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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교회 시대의 강해(8부)-빌라델비아 교회시대.
*소 개*
월리엄 매리언 브래넘 형제는 1960년 12월 4일부터 11일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요한계시록1~3장까지
일곱 교회 시대에 관한 메시지를 연속으로 설교했는데, 이 지면을 통해서 시리즈로 소개해 드리고자합니다.
윌리엄 매리언 브래넘 형제님의 놀라운 사역은 말라기4장:5~6절, 누가복음17장:30절, 계시록10장:7절, 등등,
성경에 예언된 말씀에 대한 성령께서 입증하신 것이었습니다. 그의 세계적인 사역은 다른 여러 성경 예언들이
절정에 달한 시기에 이루어졌으며 이 마지막 때에 성령께서 그의 사역을 지속적으로 확증시켜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그의 사역은 신부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시켜 휴거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로 이 메시지를 읽는 동안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심비(마음 판=고후3:3)에 쓰이기를
우리는 기도합니다. 정확하면서 편집하지 않은 번역을 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하였지만, 영어 오디오 파일들이
브래넘 형제님이 하신 설교를 있는 그대로 전해 줄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설교한 1,100여개의 설교들은
여러 언어로 통역과 번역이 되어 있으며, www.messagehub.info 에서 다운로드 받고 인쇄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메시지 책자들을 보고자 하시면 한국성서교회 (biblechurch.kr) 를 방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설교 책자에 대해서 문의하실 일이 있으신 분들은 이 메일 주소는 biblechurch77@gmail.com 입니다.
이곳에서 인용된 성경은 바이블 애플 KJV 흠정역이며
메시지 책자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도록
편집하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계시록3:7.빌라델비아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며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니 그가 열면 아무도 닫지 못하고 그가 닫으면 아무도 열지 못하느니라. 8.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그것을 닫지 못하리라. 네가 적은 힘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 9.보라,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 곧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있는데, 보라, 내가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경배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 줄을 알게 하리라.
10.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리니 그것은 곧 앞으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시간이라. 11.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그것을 굳게 붙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이기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다시는
나가지 아니하리라. 또 내가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고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13.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빌라델비아 성
빌라델비아는 사데에서 남동쪽으로 75마일쯤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리디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였고 유명한 포도 재배 지역인 여러 산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 곳의 주화에는 박카스와 박칸테 여제사장의 머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성의 인구는 유대인들과 유대 출신의 그리스도인들과 이교에서 개종한 자들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이 성은 잦은 지진으로 고통을 당했지만 계시록의 일곱 도시 중 가장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사실 이 성은 아직도 터어키식 이름인 하나님의 도시라는 뜻의 알라세히르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동전의 각인은 이 성의 신이 박카스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카스는 니누스나 니므롯과 똑같은 인물입니다.
대부분은 술마시고 흥청대고 술취한 박카스를 떠올리지만 박카스는 “애도를 받는자” 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깨닫게 해줍니까? 여기 한 쪽에는 남신, 다른 한 쪽에는 여제사장 또는 여 선지자가
새겨진 동전이 있습니다. 이제 동전을 돌려보십시오. 동전의 어느 면이 땅에 떨어지든지 상관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같은 동전이니까요. 그것은 로마식 예수와 마리아 숭배 종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로마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렸습니다. 그 큰 음녀만 있는게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그 이유는 그녀가 음행으로 어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딸들은 이제 같은 각인을 가진 동전들입니다.
거기에 동전 한 쪽에는 예수에 대한 경배를, 다른 한 쪽에는 그들의 여제사장 또는 여선지자도 새겨놓았습니다.
그녀는 신조들과 독단과 교의들을 써서 자기만이 참 빛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구원을 위해서 그것을 팝니다.
이 시대가 그 동전으로 특정지워진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미와 딸들은 다 하늘가는 길을 사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과 피가 아닌 것이 매입 가격입니다.
돈과 성령이 아닌 것이 그들을 앞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이 세상의 신이(재물) 그들을 눈멀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망으로 그들이 다루는 행위는 곧 끝날텐데 이 시대는 성령이, 보라, 내가 속히 임하리라. 라고 외치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시옵소서, 주 예수님, 속히 오시옵소서!
시 대
빌라델비아 교회 시대는 1750년에서 1906년 경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 시대는, 그 도시의 이름이 뜻하는 것 때문에,
형제 우애의 시대라고 불려왔는데, 빌라델비아는 형제들의 사랑 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사 자
이 시대의 사자는 의심할 여지 없이 요한 웨슬리였습니다.
웨슬리는 1703년 6월 17일 엡워쓰에서 태어났는데 사무엘과 수잔나 웨슬리의 열 아홉 자녀 중 한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부친은 영국 교회에서 목사로 시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마음을 종교적 방향으로 돌린 것은
부친의 신학보다는 모친의 모범적인 삶으로 인해서 였던 것 같습니다. 요한은 총명한 학자였습니다.
그와 찰스가 교리를 표준으로 삼기보다는 체험적으로 진리를 실천함을 기초로 삼으며 영적으로 예배드리는데
노력하는 한 무리의 일원이 되었던 것은 요한이 옥스포드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환자들과 죄수들을 방문하는 것들 같은 행위에 대한 영적인 안내서를 썼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규칙쟁이(Methodist, 감리교인)와 기타 냉소적인 뜻을 담은 직함들로 불리웠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세상 사람들에게 종교가 필요하다는 비젼(Vision)에 쑥 빠져들어 인디언들을 위해 선교사로 미국의
조지아주로 갔습니다. 돌아오는 도중에 그는 그 배의 승객들 중 많은 사람들이 모라비아교인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든 온유하고 평화스럽고 용감한 것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조지아주에서의 그의 수고는 자기를 부인하고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나는 인디언
들을 회심시키려고 미국에 갔었다. 그러나 아! 누가 나를 회심시킬 것인가? 하고 외치며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런던에 돌아온 그는 다시 모라비아교인들을 만났습니다. 그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었던 사람은 피터 뵐러였습니다.
그리고 웨슬리는 진실로 거듭났고, 그것은 요한처럼 영적인 사람이 전에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했었다고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요한의 형제 찰스에게 당혹감과 커다란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후 오래지 않아 찰스 역시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웨슬리는 그가 이전에 설 수 있었던 런던에 있는 여러 설교단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를 쫓아냈습니다. 이때 그의 오래된 친구인 죠지 휫필드가 그를 힘껏 밀어 주었습니다.
휫필드는 요한을 초청해 수천명의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있던 야외에서 설교하도록 도왔습니다.
처음에 웨슬리는 건물이 아닌 야외에서 설교해야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군중들과 성령의 능력 안에서 복음이 역사하는 것을 보자 전심을 다해 열렬히 설교했습니다.
그 역사는 곧 요한이 수많은 평신도들을 말씀을 전하도록 내보내기 시작할 정도로까지 유세를 떨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성령이 사람들을 권능으로 세워 거의 밤새도록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게 했었던, 오순절의 역사와 맞먹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요한의 사역에는 극심한 반대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들은 강력하게 표명되었고 종종 뉘우침의 영이 크게 사람들을 사로잡아 힘이 빠지게 하고 바닥에 엎드려
자기들의 죄를 심히 괴로워하면서 울게 만들곤 했습니다. 웨슬리는 매우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루 여섯 시간 정도 수면을 취했고 사역 기간 중 거의 매일 다섯 시에 설교를 시작하기 위해 정확하게 시간을 지켰고
하루에 네 번 정도까지 설교를 해 일 년에 평균 800개 이상의 설교를 하는 셈이었습니다.
웨슬리는 복음을 가깝고 먼 곳에 전달했던 그의 순회 사역자들처럼 수천 수천 마일을 여행했습니다.
실제로 웨슬리는 말을 타고 연평균 4,500마일을 여행했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자였고 큰 믿음으로 아픈 자들을 위해서 기도했고 놀라운 결과들을 낳게 했습니다.
그의 집회 중 많은 곳에서는 성령의 은사들이 표명되었습니다.
웨슬리는 조직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동료들은 연합회(United Society)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형식을 가지고 있는 경건의 능력을 구하는,
함께 기도하고, 권면의 말씀을 받고, 구원을 이루는데 서로 돕기 위해서 서로를 사랑으로 보살피기 위해서 연합된,
사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가입하려는 사람들의 한 가지 조건은 그들이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고자 하며,
자기들의 죄에서 구원을 받고자 하는 소원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그들도 자기들의 영혼의 유익을 위한 자기 훈련에 사용되는 엄격한 규칙들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자기가 죽고 나면 그 운동이 조직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령이 그들을 죽은 형체로 남겨두고 떠나실 가능성을 깨달았습니다.
