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 김천두 산수화 산중수복(山重水復) 1981년 132x120
소천 김천두 나의 대표작(代表作) 산수화 산중수복(山重水復) 01
에술인들이 펼치는 조형의 세계
소천 김천두의 산중수복(山重水復) 선(線)의 일회성(一回性)중시 하고 생동감(生動感)있게 표현
시(詩),서(書),화(畵)의 일치를 작품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진 한국화분야에서 한학자(漢學者)로서의 심지와 호남화맥을 잇는다는 높은 기개로 독보적 위치를 지키고 있다는 작가가 있다.
복잡한 서울변두리주택가인 뚝섬 버스 종점 근처 작은집에 소천화실(小天畵室)이란 자서(自書)의 현판을 걸어놓고 전문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소천 김천두 그는 지금도 선비정신을 고집하면서 미술세계의 여러 형사주의 활동들을 철저히 외면하고있는 작가이며 일단 입을 열면 칼날처럼 매섭게 문제점을 도려내놓는 비판자로서 유명하다.
화가란 그림만으로 먹고 살면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열심히 그림을 그려야 명인(名人)으로 후세에 이름을 남기는 법이다. 그러니 안일하게 지내 가지고서는 참다운 화가라 할 수없다.소천 김천두는 전남 장흥 출신으로 어려서 부터 한학(漢學)을 배워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익혔고 한학의 대가(大家)인 다초 위복량 잠계 백형기선생 문하에서 서예를 배웠다.그는 남화 대가인 남농 허건선생에게서 산수화를 월전 장우성선생에게서는 화조화를 배웠다.
그는 학문과 에술이 두길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라는 생각을 지금도 변함없이 가지고 있다.그의 그림은 서예와 마찬가지로 그림에 있어서 도 선(線)의 일회성(一回性)를 중시하여 한획 한획의 순간적인 필선(筆線)을 생동감있게 표현 한다.전통적인 남화(南畵)의 분위기를 갖고 있는 산수화들이지만 탁 트이고 스케일이 큰 독자적 개성을 보여 준다.마음속 으로 그리는 그림 이어야 한다. 소수(小手)의 소기(小技)로 그려서는 안된다는 평소 주장대로 구도나 설채(設彩)의 작위적(作爲的)인 아름다움보다 넓은 종이에 큰 붓으로 묵묵히 써 내려간 붓글씨 같이 고담(古淡)한 문기(文氣)와 호연지기가 느껴지는 대작(大作)들을 그려 봄으려써 사람들을 감동 시킬 수있다.대표적인 작품은 한탄강 유역과 그 북쪽의 산맥을 스케치 하여 그린 대작 산중수복(山重水復)이 있다.한탄강 유역에 크게 매료 되어 새로운 산수화의 소재로 삼게 되었다. 이 그림은 재인(才人)폭포 부근의 산맥과 한탄강 하구를 스케치 한것을 다시 변향 시킨 작품 이다.그림 오른편의 하구(河口)가 중국의 황하(黃河)를 연상시킬만큼 널찍하게 그려져 작품의 스케일을 키워놓았고 그 위의 하늘에 구름처럼 떠있는 자작시(自作詩)의 화제(畵題)가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전라도 산은 정읍 장성쪽의 소백산맥을빼고는바위.흙.수목이 재미있게 조화돼 있어 호남화가들의 전형적인 소재로 사용됩니다만 한탄강유역은 자역에 따라 중국의 계림(桂林)를 방불케하는 지층이 보여 특유의 매력을 갖고 있지요. 화선지를 대고 그리면 필력(筆力)이 죽어 버려 하도(下圖)를 그리지 않고 스케치 한것을 보며 즉시 즉시 그려나간다는 그는 한탄강 근처를 18년간 다니다보니가 마치 지질학자라도 된것처럼 그 세부의 지형과 토양까지 환히 머리에 들어 온다고 했다.요즘도 상식적인 붓 놀림을 탈피해, 묵(墨)의 생명력을 화폭에 옮기고 있다.
1981년 성수동 소천화실 에서 작업 하였다.
