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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이라고 하면 한국인삼을 뜻하고 한국이라면 인삼을 상상할 만큼 인삼과 한국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아세아의 수천년 동안 신비한 영약으로 되어 있는 인삼이 바로 한국인삼인 것이다. 한국인삼의 전통적인 명성과 약효에 자극되어, 인삼의 원산지가 아닌 타지역에서도 인삼을 발견 또는 개발하려고 노력한 결과 미국인삼, 일본 주절인삼, 중국의 삼칠인삼, 심지어는 시베리아 인삼이라는 것까지 상품화 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삼의 학명인 Panax ginseng C.A. Meyer와는 종류가 다른 식물들이다.
즉 미국인삼은 Panax quinquefolium L., 죽절인삼은 Panax japonica, 삼칠인삼은 Panax notoginseng 등의 Panax속(屬)이기는 하지만, 딴 변종들이며 시베리아 인삼이라는 것은 Panax속(屬)도 아닌 오가피 나무 Eleytherococcus senticosus Maxim. 이라는 목본식물을 칭하고 있는 것이다. 오가피가 시베리아 지방에서 많이 산출되고 있으며, 인삼과 유의한 약효가 있다고 하여, 인삼도 아닌 별종의 식물을 시베리아 인삼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소련의 저명한 인삼학자인 Brekhman의 오가피에 관한 논문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음은 흥미로운 일이다. 「소련내에 오가피 자원이 풍부하여 아주 드물게 산출되는 인삼과는 비교가 아니된다.」이와 같은 기술로서 소련에서는 인삼이 아주 적게 산출되나는 것을 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또 옛날 기록에 의하면 인삼이 때로는 인삼이 아닌 딴 식물, 예컨데 Campanulaceae에 속하는 소삼 Adenophora tripylla D.C.Subsp. aperticampanulata Kitamura 또는 장삼 Adenophora remotiflora Miq. 등을 오용한 적도 있으리라는 것이 추측되고 있다. 약 1,500여년전의 중국의 의학서 명의부록 가운데 중국 산서성 태행산맥의 상당지방에서 산출되는 인삼이 최상품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당삼을 고증한 학설중에는 상당에서 산출되는 인삼이 즉 당삼이 ??과의 일종인 Codonopsis tangshen Oliv. 또는 Campanumoeapilosula Franch 일 것이라고 하는 것도 있다.
이상과 같은 고찰에 의하여 오늘날 진정한 인삼이라고 하면 한국인삼(고려인삼, 조선인삼)을 지칭하는 것이다. 한국인삼 Panax ginseng C.A. Meyer(Panax schinseng Nees)는 1843년에 인삼에 대하여 명명한 학명이며, Panax는 그리스 어원으로 모든 것을 뜻하는 넓은 의미의 Pan과 의약을 뜻하는 axos가 결합되어 만병통치약의 뜻이 된다. Ginseng은 인삼의 중국음이며 Schinseng도 인삼의 고명인 양삼의 중국음이다. 독일의 Nees von Esenbeck가 1833년에 그의 저서 "Icones Plantarum Medicinalium"에서 한국인삼을 Panax Sxhinseng var. coraiensis Nees라고 기술하였는데. 이것이 한국인삼에 대한 진짜 학명이지만 그보다 10년후에 발표된 Panax ginseng C.A. Meyer가 더 널리 알려져 인삼의 혁명으로 고정된 것이다. Panax shinseng var. coraiensis Nees가 선택되었더라면 인삼의 학명은 명실공히 한국인삼이라고 되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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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분포학적으로 인삼은 아세아 극동지방에서만 자생하는 식물이며, 북위 30도에서 48도 지역인 한국 (33.7-43.1), 중국(만주 43-47), 소련(극동의 연해주 40-48)의 지역에서만 천연인삼이 산출되고 있다. 한국이 소위 삼국시대라고 불리는 시대에 가장 북방에 고구려(B.C. 37-A.D.668)가 위치하고 있었는데, 고구려는 국방이 강대하여 영역이 요동 및 남부만주에까지 이르고 있었으며, 오늘날 Korea의 어원도 당시의 고구려에 어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인삼의 천연자생지라고 되어 있는 한반도, 중국의 요동과 남해주 및 소련의 연해주는 결국 당시의 고구려의 판도에 속하였으므로, 인삼을 일반적으로 고려인삼이라고 칭하는데도 이와 같은 역사가 이유인 것이다.
