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시대와 현대의 단학(丹學)>
- 선음즐교(善陰騭敎)
지금부터 약 60 여년전에(1940~1960년 사이) 서울시내 일부 선단체인들이 삼각산에
중국 여산(廬山)의 백련사를 모방하여 염불단체를 만들었는데 이름을 묘련사(蓮華寺)
라 하였다.
산사에 모여 염불에 정진하였는데 홀연히 관음(觀音)이 감동하여 묘응(妙應)이나타나
열한차례 설법한 것을 적으니 한권의 책이되어 <제중감로(濟衆甘露)>라 하였는데
이 경전을 가지고 삼각산 감로앞에서 정진회를 열었다.
대부분 '고해자우품(苦海慈雨品)'으로 선법은 중국의 여암진인(呂巖眞人), 즉 여동빈선법을 사용하였으며
종리권이라는 사람의 방술(方術)을 익혀 연마하였다.
이에 단학에 조예가 깊은 인물로는 최성환, 정극경, 유성종등이다.
경으로는 '제중감로' '지장본원경' '문수반야경'등을 사용하였다.
단편집으로 '중향집' '남궁계적' '계궁지' '각세진경' '명성경' '삼성보전' '과화존신' 등의 서책이 있다.
연양법(鍊養法)과 복식법(服食法)도 연마하여 교세가 고종때까지 강화되었다.
선음즐교는 다시 분교하여 미무제주교(정일교), 제군선음즐교, 등으로 분파되었다
모두 도교의 모방이라 볼 수 있다.
- 동학(東學)
교주는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선사로써
천도교(天道敎), 시천교(侍天敎), 청림교(靑林敎), 제우교(濟愚敎)라 불린다.
동학(東學)이란 서학(西學-서敎)을 상대로 이런 이름을 붙여 그 종지(宗旨)를 표시한
것이다.
이 종교는 東洋에서 창시되었고 天主를 대상으로 한다.
이조 순조 24년에 水雲선사께서는경북 경주 가정리에서 태어나셨다.
경남 천성산에서 수도하여 득도하였으며, 이때부터 부적, 주문술법을 문인들에게 가르치며 포덕(布德)하였다.
그 주문을 강령주문(降靈呪文)과 본주문(本呪文) 두가지가 있다.
1. 강령주문 :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
2. 본 주 문 :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이 21자는
동경대전(東經大全-天道敎書)에 이른바 '구송(口誦) 장생주문(長生呪文) 37자' 라는 것이다.
부수술(符水術)은 붉은 글씨로 태극(太極)과 궁(弓)을 백지에 쓴 것을 불에 태워 물에 타 마시면
질병을 고친다 하는데 이것을 궁을부(弓乙符)라 한다.
2대교주는 최시형(崔時亨)선사로 호는 해월신사(海月神師)이다.
초명(初名)은 경상(慶翔)이요, 자는 경오(敬梧)다.
경북 경주 동촌에서 출생하였으며 수운선사님의 제자이다.
3대교주는 손병희(孫秉熙) 선사로 호는 성사(聖사), 의암(義庵)이다.
자는 응(應)이며 충북 청주 대주리에서 출생하였다.
해월 최시형 선사는 갑오정변의 여파를 받아 대원군의 선동에 따라
선사의 부하 녹두장군 전봉준 선사, 김개남 선사, 김연국 선사, 손병희 선사 등을 거느리고
전라북도 고부에 있으면서 충청북도 보은 등지에서 기병(起兵)하여 난을 일으켰다.
그 결과 청일 양국의 출병을 일으켜 청일(청나라, 일본)전쟁이 시작되고 동학교도들이
흩어지게 되었으며
전봉준 선사, 최시형 선사 등이 사형에 처해졌다.
이후 계묘년 러.일 전쟁이 다시 발발하자
의암 손병희 선사는 다시 천도교인들을 집결시켜 교세를 확장하게 되었는 바 그 수가 백만이 되었다.
이때 활약한 선사들은 송병준, 이용구,김연국, 권병덕 선사 였으며
일진회(一進會)와 호응하여 동학을 천도교(天道敎)라 개칭하였다.
후일에 분교하여 마침내 천도교(손병희), 시천교당(송병준), '시천교총부(김연국)
중앙시천교회(권병덕) 의 네파로 분류되었다.
- 청림교(靑林敎)
청림교는 동학의 지류와 여파에서 나온 것이다. 세상에 전하는 정감록 비기중에
'모름지기 흰토끼를 좇아 청림(靑林)으로 달아난다' 에서 이 교명을 지은것이다.