웨슬리는 한 번은 자기는 감리교의 이름이 없어질 것을 두려워 하는 게 아니라, 성령이 떠나실 것을 두려워 한다고
말했습니다. 웨슬리는 생존시 막대한 부를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돈이라는 주제를 놓고
그가 말하기 좋아하는 말은, 최선을 다해 벌어라, 최선을 다해 저축하라, 최선을 다해 구제하라 였습니다.
웨슬리가 돌아와 오늘날 감리교라 이름하는 종파를 본다면 얼마나 이상한 느낌을 받을까요.
이제 그들은 물질적으로 부자입니다--거부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요한 웨슬리의 삶과 능력은 없습니다.
웨슬리는 결코 교파적인 또는 당파적인 뜻으로 역사를 세우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또한 언급 해야겠습니다.
그는 아르미니우스파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교리때문에 자신을 형제들에게서 분리시키는 건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야고보서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단순히 신조나 교리적인 진술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믿음과 행위들 또는 삶으로 실천하는 것에 그의 영생의 기초를 두었습니다.
웨슬리는 아무나 감히 자기도 해보겠다는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을 섬기고 88세에 주님 품으로 갔습니다.
계시록3:7.빌라델비아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며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니 그가 열면 아무도 닫지 못하고 그가 닫으면 아무도 열지 못하느니라.
정말, 그 말은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그 소리는 얼마나 위엄 있게 들립니까?
한 사람에게 그런 모든 속성이 부쳐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도 큰 희열을 느끼게 합니다.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자신에 대해 누가 감히 그런 것들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놀랍게 묘사하고 있는 구절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할 수 있는 열쇠는 9절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9.보라,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 곧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있는데,
보라, 내가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경배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 줄을 알게 하리라
저는 이 절은 다른 모든 사람들은 제외하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항상 일컫는 유대인들을 다루기 때문에
이 절이 열쇠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무시무시한 일은 수 세기 동안 자신들의 피를 자기들과 후손들에게 돌렸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진짜로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메시야가 아니라고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오실 이 즉 다윗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바알세불이나 멸망 당해 마땅할 어떤 사기꾼이나 불의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정말로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신 임마누엘이었습니다. 그는 정말로 메시야입니다. 분명히, 말입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이렇다고 제시하는 것처럼 정확히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는 정말로, 동일한 예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일곱 등대 가운데 계신 그 거룩하신 분은 갈릴리 해변을 거니셨고, 병자를 고치셨고, 죽은 자를 일으키셨고,
반박할 수 없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동일하신 예수입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살아나셨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히 우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거룩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거룩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시편16:10.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남겨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그들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자신들의 의를 찾다가 비참하게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는 율법으로는 어느 육체도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으로는 아무도 거룩하게 될 수 없습니다.
거룩함은 주께로 말미암습니다. 고린도전서1:30절 말씀에서,
30.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에게서 나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5:21절 하반절에서…”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 앞에서 의를 찾는 것은 그리스도를 택하든가 망하든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를 거절했으므로 망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처럼 이 시대의 사람들도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이 회당에서 예배드리는 형식을 은신처로 삼은 것처럼, 이 시대 사람들도 교회를 은신처로 삼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에 가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은 교회 안에 있지 않습니다.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요1서5:11.또 증거는 이것이니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분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니라.
12.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인간은 성령으로 거룩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그의 거룩함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성령입니다. 거기 거룩하신 분인 그가 서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의로움으로 옷 입고 그의 거룩함으로 거룩하게 되어 그와 함께 서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여섯째 시대입니다. 하나님 눈에는 시간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그는 곧 돌아오실 것입니다.
그가 오실 때 곧 이런 외침이 나올 것입니다,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계시 22:11하반절)
저는 제 거룩함이 제게서 나오지 않아서 너무도 기쁩니다.
저는 제가 제게 주신, 인정된 그분의 의로움의 모든 훌륭한 속성들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어 기쁩니다.
영원히 하나님을 찬송 할지어다! ~아멘~
진실 하신 이가 가라사대 그런데 진실된 이라는 이 말은 정말 좋은 말입니다.
그것은 틀린 것에 반대하는 의미로서 옳다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개념을 단편적으로 인식하는 것에 대조되는 완전한 인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32절에서 말씀하신 것을 생각해 봅시다,
요6:32.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요한복음15:1.”나는 참 포도나무라.”
히브리서9:24.그리스도께서는 손으로 만든 거룩한 처소들 곧 참된 것의 모형들 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하늘 그 자체 안으로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느니라.
요한1서2:8.”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이 말은 정말로 이들 절에서 설명된 것처럼 부분적인 인식의 개념에 반대되는 완벽한 인식을 표현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전에 없이 예표에 대조되는 반(反)예표, 그림자에 대한 실체로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예로 들어 봅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하늘에서 천사들의 음식인 만나를 내려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만나는 만족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루만 좋았습니다.
그것을 먹은 사람들은 다음 날은 다시 배가 고팠습니다. 또 그것을 간직하여 남겨두면 만나는 썩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만나로 예표가 되었던, 하늘에서 내려온 참 떡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하늘에서 온 그 떡을 먹으면, 그는 결코 다시 배고프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다시 돌아와서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참예한 그 순간 그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정말로 실체가 있었습니다. 더이상 그림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부분적인 구원이 필요 없습니다.
여기에 그 전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부분이 아닙니다, 그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도 이스라엘이 빛을 가졌던 걸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나라로서 빛을 가진 유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때는 애굽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어둠에 잠겨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의 가정에는 빛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참 빛이 왔습니다.
세상의 빛은 예수입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은 메시야에 관련된 성경으로 말미암아 빛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빛이 있었습니다. 애굽은 어둠 속에 있었는데 고셋 땅에 있던 이스라엘엔 빛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빛의 성취가 왔고, 빛을 내는 말씀이었던 것이 그의 백성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광채로 표명되었습니다.
불기둥이 밤에 빛을 내었던 것처럼, 그것은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빛과 생명이 육체로 신성의 충만이 거하시는 가운데서 표명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죄사함을 위해 붉은 암송아지를 가져와 제물로 드렸습니다. 일 년 동안 죄를 지은 사람의 죄가 덮였는데,
그 덮음은 죄에 대한 욕망을 없앨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제사가 아니었는데, 실체가 올 때까지 그림자입니다.
매년 그 사람은 제물을 드리고, 죄 짓고자 하는 마음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매년 또 다시 돌아왔습니다.
왜냐하면 동물의 피는 그 안에 생명이 없었기 때문에 죄인을 위해 다시 돌아와 그의 죄를 속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완벽한 대속물이신 그리스도가 바쳐지고, 그의 피가 흘려졌을 때,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그 생명은 그 회개한
죄인에게 돌아와 그 생명은 죄없고 의로운, 그리스도의 완전한 생명이므로, 그 죄 지은 자는 죄 짓고 싶은 마음을
없애기 위해 예수의 생명이 그에게 돌아왔습니다. 죄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로마서8:2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라.”
슬픈 일이지만, 옛날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들은 그 제물을 받아들이길 원치 않았습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는 아무 것도 완벽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한때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이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육체 가운데 나타나시고 그분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 죄를 치우시고 자기 몸을 제물로 드림으로써
우리를 완벽하게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빌라델비아 시대는 어땠습니까, 네, 다른 시대들 역시 어땠습니까?
그들은 정말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실재를 받아들였습니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루터가 의롭게됨의 진리를 가져왔다. 할지라도, 로마와 그것의 동부에 있는 대적 동방 정교회는 아직도 행위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행위는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 행위들이 여러분을 구원하지는 않습니다.
행위는 여러분을 완전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이든가 아니면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행위도 아닙니다. 오로지 그리스도 만으로 가능합니다.
이 시대는 그리스도를 실재로써 믿지 않는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원년이 되었습니다.
아르미니우스 주의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라는 찬송을 부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피와 우리 자신의 행실 밖에 없네 를 노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착한 행실을 하는 것을 믿습니다. 구원을 받게 되면 여러분은 의롭게 행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것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는데, 구원은 예수와가 아닙니다. 예수 뿐입니다.
오직 구원은 주에게서 나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하나님입니다.
그의 생명이 제 안에 있게 하소서. 나를 정결케 하는 것이 그의 피가 되게 하소서.
나를 충만케 하는 것이 그의 영이게 하소서. 그의 말씀이 내 마음과 입에 있게 하소서.
나를 고치시는 것이 그가 맞은 채찍질이게 하소서. 예수가 있게, 예수만 있게 하소서.
제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저의 생명입니다. 아멘.
저는 이 진리에 대해서 계속 계속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생각을 더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에이.비이. 심프슨이 쓴 훌륭한 찬송시에 대한 것입니다.
전에는 축복을 구했으나 지금은 주님을 구하네 전에는 느낌을 구했으나 지금은 말씀을 구하네
전에는 은사를 구했으나 지금은 주님만을 원하네 전에는 병 고침을 구했으나 지금은 주님만을 구하네.
