순)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노모와 부인, 그리고 어린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린 아들 때문에 노모가 밥을 덜어 손자에게 주느라고 밥을 제대로 못 먹자, 노모가 밥을 드시게 하기 위해 어린 아들을 땅속에 파묻으러 갔습니다. 산기슭에 가서 아들을 매장하려고 땅을 파니, 땅속에서 돌로 된 이상한 종이 나오는 것이었어요. 따라간 부인이 “이 종을 아이 때문에 얻었으니 파묻지 말고 아들을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여 종을 가지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집 처마 밑에 놓아둔 이 종이 울려 대궐 안 임금님의 귀에까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종소리가 너무 맑고 아름다워 임금이 사람을 시켜 이 소리가 어디서 나는 것인지 알아 오라고 했고, 드디어 孫順(손순)의 집에 있는 석종에서 나는 소리임을 알고 그 사유를 물어 들은 뒤, 孫順(손순)의 효심에 감동하여 효행상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처럼 위로 모시려는 마음이 앞섰는데, 요즘은 반대잖아요. 앞서 말했듯이 삼대가 있으면 흔히 밑으로는 잘 챙기는데 위로는 챙기지 않아요. 절에서도 그래요. 아래로 보살피는 정성도 있어야 하지만 위로 행하는 정성도 있어야 됩니다. 요새는 아래로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앞서 말했듯이 동양정신에서 보면 윤리가 무너진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어당 같은 사람은 옛날에 ‘과학 문명이 발달되면 사람 사는 사회가 어떻게 변하는가?’라고 이미 예언하듯이 말해놓은 것이 있어요. 일본 사람도 예언해 놓은 게 있습니다. 참 묘하게 요새 국민 총생산인 GNP를 가지고 말해놓은 게 있어요. GNP가 낮을 때 사람 살기가 제일 좋은 세상이라 했어요. 예를 들면 천 달러를 기준으로 하여 천 불 이하일 때는 사람이 서로서로 잘 도운답니다. 우리 사자성어 중에 同病相憐(동병상련)―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서로서로 이해를 하고 가깝게 느껴진다―라는 말처럼, 서로서로 이웃이 아주 가깝게 지내게 된답니다. 그러니까 소득 수준이 낮을 때가 사람들 사이가 더 좋아진다는 것을 예로 들었어요. 천 불을 넘고 2천 불, 3천 불, 4천 불로 올라갈 때까지 해놓은 말이 있는데, 2천 불 이상으로 GNP가 높아지면 사촌 관계가 거의 멀어져 버린대요. 아버지의 형제의 아들인 사촌은 또 형제예요. 사촌 이상의 가족이 멀어져 버린다고 합니다. 그다음에 5천 불인가 6천 불로 GNP가 높아지면 부부관계가 멀어져서 이혼 확률이 엄청나게 많아진다는 거예요. 사실이에요. 가난한 사람일수록 同苦同樂(동고동락)하고―옛말에 糟糠之妻(조강지처)란 말도 있는데, 그런 사이에서는 이혼 안 해요. 문명시대 GNP가 높은 사회에서는 이혼율도 높아진다는 거예요. 신문을 보면 이혼율을 도시로 따지면 서울이 최고라는 거예요. 그전에는 미국이 최고였는데, 나라별로 말하면 아직도 미국이 앞서겠죠. 도시로만 말하면은, 내가 옛날에 한때 여행할 때 세계 200대 도시는 다 가봤습니다. 큰 도시 다 가봤습니다. GNP가 높아질수록 사람 사이가 멀어진다는 결론이에요. 잘 살수록 사람 사이는 멀어진다는 거예요. 가족도 멀어지고, 옛날보다 비교를 하면 이웃도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놓고 그 사람이 퀘스천 마크를 던지면 “이러려고 경제 경제하느냐?”는 말이 나와요. 그래서 결국 잘 산다는 것은 마음을 잘 쓰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가 예불을 했는데, 이렇게 三寶(삼보)에게 예불하는 것을 三寶通請(삼보통청)이라고 합니다. 三寶(삼보)에게 예불할 때에는 六波羅密(육바라밀) 공덕을 생각해야 됩니다. 첫 번째, 布施(보시)가 육바라밀 중 하나이면서 전체를 포함하는 거예요. 사람은 베풀 줄 알아야 됩니다. 중요한 거예요. 물론 여러 가지 방법이 구체적으로 다르게 설명되어 나옵니다만, 베풀어주는 것―몸으로 베풀어주는 것·말로 베풀어주는 것·생각으로 베풀어주는 것―身口意(신구의) 三業(삼업)으로 베풀어준다는 말이 나와요. 베풀어준다는 건 뭐예요? 남에게 쉽게 말하면 밥 한 끼 사주라 이거예요. 물론 친한 친구끼리는 가끔 밥을 먹을 때가 있으나, 별로 안 친해도 그냥 기회가 되면 밥을 사주어야 해요. 밥 잘 사주는 사람이 대대로 복 받아 잘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밥 잘 사주는 사람이 다음 생에도, 그다음 생에도 잘 산다는 겁니다. 이런 옛날 얘기가 있어요. 