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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9: 2. 큰 무리가 따르거늘 3. 바리새인의 시험 4. 사람을 지으신 이
마 19: 2. 큰 무리가 따르거늘 - 큰 무리가 따르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 큰 무리가 좇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저희 병을 고치시더라. )
큰 무리가 그를 좇았고 그는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셨다.
1] 큰 무리가 따르거늘
마가의 평행구절에서는 '무리가 다시 모여 들거늘'(막 10: 1)이라고 표현하였다.
마태는 그가 즐겨 사용하는 동사 '좇다'(*, 아콜루데오)를 통해 그 무리들이 보통의 군중들이 아니라 예수와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들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 동사는 '따르다', '제자가 되다' 등의 의미로 갈릴리에서 베레아까지 예수를 따라온 무리들이 결국 예루살렘까지 계속 따라다니는 일종의 '제자 무리'들 임을 나타낸다.
'제자됨'을 나타내는 이 동사는 21절과 27절에서도 다시 사용되고 있다.
2]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이적 기사가 많은 마가복음에 오히려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라고 되어있다.
설교 기사를 선호하는 듯한 마태복음에 도리어 '병 고침'이 언급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 마태의 19장의 내용이 설교가 아니라 설화 부분이기 때문에 마태가 의도적으로 마가의 본문을 수정한 것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A. W. Argyle).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의 세 사역인 가르치심(teaching)이 갈릴리뿐만 아니라 베레아에서도 행해지고 있음을 뜻하는 말로 이해한다.
선포자(18장의 설교), 예언자의 모습을 갖춘 메시아로서 예수의 완전한 사역을 설명하려는 마태의 노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Gerhardson).
마 19: 3. 바리새인의 시험 -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며 이혼이 옳은 일인지에 대해 질문하였다.
1]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예수의 소문이 헤롯과 예루살렘의 교권주의자들에게 전해졌다(14: 1).
그곳의 산헤드린에서 급파된 진상조사단인 바리새인들은 사마리아를 제외한 전 지역에 예수를 따라다니면서 그를 시험하고, 비방(誹謗)했으며, 모함(謀陷)할 요소를 찾기에 분주했다.
* 마 9: 1-13 –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 마 12: 1-21 – 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9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10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15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16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셨으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19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21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 마 15: 1-20 – 1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5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도다. 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10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15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은 예루살렘 종교회의와 로마 당국에 고소할 거리를 찾아 신학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예수가 머물고 있는 베레아 지역은 땅이 비옥하고 경제력이 타지보다 앞서 있는 평화로운 전원풍의 지역으로서 유대적 교권주의의 영향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지역 주민들은 예수의 선교 활동에 상당히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리새인들은 이곳까지 찾아와서 적대행위를 일삼았을 뿐 아니라 무리를 충동질하여 예수의 사역을 방해하였다.
본문에서는 그들의 현재 위치가 헤롯 안티파스와 헤로디아의 이혼과 부정한 결혼 문제로 세례 요한이 처형된 곳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그들이 제기한 이혼 문제는, 곧 바로 예수의 처형을 획책하려는 음모(陰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는 사실이 분명하다.
그들은 중요한 신학적 논쟁거리처럼 보이는 이혼법에 관한 난제를 제시함으로써 예수를 정치적 곤경에 몰아넣으려고 하였다.
2]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마태복음에서 예수가 시험당하거나 유혹받은 것은 처음 사탄에 의해서이고 그 후에는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헤롯당에 의해서였다.
* 마 4: 1, 3 –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 마 16: 1 -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 마 22: 18, 35 – 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이는 그의 메시아적 권위를 시험하거나 도전하는 것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바리새인들의 시험의 형식은 언제나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 '가', '불가'를 묻는 방법으로 예수께서 만일 '옳다' 하여도, 아니면 '그르다' 말씀하셔도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게 될 애매한 문제에 대한 답변 요구가 대부분이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양자택일의 흑백논리의 오류에 빠져들지 않고 논제의 본질을 그대로 파헤치심으로써,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시도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시험은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3]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이는 문자적으로 '어떠한 원인으로든지'라는 뜻이다.