고종 28년에 해일 정수기라는 선사가 원래 동학도 였는데 따로 한 종파를 세우게 된 것이다.
또한 동학주문을 따라 고쳐서 '시천주조화정 무궁무궁만사지(侍天主造化定 無窮無窮萬事知)라 하였다.
대개 동학은 정감록에 말한 궁궁을을(弓弓乙乙)과 정씨가 마땅히 임금이 된다는 비기에서 생긴 것이다.
- 남학(南學)
영가무도교(詠歌舞蹈敎) 또는 대종교(大倧敎)라고 한다.
이조 말엽 정치가 부패하고 사기(士氣)가 퇴폐하여
유학(儒學)의 폐단에 대해 정신혁명이 차례로 일어났다. 이때 만들어진 단체이다.
동학과 동시에 생겨났으며 충청도에서 시작하여
이 운규(李雲圭)선사가 1세 교주가 되고, 김황 김일부(金一夫)선사가 2세교주가 되고(충남 연산사람)
충북 청주사람 권일청(權一淸)선사가 3세 교주, 다음은 김정현(金貞鉉) 4세교주
하상역(河相易)5세 교주, 염명(廉明) 6세 교주 등이 있다.
이 교에는 '오음정의(五音正義)' 및 '정역(正易)' 등의 책이 있으며
유불선을 통합하여 그 정교의 취지를 만든 것이라고 한다.
- 보천교(普天敎)
증산도의 전신으로 태을교(太乙敎) 또는 흠치교라 한다.
태을교(太乙敎)의 제1 세 교주 강일순(姜一淳) 선사는
호를 증산(甑山)이라 부르며 고종 8년 전북 고부군 서산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부터 무척 총명하여 늘 혼자 선도(仙道)의 태을주문(太乙呪文)을 읽고
불전(佛典)의 칠성경(七星經) 및 유가서(儒家書)의 상서서(尙書序)를 고심연구하여 진리를 연구하고자 하였다.
신축년에 득도(得道)하여 삼교(儒敎, 佛敎, 仙敎)를 통합하며 한 종교를 창립하였다.
선천과 후천의 기운을 구분하여 진리를 포교하였는 바,
선천기에는 상극(相克)의 원리를 주재하였기 때문에 원한과 불평의 기운이 세상에 충만하고
후천기에는 상생(相生)의 원리를 주재함으로써
세계를 통치하여 원한이 있는 사람은 서로 사랑으로 변하게 한다는 진리이다.
태을주문(太乙呪文)은 다음과 같다.
'음치음치 태을천상원군 음리치야도래 음리함리 사바하'
태을경과 태을주문을 함께 외우며 '천지공사'를 주관해 나갔다.(天地公事)
제2세 교주 차경석(車庚錫) 선사는 그의 부친 차치구 선사가 원래 동학당으로
전봉준과 함꼐 고부에서 일어나 사형당했다.
그때 차경석 선사는 아비의 뜻을 이어 동학을 믿다가 후에 일진회(一進會)에 들어가 전주지회에서 활동하였다.
여기서 姜一淳 선사를 만나 전발(傳鉢)을 이어 받았다.
증산선사의 금산사 미륵불상(전북 母岳山) 설화가 특이하며, 후일 제자인 김형렬 선사는
위봉사 주지 곽법경 선사와 함께 '불교진흥회'에 가입 '미륵회'를 만들어 회장이 되었다
.
태을교행의(太乙郊行儀)에서 '옥황상제 강령지위(玉皇上帝降靈之位)란 위패를
신주모양으로 만들어 모시고 태을주문(太乙呪文)을 외우며 사배(四拜)하고....운운'
등의 내세관이 들어 있으며 포교 활동에 이용하였다.
- 백백교(百百敎)
경기도 양평군에서 생긴 종교단체로 받드는 신은 백의관음(白衣觀音)으로
혹 백의선인(白衣仙人) 이라고도 하는데 교도는 3만명이나 된다고한다.
백의 선인은 고려때 묘청스님이 서경에 세운 팔성상(八聖像) 중의
호국백두악선인(護國白頭嶽仙人)이란 것이다.
백백교는 선불(仙佛)에서 다같이 白衣라 한데서 연유한 것이다.
고종이 지운영과 최시명 등을 중국에 보내 강서성 용호산에 가서 장천사상(張天師像)을 얻어다가
양평군 용문사에 도관을 짓고 송봉하였다.
백의관음(白衣觀音)의 백자와 백의선인(白衣仙人) 백자를 따서 백백(白白)이라는 교명을 짓게 되었다.
죽림의 향기 상 화...