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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존(惠存)과 아감(雅監)
시집을 내는 지인으로부터 惠存의 전각을 의뢰받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혜존(惠存)과 아감(雅監)의 정의가 엇갈리는 모양이다
문자란 전통과 역사에 따라 변천되었고 그 문자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형되기 마련이지만 초고속으로 발전하는 눈부신 진보가 문자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새로운 발명과 발견 전혀 다른 문화기기의 출현 등으로 문자가
곤혹스럽기 때문이다. 굳이 일본에서 사용되는 문자를 차용하는 것은 자존에
관한 선택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하지만, 어감상으로도 은혜를 받아
보관한다는 혜존(惠存)을 쓰기에는 어려워보인다. 아감(雅監)을 써보기로 했다.
거울처럼 우아하게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쯤으로 본다.
내용에 천착하느라 각이 마음에 안든다. 조밀하게 전개되는 일본에 대한 식민
사관에 격해진 까닭이다. 시간을 두고 다시 刻해 보기로 한다.
혜존(惠存)과 아감(雅監) 우리말바른말
자신의 저서나 서화 작품을 나에게 보낼 때 혜존(惠存)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상대방의 이름을 적은 후에 그 옆에 혜존이라고 쓰니 상대를 높이는 말이라야 한다.
그러나 혜존은 그런 뜻이 아니다. 책이나 서화를 받았을 때 아무개에게서 받았노라
이를 잘 보관하겠습니다. 은혜롭게 보존하겠습니다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런 글을
상대방 이름 옆에 써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혜존,惠存>은 <한국문집총간> 자료에서 20여 곳에 나타나는 말로 <이 책을 받는
것이 은혜로워 ‘惠’ 잘 보존 ‘存’하겠다>는 뜻이며 중국어로는 <受此冊爲感惠故保存以重>
이다. 이 말은 원래 우리나라 선비들이 오래 전부터 써 왔던 말로써 책을 받는 사람이
귀한 책을 주셨으므로 잘 읽고 보존하겠다는 뜻으로 쓰였다.
이 말은 일본인들이 조선의 문집에서 보던 글을 엉뚱한 곳에 사용하다 굳어 버린 말이다.
허나 내가 국문학을 공부하던 동학들이 학위 논문을 보내었는데 모두들 혜존이라고 써서
보내었다. 국문과 출신들의 언어 사용 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니 국어사전에서조차 혜존
이란 책 등을 증정할 때 상대방이 잘 읽어 주십시오라는 뜻으로 쓰는 말이라고 규정해 놓았다.
그런 뜻이 아니다. 惠存을 상대방 이름 옆에 쓰면 이건 참 건방진 말이다. 내가 책을 주니
자네가 은혜로 알고 잘 보관하게나 이런 뜻인데 연장자 심지어 박사학위 논문 심사교수의
이름에 버젓이 쓰니 말이다.
국어사전은 틀리는 곳이 종종 있다. 이게 우리나라 국문과 대학원생의 실력인 셈이다.
그렇다면 무어라고 쓰는 것이 바른가.
아감(雅鑑)이라고 쓴다. 아무개 님께서 잘 보십시오 이런 뜻이 된다. 사실 아감(雅鑑)은 최상의
존칭이다. 雅는 논어에 나오는 글자이며 표준이 되는 말이라는 뜻을 가지며, 鑑은 거울이라는
뜻이니 만세의 사표를 뜻할 때 鑑이라 쓴다. 보다의 뜻 중에서 視, 見과는 비교할 수 없다.
흔히 謹呈이라고 쓴다고 하지만 너무 사무적이다. 또 상대방 이름 옆에 쓰기 보다는 자신의
이름 다음에 써야 어울리는 말이기도 하다.
惠存과 雅鑑에 대한 차이나 문헌을 찾아 본다. 혜존은 胡安國曰 ... 略小惠存大節春秋之法也
라는 구절로 나온다. 혜와 存을 붙이어서 나오진 않는다. 이는 한문과 우리말의 통사구조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은혜롭게 보존하겠습니다로 惠存을 사용하지만, 차이나에서 이런 뜻
으로는 存惠라고 쓴다.
雅鑑은 篤志廉直精識雅鑑이란 글구의 조합에서 보듯이 높은 식견을 뜻한다.
아래 글들은 인터넷에서 참고하라고 올린 글들이다. 아무쪼록 자신의 이름 옆에다 써야 할
惠存을 남의 이름 옆에다 쓰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길 바란다.
山居圖 辛亥秋 睡軒先生 雅鑑 小癡宗下라고 적혀있다. 산거도는 신해년 1851년, 수헌선생님
보십시오. 양천허씨 종인인 소치가 드립니다.