영원히 모든 것 되시니 나 예수를 찬송하리 예수 안에 만물이 있고 예수는 모든 것 되시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좋고 훌륭하다 해도, 만족을 주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완벽함의 총합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그분 옆에서는 의미가 퇴색해 버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알아야하고, 닮아가야하고, 찬양해야 하고, 경배해야 할 놀랍도록 아름다우신 분이십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이 아름다운 구절은 진실한 이 -단편적인 인식과 대조되는 완전한 인식되신 그리스도-
-라는 앞 구절에 뒤이어 나오고 있습니다. 그건 여기에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한 선지자였지만,
예수님은 (모세와 같은) 하나님의 그 선지자였습니다. 다윗은(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윗보다 크신 분이셨습니다. 만 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시며, 바로 그 하나님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제사장이 한 사람도 없는 유다 지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들만 먹는 진설병을 먹었습니다.
다윗은 대적을 물리치는 훌륭한 전사였고, 사람들을 다스리며 보좌에 왕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훌륭한 그리스도의 예표 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사야22:22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다윗의 집 열쇠를 그의 어깨 위에 두리니 그런즉
그가 열면 아무도 닫지 못하고 그가 닫으면 아무도 열지 못하리라.”
성령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에서의 그의 사역에 관한 이 구약 말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다윗의 열쇠가 의미했던 것은 그림자에 불과했고, 이제 그것은 등대 가운데 서 계시는 예수 안에서 성취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부활 후의 우리 주님과 관련되는 것이지 지상에서의 생애와 관련된 게 아닙니다.
그런데 이 열쇠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해답은 열쇠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 열쇠는 손에 들려 있지 않습니다.
예수의 목에 매달려 있지도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손 안에도 있지 않습니다,
그랬다면 그가 홀로 그 열쇠를 사용한다고 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혼자서 열고 닫으며, 예수님 외에 아무도 그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게 맞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열쇠는 어디 있습니까?
열쇠는 그의 어깨 위에 있습니다. 그러면 어깨가 열쇠와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이사야 9:6절을 읽어 보십시오,
“그의 어깨에는 정권(정사)이 놓이고” 그게 무슨 뜻이죠? 해답은 이렇습니다.
“어깨에 정권이 놓였다.” 는 구절은 동방의 결혼식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신부가 신랑에게 맡겨지면 신부는 베일을 벗어서 신랑의 어깨 위에 놓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그의 지배 밑에 있다--신부가 자기의 권리들을 그에게 옮겼다-
그가 머리임을 의미할 뿐 아니라-- 그가 그 책임과 보살필 의무를 떠맡는다는 걸 의미하는데,
그가 혼자서--다른 누구도--다른 남자--다른 어떤 세력도 못하고--그럴 권리나 책임을 집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받는 자가, 다윗의 열쇠입니다.
하나님은 주권을 가지신 분이시므로, 누가 자기 신부 안에 들을 것인지 정확하게, 신성한 법령으로 미리 아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녀를 택하셨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택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녀를 부르셨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직접 올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녀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녀를 자기 피로 씻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녀를 위해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것이고 그에게만 속한 자입니다.
그녀는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맡겨지고 하나님은 그 의무를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녀의 머리입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는 그의 교회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불렀던 것처럼, 신부는 그가 자기의 주인임을 기뻐합니다.
그는 말씀하시고 그녀는 순종하는데,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 진리에 주의를 기울였습니까? 홀로 교회에 대한 주권적 권위를 가지고 계신 하나님을 존중했습니까?
저는, 아뇨 라고 말하겠습니다. 매 시대마다 교회는 계급 제도로--성직자들--사도직의 계승 등--지배되어 왔습니다.
원하는 자에게는 누구든지 주어진 자비와 은혜의 문을 열고, 교회의 사랑과 책임을 떠맡는 대신에
교회는 돈에 눈이 멀어서 그녀를 약탈하고 멸망시켰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교회는 남은 찌꺼기를 먹고 살아가는데,
성직자들은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시대나 다른 시대와 별다르지 않았습니다.
각 시대는 자신을 조직에 얽어 메여서 인간들에게 정사를 메게하고 교회를 그 지배에 맡겼습니다.
진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면, 그 사람들은 잔인하게 억압당하거나 내쫓겼습니다.
모든 교파는 똑같은 영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종파는 자기가 교회의 정사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맹세합니다.
모든 교파는 자기가 문을 연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예수님 혼자서 그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몸 안에 지체들을 세우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사역을 부여하시고, 그녀가 맘대로 사용할 은사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보살피고 인도합니다. 그녀는 그의 유일한 소유이고 그는 그녀 외에 다른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실제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곧 어느 날엔가는 바로 지금도 교회를 대신해 말하려고 하는 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한, 예수님을 밀어내고
적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조직의 우두머리로 세우기 위해서 에큐메니칼 운동을 들고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그리스도) 문밖에 서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계시록3: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그러나 이것을 말하겠습니다. 우리 주님은 지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에게 문을 열고 문을 닫는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자들은 모두 다 그에게 올 것이고,
그에게 오는 자는 결코 내쫓기지 않을 것이고, 그는 그들 중 아무도 잃어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요한복음6:37~39절.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에 마지막으로 선택된 그 지체가 들어오면, 그때는 우리 주님이 나타나실 것입니다.
다윗의 열쇠. 다윗은 이스라엘의--모든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었던가요?
그리고 예수님은 그가 천년왕국 때 다윗의 보좌에 앉아 그의 기업을 다스리고 지배하리라는 사실에 의하면 다윗의
아들이 아닙니까? 분명 그렇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열쇠는 천년왕국을 끌어 들이실 분은 예수님이심을 의미합니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 그는 지상에서 의로 통치하는 자기와 함께 하게 하려고,
그의 소유된 교회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모든 답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랍습니까.
진실로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은 그분 안에서 성취됩니다.
진실로 우리는 그분 안에 있음으로써 그가 우리를 위해 사신 것을 상속할 자입니다.
거기에 영광의 주님이신 그가 서 계십니다. 한때 아버지로서, 그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라고 외치는 천사들과 대천사들과 그룹들과 스랍들과 하늘에 전 만군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의 거룩함은 너무도 커서 어떤 인간도 그에게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로움 그 자체가 될 때까지, 자신의 의로움을 우리와 나누시면서,
교회 안에 계시는 예수를 보고 있습니다. 네, 그가 거기에 서 계십니다,
예수님, 완벽하신 모든 것 --산 밑의 백합, 빛나는 새벽별, 지극히 아름다운 분, 알파와 오메가,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
아버지, 아들, 성령--모든 것 가운데 모든 것 되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9:6.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권이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이, 조언자, 강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 평화의 통치자라 할 것이기 때문이라.
그 분 안에는 완벽한 성취가 있습니다. 한 때 우리는 그분을 존중하지 않았었지만,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을 가지고 그를 사랑합니다.
교회 가운데 그는 서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능하신 정복자인 그가 자기의 신부인 교회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부를 샀습니다.
그는 그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의 것이며 그분 혼자 만의 것이고 그는 신부를 보살핍니다.
그는 우리 왕이시고 우리는 그의 나라, 그의 영원한 소유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제가 7절의 초반부에서 9절이 그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말했던 걸 기억하실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제가 말하는 뜻을 이해하셨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거룩하며, 진실하며, ( 유일하신 실재시며),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며, 열고 닫으시는 분이라고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 사실입니다.
그 구절들은 그를 완벽하게 묘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시대의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모든 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구세주와 그들에게 있어서 그가 의미하는 모든 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 행동을 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행했던 그대로 행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리고는 진실한 신자에게 주의를 돌렸습니다.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은 그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고 참 교회를 멸하기 위하여 참 교회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실되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는 다시 돌아오셔서 누가 유일하게 능한 자인지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세상에 증명해 보이실 때, 온 세상은 그의 발 앞에 엎드리고, 그때에는 모든 세상이 성도들의
발 앞에 엎드려 성도들이 그분 편에 선 것이 옳은 행위였음을 증명할 것입니다. 영원히 하나님을 송축하리로다!
계시록3:8.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그것을 닫지 못하리라.
네가 적은 힘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
이 절의 처음 구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는 나머지 내용에 보면 그들의 행위가 열린 문과 적은 힘과 말씀과
이름에 관계가 있다. 고 분석될 수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에 관련된 풍부한 의미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이제 각 시대는 다른 시대로 연결된다고 했던 것을 상기시켜야 합니다. 언제나 겹침이 있습니다,
한 시대가 갑자기 끝나고 다른 시대가 새롭게 시작되는 게 아니라 녹아 들거나 옮겨가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특히 마지막 시대로 흘러 들어가는데, 마지막 시대는 여러모로 볼 때 단순히 여섯째 시대의 연장입니다.
일곱째 시대는 짧은 시대인데, 빠른 한 가지 역사와 매 시대의 온갖 악과 오순절의 모든 실재까지 흡수하고 있습니다.
