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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시간이 애매하여 완주를 못한 대병사악의 마무리를 위해 허굴산으로 간다.
허굴산(681.8m)은 경남 합천군 가회면 월계리와 대병면 장단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황매산에서 동쪽으로 이어져 있다. 허굴산은 인접한 봉화산(금성산), 악격산과 더불어 암릉이 험준하기로 이름난 산으로 알려져 있다. 허굴산(일명 허불산)은 길목에서 바라보면 산중턱 굴안에 부처님이 앉아 있는 것 같아 바랑을 벗어놓고 올라가 보면 부처님은 없고 허굴만 있다 하여 '허굴산'라 하며, '바랑거리'란 지명도 중이 바랑을 벗어 걸어 두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허굴산에는 허굴, 용바위, 장군덤 등의 볼거리가 있다.
오늘은 허굴산 산행만 하기에는 여유가 많아 주변에 있는 황계폭포와 천불천탑, 그리고 고령 대가야 왕릉을 더불어 찾아보기로 한다.
산행에 앞서 황계폭포를 먼저 찾아간다.
입구 주차장에서 황계폭포까지의 거리는 약 500m.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고 캠핑장 터도 준비되어 있다.
길목에는 자연정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는데 그 옆에는 남명 조식 선생의 시비도 있다.
'달아맨 듯 한 줄기 물 은하수처럼 쏟아지니
구르던 돌 어느새 만 섬의 옥돌로 변했구나
내일 아침 여러분들 논의 그리 각박하지 않으리
물과 돌 탐내고 또 사람까지도 탐 낸다 해서......'
황계폭포.
겨울이라 꽁꽁 얼었는데 가는 물줄기가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다.
20여m 높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2단 폭포로 주변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며 폭포를 찾는 관광객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기대 이상으로 웅장한 폭포에 입이 절로 벌어진다.
폭포에서 내려와 건너편에서 바라본 모습.
이제 허굴산으로 간다.
도로 변에 주차를 하고 장단교 너머에 있는 들머리로 간다.
잠시 올라가니,
대병면 장단리의 들녘이 시원하게 펼쳐지는데 건너편에는 산행 내내 시야를 벗어나지 않는 금성산과 악견산, 그리고 의룡산이 늘어서 있다.
우측으로는 멀리 비슬산도 보이고...
허굴산도 앞서 올랐던 금성, 악견, 의룡산과 마찬가지로 암릉이 주를 이루는데,
본격적인 암릉구간이 나타나고...
주먹바위(?)라는데...
위에 올라서니 황매산과 우측 월여산, 그리고,
재안산이 뚜렷하다. 그 뒤로 감악산도 보이고...
멋진 암릉 위에도 올라가보고...
다시 시야를 멀리 하면 황석산과 월봉산, 남덕유가 아련하다.
어마어마한 암릉 사이로 들어서서,
좌측으로 길이 있나 해서 가 보았더니 길이 없었다.
우측에 보이는 구멍 속을 빠져 나가야 한다.
이렇게 구멍 속으로 빠져 나온다.
다시 거대한 암릉을 비켜가는데,
바위에 바짝 붙어서 아슬하게 지난다.
지난 번에 시간이 애매한 바람에 허굴산행을 하지 못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날 포기하길 참 잘했던 것 같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과 암릉이 잘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보여주고, 끝없이 뻗어나가는 조망에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느긋하게 진행한다.
이 바위가 권총바위라는데 글세...
황매산을 바라보니 황매삼봉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왼쪽 정상이 살짝 보인다.
ㄱ(기역)자로 꺾인 바위란다...
올라가면 역시나 조망이 끝내준다!
계속되는 암릉 구간에 시간은 마냥 흘러가지만 조망이 좋으면 바위란 바위는 다 올라가 본다. ㅎ.ㅎ.
다시 멋진 암릉이 나타났다.
정면 멀리 보이는 월여산과 재안산, 그 뒤로 감악산.
금성, 악견, 의룡산 뒤로 오두산도 보이고...
다시 황매산 쪽을 바라보니 좌측에 황매평전이 살짝 보인다.