나는 증정할 때 아감(雅鑑)이라고 써서 드린다. 나보다 나이가 적으면 一鑑 정도가 알맞다.
그러나 굳이 최경칭인 雅鑑을 쓰는 이유는 나중에 작가로서 남에게 증정할 때 惠存이라고
쓰지 말라는 거다. 뭐 내 뜻을 모르면 그것도 지 복이다.
雅鑒(아감) = 아감(雅鑑).
보아 주십시오라는 뜻으로, 자기(自己)가 쓰거나 그린 서화(書畵) 등(等)을 남에게 증정(贈呈)
할 때에 쓰는 말.
求正語(가르침을 바라는 뜻의 말)
正<정>, 正之<정지>, 求正<구정>, 叱正<질정>, 正<신정>, 法正<법정>, 淸拂<청불>, 雅賞<아상>,
雅囑<아촉>, 法家淸正<법가청정>, 雅正<아정>, 敎正<교정>, 淸正<청정>, 是正<시정>, 淸囑<청촉>,
法鑑<법감>, 雅鑑<아감>, 指敎<지교>, 法囑<법촉> 등
1932년 10월 동아일보사 주최로 열린 조선고서화 진장품 전람회에 함석태(1889-?) 소장으로
출품된 소치 허련의<산거도>(북한명: 산골 살이)는 북한 평양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작품으로 추정된다. 산거도는 다소 거친 듯한 붓질로 표현된 나지막한 산들과 스산한 느낌의
피마준, 산 정상 언저리의 태점(苔點), 울타리 주변의 직선으로 올라온 침엽수 표현 등은 소치의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내용이다. 화제는 山居圖 辛亥秋 睡軒先生 雅鑑 小癡宗下라고 적혀있다.
산거도는 신해년 1851년에 양천허씨 종인인 수헌선생에게 기증하여 보게한 소치의 그림이라는
뜻이다.커다란 두 그루 소나무 밑의 초가에서 화병을 들고 오는 동자를 바라보는 인물이 제목
그대로 산 속에서 은거하며 사는 수헌 선생으로 여겨진다. 소치 허련의 그림은 대체로 까슬하고
소방(疎放)한 필치로 된 것이 많은데, 산거도는 문중의 어른께 드리는 그림이어서인지 붓놀림이
단정하다.
한국인으로서 한국말을 사용하는 것은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한국에서는
한국말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인도네시아나 파키스탄이나 필리핀처럼 모국어와
공용어가 함께 쓰이는 것도 아니다. 한국말에 수많은 외국어와 외래어가 뒤범벅되어 쓰이거나
잘못된 외국말이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건의 내막>에서는 외래어 중에서도 잘못 쓰이고
있는 일본말들의 예를 연재하고 있다.
“이미 책을 낸 사람들에겐 책 내는 게 어려운 게 아닌지 몰라도 자기 이름을 당당히 드러내며
받는이에게 ‘혜존’이라고 적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나도 ‘혜존’이라고 사인한 책을
받고 싶다. 누구든 남에게 책 한권 받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혹시 지금 책장 곁에
있다면 받은 책을 꺼내 먼지를 털고 첫 장을 열어볼 일이다. 그러면 거기 얌전하게 ‘惠存’이라고
적혀 있을 것이다. 보통 책이나 논문 등을 증정하면서 받는 사람 이름 옆에 한자로 ‘惠存’이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쓰는데 대관절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잘못된 표현의 ‘혜존’
먼저 일본국어대사전<大辭林>에서는, けい-そん【惠存】 :《「けいぞん」とも》お手元に保存してい
ただければ幸いの意で、自分の著書などを贈るときに、相手の名のわきや下に書き添える語。
이의 번역은 일본국어사전을 베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된다. 이를 보면,
“혜존(惠存, 케이손, 케이존이라고도 함) : ‘받아 간직하여 주십시오’라는 뜻으로, 자기의 저서나
작품 따위를 남에게 줄때에 상대방의 이름 옆이나 아래에 덧붙여 쓰는 말” 이라고 정의 되어 있다.
이러한 “반듯한” 정의로 인해 우리는 여태껏 아무 의심 없이 자신의 저서를 남에게 줄때 이 말을
써왔던 것이다. 마땅히 받는 사람은 자기의 이름 옆에 혜존이라는 말이 쓰여 있을 때 기뻤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며 나보다 더 진한 감동을 느낀 사람은 “혜존”이란 시를 쓴 사람도 있다.
이에 합세하여 시평이 뒤따르는데 시평을 정리해보면 ‘혜존’이란 한마디로 “글을 쓰며 받는 가장
기쁜 선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혜존 이라고 책장 앞머리에 쓰는 기쁨이란 내 마음의 집을 지어 주는 마음이다”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신주 모시듯 써온 ‘혜존’이란 말에 대해 이제는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시기가 왔다. 늦었지만.