일단 빌라델비아 시대가 그 시대의 경주를 거의 다 경주하고 나면, 라오디게아 시대가 재빨리 들어와 밀과 가라지를
추수하게 할 것입니다, 가라지를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마태복음13:30.)
기억하십시오. 사데 시대는 개혁을 시작했고, 그 개혁은 아직도, 오순절에 심겨졌던 알곡이 마침내 원 씨가 되어 돌아
올 때까지, 파종과 물주기와 영양분 공급과 기타 등등의 전 주기를 거칠 때까지 진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일이 진행되는 동안, 심기운 가라지들도 그 주기를 거쳐 역시 추수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아온 일 그대로 입니다. 여러분이 사계절을 생각해 보시면, 여러분은 이것을 잘 이해하실 것입니다.
여름에 여러분이 본 줄기차게 자라는 식물은 갑자기 씨가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러분은 여름이 언제 가을로 되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그저 서서히 가을로 옮아갔기 때문입니다.
시대들도 꼭 그런 식입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두 시대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속히 오리라” 고 말씀하신 시대는 이 시대입니다. 11절. 그것은 마지막 시대를 매우 짧은 시대가
되게 합니다. 라오디게아는 빠른 역사의 시대입니다. 그것은 짤막하게 잘려진 시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도 닫을 수 없는 열린 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다루겠습니다.
맨 먼저 저는 그 시대의 엄청난 선교의 노력으로서 열린 문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바울은 주님을 위한 새로운 전도의 노력을 열린 문이라 칭했습니다.
고린도후서2:12절“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그래서 우리는
성경 구절을 비교해 봄으로써 열린 문은 복음이 세상에 가장 넓게 확산된 것을 의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뭔가를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셋으로 역사하십니다, 안 그렇습니까?
교회가 정부에게 결혼한 것은 셋째 시대 버가모 시대였습니다. 니골라당의 행위는 니골라당의 교훈이 되었습니다.
그 시대는 거짓 포도나무를 위한 열린 문이었습니다. 정부의 권력으로 후원을 받게 되자, 그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실상 세상 체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산불처럼 퍼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 개의 시대가 지난 후, 믿음의 길고 질긴 투쟁 끝에, 여기에 진리에 열린 문이 이르렀습니다.
이제 주의 말씀의 시대입니다. 물론 다섯째 시대는 이 강력한 움직임을 위한 무대를 마련했는데,
그 시대는 탐험과 식민지 건설과 서적 출판 기타 등등을 이룩했기 때문입니다.
이 열린 문이 히브리서2:1~4절에 제시된 오순절의 신성한 패턴을 따랐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히브리서2:1.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지금까지 들은 것들에 더 열심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리니 이것은 언제라도
그것들이 우리에게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2.천사들을 통해 하신 말씀이 확고하였고 모든 범죄와
불순종이 정당한 보응의 대가를 받았거늘 3.우리가 이렇게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면 어찌 피할 수 있으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신 것이요 그분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것인데
4.하나님도 자신의 뜻에 따라 표적들과 이적들과 다양한 기적들과 성령의 선물들로 그들에 대하여 증언하셨느니라.
그런데 예수님도 친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것이 그 패턴임을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마가복음16:15~20절,
15.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으려니와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 17.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내 이름으로
그들이 마귀들을 내쫓으며 새 언어들로 말하며 18.뱀을 집어 올리며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들이 나으리라, 하시더라. 19.이렇게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뒤에 하늘로
올려져서 영접을 받으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마가복음16:20.그들이 나가서 모든 곳에서 복음을 전파하매 주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며 따르는 표적들로 말씀을
확증해 주시니라. 아멘. *** 그는 그들에게 온 세상에 다니며 성경 대학을 세우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전도지를 나눠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다 좋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들에게 명령하신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말씀에 꼭 붙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적이 따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맨 처음 전파되는 사례는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보내셨을 때입니다.
마태복음10:1.그분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사 그들에게 부정한 영들을 대적하여 그들을 내쫓으며 온갖 질환과 온갖
질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이제 이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첫째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과 3.빌립과 바돌로매와 도마와 세리 마태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별명이 다대오인 렙배오와 4.가나안 사람 시몬과 및 가룟 유다인데 그는 또한 그분을
배반하여 넘긴 자더라. 5.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매시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방인들의 길로도
들어가지 말고 사마리아사람들의 어떤 도시로도 들어가지 말며 6.오직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로 가라.
7.너희는 가면서 전파하여 이르되,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라. 8병든 자들을 고쳐 주고 나병 환자들을
정결하게 하며 죽은 자들을 살리고 마귀들을 내쫓되 너희가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이 사역은 사실 그분 자신의 사역을 그들과 나누신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9:35~38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5.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들에서 가르치시며 왕국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모든 질환과 모든 질병을 고쳐 주시니라 36.그러나 그분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니
마음을 가지셨으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지치고 널리 흩어졌기 때문이라.
37.이에 그분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수확할 것은 많되 일군들이 적으니
38.그러므로 너희는 수확하시는 주께 기도하여 그분께서 그분의 수확 밭에 일군들을 보내실 것을 청하라, 하시니라.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사도들만 주 예수님께 이런 사역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죽었을 때 그 사역도 끝이 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계신 동안 이미 사람들에게 사역을 나눠주기 시작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10:1.이 일들 후에 주께서 다른 칠십 명도 세우사 친히 가시고자 하는 각 도시와 지역으로 둘씩 둘씩 자기
얼굴 앞에 보내시니라. 2.이러므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수확할 것은 많으나 일군들이 적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수확하시는 주께 기도하여 그분께서 그분의 수확 밭에 일군들을 보내실 것을 청하라. 3.갈지어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어린 양을 이리들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도다. 4.돈주머니나 짐 보따리나 신을 가지고 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 5.어느 집에 너희가 들어가든지 먼저 이르되, 이 집에 화평이 있을지어다, 하라.
6.만일 화평의 아들이 거기 있으면 너희 화평이 그 집에 머무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도로 너희에게 돌아오
리라. 7.그 집에 머물며 그들이 주는 것들을 먹고 마시라. 일군이 자기 품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가지 말라. 8.너희가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그들이 너희를 받아들이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들을 먹고
9.그 안에 병든자들을 고치며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왕국이 너희에게 가까이 왔느니라, 하라.
누가 감히 빌립의 강력한 사역을 부정하겠습니까? 누가 감히 이레뇨(이레니우스), 마틴, 콜럼바,
패트릭과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던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이들의 위대한 사역들을 부인하겠습니까?
네. 성경의 길은 열린 문의 참 길입니다. 그런데 저는 거기에 제 간증을 보태고 싶습니다. 제가 그렇게하는 이유는
저는 하나님께서 제 삶 속에서 행하신 일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드리는 것을 용서해 주신다면 저는 어떻게 제가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하나님의
능력은 아직도 믿고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역사하심을 확실히 아는지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남아프리카로 전도 여행을 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많은 축복을 내리셨는데, 제가 더반(Durban)에 갔을 때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거대한 경주장이었습니다.
모인 군중은 십 만명을 훨씬 웃도는 수였습니다. 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그들은 다양한 부족들을 분리하기 위해
경계판을 세워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군중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수 백명의 경찰들을 배치시켰습니다.
그 배고픈 영혼들은 먼 곳에서 왔습니다. 로데지아의 여왕은 27개의 역마차에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가득 싣고
왔습니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랑하는 사람을 등에 업고 산을 넘고 들을 지나 장거리를 고생하며 왔습니다.
나라 전체가 성령이 표명하신 권능의 역사에 뒤흔들렸습니다.
어느 날 오후 제가 예배를 시작했을 때, 수천 명의 회교 교도 중 한 사람이 강대상에 올라왔습니다.
그 여자분이 제 앞에 서 있을 때, 회교도에게 선교하던 선교사는 주님께 간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오, 저 고귀한 영혼을 위하소서. 오, 저 귀한 영혼을 위하소서. 그는 거기에 여러 해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회교도는 한 사람 밖에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원래 미디아계 페르시아인들로 그들의 법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개종시키기가 무척 힘든 사람들입니다.
한 번 회교도가 되면 평생 회교도가 된다. 가 그들 가운데 한 율법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글쎄,
그 여자분이 제 앞에 서 있을 때, 저는 통역자들을 통해 그녀에게 와 그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선교사들이 여러분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라는 분에 대해 여러분에게 말씀해 주셨죠? 하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제 말을 들은 그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는 모습을 보셨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들은 맞다고 대답했고,
저는 계속해서, 선교사들이 이 동일하신 예수는 능하신 치료자이시며 직접 사람들을 영접하러 다시 오시기 전까지
시대를 통해 내려오며 그의 백성들 안에 사실 것임을 여러분에게 이 책에서(저는 제 성경을 높이 쳐들어 그들이
보게 했습니다) 읽어 주었습니까? 예수 안에 있던 영을 가짐으로써 그들도 예수가 행하셨던 것처럼 커다란 역사들을
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말해 주었습니까?