천연 야생식물이던 인삼이 언제부터 발견되고 의약으로 사용하게 되었는가를 고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천연물의 발견 및 이용은 유사이전부터 장구한 경험을 통하여 발견되었을 것이지만, 흔히는 서지학적으로 근거 있게 기술된 때부터를 역사라고 하고 있을 따름이다. 인삼이 강장제 또는 영약으로 약물사에 처음으로 발견된 것은 약 2,000여년전 전한시대(B.C.33-48)의 중국서적에서 비롯된다.
한국에서는 인삼약용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사적에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고 하여, 한국의 인삼약용의 역사가 중국의약의 한국도입과 때를 같이한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의 약물발달의 자주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사대적 사고방식이다, 풍부한 인삼삼출이 중국에서까지 알려진 고구려, 백제, 신라시대에 국내에서의 전혀 발견되지 않았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며, 이미 4,000 여년전 한국의 단군시대에 중국의 여느 약물서에도 기재가 없었던 초??를 약용으로 사용하였고(삼국유사), 강홍경(456-536)의 선농본초경에서는 11종의 고구려의 약물이 소개되어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인삼과 금속은 유독하여 정련되지 않을 것을 먹으면 죽지만, 고구려의 금은 잘 정련되어 먹을 수 있다고 하였다. 고대중국에서는 방사들이 불로장생약을 추구했으며 불로장생약은 수은, 금, 석약 등의 광물성인 것과 산야에서 자생하는 식물성인 것을 찾았다. 방사들은 이와 같이 불로장생의 선약을 찾기 위하여 동해상의 선경인 연차산, 방재산, 호주산의 삼신산을 목표로 하였다. 삼신산은 연동반도 또는 부해에 있는 산이라고 되어 있으며, 이 지역들이 모두 옛날의 고구려의 판도라고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녹유로 인삼은 한국인이 개발한 불로장생의 선약이라고 중국의 본초서에 높이 평가되고 있음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인삼의 식물학적 특성의 하나로는 재배적지에 관한 선택성이 강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기후나 토질 등 자연환경이 적합하지 않은 곳에서는 인삼을 적응시켜서 생육시키는 것이 아주 어렵다. 설사 생육을 한다고 하더라도 생산된 인삼의 형태, 품질, 약효에 현저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도 한국이 인삼생산의 최적지라고 인정되어, 세계적으로 한국인삼의 종주국으로 한국을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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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의 선교사 자류투신부가 인도 및 중국 포교의 총회계사찰에게 보낸 서찰을 보면, 1711년 4월 12일 북경에서, 우리들의 주님이 평안이 귀하에게 베풀어지기를, 중국 황제의 명에 의하여 우리들은 중국의 만주지방에, 강단 지역의 (고구려시대에는 만주 및 극동지방) 지도를 만들기 위하여 측량을 하고 있는데, 중국에서는 아주 귀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유럽에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인삼이라는 유명한 식물을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1709년 7월에 우리들은 조선왕국에서 불과 40리 거리의 칼카라는 촌락에 도착하였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이 근처 산에서 4뿌리의 인삼을 캐내어 광주리에 담아 우리에게 가져왔습니다. 그 중의 한 뿌리를 될 수 있는 데로 조밀하게 스케치한 것을 지금 보내 드리며, 그림의 설명은 이 갱지의 끝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의 의학대가들은 인삼의 효능에 관한 저서를 많이 내고 있으며, 고귀한 신분의 신분의 사람들이 약에는 거의 전부 인삼이 배합됩니다. 가격이 너무 비싸서 서민들은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인삼은 심신과로로 인한 피로에 대한 최고약품이며 담을 녹이고, 포?와 조막을 튼튼하게 하고, 구토를 멈추고, 위의 기능을 강화하여 식욕을 증진시키며, 상기되는 것을 해소시키며, 복부기능을 강화한다. 호흡이 약하고 빠른 것을 고치며, 정력을 강화하고 혈액 속에 림파액을 만들며, 현담에도 효능이 있고, 노인의 수명을 연장시킨다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 인삼이 이와 같이 효능이 없는 것이라면, 중국인이나 한국인이 인삼 뿌리를 그렇게까지 높이 평가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더욱더 건강하게 되기 위하여 인삼을 복용합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약학을 아는 유럽인들의 수중에 인삼이 입수되어 실험을 하고 화학적 방법으로 여러가지 성능을 조사하여 관찰로 병에 대하여 임상실험 등을 한다면 인삼이 훌륭한 약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특림없는 사실은 인삼이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몸을 덥히며, 소화기능을 도와서 원기를 현저하게 증가시켜 준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인삼뿌리를 스케치한 후에 뿌리의 절반을 날것으로 씹어 먹고 1시간 후에 맥을 짚어보니, 파맥이 훨씬 강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식욕이 증진되고 전보다 훨씨 원기가 좋아졌습니다. 