되바위.
곡식을 거래할 때 주로 사용하던 됫박을 닯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우측 황매산 중봉, 하봉, 그리고 바로 좌측으로 황매삼봉과 황매 정상이 드러나고 좌측 황매평전 앞 쪽으로 모산재도 보인다. 감암산과 부암산도...
건너편에 들러 볼 장군바위도 보인고.
장군바위.
넓다란 암반이긴 하지만 장군을 연상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지나왔던 되바위 암릉.
이제 황매산의 전경이 완전히 드러난다.
중앙 황매평전과 베틀봉, 좌측으로 모산재, 그리고 감암산 뒤로 지리 천왕봉과 중봉이 뚜렷하게 보이는 가운데 다시 좌측으로 부암산도 보인다.
참으로 멋진 조망이다!
가오리 바위.
곳곳에 암릉이고 조망처니 어찌 그냥 지나갈 수가 있으랴!
금성산과 악견산 가운데 뒤쪽으로 합천호도 보이네!
지나온 가오리바위를 돌아 보고...
다시 암릉 좌측으로 돌아 오른다.
우회로를 이용하지 않고 바로 암릉으로 올라왔는데 우측에 멋진 바위가 보인다.
내려가 보니 용바위라고 표지판이 달려있다. 그런데 그 표지판이 반대방향을 가리킨다.
그래서 우리가 올라온 이곳이 용바위인줄 알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모습이 용바위와는 거리가 멀다.
어쨌든 건너편 바위로 올라가 본다.
아무래도 이곳이 용바위인 듯.
두 개의 커다란 바위로 갈라져 있는데 가볍게 건너갈 수 있다.
하지만 좀 아슬했다.
이 곳 샘은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하는데 하지만 오늘 보니 바싹 말라 있었다.
다시 황매산과 좌측 지리 천왕봉을 감상하고,
느긋하게 놀다 간다.
암릉을 횡단도 하고,
바로 앞쪽에 있는 정상을 향해 오른다.
정상에는 사방이 막혀 조망이 없다. 물 한 잔 마시고 하산한다.
하산하는 도중 코끼리를 만나 볼 작정이다.
조금 주의해야 할 곳.
어마어마한 코끼리 바위 옆 모습.
보는 방향에 따라 모습을 달리 하는 코끼리바위.
바위 아래는 길상대(기도처)이다.
하산하면서 좌측을 바라보니 어마어마한 빙벽이 있었다.
임도를 만나 잠시 내려가면,
합천 청강사 승탑
승탑은 스님의 사리를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으로 부도 또는 사리탑이라고도 한다.
합천 청강사 승탑은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반 승탑과는 다른 독특한 형태이다. 탑 아래의 받침 부분인 기단부는 바닥의 지대석 위에 팔각 모양의 하대석을 2층으로 올렸는데, 전체 규모에 비해 높이가 높은 편이다. 아래 하대석에는 문양이 없고, 위 하대석에는 각 면을 선으로 구획하고 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중대석은 북을 엎어 놓은 형태인 고복형으로, 위 아래에 연꽃잎 문양을 새기고 그 사이에 여의주를 희롱하는 두 마리의 용을 새겼다. 팔각 모양의 상대석은 각 면에 박쥐 모양을 새겼다. 탑 몸에 해당하는 탑신부는 둥근 공 형태이며 굵은 선을 새겨 면을 나누고 국화무늬, 연꽃무늬, 목련무늬 등을 조각했다. 탑 윗부분의 지붕돌은 팔각 모양이며 기왓골이 깊고, 밑면에는 겹처마가 표현되어 있다. 탑 꼭대기 부분인 상륜부는 하나의 돌을 깎아 만든 덮개 모양의 보개석과 구슬 모양의 보주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승탑의 가장 큰 특징은 둥근 공 형태의 탑신인데, 전체적인 모습이 오륜탑과 유사하다. 석재의 가공 방식이나 문양의 배치, 승탑의 형태로 보아 조선 말기와 근대 시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청강사가 있는데 어마어마한 바위가 대웅전 앞에 자리잡고 있었다.