여러분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병고침도 받을 수 있다고 말해주던가요?
몇 분이나 이 동일한 예수가 우리 가운데 내려오셔서 그가 오래 전 여기 이 땅 위에 계셨을 때 행했던 똑같은 일들을
하시는 것을 보고 싶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원했습니다.
그 한 가지가 분명히 그들이 만장일치한 것입니다.
그 다음 저는 계속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행하셨던 일을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행하신다면,
그러면 여러분 그의 말씀을 믿으시렵니까? 그런데 여기 제 앞에는 회교인인 여자분이 있었습니다.
성령이 제 몸을 통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자, 제가 당신을 모른다는 걸 아시죠.
저는 당신의 언어도 모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그걸 인정했습니다.
저는 말하길, 당신을 고치는 문제에 있어, 당신은 나는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당신은 오늘 오후 설교 메시지를 들었고 이해하셨습니다.
그녀는 신약을 읽었기 때문에 이해했노라고 인디언 통역자가 그녀를 대신해서 제게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회교도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그들은 한 분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인하고, 대신 모하멧을 선지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는 결코 죽었다가 부활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제사장에게 그렇게 가르침을 받아 그것을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정말로 죽었다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는 교회에 그의 영을 보내셨습니다. 그 안에 있던 그 영은 지금 교회 안에 계신 동일한 영이고,
그것은 예수님이 행하셨던 것을 나타내실 수 있고 그러실 것입니다.
그는 요한복음5:19절에서,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저에게 당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또는 당신이 여기에 왜 왔는지 나타내 주신다면—
만약 예수께서 당신의 과거를 제게 말씀해 주실 수 있다면, 정말로 당신은 앞으로(지금)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통역자를 통해서, 네, 믿을 수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좋습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하시기를. 하고 말했습니다.
그 회교도들은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어날 일을 보기 위해서 모두 몸을 앞으로 내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성령이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남편은 키가 작고 뚱뚱한 사람으로 검은 콧수염을 기르고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두 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당신은 삼일 전 의사들에게 갔었는데 그 의사는 당신을 진찰했습니다.
당신은 자궁에 종양이 있습니다. 그 여자는 머리를 숙이고, 사실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인인 제게 오셨습니까? 왜 당신네 회교 선지자에게 가지 않으셨죠?
그녀는, 당신은 날 도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을 도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세주로 모셔들인다면,
지금 여기 계셔서 당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이 당신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녀는, 저는 예수를 내 구세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해냈습니다.
그녀는 병 고침을 받았고 그 날 한 만 명 가량의 회교도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이 말씀과 능력 둘 다로 전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삼십 년 동안 일하고도 아무 것도 추수하지 못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능력의 열린 문을 우리에게 주셨고 그것을 우리는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울에게 위대하고 효력있는 사역을 주었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4절,
“내 말과 전도함이 사람의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한 것이라.”
성령 충만을 받고 성령의 능력의 나타내심을 가지고 참된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선교 지역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결과들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여러분들이 참된 복음을 전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 선교 지역에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저는 항상 이런 식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너무도 많은 부분이 그렇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행을 하고 있었을 때, 시장님과 함께 더반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목 주위에 표를 부친 한 원주민을 보았는데
그는 우상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 표가 무엇이냐고 친구에게 물었더니 그는 원주민들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게
되면 표를 붙인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그 우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째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시장은 저 사람의 언어를 말할 수 있으니까? 가서 그에게 말을 걸어봅시다,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가갔고 시장은 제 통역자인체 했습니다. 저는 그 원주민에게 그리스도인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기는 정말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리스도인이라면서 왜 우상을 가지고 다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그것은 자기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우상인데 자기에게 물려주셨다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을 가지고 다니면 안된다고 말했을 때 그는 이 우상은 자기 아버지에게 커다란 쓸모가
있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호기심에 알고 싶어했고, 그는 어느 날 자기 아버지가 사자를 만났을 때, 불을 피우고
마법사에게 배운 대로 그 우상에게 말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사자가 떠났다는 그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불은 모든 야생동물들을 겁나게 하므로 사자를 쫓아버린 것은 불이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그의 대답을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그는 어, 그것은 이런 식입니다, 만약 아모야(영)이 실패하면,
그때 이 우상은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아프리카 전도 대회의 자세한 이야기는 선지자가 아프리카를 방문하다 라는 책에 실려 있습니다.)
말씀이 오순절의 원래 열린 문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무리에게 남은 모든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빌라델비아 시대의 열린 선교의 문을 다시 알아 봅시다.
그 시대는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능력의 열린 문이 없었습니다. 보십시오,
그 절 내에서 그는 이 열린 문을 언급하고 계십니다. 그는, 너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그 시대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말씀은 잘 전파되었습니다.
그것은 영혼들로 지혜롭게 되어 구원에 이르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역사를 보이시는, 자기 자녀들을
위해 팔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몇몇 흩어진 무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우를 제외하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것은 계속 자라고 있었고 루터의 개혁 때 가졌던 것을 넘어 증가했습니다.
바로 이 시대에 우리가 종종 전도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이 나갔습니다.
시골 제화업자이며 영국 모울튼에 있는 파티큘러 침례교회의 담임이던 윌리엄 케어리 목사는 사도들에게 주어진
만국을 가르치라는 명령은 세상 끝날까지 모든 목사들의 의무인데 수반되는 약속은 공평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설교함으로써 사람들을 강력하게 흔들어 깨웠습니다.
구원받을 사람들은 다 구원받을 것이며 선교 사업은 성령의 역사를 거스 릴 것이라고 믿는
택하심의 교리에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친 칼빈주의자들은 그를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앤드류 풀러는 설교와 기금 마련을 통해서 케어리목사를 도왔습니다.
그들의 영향력은 아주 커서 1792년에 복음을 만국에 확산시키려는 협회가 결성되었습니다.
이 선교회는 케어리 목사의 복음 선교를 후원했습니다.
그는 인디아에서 많은 영혼들을 주께로 인도함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임을 나타냈습니다.
1795년 각성된 그리스도교는 우리가 잘 아는 런던 선교 협회를 결성하여 수백만 파운드를 모아 수년 동안 수천명의
선교사들을 주님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움직이셨습니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저는 이 말들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그것들을 선교와 분리시키지는 않을지라도, 저는 여러분에게 마지막 시대로 깊게 연류된
한 생각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앞서 말씀 드린대로, 이 시대는 마지막 시대로 녹아 들어가는 시대입니다.
이 시대에 예수님께서, 내가 속히 오리라 고(11절) 말씀하셨고 마지막 시대에 대해서 주께서 땅 위에서
짧은 역사를 이루실 것이므로 그 역사를 이루사 필하시고 의로움으로 짧게 끝내시리라. 하셨습니다.
로마서9:28절. 보십시오. 계시록3:8절이 어떻게 말하는지-- 열린 문--적은 능력, 말씀, 이름.
그 열린 문은 나머지 셋 모두와 관련됩니다. 그런데 그 문은 어떤 걸 의미합니까?
요한복음10:7절에 보면,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그건 맞습니다: 자존자 가 양의 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히 이상스러운 표현이 아닙니다.
이것은 실제로 그렇습니다. 요한복음10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베푸실 때 그는 자신을 목자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그는 자신이 문이라고 합니다. 목자는 양에게 문이 되는 겁니다. 그는 실제로 그들의 문입니다.
제가 동양에 갔을 때, 저녁 무렵에는 목자가 자기 양을 다 모으는 걸 보았습니다.
그는 양들을 우리 안에 몰아넣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양의 수를 세었습니다.
다 들어와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목자는 양우리의 열린 문 앞에 누워 실제로 양우리의 문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그 목자를 지나지 않고는 출입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문이었습니다.
다음날 저는 친구와 함께 지프차를 타고 가면서 어떤 목자가 양떼들을 시내로 인도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금세 교통이 정지되어 양들이 지나가게 했습니다. 그런데 동양의 도시들은 우리 나라의 도시들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상품들을 다 안에다 두지만 거기서는, 행인들이 자나가면서 보고 살 수 있도록 땅에 모든 물건들을 내놓는
우리나라의 농부 시장과 같습니다. 저는, 오, 이런, 여기엔 한차례 소동이 시작되겠군. 저 양들이 저 양식들을 다
볼 때까지 기다려야 되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목자가 앞서 가는 동안, 그 양들은 목자의 발자국을 그대로
좇아 따라갈 뿐이었습니다. 모두 그 좋은 것들을 구경하긴 했지만 한 마리도 아무 것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오, 제가 그들의 말을 할 수만 있었다면 저는 교통을 멈추게 하고 제가 방금 본 것에 대해 설교를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목자장에게 속한 양들이라면, 여러분은 그 양들처럼 그의 발자국을 그대로 따라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어떤 큰 꽃을 위해서 곁길로 새거나 어떤 신학 박사나 철학 박사나 법학 박사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유혹을 받지 않고 목자의 음성과 함께 할 것입니다.