노동능력도 전에 없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4일 후 저는 일에 지칠대로 지쳐서 말잔등에 올라앉아 있는 것도 간신히 지탱할 정도로 된 것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태를 눈치챈 관원 한 사람이 저에게 인삼한 뿌리를 주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그 절반을 씹어 먹었는데 1시간 후 에는 피로가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그 경험이 있은 후에는 인삼을 자주 먹었습니다. 언제나 같은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또 뿌리 뿐만 아니라 신선한 잎을 씹어도 대체로 같은 효과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강단인이 하는 것처럼 약 대신 인삼약을 달여 먹었습니다. 인삼약이 어떤 차보다 더 좋다고 할 수 있으며, 빛깔도 좋고 두 번, 세 번 마시면 향기와 맛도 아주 좋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삼이 만약 세계 딴 곳에서 생산 될 수 있다면 어디보다 먼저 캐나다 일 것으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캐나다에 거주한 적이 있는 사람의 보고에 의하면 캐나다의 산림이나 산악이 강단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강단인들이 인삼을 오르호다(Oehoda), 즉 식물중에서 최고인 것이라고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마르티니 신부가 중국서적을 인용하여 인삼이 중국에서도 산출된다고 한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중국책에는 인삼이 북경성의 영평부의 산중에서도 산출된다고 하였으나, 인삼이 강단에서 중국으로 들어올 때 우선 도착되는 곳이 영평부이기 때문에 잘못 착각한 것입니다. 신부님이여, 저희가 중국에서 이렇듯 귀한 물건으로 되어 있는 인삼 이야기를 말씀 드린 것이 귀하를 즐겁게 하는 동시에, 귀하가 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함으로써 그들을 즐겁게 하여 주심을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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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fiteau는 채집한 표본을 본국에 보내어 식물학자로 하여금 감정케 하여, 그것이 五加科(Aralianceae)에 속하는 Panax quinquefolium(미국인삼)임이 밝혀졋다. 이 발견이 계기가 되어 캐나다 및 북미에 인삼 붐을 불러일으켜 1715년부터 중국에 수출하여 막대한 수입을 획득하는 시초가 되었으며, 그로부터 지금까지 캐나다 및 북미에 있어서 인삼이 경제농작물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동양의 5,000년 동안 전통약물이 18세기에 이르러 서구인의 관심의 대상이 되게 되었다. 그러나 동양의 인삼숭상을 비과학적인 미신이라고 하여, 결제작물로서의 관심은 지니면서도 만능약으로서의 과학적 검토를 중요시하지 않은 것은, 현대과학이 저지른 중대한 과오인 것이다. 캐나다와 북미의 워주민인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 사이에서도 인삼을 강장불로약으로 사용해 온 미간전통이 있는 사실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전혀 기대되는 효과가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인삼이 수 천년간 아세아에서 금은보배보다도 비싸게 존중되어 왔던 것인가 하는 지극히 자명한 이론조차 무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 방법에 의하여 규명이 되지 않았다 하여 엄연한 사실을 비과학적이라고 할 수는 없고, 아직도 과학으로 증명하지 못한 것에 불과하다. 진리는 언제인가는 인정되기 마련이어서 미국에서도 점차 인삼의 효능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예컨데 오하이오주 컬럼버스시의 A. R. harding, M.D. 은 인삼투여가 어떤 딴 약물보다도 질병치료에 유효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의업을 집어치우고, 인삼재배와 인삼관계 서적 간행에 여생을 바친 사람조차 나타나게 되었다. 그의 저서로는 "Ginsen and other Medicinal Plants(1908년)가 있다.
점차 인삼의 진가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학자들이 증가되어가기는 하였으나, 지지부진하여 정확한 내용에 정평이 있는 "Encyclopedia Britanica"의 1969년판에서도 인삼이 경제작물임을 정확히 시술하면서 그 약효에 이르러서는, "인삼에는 약, 위장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하는 증거가 없다."라는 부정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약전(United States Pharmacopeia)에는 1840년부터 1880년까지 인삼이 공정약품으로 규제되어 있었으나, 그 후 탈락이 되어 현재는 U.S. Department of Agriculture, Bureau of Plant Industry의 Bulletin No. 89에 unofficial drug plants(p. 51)로 이름이 나와 있을 따름이다.
약의 개념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특정한 약리작용이 나타나는 것만으로 기준을 삼는다면, 전신의 신체기능을 정상화시킴으로써 강장제 역할을 하는 약물은 인정될 수 없으리라는 우려를 표명한 미국의 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약의 개념의 커다란 전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이 Louis Vening의 『The Ginseng Books』와 Dr.E.Gray Dimond의 『More then Herbs and Acupuncture』등 저서에서도 기술되어 있듯이, 현대 의학이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동양의 전통적 약물비법에 대하여 관용적인 관심과 이해를 지니기 시작한 것은 인삼의 신비를 규명하는 데 있어서 커다란 촉진제가 되고 있다.