어떤 사람이 저승에 갔어요. 연옥에 갔는데 “인간 세상에서 뭐 했느냐?”고 물으니, 어떤 사람은 약장사로 돈을 받고 약을 팔았어요. 염라대왕이 판단하길 생명을 담보로 돈을 벌기만 했다고 호통을 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약장사가 혼이 났다는 거예요. 두 번째 사람은 뭐였느냐? “저는 밥장사―식당을 했습니다.”라 하니, “그래, 비록 돈은 받았으나 배고픈 사람이면 누구나 밥을 먹도록 해주었구나”라며, 밥장사하는 사람은 칭찬을 하고 약장사하는 사람은 나무랐습니다. 이런 옛 이야기도 있는데, 사람이 항상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布施(보시)는 밥도 죽도 전체를 하나로 묶는 거예요. 인색하면 인색한 만큼 나중에 가난해진답니다. 인과법에도 이런 얘기가 나와요. 因果(인과)의 이치를 설해놓은 경이 있는데, 그 경의 이름이 『因果經(인과경)』입니다. 그래서 형편 되는 대로 불교는 布施(보시)를 자율적으로 하라고 하지만, 기독교 같은 곳에서는 시행되는 십일조 법이 있잖아요. 교회 다니는 사람은 소득의 1할을 교회에 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회가 전부 부자가 되는 거예요. 베풀어 줄 줄 아는 마음―물질적으로 베풀어주고, 몸으로, 말로―말 한마디, 괴로운 사람이 심정이 답답할 때 위로하는 말 한마디 듣고 나면 신이 나는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속담에도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죠. 그래서 몸으로써 베풀고 말로써 베푸는데, 돈 들이지 않고 말 한마디로 布施(보시)하는 방법을 설해놓은 경이 있어요. 無財七施(무재칠시: 和顔施·眼施·言辭施·身施·心施·座床施·房舍施)라 해요. 재물이 없어도, 아무것도 없어도 7가지를 布施(보시)할 수 있다는 거예요. 또 그 내용을 보면 ‘남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그래도 찬물이라도 한 그릇 떠다 주어라’라고 하여 布施(보시)하는 방법을 제시해 놨어요. 내 수중에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남을 위해서 물통에 물을 준비했다가, 목마르고 물 마시고 싶은 사람에게 물을 마시게 하라는 거예요. 예전에는 우물에 가면 물을 얼마든지 길어 올 수 있었습니다. 말 한마디 잘하는 걸 言辭施(언사시)라고 하고, 좋은 얼굴빛으로 하는 布施(보시)를 和顔施(화안시)라고 하는 등,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베풀어주는 방법이 7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중에는 자리 양보하는 것도 나옵니다. 옛날에는 過客(과객)을 재워주는 집이 많았어요. 좀 잘 사는 집에는 사랑방이 있었습니다. 옛날 사랑방은 길 가던 나그네가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면 재워주는 방이에요. 그래서 옛날에 그냥 길 가던 사람이 하루 묵어가기를 청하면, 사랑방이 있는 좀 잘 사는 집에서는 재워주면서 밥도 제공해 줘요. 이런 우리 선대의 생활 풍습이랄까, 이런 것이 있었다는 거예요. 이처럼 몸으로 베풀고, 말로 베풀고, 생각으로 베푸는 것 중에 생각으로 베푸는 것은―부모가 멀리 떨어진 자식을 생각하고 형제가 서로 생각하듯이, 멀리 떨어진 사람을 좋은 뜻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각으로 布施(보시)하는 거예요. 생각도 행위라 합니다. 意業(의업)도 행위거든요. 다만 意業(의업)은 표시가 안 된다고 하여 無表業(무표업)이라 합니다. 말은 표시가 되는 업이고 행동도 표시가 되는 업인데, 생각은 밖으로 표시가 되지는 않죠. 베풀어주는 마음으로 살려는 거,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 중에 참 좋은 가르침입니다.
오후에 행사도 예정돼 있어서 오늘은 간략히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첫댓글 항복기심, 선용기심을 명심하겠습니다.
육바라밀의 첫번째 보시의 마음도 잊지 않겠습니다.
화안시, 안시, 언시,신시, 심시, 좌상시, 방사시~
AI 사진이지요? 아름답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사진을 AI로 다시 한 겁니다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마음 깊이새기고 힘 닿는데까지 실천해 보렵니다. 감로법문을 이렇게 멀리서도 만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마하반야바라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