성경은 양들은 그의 음성을 알고 그를 따르며 타인의 음성은 그들로 도망하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양은 그들의 참된 목자의 음성(귀에 각인 된)을 쫓아서 달아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가 거기서 보고 배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여러 종류의 동물을 치고 있는 사람들을 본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돼지를, 어떤 사람은 염소를, 어떤 사람은 낙타를, 어떤 사람은 노새를, 등등 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곳에 사는 친구에게 그 사람들을 뭐라고 부르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는, 어, 그들은 목자지.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다 목자라는 뜻은 아니겠지. 목자들은 양만 치는 자들 이쟎아? 했습니다.
아니, 목자란 치는 사람 또는 풀을 먹이는 사람이야, 그래서 동물들에게 풀을 뜯어 먹게 하는 사람은 누구나 목자야.
하고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그 말을 듣고 저는 놀랬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목축자들과 양을 돌보는 사람들 사이에 한 가지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날이 저물면 양을 치는 목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다른 목자들은 짐승들을 들에 남겨 두고 집으로 갔습니다.
목자는 자기 양을 데리고 와서 양우리에 몰아넣은 후 누워 양들의 문이 되었습니다. 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목자는 우리를 결코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십니다.
밤이 찾아오면 저는 그의 양우리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저는 그의 보살핌 아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문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양들의 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문이 열리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음을 보십시오.
그것이 그분에 대한 계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그 계시는 말씀을 비추고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힘을 주려고 열리고 있습니다.
마지막 두 시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계시가 우리 앞에 꽃을 피웠습니다.
네, 우리는 예수가 하나님이셨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면 그가 어떻게 우리 구세주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가 유일하신 하나님, 또는 홀로 하나님이심을, 그가 알파요 오메가이심을, 이 예수는 주요, 그리스도이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모두이며, 한 인격체 안에 계신 한 분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계시입니다. 고전12:3…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를 주(하나님 아버지)라고 말할 수 없느니라.
첫번째 교회 시대 이후로 숨겨졌지만, 이제 우리는 다시 그것이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가 누구신지에 대한, 또 그가 자신의 자녀들을 구속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에 대한 계시가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알고 있었던 신성은 한 개성을 가진 세 인격체의 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한 인격체는 하나의 개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의 개성이 있다면, 한 인격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세 인격체를 믿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첫번째 계명을 어기는 죄를 짓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신성의 계시는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참 교회는 다시 힘있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의 결말을 다 겪은 후이어서 참 교회는 마침내 자기가 경배하던 주인이 누군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오순절 날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삼위일체의 세례에 대해 꿈꾼 하나님이 주신 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은 환상이 아니라 꿈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교회 시대의 축복 중 하나는 환상을 받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성령에 의해 꿈을 받는 것이라고 확신
합니다. 그때는 어느 토요일 새벽 세 시쯤이었습니다. 저는 요셉에게 물을 주려고 일어났습니다.
누웠을 때 저는 금세 잠이 들었는데 이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한 남자를 보았는데 제 아버지 같았습니다.
그는 몸집이 크고 튼튼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또 제 어머니 같은 한 여자를 보았는데, 그 남자가 제 아버지 모습은
아닌 것처럼, 그 여자도 제 어머니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이 남자는 자기 아내에게 몹시 횡포를 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 각이 진 커다란 몽둥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통나무를 세워 도끼로 한 쪽을 치면 V자 보양의 세 각이 진 장작이 나오는 걸 아시죠. 그것은 그런 모양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이 몽둥이를 들고 그녀를 때려 쓰러뜨렸습니다. 그 여자가 누워서 울고 있을 때, 그 남자는 가슴을 내밀고
주위를 걸어 다녔는데 그 얼굴엔 그 가련한 작은 여자를 때림으로써 대단한 긍지와 만족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자랑스럽고 뽐내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그 여자가 일어나려고 할 때마다 그는 그녀를 때렸습니다. 저는 그가 하는 일이 못마땅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막을 것을 고려해볼 때, 저는 난 저 남자와 맞붙을 수 없어—
그는 너무 크거든. 게다가 저 사람은 내 아버지인 것 같은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저는 그가 제 아버지가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남자도 여자에게 그렇게 대할 수는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다가가서 그 사람의 목덜미를 잡고 그를 돌이켜 세우고, 당신은 그 여자를 때릴 권리가 없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렇게 말했을 때 제 근육이 커지더니 제가 거인 같이 되었습니다.
그걸 본 그 남자는 절 무서워했습니다. 저는, 그 여자를 다시 한 번 때리면 내가 가만 안 있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시 그 여자를 때리려고 하다가 멈췄고 그리고나서 꿈이 끝나 버렸습니다.
저는 꿈을 꾼 후 즉시 잠에서 깼습니다. 그것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왜 제가 그 여자에 대해 꿈을 꿨는지 궁금해 했는데, 갑자기 그 분이 오셨을 때,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제게 나타나셨고 그 꿈의 해석은 그분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제가 여러분의 꿈을 정확하게 해석할 뿐 아니라. 아주 여러 번, 여러분이 결코 말할 필요도 없이
제가 여러분이 꾼 꿈을 말씀 드렸음을 알고 계십니다.) 그 여자는 오늘날 세상 교회를 나타냅니다.
저는 교회가 처해 있는 지저분한 상태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교회는 뭐랄까 어머니의 존재여야 했습니다.
(그녀는 음녀의 어미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다스리는 종파들입니다.
세 각이 진 몽둥이는 삼위 일체의 거짓 삼위일체 세례입니다. 그녀가 일어나려고 할 때마다.
(그건 회중들이 진리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는 그 거짓 교리를 가지고 그녀를 다시 쓰러뜨렸습니다.
그는 너무도 커서 처음에 저는 겁을 냈지만, 제가 그를 대적하러 왔을 때 저는 제가 커다랗고 힘센 근육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것들은 믿음의 근육들이었습니다.
그 꿈의 결과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내게 그런 힘을 주실 수 있으신 분이므로,
저로 그녀를 위해 일어나 세상의 교파 세력을 대항하고 그가 그녀를 더 이상 못 때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꿈을 가지고 교리를 만들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옹호하는 다른 교리들을 꿈을 가지고 입증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신성의 단일성은 창세기1:1절에서 계시록22:21절에 이르기까지 편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삼위일체의 비성서적 독단으로 눈이 멀었고, 그 독단은 너무도 광범위하게 수용되어 있으므로
한 하나님에 대한 한 인격체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신성의 진리를 보지 못해 그것을 대적한다면, 그들은 나머지 진리들도 못 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계시는 그의 교회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일곱 시대 동안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
그분의 역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이해하시겠습니까? 이제 이해하시리라고 확신합니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자 우리는 힘이 어떻게 돌아왔는지 이미 언급했습니다. 힘은 돌아왔습니다.
종교 재판의 권세는 시들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고향 땅을 떠나 경배의 자유를 요구했습니다.
성직 계급 제도의 멍에는 부서졌습니다.
정부는 한 분파를 다른 분파에 대항하게 하는 게 현명치 않음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사실, 의도는 좋았지만 인도를 잘못 받는 사람들은 그들의 종교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기꺼이 전쟁을 일으키려
했습니다. 이 시대에 종교의 힘을 가장 크게 보인 것은 아마도 프랑스가 혁명으로 무너졌다 해도, 위대한 요한 웨슬리의
부흥은 대영제국으로부터의 혁명을 고수해 영국을 구하고 여러 해 동안 영광스럽게 하나님의 손에 든 도구가 되게
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말씀 전파가 이 시대만큼 크게 이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사탄이 자유사상가들을 무더기로 일으켰을 때, 공산주의의 창시자들이 일어났습니다.
해방신학자들이 더러운 산물들을 퍼뜨릴 때,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강한 전사들을 일으키셧습니다.
그리스도교 책자들과 가르침과 훌륭하기 이를 데 없는 설교 작품들이 이 시대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설교자들과 교사들이 일치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스펄젼파, 파커파, 맥클렌파, 에드워드파, 번연파, 뮬러파, 브레이너드파, 바안파, 비숍파들, 모두가 이 시대에
나왔습니다. 그들은 전파하고 가르치고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했습니다.
계시록3:9.보라,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 곧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있는데,
보라, 내가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경배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 줄을 알게 하리라.
그런데 우리는 이 거짓 유대인 또는 거짓 신자들의 문제가 이미 둘째 시대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짓되이 자신들을 유대인이라 불렀던 이 사람들은 첫째 시대의 첫 성령 강림 직후에 나타났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개혁 이후 둘째 시대에 다시 나타납니다. 이것은 우연일 수가 없습니다. 정말로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탄의 원칙입니다. 그 원칙은 조직을 하고 정통성을 주장합니다.