이 같은 물음은 규율에 어느 정도의 자율성(自律性)을 부여하고 있는 힐렐학파가 취한 태도와 학설에 근거해서 제기한 말이다.
당시 힐렐과 쌍벽을 이룬 샴마이학파는 일정한 이혼 사유가 규정되어 있었다.
계약을 맺고 들어간 쿰란 공동체 사람들은 이혼은 어떤 경우에도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J. R. Muller).
새 번역에서는 이 문구가 '이유가 있으면', 공동 번역에서는 '무엇이든지 이유가 닿기만 하면'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 번역이 본문 해석상 적절한 것 같다.
NIV의 'for any and every reason'이란 번역은 공동 번역의 표현과 잘 어울린다.
4]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당시 팔레스타인의 유대 사상에 주류를 이루는 랍비 학파인 힐렐(Hillel)과 샴마이(Shammai)는 이혼 문제로 대립되어 있었다.
이 두 학파는 이혼을 인정하였다. 물론 남편이 아내를 버린 경우의 이혼만을 인정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불가하였다.
이들의 이혼에 대한 생각은 신 24: 1에 근거하고 있다.
* 신 24: 1 -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에르와트 다바르'(*), 곧 '수치(羞恥)되는 일'이라는 말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수치'(indecency)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일치를 보지 못하였다.
샴마이 학파는 수치를 '간음'과 같이 엄청난 정도의 것으로 해석했는데, 성경 본문은 수치가 반드시 간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간음에 대한 일반적인 형벌은 죽음이었지 이혼이 아니기 때문이다.
* 신 22: 22 -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마찬가지로 '수치되는 일'이 아내의 '간통에 대한 의심'과 동일시 될 수 없다. 아내가 간통한 사실을 밝히고 싶을 경우에는 저주를 내리게 하는 쓴물을 아내에게 마시게 하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 민 5: 11-31 –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의 아내가 탈선하여 남편에게 신의를 저버렸고 13 한 남자가 그 여자와 동침하였으나 그의 남편의 눈에 숨겨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그 여자의 더러워진 일에 증인도 없고 그가 잡히지도 아니하였어도, 14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 그 아내를 의심하였는데 그의 아내가 더럽혀졌거나 또는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 그 아내를 의심하였으나 그 아내가 더럽혀지지 아니하였든지 15 그의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리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헌물로 드리되, 그것에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라. 이는 의심의 소제요, 죄악을 기억나게 하는 기억의 소제라. 16 제사장은 그 여인을 가까이 오게 하여 여호와 앞에 세우고 17 토기에 거룩한 물을 담고, 성막 바닥의 티끌을 취하여 물에 넣고, 18 여인을 여호와 앞에 세우고, 그의 머리를 풀게 하고, 기억나게 하는 소제물. 곧 의심의 소제물을 그의 두 손에 두고 제사장은 저주가 되게 할 쓴 물을 자기 손에 들고 19 여인에게 맹세하게 하여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네 남편을 두고 탈선하여 다른 남자와 동침하여 더럽힌 일이 없으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쓴 물의 해독을 면하리라. 20 그러나 네가 네 남편을 두고 탈선하여 몸을더럽혀서 네 남편 아닌 사람과 동침하였으면, 21 (제사장이 그 여인에게 저주의 맹세를 하게 하고 그 여인에게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네 넓적다리가 마르고, 네 배가 부어서 네가 네 백성 중에 저줏거리, 맹셋거리가 되게 하실지라. 22 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물이 네 창자에 들어가서 네 배를 붓게 하고, 네 넓적다리를 마르게 하리라. 할 것이요. 여인은 아멘. 아멘. 할지니라. 23 제사장이 저주의 말을 두루마리에 써서 그 글자를 그 쓴 물에 빨아 넣고, 24 여인에게 그 저주가 되게 하는 쓴 물을 마시게 할지니,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그의 속에 들어 가서 쓰리라. 25 제사장이 먼저 그 여인의 손에서 의심의 소제물을 취하여 그 소제물을 여호와 앞에 흔들고 제단으로 가지고 가서 26 제사장은 그 소제물 중에서 한 움큼을 취하여 그 여자에게 기억나게 하는 소제물로 제단 위에 불사르고, 그 후에 여인에게 그 물을 마시게 할지라. 27 그 물을 마시게 한 후에 만일 여인이 몸을 더럽혀서 그 남편에게 범죄하였으면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그의 속에 들어가서 쓰게 되어 그의 배가 부으며 그의 넓적다리가 마르리니 그 여인이 그 백성 중에서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라. 28 그러나 여인이 더럽힌 일이 없고 정결하면 해를 받지 않고 임신하리라. 29 이는 의심의 법이니 아내가 그의 남편을 두고 탈선하여 더럽힌 때나 30 또는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자기의 아내를 의심할 때에 여인을 여호와 앞에 두고 제사장이 이 법대로 행할 것이라. 31 남편은 무죄할 것이요, 여인은 죄가 있으면 당하리라.