쌍암마을의 금성천변을 따라 주차한 곳으로 가면서 허굴산 산행을 마친다.
쌍암마을 쉼터의 고목.
내려와서 바라 본 허굴산.
이제 천불천탑을 찾아간다.
천불천탑.
입구부터 도로를 따라 돌탑들이 즐비하다.
마치 용이 나는 듯한 형상의 도로를 따라 돌탑을 수없이 쌓아 놓았는데 과연 천 개나 될까...
부처님 뒤로 후광이...
천불천탑을 둘러 본 후 다시 고령 지산리 고분군을 향한다.
고령의 대가야박물관.
지산리 고분군 한 가운데 세워져 있다.
이미 폐관시간이 다 되어서 주변의 고분군을 둘러본다.
대가야 제철로 모형.
여기에 복원된 제철로 모형은 대가야의 철생산 기술을 알아보기 위해 고대의 방법으로 제철로를 만들어 실험한 것이다.
2005년 5월 제철로를 만들고 고령군 쌍림면에 있는 고대 철생산 유적 주변에서 철광석을 채취하여 참나무숯과 함께 넣고 12시간 이상 풀무질로 바람을 불어 넣으며 철광석을 녹여냈다. 그 결과 철이 만들어졌고 유리와 같은 찌꺼기도 흘러나왔다.
철의왕국 대가야
대가야가 국력을 키우고 고대국가로 발전하는 데는 철의 생산과 유통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대가야는 '철의 왕국'으로 불릴만큼 많은 양의 철을 생산하였고, 이를 통해 여러가지 무기와 농기구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다른 나라에 수출하기도 하였다. 대가야의 주요 철산지는 합천 야로와 쌍림면 용리 등 미숭산 기슭으로 추정된다. 특히 야로의 철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나라에 세공을 바쳤을만큼 품질이 좋았다. 지금도 야로와 쌍림의 제철유적에서는 철광석을 녹이기 위한 제련로의 파편과 철광석을 녹일 때 나오는 슬래그가 많이 흩어져 있고, 철의 원료가 되었던 철광석과 사철 등이 채취된다.
가야고분군은 입지와 군집, 묘제와 부장품을 통해 1세기부터 6세기까지 한반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가야의 정치, 문화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가야 지배층의 무덤들이다. 이 시기 동아시아 여러 국가들은 서로 경쟁하며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로 발전해 나갔으나, 가야 각국들은 독립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상호교류를 통해 문화를 공유하는 연맹왕국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생활, 생산기술, 장례의식을 통해 각국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동질감을 나타내었다. 고분에 부장된 각종 물품은 가야 각국의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고, 동아시아 각국과의 교류관계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가야는 동아시아 고대국가 형성기의 여러 정치 형태 중에서 연맹왕국의 실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며 가야의 7개 고분군은 이를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이다.
지산동 44호분.
지산동 44호분은 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구덩식 돌덧널무덤으로 봉분의 지름이 25~27m인 대형분이다. 1977년에 조사되어 문헌기록만으로 알려져 있던 우리나라 고대 순장의 실체를 처음으로 밝혀준 대가야의 대표적인 고분이다.
무덤 구조는 가운데에 으뜸덧널을 중심으로 남쪽과 서쪽에 딸린덧널이 하나씩 있고, 이 3기를 둘러싸듯 32기의 순장덧널이 배치되어 있다. 봉분 가장자리를 따라서는 1~3단으로 둘레돌을 만들었다. 순장은 으뜸덧널에 1명, 딸린덧널에 각 1명, 순장덧널에 30여 명이 확인되어 모두 37명 이상일 것으로 추측한다.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최대 규모의 순장무덤으로 순장된 사람들의 연령과 직업 또한 다양하다. 무덤에서 나온 유물로는 금과 금동으로 만든 화려한 생활용품, 토기류, 무기류, 말갖춤 등이 있다. 이 중 으뜸덧널에서 나온 야광조개국자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건너온 재료이며, 청동그릇은 백제 무령왕릉의 것과 유사하다.
이 유물들을 보면 대가야가 주변국과 활발히 교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지산동 45호분.