그럼으로써 교회 내에서 특별권과 특권들을 부여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저 옛날 서머나 시대에서 이 사람들은 사실은 아니면서 자기들이 실제로 유대인이라.(또는
믿는 자들)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들은 사탄의 회당 출신이었습니다. 그들은 사탄이 조직한 무리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서 우리는 사역을 맡은 형제들 위에 보증이 없는 리더쉽을 취하는 사역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장로들 위에 감독들(주교)이 교구마다 세워집니다.
다음에 우리가 본 것은 세째 시대에 그야말로 사탄의 위 라 불리는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는 교회와 정부가 완전히 결합한(결혼한 상태)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배후에 정부의 권세를 가진 그 교회는 실제로 육체적으로 이길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부의 권력에도 불구하고 그 장악을 무너뜨렸고 종교 개혁은 커다란 빛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었죠? 루터교인들은 조직을 하고 정부와 가세함으로써 다시 이 여섯째 시대에 사탄의 회당이
나타난 것을 봅니다. 물론 이 회당의 무리는 자신들이 사탄에게서 나왔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안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에게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진실된 유대인은 외적으로가 아니라, 내적으로—영으로 유대인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거짓 유대인이라면 그것은 그들이 유다서19절이 말씀한 대로 성령은 없는 자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에게서 태어납니다. 이 사람들은 성령이 없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아무리 강렬하게
항의하고 자신들을 증명하려고 아무리 길게 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들은 죽었습니다.
그들은 조직의 자녀들이고 참된 열매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신조와 독단과 교리 위에 세워져
있고 진리가 그들에게는 없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의 뜻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위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두 다른 영으로부터 온 두 포도나무에 대해 가르치려고 애써온 것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예수와 유다를 예로 들어봅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유다는 멸망의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안에 들어가셨습니다. 사탄은 유다 안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는 완전 성령 사역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10:38절에. 성경은 말하기를,
이 사람이(유다)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사도행전1:17절. 마태복음10:1절,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유다 안에 있던 그 영은 예수님의 사역 안으로 성큼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둘 다 십자가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자기의 목숨을 죄인을 위해 내놓고 십자가에 매달리셨고 그의 영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의 영은 하나님께 갔다가 오순절날 교회 안으로 퍼부어 내렸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목매달았고 그의 영은 사탄에게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오순절 후에 유다 안에 있던 그 영은 참 포도나무와 함께 자라는 거짓 포도나무에게 돌아 갔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유다의 영은 결코 오순절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결코 성령을 받기 위해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째서 그 유다의 영이 갔었죠? 그것은 금주머니를 위해서 갔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돈을 좋아했는지. 여전히 돈을 좋아합니다. 만약 그것이 예수의 이름으로 돌아다니며 강력한 일들을
행하고 커다란 집회들을 연다면, 그것은 여전히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빌딩을 짓고 더 많은 교육을 하고 물질적인
면에서 모든 것을 더 많이 합니다. 그들에게 임하고 있는 그 영을 잘 지켜보시고 속지 마십시오.
유다는 열 두 제자 중 한 제자로서 돌아다녔고 그도 역시 기적들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영을 자기 것으로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참된 씨가 아니었으므로 결코 오순절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참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아시겠죠. 바로 지금 사탄의 회당(집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코 그것에 미혹되거나, 속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정말 선택된 자라면 여러분은 속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은 속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렀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택된 유대인(그리스도인)이라 말하지만 실상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경배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 줄을 알게 하리라.” 고린도전서6:2절 말씀에서..
“성도가 세상을 심판(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열 두 사도가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심판할 뿐 아니라 성도들 역시 세상을 심판할 것입니다. 바로 그때가 자기들이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이 자기들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진짜로 누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누가 아들의 사랑을 받는 자인지 알게 될 때입니다.
네, 그것이 표명될 그 날이 오고 있습니다. 지금 다소 세상을 지배하고 마지막 시대 동안 짐승의 우상을 만들고
그것으로 실제로 세상을 통치하게 될 이들은 어느 날엔 예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의로움 가운데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 성도들 앞에서 무릎이 꿀릴 것이고 낮춰질 것입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25장에서 우리가 본 그것인데,
그때는 첫째 부활을 놓친 모든 이들이 심판 주와 그의 신부 앞에 서게 될 때입니다.
* 찬사와 약속.
계시록3:10.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은 즉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리니 그것은 곧 앞으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시간이라.
예수님이 나의 인내의 말씀 이라고 하신 것은 무슨 뜻으로 말씀하신 것일까요?
히브리서6:13.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을 때에 더 큰 이를 두고 맹세할 수 없으므로 자신을 두고 맹세하여
14.이르시대, 내가 반드시 네게 복을 주고 복을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그가 이같이 끈기 있게 견딘 뒤에 그 약속하신 것을 얻었느니라.
여러분은 성령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심을 아십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그 말씀의 성취를 기다리는 것은 인내를 요구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하며 참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끝까지 견디어 냈습니다.
그리고나서 말씀이 마침내 성취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인내를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기도한 바로 그 순간에 그가 그 분의 말씀을 실제로 표명해 주신다면, 여러분은 결코 인내를
배우지 못할 것이고, 삶에 대해서 더욱 더 조급해 할 것입니다. 이 진리를 좀 더 완전히 제시해 보여드리겠습니다.
히브리서11:17.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삭을 받쳤으니 곧 약속들을(하나님의 말씀)
받은 그가 자기의 독생자를 바쳤느니라.
바로 그겁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말씀을 받은 후에 시험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은 하나님의 좋은 약속들을 두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린 후에는 시험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성경은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고나서도 시험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요셉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시편기자에 의하면 정확하게 맞는 말입니다,
시편105:19.그분의 말씀이 임하기까지 그리하였도다. 주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심히 크고 귀한 약속들을 주십니다. 그는 그 약속들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한 시간부터 응답을 받는 때까지 우리는 우리 영혼 안에 인내를
영접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데 우리는 인내로서만이 생명을 소유(유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여섯째 시대의 사람들이 인내를 배웠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사 우리가 이 교훈을 배우게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역사를 읽었습니다.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은 얼마나 대조적으로 보입니까?
그들은 참을성이 많았고, 조용했는데 오늘날 우리는 거의 서두름과 극도의 조급증에 압도당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내 말씀을 가지고 견디어 내고, 말씀을 삶에서 살아나게 하고,
그것으로 참을성 있게 되었으니, 내가 세상에 임할 시험의 때, 이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때를 면하게 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 번 우리는 두 시대가 겹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약속은 대 환란으로 절정을 이루는 이방인 시대의 끝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을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이 절은 참 교회가 환란에 들어가고 환란을 겪으리라는 선언이 아닙니다.
만약 그것이 그런 의미였다면 말씀은 그것에 대해서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내가 너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 라고 말했습니다.
이 유혹(시험)은 에덴에 있었던 유혹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명하신 말씀을 직접적으로 반대하며 올려진 아주 마음을 끄는 유혹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적인 추론의 견지에서 보면, 그것은 받아들여질 만하고, 그것은 너무도 옳은 것처럼 보여서,
세상을 속일 수 있을 만큼 너무도 분명하고 생명을 주는 것일 겁니다. 오로지 택하심을 받은 자들만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유혹은 다음과 같이 올 것입니다.
너무도 아름답고 복된 원리로 보이는(우리 모두가 하나되게 해달라는 그리스도의 기도를 이루는) 걸로 시작된
에큐메니칼 운동(세계 교회주의 운동)은 정치적으로 강하게 되어서 정부에 압력을 가해 모두 직접적으로나 법으로
제정된 주의들을 고수함으로써 그것에 가입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바티칸 공의회의 직접적 또는 간접적인 지배하에
있지 않으면 아무도 실제 교회라고 인정받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소수의 적은 무리들은 그들의 권리들과 특권들과 기타 등등을 잃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그들은 모든 재산과 사람들과의 영적인 권리들을 잃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도 지역 성직자 협회가 승인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아니면 많은 도시에서,
종교적인 예배를 드리기 위해 건물을 빌릴 수 없습니다.
군대에서나 병원이나 등등에서 목사가 되려면, 삼위일체를 믿는 교회주의에 가입해 인정을 받아야만 할 것입니다.
이 압력이 가중될 것입니다, 그것은 대항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인데 왜냐하면 대항하는 것은 곧 특권의 상실을 의미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많은 이들이 따라갈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은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전혀 섬기지 않는 것보다는 이 조직의 틀 안에서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나으리라고 느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 판단할 것입니다.
마귀의 거짓말을 믿는 것은 마귀를 섬기는 것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그분을 여호와라 부르고 싶다 해도 말입니다.