최근 20여 년간에 이해와 관심이 드디어 인삼을 과학화하는 실마리가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소련과 일본의 연구팀이 각각 중심이 되어 인삼의 성분화학이 급속히 발전되었으며, 드디어 인삼의 주요성분이 "dammarane glycoside계열의 사포닌들이라는 것이 거의 확정되었다.
인삼의 약리작용에 대해서는 1958년에 I.Brekhman과 I.V.Dardymov 양학자가 지금까지 약리학설을 근거로부터 혁신하는 놀라운 논문 "New Substances of Plant Orign which incerase Non-Specific Resistance"를 발표하였다.
동양에서 옛날부터 계승되어 내려오는 강장제 처방을 연구하여, 그 조성중 강장작용을 나타내는 약초를 통계 낸 결과, 몇 종류의 강장 약초가 포함되었으며, 그 중에서 인삼이 주동역활을 하고 있음을 밝혀 내었다.
인삼의 약리작용이 비특유성 저항력 증대라는 것을 규명하는 동시에 이와 같은 저항력 증대와 생체의 방어력 강화릐 본능을 adaptogem이라는 개념으로 나타냈으며, adaptogem이 지녀야 할 조건을 Brekhman은 다음의 세가지로 요약하였다.
1. Adaptogen이란 것은 비독성이며, 장기가 갖는 생리기능 저하를 최소로 나타내야 함.
2. Adaptogen작용이란 것은 비국부적이며, 비특이적이어야 함. 즉, 그것은 광범위에 걸친 물리적, 생물학적 이상에 대한 신체저항성을 증가시킴
3. Adaptogen이란 것은 정상화 효과를 갖는 조절계이어야 함.
비특이성 저항력 증대라는 이 새로운 개념은 다분이 동양의학적인 강장약의 개념과는 상통되어, 인삼을 약중의 약으로 숭상하는 동양의 사고방식이 일단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Adaptogen의 증명을 정신적인 작업능력 향상이라든가, 환경변화에 대한 저항력 증대로도 측정할 수 있겠지만, 그와 같은 작용의 본태를 좀더 분자약리학자 수준에서 규명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견해아래 세포의 단백합성 능력의 증대, 인삼 성분의 체내대사의 추적 등도 도시되고 있다. 또 인삼의 전약효를 사포닌계 성분에만 존재하지 않고, 새로운 각도에서의 유효성분 탐색도 진행되어, 저항성 성분 또는 항산화성성분 등도 포함되고 있으므로, 인삼의 현대 약물학적 연구는 이제부터 본격화 될 것이 기대된다.
인삼의 종주국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에서도 인삼과학의 창달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국제적인 인삼학회인 고려인삼학회의 활동, 인삼에 대한 제반사업 및 교역 등을 행정적으로 관리하는 전매청과 각종인삼제품에 대한 개발 및 성분분석, 약리작용과 경작에 대한 각종 연구를 광범위하게 배당하는 고려인삼연구회에서는 삼연구에 대한 각종지수 및 국제인삼학술대회 등을 개회하여 인삼의 과학화에 노력하고 있다. 한국이 인삼의 종주국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C.S.Ogolevee가 쓴 "Cyclopedia Dictionary of Medical Botany" 가운데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소련이 한반도로부터 120,000,000 달러에 한국인삼을 구입하여 인삼연구를 비밀리에 시작하였다는 구절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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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의 약리 작용이 최근 20년간의 연구에 의하여 밝혀져감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인삼 붐이 일어나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한국인삼을 원료로 하는 여러가지 노화 방지약이 개발되고 있고, FDA에서도 천연보건식품으로서의 인삼이 크게 보급되어 가고 있다.
쉽사리 입수 할 수 있는 몇몇 미국내의 인삼개발 해설서를 보아도, 인삼에 대한 찬사가 대단한 것으로 보아 가히 인삼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인삼을 표현한 미가어구는 대단히 많으며, 인삼의 약효를 나타내는 표현도 어휘가 모자라서 표현어를 못 만들어 내는 감이 있을 정도로 다양하다.