그가 어린시절 학습하고 시.서.화 배우고 익힌 유천재를 그리면서 호남 성리학자며 실학자인 존재 위백규 학풍을 이어 받은 창천재에서 수학하고 유천재를 설립한 소석 김노현은 호남의 성리학자이며 예학에 능통 하였다.특히 소석선생은 학문에 박통경사 하고 지재육영하야 교도후생 하였고 여소연재 최면암 기송사 등과 위도의부 하고 유집이 남아 있고 방래한 문인들이 유천재를 설립하고 배향 하고 있다. 그의 제자인 호남 의사 치제 김영엽 등이 수업 하였다 소천은 호남의 마지막 성리 학자인 다초 위복량 으로 부터 한시와 서예(서도)수업을 받았다. 그때에 왕희지체와 구양순.황산곡. 추사체를 그의 서예의 규범으로 삼았다. 이러한 자유스런 상상력과 풍부한 감성은 자기만의 개성적인 서체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학문은 존재 위백규 의 실사구시의 호남 실학의 태두인 존재의 사상을 이어 받은 소석 김노현. 다초 위복량의 실천적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경세치용.이용후생.실사구시의 실질적이고 현실 중심적인 현실.관념보다는 사실적인 학문을 받아 드렸다. 소천은 이러한 수업을 받으면서 매우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서울로 유학 하여 선린상업학교 입학 하게 되었다고 한다. 소천은 유천재에서 학연과 묵연.시연.화연 맺은것이다.그의 학습공간이며. 또한 작업 공간 이다. 내년 90을 바라보는 노 화가는 자신의 작업공간이며 학문의 도장인 유천재와 자신이 어린시절부터 보아온 천관산도를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가 이청준 선생은 유천재화향만년 이라는 제발을 주면서 아버지와 아들(김선두.김선일) 소나무로 읽는 것을 들은 바 있다.아버지화가와 아들화가가 이 마을에서 솔향 같은 묵향을 오래도록 피우길 바란다는 뜻이다. 소천 김천두 선생의 그림을 그린 공간으로 한국 남종문인화를 그리고 연마한 도장 이다. 유천재 주변에 핀 파초를 그리기도 하고 향나무 모란 석류 대나무 매화 소나무 동백나무를 보면서 그만의 독특하면서도 문인적 이면서도 사대부적인 문기가 있는 그림을 탄생 시킨 곳 이다. 남종문인화가 小天 김천두는… 1928년 전남 장흥에서 출생했다. 전통적인 명문 광산김씨 양간공연의 후예로 본명은 김석중이다. 향리인 천관산 기슭 유천재 서당에서 한서와 시·서·화를 수업했으며 한학의 대가인 다초 위복량 선생과 잠계 백형기 선생 문하에서 서예를 익혔다. 남화의 정상급 거목 남농 허건 등에게 산수화의 기법을 배웠고 월전 장우성에게서 인물, 화조 등을 사사 받아 개성있는 자기정신세계 표현을 위한 회화세계를 추구해 왔다. 저서로는 ‘소천 한 시집’ ‘시·서·화 삼절과 남종화 이론’ 등이 있다. 소천 김천두 가(家)는 3대가 화가의 맥을 잇고 있는 드문 가계를 형성하고 있다. 아들 김선두가 중앙대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김선일이 한국 산수화의 대표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또 김천두 옹의 손자인 김선두의 자 김중일(서울대 한국화과 대학원 졸업)도 동양화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화 수강생 모집 우리의 그림인 한국화의 묘사와 기초 과정을 실습과 동양화론을 지도 합니다. 기초부터 창작에 이르기까지.초급.중급.고급 과정으로 지도하며 한국화 작가 지망생.취미생반은 저녁 시간에 직장인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평일반: 오전반 10시-1시 까지. 오후반 2시-5시 토요일 특별반: 오전반 10시-1시 까지. 오후반 2시-5시 평일 저녁반; 저녁 7시-9시 까지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 가장 세계적인 그림 입니다. 한번 배워 보세요 한국미를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 입니다. 지도 과목 산수화 사군자 채색화 석채화 수묵화 화조화 민화 문인화 한국화 외국인반 한국화 미대입시반 개인지도로 수업 합니다 수강 신청 서울 송파구 가락동 96-1 가락우성아파트 상가 3층 가락시장 전철역 3호선 3번 출구 가락우성아파트 상가 3층 02.406.6569. 010.7643.7355 김선일화실 http://cafe.naver.com/sunil7355 김선일화실 뉴아트샵 www.newartsh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