그러나 택함 받은 자들은 결코 속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택함 받은 자들은 그 시험으로부터 지킴을 받을 뿐 아니라,
이 운동이 짐승에게 세워진 우상이 될 때, 성도들은 휴거되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에서 가만히 들어온 이 작은 니콜라당의 행위는 이제 매력있는 운동이 되어 전세계를 속이는 사탄의 괴물이
될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과 연합한 개신교의 교회 체제가 세상의 전 부(富)를 통제하고 온 땅으로 그것의 종교적인
덫에 빠지게 하거나 그들에게서 생활을 유지시키는 사고 파는 특권을 빼앗으므로써 사람들을 죽일 것입니다.
이 일은 단순하게 성취될 것인데, 왜냐하면 음녀의 딸들은 거의 다 음녀에게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거의 모든 금의 공급을 획득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채권과 모든 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당한 때가 되면,
음녀는 현재의 돈을 다 끌어들여 금을 요구함으로 현재의 화폐 체제를 멸할 것입니다. 금이 없이는 체제는 망합니다.
유대인들은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고 동맹을 요구하러 올 것이고, 음녀 교회는 전 세계를 장악하게 될 것입니다.
그의 백성들에게 주신 약속
계시록3:11.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그것을 굳게 붙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이기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다시는 나가지 아니하리라.
또 내가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고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우리는 그가 속히 오실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가 속히 오실 것을 알고 있는데 우리는 마지막 시대의 끝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말씀하시길,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예수님이 오시는 때는 큰 고통의 때가 진행중인 때입니다. 그리고 그의 강림과 함께 부활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흙에서 나오고 살아서 그의 돌아오심을 기다리고 있는 자들과 함께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면류관이 주어질 것입니다. 왜죠?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와 함께 하는 왕들입니다. 그들은 그와 함께 다스릴 겁니다. 면류관이 의미하는게 그겁니다-
-위대하신 왕과 함께 다스리고 통치하는 것. 그것이 이 지상에서 그와 함께 고통 받는 이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공의로우신 재판관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상급을 주실 것을 알고 참을성 있게 견딘 모든 이들,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긴 그들은 그의 보좌에 앉아 그의 영광스러운 나라에서 함께 나눌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때에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굳게 잡는 것--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십시오- -그가 우리에게 주신 모든 무기를 사용하십시오-
-우리에게 맡기신 모든 은사를 사용하십시오.
우리는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되신 그가 씌워주실 면류관을 받을 테니까, 기쁘게 앞을 바라보십시오.
또 그분은 면류관을 주실 뿐 아니라. 신부 대열에 낀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성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몸이니까,
참 교회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긴 자를 그 성전에서 기둥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둥이 무엇이죠? 기둥은 사실 기초의 일부분인데 상부구조를 지탱하기 때문입니다.
이긴 자를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함께 세우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이유는 에베소서2:19~22절에서, 말씀합니다.
에베소서2:19.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더 이상 낯선자도 아니요 외국인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더불어 동료 시민이요
하나님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며 20.또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세우심진 자들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으뜸모퉁잇돌이 되시나라 21.그분 안에서 모든 건물이 꼭 맞게 함께 뼈대를 이루어 주 안에서 한 거룩한
전으로 자라가고 22.그분 안에서 너희도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거처로 함께 세워져 있느니라.
22절은 우리가 그들과 함께 지어져 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문을(예수) 거쳤고 지금은 그 몸 즉 성전의 일부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성전에 기둥으로 삼으시고 그 기초 그룹의 일부분으로 삼으실 때 그분은 무얼 하십니까?
그는 그에게 말씀과 자기 자신에 대한 계시를 주십니다,
그 이유는 그게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가지고 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16:17절. 그는 바로 그 말씀 가운데 있습니다. 거기에 그가 서 있습니다. 아무도 그를 쫓아낼 수 없습니다.
이긴 이라는 말을 묵상해 보십시오. 요한은, 누가 이긴 자입니까? 하고 질문을 했는데 곧장 답변이 오기를,
"예수가 그 그리스도임을 믿는 자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긴 자는 한 예수와 한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가 그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라고 말씀했습니다--한 분--둘이 아니라.
이긴 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신부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신부에 대해 또 알고 싶으십니까?
계시록7:4.또 내가 봉인된 자들의 수에 대하여 들었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십사만
사천이더라. 5.유다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갓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6.아셀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에서 인봉된 자가 만 이천이요, 7.시므온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에서 인봉된 자가 만 이천이요, 8.스불론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에서 인봉된 자가 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라.
9.이 일 후에 내가 보니, 보라,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 곧 모든 민족과 족속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큰
무리가 흰 예복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왕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구원이 왕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 하더라.
11.모든 천사들이 왕좌와 장로들과 네 짐승 주위에 섰다가 왕좌 앞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여
12.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영원무궁토록 있으리로다. 아멘,
하더라. 13.장로들 중에서 한 사람이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흰 예복을 차려 입은 이 사람들은 누구냐? 또 그들이
어디서 왔느냐? 하매 14.내가 그에게 이르되, 장로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내게 이르되,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와 자기 예복을 씻고 어린 양의 피로 그것을 희게 한 자들이니라. 15.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왕좌
앞에 있고 또 그분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느니라. 또한 왕좌에 앉으신 분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실 터인 즉
16.그들이 다시는 굶주리지 아니하고 다시는 목마르지 아니하며 해나 어떤 열기도 그들 위에 내리쬐지 아니하리니
17.왕좌의 한가운데 계시는 어린 양께서 그들을 먹이시고 생수의 샘들로 그들을 인도하시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리라, 하더라.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는 144,000에게 인을 쳤습니다. 그는 각 지파에서 12,000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144,000에 속하지 않은 9~18절에 나오는 또 다른 무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죠?
이들은 이방인 가운데서 뽑힌 신부들입니다.
그들은 밤낮 그의 보좌 앞에 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그를 섬깁니다.
그들은 주님이 특별히 보호하신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의 신부입니다.
신부는 신랑이 가는 곳이면 어디에 있든지 그곳에 갑니다.
그는 결코 그녀를 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는 결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는 그와 함께 보좌를 공유할 것입니다. 그녀는 그의 영광과 존귀로 면류관을 쓸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성의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글쎄요, 그는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 즉 임마누엘이셨습니다.
그러나 그건 그의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예수님은,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가 들어간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여자가 남자에게 결혼하면 누구의 이름을 가지게 되죠?
남자의 이름을 가집니다. 그가 신부를 취할 때 신부에게 주어지는 것은 그의 이름일 것입니다.
계시록21:1.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으니 이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졌고 바다도 다시는 있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더라. 2.나 요한이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이 예비한 채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더라. 3.내가 하늘에서 나는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라.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4.또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리라. 다시는 사망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으며 또 아픔도 다시는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라, 하더라.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들 전체가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게 끝이 날 것입니다.
모두 아름답고 경이로운 완전한 모습으로 변화는 다 종료될 것입니다.
어린 양과 그의 신부는 영원히 하나님의 모든 완벽함 가운데 안주했습니다. 그것을 묘사해 보라구요?
누가 묘사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못합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구요? 그것에 대해 꿈을 꿔본다구요?
그것에 대해 말씀이 말하고 있는 걸 읽어본다구요? 네 우리는 그걸 다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첫째 부활로 실체가 될 때까지는 그것의 극히 적은 분량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내가 내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나의 새 이름. 모든 것이 새롭게 되면, 그때 그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 이름은 역시 신부의 이름이 될 것입니다. 그 이름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감히 추측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무도 감히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결론적으로 주어진 성령의 계시여야 할 겁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는 그가 그 이름을 나타내 주시길 원하시는 그 날을 위해서 그 계시를 빼놓으실 것입니다.
그나마 그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멋질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아멘~
*****이 시대에 주는 마지막 권고.
계시록3:13.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각 시대마다 똑같은 권고로 끝맺습니다. 교회들이 주의 음성을 들으라는 계속적인 탄원입니다.
이 시대에 있어 그 탄원은 이전 시대들보다도 더 간절한데, 그 이유는 주의 강림이 진짜 더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시대 말고 또 다른 시대가 있다면 왜 그리 긴급하게 그러나요? 하는 질문이 나올 것입니다.
대답은 여기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는 기간이 짧은 시대일 것이고 빠르게 끝을 맺을 것입니다.
이 시대가 그럴 뿐 아니라,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눈에는 시간이 너무도 빨리 지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네, 천 년은 하루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보시는 시간으로 한 두 시간 후에 오신다면,
그때 그는 분명히 우리에게 긴박성을 듬뿍 가지고 경고하셔야 했습니다.
그의 음성은 그의 강림에 앞서 준비하라고 우리 마음 속에서 계속 울려야만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음성이 있습니다.
너무도 많은 문제들과 관심을 요구하는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값어치 있는 음성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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