인삼의 진정한 약물학적 가치를 밝히는 것이 어느 나라나 보건당국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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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인 중국 본초서에 기록되어 있는 인삼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19세기말에 제정 러시하의 북경 주재 영사관의 의원이던 E.Bretschneider(MD.)가 중국 본초학을 서지학적으로 연구하여, 1895년에 간행한 "Botanicon Sinium"의 제 3권인 "고대 중국 본초 약물서"(Botanical Investigations into the Materia Medica of the Ancient Chinese)에 기재되어 있는 인삼 개발 문헌중 중요한 것들을 인용하면 Pen King(본경신농본초경), Pen Lu(각의 별곡), Wu Pu(오씨본초, 오진)가ㅣ있고, 필요한 부분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더울 좋을 것으로 생가된다. Li Sun(이순;해약본초,A.D. 8): 신라국에서 공물로 바치는 인삼은 사람과 비슷하여 수족이 있다. 길이는 약 30㎝ 정도 이상이며 압착하여 나무 종자 격자에 넣어서 붉은 비단으로 싸서 보관한다. 중국 소주의 인삼은 소형이며 아무 가치도 없다.
Li Shi-Chen(이시진): 고대 산동지방이라고 한 것은 지금의 산동 산서성을 말하는 것이다.
인삼이 자생하는 국가의 국민들은 인삼은 재앙으로 생가하였다. 왜냐하면, 인삼을 왕에게 아무런 보상도 없이 현납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용되고 있던 인삼은 만주지방에서 도입되었다. 인삼 생산국으로 알려진 삼국은 고구려, 백제, 신라를 말하며 고려를 칭하는 것이다. 고려인삼이 대량 중국으로 수출되었다. 고려 사람들은 채소와 같이 재배되었다. 이와 같은 중국본초서의 고전을 통하여 볼 때 한국인삼은 이미 옛날에 인삼 재배법이 개발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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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에 미국의 Walter H. Lewism와 Memory P.F. Elvin-Lewis양인이 공저로 출판한 "Medical Botany-Plants Affecting Man's Health"라는 책에 만병통치약(Panaces)이라는 주목할 만한 장이 있다. 과학적 약물학 저서로서는 이와 같은 장을 설정한 것은 아마 유사이래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장의 첫머리를 만고, 인삼이라 하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Panax속이 없었으면, 본장이 성립될 수 없는 것이었다. 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인삼이 있음으로 해서 만병통치약(Panaceas)이라는 장을 신설할 수 있었고, 인삼에 비하면 딴 약장들은 모두 무색할 정도이며, 인삼은 건강한 사람이 더욱 건강하기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약이라고 하고 있다. 또한 각종질병에 대해서도 효과가 있으며, 강정작용도 있다는 것이 한의학 약물서에 기재되어 있다. 인삼의 약물작용을 보다 더 이해하기 위해서, 본초약물학의 강품약 개념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약리학서인 "신농본초경"에 365종의 약이 재배되어 있는데, 이를 상품약 120종, 중품약 120종, 하품약 125종으로 구분하고 있다. 상품약은 "주양명, 무도그 다복불상인"이고 중품약은 "주양성, 유독무독재배기이고 하품약으로 추치통, 다독, 불가구복"이라고 되어있다. 인삼은 상품약의 첫 번째로 되어있다. 상품약은 수명을 연장시키며 전연 무독하며, 아무리 오래 많이 복용하여도 인체에 해가 없다는 것이다.
Adapotogen설에서 인삼의 약효를 논한 것이 상품명의 정의와 잘 합치됨을 알 수 있다. 종래의 상품약의 존재 가능성을 의심하던 현대 약물학에 실증을 제시한 셈이 된다. 이와 같은 약의 상품분류의 철학에 의하면, 현대의 화학적 약물들은 모두 치통약이며 독성이 있기 때문에, 약효가 보호되는 약이므로 감용 또는 과용하면 위험한 부작용이 나타난다. 인삼을 약이라고 보지 않고 천연보건 식품의 범위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상품약의 보아 지극히 지당할 것이다. 치료보다도 예방을 중시하고 전신적인 기능조정에 의하여 생체의 정상화를 이룩함으로써 무병, 불로장수 하겠다는 동양적인 약물의 이상이 인삼에서 구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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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의 약효가 신비시 되어 인삼의 수요가 증대함에 따라 야생인 천연삼의 채집만으로는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어서 인공재배가 시작되었으리라는 것은 쉽사리 추축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당시에 『石田 春而 種人蔘』이라는 구절이 있다고 하여, 이미 그 때 인삼의 재배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설도 있으나, 이 시의 출처도 불분명하여 무어라 단언할 수 없다.
송대의 동파가 라유에 인삼을 이식하였다는 자연시, 송말의 사간의 시에 이삼치북지"의 구절 등도 있으나, 그 삼이 과연 무슨 종류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이시형의 "본초세목"(1552년에 집필에 착수하여 1578년에 탈고, 1596년 그의 아들 이건원이 간행을 위하여 원고를 명나라 (황제에 바친다)에 인삼재배가 한국에서 실시되고 있음을 기술한 대목이 있다.
