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사람이 없으면 달은 없다>
우리는 눈 앞에 있는 모든 사물이 언제라도 거기에 그대로 있어온
것으로 여긴다. 이것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마술사의 모
자에서 튀어나오는 토끼처럼 우리에게 갑작스레 나타난 모든 것이
언제라도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상상하는 아이처럼 순진하다. 내
가 보지 않는 데도 저 산은 항상 저렇게 높이 솟아 있고, 달은 하늘
에서 환하게 비추는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라고 사람들은 생각한
다. 현대 양자역학에서는 관측이 일어나기 까지는 대상이 실재하
는 지, 안 하는 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 불만을 품었던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에 딴지를 걸면서 “내가
달을 보지 않는다고 달이 존재하지 않는 거냐?” 고 반문했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어떤 것을 관측하려는 구도 아래 설계된
실험장치에 따라 대상(이 때 대상은 입자 수준의 미시세계를 말한
다)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관찰자의 관측행위와 따로 떨어져 별 달
리 존재하는 대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주관과 분리된 객
관대상이 있다는 고정관념이 파괴된다. 고에너지 입자가속기에서
관측되는 입자는 관측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찰나 간 출현했다가
소멸한다. 그 입자가 감광판에 남긴 궤적을 해석하여 기존에 알려
진 것인지 아닌지 가 판단된다. 기존에 알려진 것이 아닌 새로운
것으로 드러나면 “새로운 입자’를 발견했다고 대서 특필 된다. 이
런 입자가속기에서 실행되는 실험이란 그야말로 입자를 발명하는
것과 진배없다. 입자가 출현할 이론적 배경을 완성하고 그에 따라
실험장치를 설계하여 실험을 실행하면 예측한대로 입자가 마술처
럼 나타난다. 그렇게 나타난 입자 중 하나가 바로 힉스입자이다.
그런데 이것은 미시세계의 경우이고, 일상생활에서는 거시세계의
관점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의 달은 내가 보지 않더라
도 늘 거기에 있다고 믿어진다. 과연 그런가? 세상사람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연기적으로 인식이 이루어진다
고 가르친다. 보려고 의도를 내야 시각기관(눈)이 움직여 볼 대상
에 주의를 보내 집중하여 (대상에 대한 정보가) 망막에 상으로 맺
히면 전기신호로 바꾸어져 신경회로를 타고 뇌로 전달된다. 대상
에 대한 정보가 이전에 기억되었던 정보와 통합되어 ‘무엇’이라고
판단하여 알게 된다. 이렇게 ‘무엇을 봤다’라는 인식이 이뤄진다.
그러니 보는 사건이 일어나려면 반드시 보는 의도, 보는 행위, 보
이는 대상, 빛과 공간이 있어야 한다. 대상이 저 혼자 있다(하늘의
달)고 보여지는 것도 아니고, 보려는 의도가 있다고 반드시 볼 대
상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하늘의 달을 보려고 하면 공간(하늘이
보이는 마당)에 적당한 빛(달빛)이 있고 보려는 의도가 있어서 고
개를 들어 위로 바라보는 동작이 있은 연 후에 비로소 달이 보인다.
내가 보지 않으면 달은 없다. 내가 보지 않아도 달이 있다고 하는
건 세상사람들의 생각이요, 고정관념이다.
이처럼 ‘알아차림’이 없으면 겉모습을 의심하지 않고 그것을 마치
정신 속에서 이전부터 거기에 영원히 존재했던 것이 이제 내 눈에
목격되었다고 여기게 된다.
보되 볼 뿐, 보는 자도 없고, 보이는 대상도 없다. 그러니 ‘내가 봤
다’고 고집할 것도 없으며, ‘이러 저런 게 보였다’고 집착할 것도
없다. 다만 인연이 맞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을 봤을 뿐, 그리고 흘
려 보내면 그만이다.
첫댓글 유물론 vs 유심론
스님의 유심론 설명도 그럴듯 하네요. 마하라지와는 다른 방식의 설명인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