선비들 시용과 앞뒤가 달라
문제는 국립국어원의 이러한 답변에 ‘김봉규’라는 분이 올린 ‘혜존’에 대한 ‘이의제기’이다.
이 분의 글은 국립국어원의 ‘모르쇠’에 비해 논리 정연하다. 이 분의 논지에 따르면, <혜존,
惠存>은 <한국문집총간> 자료에서 20여 곳에 나타나는 말로 <이 책을 받는 것이 은혜로워
‘惠’ 잘 보존 ‘存’하겠다>는 뜻이며 중국어로는 <受此冊爲感惠故保存以重>이다. 이 말은
원래 우리나라 선비들이 오래 전부터 써 왔던 말로써 책을 받는 사람이 귀한 책을 주셨으므로
잘 읽고 보존하겠다는 뜻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선비들이 주고받던 책이란 <문집>을 말하며 이 <문집>이란 당사자가 세상을 하직하고 난 뒤
그 후손이나 제자들이 선조의 글을 모아 책으로 엮어 발간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문집>
은 <사후(死後)문집>을 두고 이른 말이었다. 살아있을 때는 문집을 내지 않는 것이 선비들의
전통관례였으며 살아있으면서 문집을 내는 경우는 <생문집(生文集)>이라 하여 천한 일로
배척했다. 보통 문집은 책 제목이 없는데 이를 받은 사람이 겉표지에 문집이름을 적고
속표지에는 누구에게서 언제 받았는지를 적은 다음 책을 준사람 이름 끝에다 <은혜롭게
주시기에[惠] 잘 보존[存]하겠다>는 뜻인 <혜존>이라는 말을 적어 고마움을 나타내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20세기에 이르러 나라를 일본에 강제로 빼앗긴 후 우리말이 생겨난 바탕[語源]
과 흐름[變遷], 말뜻[語意], 쓰임새[用處]를 챙기지 못하는 과정에서 일본 말의 영향을 받아
“이 책을 드리오니 잘 보존해주시면 고맙겠다”는 일본식 “혜존”을 따르게 되었으니 거꾸로
되어버린 꼴이다. 이치로 따져 봐도 자기가 쓴 책을 잘 보존해달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심하게 말하면 건방진 부탁이다.
일본과 서양의 문화가 물밀듯 밀려오면서면서 살아있는 사람의 저서(著書)가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때 겉표지는 아예 인쇄를 하게 되었으며 속표지 첫 장을 넘겨 일본사람들 하듯
“제 책을 잘 보존해주시오 라는 뜻의 惠存”을 마구 남용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건 숫제 강요된 부탁이 아닌가? 우리겨레는 남에게 자신의 저서를 잘 보존하라
고 할 만큼 뻔뻔하지 않았다.
그런 뜻도 모르고 지금도 갓 졸업한 대학생이 논문을 교수에게 드리면서 ‘ 교수님 혜존(惠存)
’이라고 쓰고 있고 교수는 기쁜 마음으로 받아든다. 시인들은 혜존(惠存)을 노래하고 평론가는
이에 박자를 맞추는 게 오늘 우리 모습이다. ‘혜존’이 그렇게 복잡한 말이라면 잠시 접어두고
선생님께 부족하지만 정성을 보아 이쁘게 읽어주세요
선생님 덕분에 글을 써봅니다. 읽고 용기주세요
선생님께 아직 미숙하지만 읽어주시면 더욱 힘내겠습니다”
이런 아름답고 가슴 찡한 말을 책 앞장에 써서 드리는 것은 ‘혜존(惠存)’보다 못한 일일까?
남에게서 책을 받아 든 사람이 오래도록 곁에 두고 잘 읽겠다는 뜻의 ‘혜존’이 일본식 ‘혜존
’으로 둔갑되어 “내 책을 잘 받아 간수하시오”로 되어 버렸으니 주객전도란 이런 것을 가르
키는 말이리라.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할지 손을 대기가 쉽지 않지만 먼저 우리부터라도
책을 써서 상대에게 선물할 때는 ‘혜존’을 버리고 나름대로 번득이는 지혜로운 문구 또는
정감어린 한 줄 글이라도 써서 드리는 습관을 들이자. 그러다보면 더디더라도 고쳐질 날이 올 것이다.
혜존유감(惠存有感)
요즘 주변의 지인들이 평생동안 일해 온 자신의 전공분야에서축적한 경륜과 지식을
바탕으로 책을 저술해 지인들을 초청하여 회갑이나 고희잔치 또는 정년퇴임기념연회를
겸한 출판기념회를 여는게 트렌드화하고 있다.