이미 이시형이 본초강목을 기술할 당시에는 한국에서 인삼재배가 실시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이 한국에서 구해간 이삼 종자로 인삼재배에 성공한 것이 1727-1728년경인데, 그것이 한국보다 앞선 재배의 기술이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김택영의 증신문고비고라든가 중경지 등 서간에 인삼재배의 기원을, 천수백년전에 전라남도 동복에서 야생 인삼종자로부터 시작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민간전통적 전설, 기담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확실치 않다. 조선조 선조시대(1567~1608)의 재배기록을 근거로 삼을 수도 있지만, 정종실록에 의거하여 연조왕대(1725~1776)dp 내려와서야 재배가 시작 되었다고 보는 견해는 사실과는 다르다. 한국이 약 2천년동안 중국에 인삼을 공급하여온 사실을 생각 할 때, 그와 같은 다량의 공급을 위하여서는 야생삼만에 의존할 수 없고, 재배삼도 발견하였으리라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중국의 인삼재배는 청대에 와서 수요가 증대함에 반하여 산출수량이 감소됨에 따라, 산에 종자를 인공적으로 파종하여 이식을 시켰을 것으로 추측되나, 정확한 연대기록을 쁹을 수 없다. 그러나 1726년에 일본의 장기에 거주하던 청국인 상인 유개길이 막부에 "인삼보"라는 서면에 인삼재배법이 꽤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그 당시 이미 만주에는 재배법이 발전되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청대 후기의 인삼재배는 건강의 중기이후 말년까지는 산양삼을 주로 하였고 가경, 도광 연대에는 점차 규모가 커져 농업화 되기 시작하여 동치, 광저 년간에는 더욱 자본이 증대되어 사실화하였다고 한다. 일본은 인삼의 자생이 전혀 없던 나라이며, "정희식"이라는 고서에 각지에 인삼이 생겨 서양이라고 기록 된 것이 있으나, 이는 인삼이 아니고 결갱식물 소삼을 인삼으로 오인하였던 것일 것이라고 일본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인삼을 한국에서 전래되었을 것으로 고증되고 있다. 백제의 의박사 왕유릉사와 채약사 시덕번양풍, 고덕정유사가 일본왕의 초청으로 554년에 도일하였을 때 인삼건재도 도입되지 않았나 추측되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742년에 한국으로부터 인삼 30근을 받았다는 기록이 일본에서의 인삼도입의 최고기록이라고 되어 있다. 점차 인삼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일본이 드디어 강호막부시대에 이르러, 한국에서 인삼의 생근과 종자를 얻어 1727-1728년 전촌감수에 명하여 밀광에서 시작케 하여 성공한 것이 재배의 시초라고 한다.
그러나 토질, 기상 등의 천연 조건과 한국인삼에 대한 뿌리깊은 숭상의식 및 한의학의 쇄퇴 등 사회여건의 변화에 따라 일시 인삼재배가 쇄퇴하였으나, 근래 인삼의 세계적 붐에 따라 재배가 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인삼이 한국에서 구해 간 인삼종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여, 일본인삼을 지금도 어종인삼이라고 부른다. 시베리아 연해주에서도 인삼재배를, 미국에서도 일부 지역에서 인삼을 재배하고 있으므로, 결국 현재 세계적으로 인삼재배는 한국, 중국(만주지역), 일본, 소련(연해주) 및 미국에서 하고 있으며, 이 중에서 역시 주산지는 한국이라고 인정되고 있다. 한국인 인삼재배, 인삼상품의 구조 및 수출에 있어, 국가에서 전매청을 통하여 행정적으로 규제함으로써 한국인삼의 품질특성에 주력하고 있으며, 인삼에 대하여 국가규제를 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되며, 그렇게 때문에 한국인삼이 국가에 의하여 보증되고 있는 것이다.