따라서 '수치 되는 일'은 아내의 순결 문제 등과 같은 상대 남편에게 큰 충격이 되는 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율법의 근본 취지를 고려한다면 '수치스러운 일'이란 남편이 아내에게 떳떳하게 이혼 증서를 써주고 이혼을 요구할 만한 충분하고도 객관적인 사유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힐렐학파는 '수치'의 의미를 확대 해석하여, 실제의 죄든 아니면 상상 속의 범죄이든지 간에 모든 종류의 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서 '지극히 사소한 잘못'까지도 포함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음식이 상한 일이라든지, 남편이 자기 아내보다 더 좋아하는 여인이 생겼다든지 또는 더 이상 애정이 생기지 않는 것 등의 부당한 일에 의해서 남편의 이혼 요구가 있는 경우 아내는 이혼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예수 앞에 제기된 물음은 신 24: 1에 대한 힐렐의 해석에 동의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였다.
만일 예수가 힐렐 학파의 주장을 따른다면 대적자들은 샴마이 학파의 견해를 지지하면서 '예수가 도덕적으로 엄격하지 않은 자유주의자'라고 공박할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엄격한 샴마이 학파의 편을 들면 그들은 '죄인들에 대한 예수 자신의 친절과 자비 행위는 바로 위선'이라고 선전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샴마이나 힐렐의 견해를 모두 따르지 않았는데, 이는 비록 엄격한 샴마이 학파라 할지라도 이미 이혼과 재혼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 19: 4. 사람을 지으신 이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
예수님은 창세기 2장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대답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만드셔서 결혼시키셨다.
결혼은 일부일처(一夫一妻)의 제도이었다.
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유대인들은 신 24: 1을 이혼의 합법적 근거로 생각하여 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創造)하셨는가를 환기시킴으로써 창조의 원리를 통해서 이혼의 절대 불가성과 아울러 결혼의 신성함과 영구성을 강조하시고자 하였다.
* 신 24: 1 -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 창 1: 27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본문의 '본래'라는 말은 남. 녀의 근본적인 창조 목적을 소개하고자 하는 강한 암시가 내포된 말이다.
실로 결혼의 법은 하나님의 섭리로서 하나님이 축복하신 순결하고 거룩한 사랑과 생명 유지의 법이었다.
* 고전 7: 25-38 – 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7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28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32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33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34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36 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37 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38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여호와께서는 이혼을 미워한다'고(말 2: 16) 선포한 말라기 선지자와 같이 예수는 창 1: 27의 말씀을 통해 남자와 여자는 결혼을 통해 한 몸이 되는 것임을 말씀하셨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와 똑같은 상태로 다시 맞추는 것인 동시에 창조 때부터 여자와 남자는 하나의 몸에서 잠시 분리되었으며, 적당한 때가 되면 결혼으로 다시 한 몸을 이루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