인생을 의미있게 마무리한다는 측면에서 부럽기도하고 진심으로축 하하게된다.
출판기념회에서 받는 책 외에도 지인이 공들여 쓴 쓴학위 논문이나
베스트 셀러 에세이집 등 심심찮게 책선물을 받게된다.
선물 중에 가장 값진 선물이 책선물이다.
가격여하를 불문하고 예쁜 포장지에 쌓인 책을 한 권 받고 보면 이 각박한 세상에
나를 생각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뿌듯함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책을 열어 첫 장을 보면 주는 사람의 정성이 담긴 글귀가 쓰여져 있는데,
대개 “000 혜존(惠存)"이라고 쓰여 있다.
순간 낯설고 어려운 언어에 처음 책 받을 때의 기분이 개운찮을 때가 적지 않다.
풀이하자면 받는 사람 “000님 받아 간직하여 주십시오”라는 뜻이라는 데,
즉 자기의 저서나 작품 따위를 남에게 줄 때에 상대방 이름 옆이나 아래에
덧붙여 쓰는 말이라고 한다. 우리정서로는 쬐금 기분이 그렇다.
지가 쓴 글이 무슨 자랑거리나 되는 듯이 받아서 잘 간직하라니..
이 말은 원래 책을 받는 사람이 이 책을 받는 것이 은혜로워
잘 보존하겠다는 뜻으로
수차책 위감혜 고보존이중(受此冊 爲感惠 故保存以重)이라,
즉 우리 선비들이 오래전부터 써 왔던 말로써 책을 받는 사람이
귀한 책을 주셨으므로 잘 읽고 보존하겠다는 뜻으로 쓰였던 것이다.
이렇게 좋은 말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우리말 말살정책으로 일본사람들이
“이 책을 드리오니 잘 보존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일본말 혜존으로 그 뜻이
거꾸로 바꿔 버렸다.
자기가 쓴 책을 잘 보존해달라는 것은 우리 정서상으로는 말도 안되는 말이다.
그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즘 젊은 지성인들이 논문집과 선물하는
책의 첫장에 혜존을 남발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우리말로 “000선생님께
드립니다”하면 될 것을 어슬프게 문자쓰다 반풍수 집구석 망하는 꼴이다.
굳이 문자를 쓰고 싶다면 옛날부터 조상들이 사용한 좋은 말이 있다.
스승이나 윗 사람에게는 감하(鑑下)라 하여
거울 같이 맑은 눈으로 쭉 살펴보시고 좋은 가르침을 내려달라는 뜻이다.
또 비슷한 또래나 조금 선배일 경우에는 청람(淸覽)이라 하여
맑은 눈으로 한번 읽어 주시라는 뜻이다.
아랫사람에게는 일람(一覽)이라 하여 별것 아니지만
한번 읽어주게나 라는 뜻이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겸손한 말이 아닌가?
뜻 과 유래를 제대로 모르고 일본인들이 뜻을 왜곡한
"혜존( 惠存)을 남발하는 것은 정말 유감이다.
[출처] 혜존(惠存)과 아감(雅監)|작성자 필사이언
첫댓글 그 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惠存에 대한 설명과 이를 대신 해서 쓰야 할 雅鑑, 鑑下, 清覽, 一覽 등에 대한 설명 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식민시절의 잔재가 남아 간혹 왜 말들이 입에 붙어 있습니다
특히 한자 중에 한문 중에 왜식 어투들이 남아있어 심사를 어지롭힙니다
오사카에서 만난 친한 친구에게 아버님이 좋아했던
18번 주산반지를 청해놓고 나도 놀랍니다
내가 친일파종자, 사과합니다
다시는 혜존같은 왜색 문자를 쓰지 않으렵니다
혜존(惠存)과 아감(雅監)에 대한 공부 잘 하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혜존(惠存)과 아감(雅鑑)에
대한 것을 공부했으며,
이제는 감하(鑑下)와 일람(一覽)에
대한 것을 고려하여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랫만에 雅監詩를 刻해봅니다.
손에서 덜 익어, 덜 숙성이 되어 거칩니다
刻할때 기분이 나쁠 때 刻이 잘되고
기분이 좋을 때 刻이 잘 안되는 심사 때문입니다
옆 舞泉은 시집을 내는 가수이며 시인인 지인에게 만들어 준
雅號인데 옛부터 우물 가에서 처자들 농사가 이루어진다는
스토리입니다.ㅡ그 후 맘에 안들어 2개를 더 刻해주었답니다
부끄럽지요
' 읽어주시면 당신의 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