홍삼은 전매품으로 되어 있어 전적으로 전매청에서 제조 관리되고 있다. 한국의 의약품의 질을 규정하는 한국약전에는 백삼과 홍삼이 재배되어 있다. 재배인삼은 6년근을 약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성숙근의 기준으로 삼고 있으나 야생천연삼은 년수가 많을수록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인삼재배가 산업화되기 이전에는 인삼은 오로지 야생 인삼에 의해서 공급되었으며, 한반도는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전지역의 산임중에서 산출된다. 현재도 옛날에 비해서 드물기는 하지만, 인삼이 때때로 수집되는데 재배인삼에 비할 수 없을 정도의 고가이지만 희소가치 때문인지, 야생천연품에 대한 신뢰성 때문인지, 또는 야생삼이 재배삼에 비하여 약효가 크기 때문인지 아직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못하고 있어, 대체로 인정되는 과학적 견해는 약효의 차이보다도 희소성과 수 없을 정도의 고가이지만 희소가치 때문인지 아직 과학적으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대체로 인정되는 과학적 견해는 약효의 차이보다도 희소성과 천연품에 대한 신앙심이 평가의 주요 인자가 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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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의 약용역사를 정확하게 따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원시적 의약의 기원이 수십 만 년의 발원한 고대로부터 시작되었으리라고 추정된다. 모든 의약이 신농씨의 전통처럼 신농이 모든 식물을 맛으로 감별하여 제정한 것이 아니라, 동물의 의약본능에 의하여 생활주변의 천연물 가운데서 자기 질병에 적합한 약물을 찾게 되었을 것이다. 남미의 원주민이 말라리아 약으로 규방피를 민간약으로 사용해 내려온 것처럼, 인삼도 고대 산누에 인간이 야생식물을 찾아 먹다가, 인삼도 처음에는 구휼식물로 탐색되었다가 점차 약용으로 전화되었을 것이 상상된다. 인삼의 야생지의 하나였던 중국의 사서성 태행산맥은 명대초에 이미 감소 때문에 단절되고, 한반도와 만주는 지금도 약관의 자연생 인삼을 산출하지만, 각기 산지는 고대부터 주민의 이동이 무상하여 전해 내려오는 역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므로 인삼의 약용역사라고 하면, 부득이 인삼약용 기록이 문자화된 때부터 따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인삼이라는 명칭이 나타난 것은 2,000년 전의 전한의 후기라고 하지만, 약용으로 사용한 처방이나 설례가 없기 때문에 과연 오늘날의 인삼과 동일한 것인지는 고증할 수 없다. 그러나 서한의 장중경의 "복한론"은 지금 보아도 완벽한 체제를 갖춘 내과의약서이며, 기록되어 있는 처방 113개중 인삼배합처방이 21방이 있는바, 그 인삼은 오늘날의 Panax ginseng이 틀림없을 것으로 고증된다. 왜냐하면 Panax ginseng을 사용한 것이 틀림없는 후세의 의방 가운데 인삼의 약효기재가 "복한론"의 그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후세로 옴에 따라 점차 인삼배합의 수가 증가하여 가고, 그에 따라 인삼의 수요도 증가하여 중국의 인삼은 거의 절멸되고, 한국으로 하여금 인삼을 공급케 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명대의 대표적인 의서인 병악전서에 수록되어 있는 처방 2,218개중 인삼 배합처방이 약 1/4인 509개의 처방에 달하니 인삼의 수요를 감히 짐작할 수 있다. 처방을 병별로 분류하고 각 질병에 대한 인삼 배합처방수를 표시하면 아래와 같다. 인삼의 배합정도가 가장 많은 적응병을 정도의 크기 순서대로 배열하면 보제, 소아제, 병제, 부인제, 열제, 외과제, 화제, 한제, 인제, 고제 공제의 순서로 되어 있어, 역시 보처제로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공제로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한방처방서인 방약합편에 개재되어 있는 467개의 처방을 통계적으로 연구한 홍문화의 논문에 의하면, 인삼의 출현정도가 132222개 처방이며 "방약합편"에서 사용되는 약물 293종 중 감초, 당귀, 다음으로 제 5위를 차지하고 있다. 방약합편의 처방은 상통, 중통, 하통으로 3대별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며, 상통 처방은 보제이며 무독하여 다복, 장복할 수 있는 처방이고, 중통 처방은 화제이며 사람에 따라 무독, 유독이 다르며 치료제와 강장제를 겸한 것이고 하통 처방은 공제이며 치통을 주로 하고 독하여, 장복하여서는 아니되는 처방이라고 되어 있다. 인삼처방수 또 467개의 처방을 적응정도별로 분류하는, 소위 방제분류를 실시하여, 가장 인삼의 출현정도가 많은 방제의 성능이 인삼의 주효과가 되고, 기타의 출현방제는 부효과가 되리라는 정준상관분석(Canonical analysis)의 발상을 적용한 결과다. 