지산동 45호분은 6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구덩식 돌덧널무덤으로 봉분의 지름이 22~23.5m인 대형분이며, 1977년 발굴조사에서 확인되었다. 무덤구조는 중앙에 으뜸덧널과 딸린덧널을 '11'자 모양으로 배치하고, 그 주변에 11기의 순장덧널을 두었다. 순장자는 으뜸덧널에 2명, 딸린덧널에 1명, 11기의 순장덧널에 10명 등 모두 13명 정도가 확인되었다. 무덤에서 나온 유물은 금과 은으로 만든 귀걸이, 목걸이, 금동의 관꾸미개, 청동거울 조각, 비늘갑옷, 세잎무늬고리자루큰칼, 쇠창, 쇠 화살촉, 말갖춤, 토기류 등이 있다. 이 중 청동거울은 대가야무덤에서 나온 사례가 드물며, 세잎무늬고리자루큰칼은 신라 황남대총 출토품과 매우 비슷하다.
지산동고분군은 5세기부터 6세기까지 가야 북부지역에서 후기 가야의 주요 세력으로 성장한 대가야 지배자들의 무덤들이다. 고분군은 높은 산자락에 위치하여 경관이 빼어나며 가야 고분군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고분의 규모가 클수록 전망이 좋고 높은 곳에 위치하며 큰 고분 주위에는 작은 고분이 호위하듯 배치되어 있다. 44,45,73,75호분 등 대형 고분은 으뜸덧널 주위에 10~40여 명의 순장자를 함께 묻어 지배층의 무덤임을 잘 보여준다. 고분에 부장된 각종 유물은 대가야의 문화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대가야 양식의 토기는 5세기 후반이 되면 합천과 남원 등 가야 전역에서 출토되어 후기 가야연맹을 주도한 대가야의 영향력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44호분에 부장된 백제 무령왕릉 출토품과 같은 형태의 청동그릇, 일본 오키나와산 야광조개로 만든 국자, 45호분에 부장된 신라 황남대총 남분 출토품과 같은 형태의 세잎무늬고리자루큰칼, 일본 전역에서 출토되는 대가야 양식의 귀걸이와 마구류 등은 대가야의 활발한 교류관계를 잘 보여준다.
지산동 고분군은 가야 사회의 계층구조와 대내외 문물교류를 가장 잘 보여주는 가야 후기의 대표 고분군이다.
지산동 73~74호분.
지산동 73호분과 74호분은 연결되어 만들어진 연접분으로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 확인되었다. 73호분은 지산동고분군 최초의 왕릉으로 5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봉분의 지름은 22~23m이며 지산동고분군에서 발굴된 고분 중 유일한 구덩식 나무덧널무덤이다. 무덤 구조는 하나의 무덤구덩이 안에 으뜸덧널과 딸린덧널을 "T"자 모양으로 배치하고 덧널 주위에 깬 돌을 채워 넣은 모습이다. 순장 덧널은 서.남.북쪽에 각1기,봉분에 1기를 포함하여 4기이며 순장자는 11명 정도로 파악된다. 무덤에서 나온 유물은 봉황무늬고리자루큰칼, 유리목걸이, 새깃털 모양의 금동관 꾸미개, 토기류 등이 있다. 특히 유물에 붙어있던 여러 종류의 직물은 대가야 의복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74호분은 5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구덩식 돌덧널무덤으로 봉분 지름이 10~11m이다. 무덤 구조는 으뜸덧널과 딸린덧널이 "T"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고, 으뜸덧널의 양쪽에 나란하게 2기의 순장덧널이 설치되어 있다.
총 4명이 순장된 것으로 추측되며, 유물은 비늘갑옷조각, 관못, 꺾쇠, 토기류 등이 나왔다.
시리도록 맑고 푸른 하늘 아래 멋진 암릉과 조망을 즐긴 산행이었다.
산행 시간은 짧았으나 주변의 황계폭포, 천불천탑과 더불어 오랜만에 우리 선조들의 고대 고분들을 훑어보며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 이 어찌 보람차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