인삼이 상통처방 및 보양제 처방에서 가장 자주 배합되는 약이라는 것과, 하통 처방에 인삼배합정도수가 적은 것은 인삼이 어느 특정질병의 치료제는 아님이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인삼에 대한 이와 같은 전통적 인식이 약물학적 지견과 잘 일치된다는 것은, 인삼이 Panacea 라는 동양인의 장구한 믿음이 결코 맹신이나 미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미국의 A.R. Harding이 1908년에 간행한 "Ginseng and other medicinal Plants" 가운데서 당시의 미국사람들이 인삼의 견해를 알아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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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은 채집한 채로의 생근을 약생인 것은 산삼, 재배품인 것은 수삼이라고 하지만, 보존성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용될 따름이고 보통은 가공하여 백삼(표피 음지), 피촌백삼, 홍삼, 곡삼, 당삼, 미산삼의 여러가지 제품을 만들고, 또 인삼을 원료로 하여 차제, 주제, 정제, 액제, 엑기스제, 외용제 등의 각종 2차적 제품이 개발되고 있다. 인삼을 백삼과 홍삼으로 나누는 것을, 인삼에 대하여 생소한 외국인주에는 인삼의 식물학적 종류에 백색종과 홍색종이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으나, 사실은 인삼의 가공법에 따라 제품이 백삼과 홍삼으로 나누어질 따름이다. 백삼은 채집한 인삼근을 깨끗이 수세한 후 표피를 제거 도는 그대로 둔채 일광에 건조시켜 만든 것이고, 건조시킬 때 근의 동체하부를 굴곡 시켜서 고정시킨 제품을 곡삼이라고 한다. 홍삼은 백삼에 비하여 가격이 월등하게 고가이며, 중국에서는 인삼이라고 하면 주로 홍삼을 지칭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홍삼과 백삼은 가공정도의 차이로 선당 성분조성, 약효성 및 보존성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지만, 보존성 이외에는 아직도 성분이나 약효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기대되고 있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인삼 종주국으로 알려져 있는 이유의 하나로 이와 같은 인삼의 수제법(가공법)이 옛날부터 크게 발달되어 온 것을 들 수 있다. 본초강목의 인삼집해를 보면, "신라 소공자 유수족장 여인형 장척여이핵목거정"이라는 기재가 있으며, 이미 신라 때부터 우리의 인삼제품이 상품가치있게 가공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홍삼이라는 문자가 정종실록(A.D.21)기제에 처음 나왔다 하여, 그 무렵을 홍삼수제법 개발의 때라고 고증함은 단견이며, 송인 서극이 정사수행원으로 1123년(고려 인종원년)에 고려에 다년간 후 견문을 기록한 선화봉사 고려서경에 인삼을 기록한 대목으로 보면, 고려 때에 벌써 홍삼이 개발되어 있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본초강목에도 "고려삼근비"라는 표현이 있는 것과도 부합된다. 청대에 중국의 인삼에도 홍숙, 홍당, 홍근 등의 기록이 있음으로 미루어 인삼의 자숙수제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문헌에도 인삼을 삶아 먹는 전통, 기담 등이 기록되어 있응 것으로 보아, 인삼을 삶아 먹는 관습이 있었던 모양이고, 그것은 손아삼이니 동삼이니 하여 인삼의 형태를 사람의 형상으로 보고 인체를 삶는다는 사고 방식에서 출발된 것으로 보인다. 인삼근의 형태가 사람의 동체 및 사지를 닮았다 하여 인삼의 인자가 생겼으며, 형태가 사람 모양에 가까울수록 높이 평가되는 습관이었고, 형상에도 음양이 있어, 여성 모양이니 남아 모양이니를 구별하고, 인삼근이 지중에 있을 때 야반에 미음성을 낸다느니, 그 근처에 야음주에도 미관이 있다는 등의 미신이 있는 것이 마치 서양의 Mandragora의 미신과 유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도 인삼 채집자가 산삼을 탐색할 때에 기도, 주문 등을 외고 꿈같은 것을 신앙하는 풍속이 있는 것은 과학시대에 우스운 미신이요, 낡아 빠진 의식 도는 타부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인삼의 약효를 그 만큼 신성시 하였다는 증거도 될 것이다. 인삼은 주로 근을 약용으로 사용하나, 두부에 해당되는 여두는 특수한 목적 이외에는 제거하고 사용하지 않는다. 잎, 꽃등도 차제, 속제 등으로 이용된다. 인삼의 구체적인 약효로서 전승 요법에 다음과 같은 것을 들고 있다.
1)원기회복, 2)해열, 3)항결핵작용, 4)혈압조정, 5)소화항, 6)신경강장제, 7)건위 및지사, 8)간기능강화, 9)이뇨작용, 10)지혈작용, 11)강심작용, 12)종양치료작용 등이며, 현대약리학적 지견과도 일치된다. |
첫댓글 인삼 하나면 우리 몸에 딱인디...우리것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